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34자) · 진 · 11월 넷째 주
솥이 넷이에요
돌아가지 않기로 한 밤 · 서지오
편지는 십일월 넷째 주에 진포에서 받았다. 본사 운반선이 싣고 온 우편 자루 안에 권오섭이 따로 끈으로 묶어 넣은 봉투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진에게 왔고 하나는 선장에게 왔다. 진에게 온 봉투 겉에는 무명도라고만 적혀 있었고, 보낸 사람 이름이 없었다. 글씨가 삐뚤빼뚤한 게 아이 글씨였다.
진은 주방 개수대 옆 쌀자루에 걸터앉아 봉투를 뜯었다. 공책을 찢은 종이 두 장이 나왔다. 연필로 꾹꾹 눌러 써서 종이 뒷면까지 글씨 자국이 도드라져 있었다.
아저씨, 솥이 넷이에요. 아궁이는 다섯이에요. 아궁이가 솥보다 많아요. 왜 많으냐고 물었더니 할머니가 미리 놓는 거래요.
지난주에 예순둘이 왔어요. 제가 셌어요. 두 번 셌는데 두 번 다 예순둘이었어요. 그래서 세 번은 안 셌어요. 아저씨가 두 번 세라고 해서요.
그릇은 여든 개예요. 동네 할머니들이 집에서 하나씩 가져왔어요. 그래서 그릇이 다 달라요. 꽃 그려진 것도 있고 이 나간 것도 있어요.
박 삼촌이 그물 열두 장을 다 했대요. 다 하고 나서 부엌 마당 차양을 그물로 쳤어요. 이제 비 와도 솥에 비가 안 들어가요. 윤 삼촌 찐빵이 이제 안 딱딱해요. 할머니가 이제는 돌이 아니라 빵이래요. 하 할머니는 방석에 앉아서 고구마순을 까요. 정 삼촌은 이름을 부르면 아직도 두 번 대답해요.
만석 할아버지가 부엌에 쌀을 안 판대요. 할머니가 배로 쌀을 들인다고 했더니 그다음 날부터 안 판대요. 그래서 어부 아저씨들이 집에서 쌀을 한 됫박씩 가져와요. 만석호 아저씨들은 밤에 와요. 낮에는 안 와요.
할머니가 아저씨한테 전하래요. 모자란 날이 없대요.
종이 여백에는 솥 넷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동그라미 넷에 김을 나타내는 꼬불꼬불한 줄이 올라가 있었고, 넷째 동그라미에만 붉은 색연필로 실을 감아 놓았다. 그 옆에 조그맣게, 이게 할머니 혼수 솥이에요, 하고 적혀 있었다.
진은 그림에서 눈을 떼고 모자란 날이 없다는 줄로 되돌아갔다. 진이 부엌 마당에 있을 때는 한 번 모자랐다. 담 밑에서 넷이 기다렸다. 진이 없는 동안에는 한 번도 안 모자랐다. 그는 편지를 무릎에 내려놓고 주방 환기창을 올려다봤다. 환기창 너머로 진포 하늘이 낮게 흐려 있었다. 석유 풍로의 그을음 냄새 사이로 쌀 씻은 물 냄새가 비릿하게 올라왔다. 서운해야 하는지 기뻐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는 두 가지를 번갈아 하다가 결국 쌀을 씻으러 일어섰다.
둘째 장 맨 아래에는 어른 글씨로 한 줄이 따로 적혀 있었다.
넷째 솥은 아직 진 씨 자리요.
*
진은 답장을 쓰는 데 나흘이 걸렸다. 첫날에는 잘 지낸다고 쓰고 놓았다. 이튿날 그 줄을 지우고 솥이 넷이라니 다행이라고 썼다가 또 지웠다. 사흘째에는 아무것도 못 썼다. 나흘째 밤에 쓴 것을 봉투에 넣었다.
은지야, 아홉을 못 잡아도 된다. 나도 처음엔 못 잡았다. 그리고 하나만 알려 주마. 손이 나가고 나서 그릇이 모자라면, 그때 어떻게 하느냐가 중하다. 나는 그때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면 김이 나가서 밥이 식는다. 식은 밥은 맛이 없다. 그래도 모자란 것보다는 낫다. 네가 언젠가 모자랄 것이다. 모자라면 뚜껑을 열어라.
봉투를 붙이고 나서 겉봉에 또 써라, 하고 한 줄을 더 적었다. 그러고 보니 여옥에게는 따로 쓸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은 끝내 종이에 옮기지 못했다. 넷째 솥 자리를 비워 두지 말고 누구든 저으라고 쓰고 싶었다. 쓰면 정말로 누가 저을 것 같아서 못 썼다.
그날 밤 진은 배 주방 한쪽 구석을 치웠다. 십사 년 동안 안 쓴 것이 쌓여 있던 자리였다. 금 간 그릇, 손잡이 빠진 냄비, 녹슨 체 둘, 뚜껑 없는 양은 주전자가 나왔다. 버리려다 안 버린 것들이었다. 체는 녹만 벗기면 쓸 만했고 냄비는 손잡이만 달면 됐다. 금 간 그릇은 못 썼다. 금 간 그릇이 열일곱이었다. 진은 그것들을 버렸다. 버리고 나니 풍로 하나를 더 놓을 자리가 났다. 황 기관장이 지나가다 보고 이사하느냐고 물었다. 진은 솥을 하나 더 걸 거라고 대답했다. 황 기관장은 배에 솥 셋은 처음 본다면서, 기관실 예비 풍로를 하나 빌려주겠다고 했다. 대신 밤에 올려 두는 그릇에 자기 몫도 하나 얹어 달라고 했다.
