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15자) · 소하 · 12월 21일
알았소
돌아가지 않기로 한 밤 · 서지오
소하는 아침 여섯 시에 만석상회 셔터를 올렸다. 셔터가 올라가는 소리가 골목을 긁고 지나가자, 쌀가마가 빠져나간 가게 안이 새벽빛에 휑하게 드러났다. 두 달 전 천장까지 쌓여 있던 쌀가마는 이제 한쪽 벽에만 있었다. 섬 사람들에게서 두 배 값을 주고 사들인 쌀이었다. 아버지는 그 쌀을 부엌 마당에 팔지 않았고, 다른 누구에게도 팔지 않았다. 쌓아 두기만 했다.
계산대 서랍을 열자 외상 장부 여섯 권이 나왔다. 소하는 맨 아래 권을 꺼냈다. 표지가 누렇게 바랜 1978년 치였다. 그 해 추석 앞날 장을 펴자 제 글씨가 나왔다. 스무 살 때 글씨였다. 곽천수, 멸치 두 배분 입고, 외상 전액 상계. 그 줄 밑에 아버지 글씨로 한 줄이 더 있었다. 추가 한 배, 결산 전 입고 약정.
그날 곽천수 아저씨는 외상을 다 갚았다. 소하가 그 전표를 적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결산 전에 한 배를 더 채워 오라고 했다. 빚이 아니라 약정이었다. 북동풍이 불었고, 그 한 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뒤로 사람들에게 곽천수가 외상을 못 갚고 갔다고 말했다. 아무도 장부를 보자고 하지 않았다. 소하는 그 해 겨울에 뭍으로 나갔고, 이 년 뒤 아버지가 무선전화로 들어오라고 했을 때 하숙집 주인 손에서 수화기를 받아 들며 손을 떨었다. 떤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소하였다.
소하는 장부를 덮지 않고 계산대 위에 펼쳐 둔 채로 셔터 밖을 봤다. 부엌 마당 쪽에서 첫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
오후 두 시에 만석호가 들어왔다. 진포에서 여섯 시간을 달려온 배였다. 뱃머리에 감색 점퍼를 입은 사내가 서류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해운항만청 남포지방청 선원감독관 주성택이었다. 마흔다섯, 부두에 내리자마자 신발에 묻은 물기를 손수건으로 닦는 사람이었다.
지만석이 부두에 마중 나와 있었다. 주성택은 지만석과 악수를 하고 나서 서류 가방에서 명단을 꺼냈다.
“동진 3호 이탈 선원 여섯. 박, 오, 윤, 하, 정은수, 석대근. 내일 새벽 동진 3호 출항 때 전원 승선. 승선하면 이탈은 기록만 남기고 벌금은 면합니다. 승선하지 않으면 선원수첩 말소와 벌금입니다.”
부두에는 여섯이 다 나와 있었다. 그 뒤에 부엌 마당 사람들이 서 있었다. 유단은 여섯 앞에 섰다.
“감독관님, 무명도가 올해 서른 톤을 넘기면 정식 기항지가 됩니다. 정식 기항지에서 배를 떠난 사람은 이탈이 아니라 하선입니다.”
“압니다. 그해 안에 정식 기항지로 오르고, 선장이 하선 신청서에 서명하고, 대리점이 확인하면 이탈을 하선으로 바꿔 줍니다. 법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스물일곱 톤이라고 들었습니다.”
“내일 새벽까지 사흘이 아니라 하루가 남았습니다. 오늘 저녁 물때에 싣는 짐이 있습니다.”
주성택이 명단을 접었다. 그는 부두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한 번 훑어봤다. 부엌 마당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저마다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는데, 국자를 든 사람도 있었고 행주를 든 사람도 있었다. 감독관 노릇 열다섯 해 동안 그는 이탈 선원을 데리러 가서 이런 부두를 본 적이 없었다. 대개 이탈 선원은 항구 뒷골목 여관이나 술집에 숨어 있었고, 그를 보면 달아났다. 여기 여섯은 달아나지 않고 사람들 맨 앞에 서 있었다.
“항해사, 이 사람들이 왜 남았는지는 내 서류에 칸이 없습니다. 칸이 없는 건 내가 못 봅니다. 나는 규정을 지키러 왔습니다. 규정은 내일 새벽 물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다음은 안 기다립니다.”
