9화(5,129자) · 하경철 · 12월 20일

어제는 일흔넷이었소

돌아가지 않기로 한 밤 · 서지오

십이월 이십일 새벽 다섯 시, 동진 3호가 무명도 부두에 닿았다. 물때는 일곱 시 사십 분이었다. 만조 앞뒤 두 시간 안에 짐을 다 내려야 했는데, 부두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하경철은 조타실 창에 이마를 대고 그 빈 부두를 내려다봤다. 두 달 전 마흔넷이 서 있던 자리였다.

배를 대고 계류줄을 걸자마자 그는 냄새부터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새벽 다섯 시에 섬 전체에서 밥 냄새가 났다. 장작 연기와 쌀 익는 냄새와 멸치 국물 냄새가 뒤섞여서 부두까지 내려와 있었는데, 그 냄새가 어찌나 짙은지 갯내가 밀려 뒤로 물러나 있었다. 스물두 해 동안 이 섬에 세 번 왔는데 이런 냄새는 처음이었다.

“선장님, 하역은 일곱 시부터입니다. 대리점 인부들이 안 보입니다.”

유단이 조타실 문간에서 말했다. 하경철은 대답 대신 모자를 집어 썼다.

“나 좀 올라갔다 오겠네.”

“어디를요?”

“냄새 나는 데.”

스물두 해 동안 하경철은 화물항이 아닌 곳에서 배를 내린 적이 없었다. 무명도에서도 세 번 다 조타실을 지켰다. 열두 해 전 석대호가 내리던 날에도 내려가지 않았다. 그가 사다리를 내려가자 갑판에 있던 진이 앞치마를 두른 채로 따라 내려왔다.

*

부엌 마당은 부두에서 올라가는 첫 골목 끝에 있었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줄이 보였다. 사람들이 골목을 따라 줄을 서 있었다. 장화를 신은 어부들, 목도리를 두른 할머니들, 교복 위에 점퍼를 걸친 아이들이 그릇을 하나씩 들고 서 있었는데, 그릇이 다 달랐다. 꽃 그림이 있는 사기그릇, 찌그러진 양은 대접, 플라스틱 바가지까지 있었다. 줄은 골목을 돌아 마당 안까지 이어져 있었다.

마당에 아궁이가 다섯이었고, 다섯에 다 불이 들어 있었는데 솥은 넷이었다. 다섯째 아궁이 위에는 솥 대신 커다란 양은 들통이 올라가 있었고, 거기서 멸치 국물이 끓었다. 박이 쳐 놓은 그물 차양 아래로 김이 모였다가 그물코 사이로 빠져나갔다. 여옥이 가운데 솥 앞에 앉아 있었다. 석대근이 다섯째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있었고, 하 씨는 방석에 앉아 그릇을 받아 넘겼다.

진이 선장 옆에 붙어 서서 말했다.

“선장님, 앞으로 가시지요.”

“왜요?”

“손님이시니까요.”

하경철은 고개를 저었다.

“줄이 있으면 서는 겁니다.”

그는 골목 맨 끝, 줄 꼬리에 섰다. 진은 뭐라고 더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앞치마를 두른 사내가 들어오자 여옥이 국자를 든 채로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은 인사도 안 했다. 여옥이 턱으로 넷째 솥을 가리켰고, 진은 넷째 솥 앞에 앉아 국자를 받아 들었다. 붉은 실이 감긴 뚜껑 손잡이가 손에 닿았다.

하경철은 줄에서 사십 분을 기다렸다. 앞사람은 쉰쯤 된 어부였는데 기다리는 동안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오셨소?”

“저 배에서 왔습니다.”

“아, 동진 3호. 그 배 요리사가 저기 저 양반이오?”

어부가 턱으로 넷째 솥 앞의 진을 가리켰다.

“압니까?”

“시월에 한 번 먹었소. 짰소.”

하경철이 웃었다. 어부가 따라 웃다가 말을 이었다.

“근데 그날이 내가 사흘 만에 밥을 먹은 날이었소. 외상이 밀려서 만석상회 밥을 못 먹고, 집에는 쌀이 없고. 그날 저 양반이 이 빠진 그릇에 밥을 퍼 줬는데, 짜서 물을 세 바가지 마셨소. 그래서 배가 불렀지.”