그때 여섯 가운데서 석대근이 앞으로 나왔다. 헝겊을 푼 엄지 손톱이 검게 죽어 있었다.
“감독관 양반, 하나 적으시오. 동진 3호 고장은 내가 냈소. 냉각수 세 번째 밸브를 두 항해 전에 반쯤 열었소. 보고서에는 그 얘기가 없소. 이 항해사가 뺐소.”
부두가 조용해졌다. 유단은 석대근을 봤다. 석대근은 유단을 안 보고 주성택만 봤다.
“이 항해사 짐이 아니라 내 짐이오. 내가 지겠소.”
주성택이 명단을 다시 폈다. 이번에는 볼펜을 꺼냈다.
“석대근 씨, 고의 손상은 형사 고발 대상입니다. 그리고 항해사, 사고 원인을 알고도 보고서에서 뺀 건 허위 보고입니다. 면허 정지 석 달은 각오하십시오.”
지만석이 뒤에서 헛기침을 했다. 소리를 낸 게 아니라 웃음을 삼킨 것 같았다.
“감독관님, 들으셨지요. 이 배가 이 섬에 설 때마다 사람이 빠지는 게 우연이 아니었소. 고장을 내고 사람을 빼고 거짓 보고를 한 배요. 그런 배가 서는 섬을 정식 기항지로 올리면 청이 곤란하실 거요.”
유단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말이 틀린 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틀린 데가 있었는데, 그걸 짚을 사람이 자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
소하가 가게에서 내려왔다. 1978년 장부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아버지, 곽천수 아저씨는 외상을 못 갚고 가신 게 아니에요.”
지만석이 딸을 봤다. 부두에 선 사람들이 다 소하를 봤다. 여옥이 사람들 맨 뒤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날 아침에 멸치 두 배로 외상을 다 갚으셨어요. 제가 전표를 적었어요. 아버지가 결산 전에 한 배를 더 채워 오라고 하신 건 빚이 아니라 약정이었어요. 여기 아버지 글씨로 있어요.”
소하가 장부를 펼쳐 여옥에게 내밀었다. 여옥은 장부를 받지 않았다. 대신 그 쪽을 오래 내려다봤다. 바람이 장부 귀퉁이를 들어 올렸다 내려놓았다.
“알았소.”
여옥은 그 말밖에 안 했다. 아홉 해 동안 섬 사람들은 여옥이 영감 외상 때문에 솥을 엎었다고 알았다. 여옥은 그걸 한 번도 바로잡지 않았다. 바로잡을 장부가 없었다. 여옥은 장부에서 눈을 떼고 은지를 찾았다. 은지가 사람들 다리 사이로 빠져나와 할머니 치마를 잡았다. 여옥은 은지 손을 쥐고 돌아서서 부엌 마당으로 올라갔다. 저녁 솥에 불을 넣을 시간이었다. 부두에 남은 사람들은 여옥이 올라가는 등을 한참 봤는데, 그 등이 아홉 해 동안 본 것 중에 제일 곧았다.
지만석이 입을 열었다.
“결산은 결산이오. 그해 멸치 값이 떨어져서 한 배 더 채워야 섬 전체 외상이 맞았소. 나 혼자 먹자고 한 게 아니오.”
“그 한 배로 아저씨랑 민재 오빠가 갔어요.”
소하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떨린 건 장부를 든 손이었다.
*
소하는 그 길로 가게로 올라가 무선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주파수를 맞추는 손이 빨랐다. 남포 동진해운 본사, 운항과 권오섭 대리를 불렀다. 지직거리는 소리 사이로 권오섭의 목소리가 들어오자 소하는 수화기에 대고 또박또박 물었다.
“무명도 대리점 직원 지소하입니다. 오늘 저녁 동진 3호에 무명도 멸치를 실으면 그것도 무명도 물동량에 들어갑니까?”
“들어갑니다. 내린 짐과 실은 짐을 합칩니다.”
“대리점 확인 도장은 대리점 명의 도장이면 됩니까? 찍는 사람이 대리점 대표가 아니어도요?”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대리점 명의 도장이면 됩니다. 규정에 찍는 사람 이름은 없습니다.”
소하는 수화기를 걸었다. 가게 문간에 유단이 서 있었다.
“들으셨죠. 이제 멸치만 있으면 돼요. 그런데 멸치가 다 아버지 외상 담보예요.”
*
저녁 물때는 여섯 시였다. 섬 어부들 창고마다 말린 멸치 상자가 쌓여 있었다. 지만석에게 넘기기로 한 멸치였고, 외상이 있어서 다른 데로는 못 넘겼다. 여옥이 부엌 마당에서 내려와 어부들 앞에 섰다.
“외상이 얼마요? 두 달 동안 여기서 밥 먹은 사람들, 만석상회 밥값이 얼마나 줄었소?”
어부들이 서로 얼굴을 봤다. 쉰 줄 어부가 먼저 말했다. 시월에 사흘 만에 밥을 먹었다던 그 어부였다. 두 달 동안 만석상회 외상이 한 푼도 안 늘었다고. 전에는 한 달에 쌀 두 가마씩 늘었다고.
“그럼 이번 멸치는 내 거요. 내가 싣겠소.”
그가 제 창고로 가서 멸치 상자를 어깨에 멨다. 둘째 어부가 따라갔고, 셋째가 따라갔다. 동진 3호 뱃전에 다시 사람 줄이 생겼다. 멸치 상자가 손에서 손으로 넘어갔고, 짭짤한 비린내가 부두에 가득 찼다. 상자는 가벼웠다. 말린 멸치 한 상자가 십오 킬로였으니, 두 톤을 채우려면 백 상자가 넘게 올라가야 했다. 상자 모서리에 손바닥이 쓸려 다들 손이 은빛 비늘투성이가 됐고, 해가 지면서 부두 백열등이 켜지자 그 손들이 반짝였다. 진은 줄 맨 끝 뱃전에서 상자를 받아 화물창에 쌓았다. 쌓으면서 상자 수를 셌고, 은지가 부두 쪽 끝에서 따로 셌다.
만석호 선원 넷은 만석호 갑판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 제일 어린 사내가 먼저 사다리를 내려왔다. 지만석이 그 사내 이름을 불렀다. 사내는 한 번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계장님, 새벽마다 평상에서 먹었습니다. 두 달 동안요.”
사내가 줄에 들어갔다. 나머지 셋이 뒤따라 내려왔다.
여섯 시 오십 분에 마지막 상자가 올라갔다. 소하가 무게를 적고 도장을 찍었다. 두 톤 사백 킬로였다. 스물일곱에 더하니 스물아홉 톤 사백 킬로였다.
서른에서 육백 킬로가 모자랐다.
유단이 그 숫자를 보는 사이, 지만석이 소하 손에서 대리점 도장을 가져갔다. 소하는 놓지 않으려고 했지만 아버지 손이 더 컸다. 지만석은 도장을 점퍼 안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잠갔다.
“도장은 대리점 대표 것이오. 딸이라도 안 되오.”
그는 가게로 올라갔다. 올라가다가 돌아서서 유단에게 말했다.
“항해사, 육백 킬로면 쌀 일곱 가마 반이오. 새벽까지 이 섬에서 쌀 일곱 가마 반을 배에 실을 사람은 나 하나요. 내 쌀은 안 실소.”
*
밤 아홉 시에 유단은 조타실로 올라갔다. 선장이 해도대에 종이 여섯 장을 펼쳐 놓고 있었다. 하선 신청서였다. 박, 오, 윤, 하, 정은수, 석대근. 여섯 장 다 선장 서명이 들어가 있었다. 일곱째 장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름 칸이 비어 있고 서명만 들어가 있었다.
“선장님, 이건 누구 겁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서명뿐이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해 두는 거야.”
선장이 불 안 붙인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열두 해 전에는 안 했어. 여덟 해 전에도 안 했고. 서명할 종이가 있는 줄도 몰랐어. 알았어도 안 했을 거야. 내가 서명하면 그 사람들을 내가 보낸 게 되니까. 나는 그게 싫었어. 두고 간 거지, 보낸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어.”
유단은 이름 칸이 빈 종이를 내려다봤다. 백열등 불빛에 선장 서명의 볼펜 자국이 종이 뒤로 비쳤다.
“육백 킬로가 모자랍니다. 도장은 지만석 씨 주머니에 있습니다.”
“알아. 그러니까 자네가 올라가 봐야지.”
“어디를요?”
선장이 창밖을 턱으로 가리켰다. 발전기가 꺼지기 전 섬 불빛 가운데, 만석상회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