줄이 한 걸음 앞으로 갔다. 하경철은 한 걸음 따라 걸었다. 발밑 흙바닥이 얼어 있다가 사람 발에 녹아서 질척했다. 사십 분 동안 그는 여든 몇 명이 그릇을 받아 가는 것을 봤다. 받는 사람마다 여옥이나 진에게 한마디씩 했다. 짜다, 뜨겁다, 어제보다 낫다, 우리 영감 것도 한 그릇. 여옥은 대꾸를 안 하고 푸기만 했고, 진은 대꾸를 하느라 푸는 게 늦었다.

마침내 그의 차례가 왔다. 여옥이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국자를 멈췄다.

“동진 3호 선장이오?”

“예, 그렇습니다.”

“열두 해 전에 여섯 두고 간 양반이오?”

“예, 그렇습니다.”

여옥이 국자를 솥에 깊이 넣었다가 꾹 눌러 퍼 올렸다. 그릇에 밥이 산처럼 쌓였다.

“그 여섯이 여기서 잘 살았소. 하나는 저기서 장작을 넣고 있고.”

석대근이 다섯째 아궁이 앞에서 고개를 들었다가 도로 숙였다. 동생이 아니라 형이었지만, 여옥은 형제를 한 사람처럼 셌다.

*

진은 넷째 솥으로 스물을 푸고 나서 여옥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이거 몇 잡으셨습니까?”

“아홉 잡았소. 진 씨가 아홉 잡는다고 했잖소. 나도 아홉 잡소. 그리고 손 나가는 대로 두오.”

“몇 나옵니까?”

“어제는 일흔넷이었소.”

진은 국자를 든 채로 섰다. 쌀은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여옥은 쌀이 아니라고 했다. 솥 셋은 고구마와 보리를 섞은 것이고, 넷째만 쌀인데 그 쌀은 오늘 새벽 석대호의 작은 배가 동진 3호 뱃전에 붙어서 받아 온 두 가마라고 했다. 물이 빠져서 큰 배가 부두에 붙기 전에, 작은 배가 먼저 나가서 받아 왔다고.

“그 쌀은 짐으로 안 셉니다. 부두에 내린 게 아니라서요.”

진이 말하자 여옥이 처음으로 국자를 멈췄다.

“진 씨, 셈을 하오?”

“서른 톤이 되어야 배가 옵니다. 지금 스물하나입니다. 오늘 배에 쌀 서른 가마와 밀가루 스무 포, 연탄 이천 장, 소금 열 가마가 실려 있습니다. 다 내리면 여섯 톤이 넘습니다.”

그때 부두 쪽에서 정은수가 뛰어 올라왔다. 숨이 차서 누구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말부터 쏟았다.

“인부들이 안 내린대요! 만석 할아버지가 대리점 인부는 오늘 쉰다고, 그리고 대리점 인부 말고는 누구도 하역 못 한대요!”

*

부두에 지만석이 서 있었다. 가죽 조끼 위에 두꺼운 점퍼를 입었고, 뒤에는 만석호 선원인 인부 넷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소하는 부두 창고 처마 밑에 대리점 도장 통을 든 채 서 있었다.

“하 선장, 이 섬 하역은 대리점이 하오. 대리점이 안 내리면 못 내리오. 회사 규정이오. 회사가 나를 대리점으로 앉힌 게 그 규정 때문이오.”

하경철이 밥그릇을 든 채로 부두에 내려왔다. 줄에서 받은 밥을 반쯤 먹은 그릇이었다.

“인부들이 왜 쉬는 겁니까?”

“오늘 쉬는 날이오. 계장이 쉬라면 쉬는 거요.”

“물때가 일곱 시 사십 분입니다. 두 시간 안에 못 내리면 배는 짐을 싣고 그대로 나가야 합니다.”

“그럼 나가시오. 어차피 이 배 마지막 무명도라던데.”

지만석이 돋보기를 벗어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열두 해 전 선장이 두고 간 여섯, 그 여섯 내가 먹였소. 여덟 해 전 넷도 내가 먹였소. 이번 여섯도 두 달을 내가 먹였소. 이 섬은 배가 석 달에 한 번 올 때 내 외상으로 버텼소. 배가 안 오면 섬이 끝나는 줄 아시오? 내 배가 있소. 섬은 안 끝나오.”

하경철은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밥을 한 술 떠먹었다. 천천히 씹어 삼키고, 그릇을 부두 말뚝 위에 내려놓았다.

“압니다. 계장님이 먹이신 거 다 압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내리겠습니다.”

그는 뱃전 사다리를 올라가 화물창 덮개를 직접 열었다. 스물두 해 선장이 제 손으로 화물창을 여는 것을 유단은 처음 봤다. 첫 쌀가마를 선장이 어깨에 멨다.

지만석이 부두가 울리게 소리쳤다.

“대리점 도장 없는 하역은 짐으로 안 적소!”

소하가 처마 밑에서 걸어 나왔다. 도장 통을 연 채로 부두 한가운데에 섰다.

“아버지, 대리점 도장은 제가 찍어요. 제가 계산대 보잖아요. 내린 건 내린 대로 적을게요.”

지만석이 딸을 봤다. 소하는 아버지를 안 보고 동진 3호 사다리만 봤다. 인주 뚜껑이 열려 있었다.

부엌 마당 줄에 서 있던 사람들이 골목을 따라 내려왔다. 밥을 먹은 어부들이 먼저 내려왔고, 할머니들이 뒤따랐다. 박, 윤, 오, 정은수, 석대근이 뱃전에서 부두까지 사람 줄을 만들었다. 쌀가마가 사람 손에서 손으로 건너갔다. 밀가루 포대에서 흰 가루가 날려 사람들 머리가 하얘졌다. 연탄은 두 장씩 들고 날랐는데, 아이들까지 손바닥이 새까매졌다. 만석호 선원 넷은 팔짱을 낀 채 서 있다가, 그중 제일 어린 사내가 팔짱을 풀었다. 지만석이 그 사내를 봤다. 사내는 팔짱을 다시 끼지 않았지만 줄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유단은 뱃전에서 쌀가마를 받아 아래로 넘기는 자리에 섰다. 가마 하나가 팔십 킬로였다. 열 가마째에 어깨가 타는 듯했고, 스무 가마째에는 허리가 제 것 같지 않았다. 아래에서 가마를 받는 사람이 바뀔 때마다 얼굴이 달랐다. 어부였다가 할머니였다가 은지였다. 은지는 가마를 못 받고 가마 귀퉁이만 잡고 따라 걸었는데, 그래도 한 가마를 넘길 때마다 입속으로 숫자를 셌다. 스물여덟에서 한 번 틀려서 처음부터 다시 셌다.

일곱 시 사십 분이 되기 십 분 전에 마지막 소금 가마가 부두에 내려앉았다. 소하가 도장을 찍고 무게를 적었다. 꼭 여섯 톤이었다. 스물하나에 더하니 스물일곱이었다.

*

그날 밤 진은 부엌 마당에서 하루를 다 폈다. 아침에 여든하나, 점심에 스물, 저녁에 서른. 손목이 안 돌아갔다. 여옥이 뜨거운 물을 고무 대야에 받아 와서 손을 담그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이레 만에 손을 못 썼소. 지금은 백이 넘어도 안 아프오. 나눠서 하오. 한 번에 스물 넘게 안 푸오. 스물 푸고 쉬고, 또 스물 푸오.”

“쉬면 식지 않습니까?”

“식소. 식은 밥이 낫소. 손 상하는 것보다는.”

진은 대야에 손을 담근 채로 물었다.

“아주머니는 편지에 숫자를 안 쓰셨습니다. 은지만 썼습니다.”

“적으면 진 씨가 셈을 하잖소. 셈을 하면 오고 싶어지오. 오고 싶은데 못 오면 그게 더 힘드오. 그래서 솥만 적었소.”

대야 물이 식어 갔다. 손가락 마디마다 박혔던 열이 물로 빠져나가면서 손이 제 크기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진은 그 물속에서 손을 쥐었다 폈다 해 봤다. 국자 자루 모양대로 굽은 손가락이 좀처럼 다 펴지지 않았다. 여옥이 그 손을 보더니, 아홉 해 전 영감 손도 그물 당기고 나면 그렇게 안 펴졌다고 했다. 마당 입구에서 하경철이 불 안 붙인 담배를 든 채 기대 서 있었다.

“진 씨, 여기서 몇 그릇이라고 했죠?”

“오늘은 백서른하나입니다.”

“우리 배가 아홉인데요. 진 씨가 여기 있으면 백이고, 배에 있으면 아홉이에요. 나는 그 셈을 안 하려고 했어요. 하면 진 씨를 못 데려가니까. 근데 오늘 줄 서면서 했어요.”

하경철이 담배를 주머니에 넣었다.

“사십 분 서 있으면 셈이 됩니다.”

그는 그 말만 하고 배로 내려갔다. 내일 오후 만석호가 진포에서 선원감독관을 태우고 들어온다고 했다. 배는 모레 새벽, 동짓날 물때에 뜨기로 했다. 서른에서 세 톤이 모자랐다.

9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어제는 일흔넷이었소 · 돌아가지 않기로 한 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