선장에게 온 봉투는 석대근이 보냈다. 선장은 조타실에서 그것을 읽고 나서 진을 불렀다. 편지를 내밀지는 않고, 해도대에 엎어 놓은 채로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었다.
“석 기관장이 부엌 마당 아궁이를 고쳤답니다. 다섯째 아궁이 굴뚝이 막혀 있었는데 그걸 뚫었대요. 기관실에서 배기관 뚫던 솜씨로요. 그리고 동생 헛간에서 잔답니다. 형제가 한 방에서 자는 게 사십 년 만이라네요.”
“잘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썼어요. 밸브 얘기는 유단이가 뺐다고 들었다고. 그건 유단이 짐이 아니라 자기 짐이니까, 청에서 누가 오면 자기가 직접 말하겠다고.”
선장이 편지를 눌렀던 손을 뗐다. 편지가 저절로 조금 들렸다.
“진 씨, 셋째 솥은 어디 걸 겁니까?”
“풍로 자리가 났습니다. 기관장님이 예비 풍로를 빌려주신답니다.”
“이 배는 1월에 팔린답니다. 유단이가 본사에 간 것도 그 얘기 들으러 간 거고요.”
진은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선장이 불 안 붙인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래도 거세요. 팔려도 12월 20일까지는 이 배가 무명도에 갑니다. 솥이 셋이면 그날 무명도 부두에서 서른은 더 펴겠지요.”
*
같은 날 유단은 남포 본사 이 층 운항부장실에 서 있었다. 동진 3호가 진포에서 사흘을 대는 동안 버스를 타고 올라온 길이었다. 창밖으로 남포항 크레인들이 보였고, 방 안에서는 석유 난로가 타는 냄새와 오래된 서류 냄새가 났다. 공태만은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책상 위에는 서류철 대신 계약서 한 부가 펼쳐져 있었다.
“동진 3호 매각 계약서요. 1월 15일 인도. 부산 고철상이 사 가오.”
유단은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499톤, 선령 이십일 년, 인도 장소 남포항. 선장 하경철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12월 20일에 무명도를 들르는 게 그 배의 마지막 무명도요. 그날 해운항만청 선원감독관이 같이 가오. 이탈 여섯을 데려오려고. 이탈 선원은 송환이 원칙이오. 섬에 두면 청이 우리를 문책하오.”
“감독관이 동진 3호를 탑니까?”
“아니, 지만석이 배로 먼저 들어가오. 지만석이가 청에 신고를 했소. 자기 섬에 이탈 선원이 여섯이나 있어서 곤란하다고.”
유단은 손을 쥐었다. 손톱 밑에 아직 기관실 기름때가 남아 있었다. 그는 부두 끝에서 인주 뚜껑을 열어 두고 기다리던 소하의 손을 떠올렸고, 그 손이 지금 아버지의 신고서를 받아 적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목구멍 어딘가에 걸려서 한동안 말이 안 나왔다. 난로 위 주전자가 끓기 시작해 뚜껑이 달그락거렸다. 공태만이 일어나 주전자를 내려놓고 도로 앉았다. 그 사이에 유단은 목소리를 찾았다.
“부장님, 지만석 씨는 무명도가 항로에서 빠져야 좋은 사람입니다. 빠지면 섬 짐이 전부 그 사람 배로 갑니다.”
“알아요. 알면 뭐가 달라지오?”
공태만이 계약서를 덮었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대신 책상 서랍에서 서류 한 장을 더 꺼냈다. 인사 발령 초안이었다.
“항해사, 내가 셈을 하나 해 주겠소. 우리 회사 배가 넷이오. 그중 3호가 제일 늙었고 제일 손해를 내요. 3호 하나 때문에 내년 새 배 할부를 못 맞추면, 나머지 배 셋 선원 마흔 명이 길에 나앉아요. 무명도 스물한 톤 때문에 마흔 명이 나앉는 거요. 나는 그 마흔 명 편이오.”
공태만이 발령 초안을 유단 쪽으로 밀었다.
“12월 20일에 여섯을 태워 오시오. 보증서 건은 내가 덮겠소. 그리고 1월에 들어오는 새 배 일항사 자리를 주겠소. 자네 나이에 새 배 일항사면 다섯 해 안에 선장이오.”
유단은 발령 초안을 봤다. 타자기로 친 글자 가운데 자기 이름 석 자만 조금 진하게 찍혀 있었다. 누가 먹지를 새로 갈고 친 모양이었다. 새 배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동진 5호, 1,200톤. 그는 그 숫자를 보면서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다. 스무 살에 처음 배를 탈 때 그가 원한 게 바로 그 줄이었다.
“부장님, 서른 톤이 되면 무명도를 남기겠다고 하셨습니다.”
“되면 남기오. 그런데 안 돼요.”
“되면 정식 기항지로 올리셔야 합니다. 그러면 여섯은 이탈이 아니라 하선입니다.”
공태만이 처음으로 유단을 오래 봤다.
“권 대리한테 들었군. 그래요, 되면 그렇소. 선장 서명에 대리점 도장까지 있으면. 무명도 대리점이 누구요?”
유단은 대답하지 않았다. 공태만이 발령 초안을 도로 서랍에 넣지 않고 책상 위에 둔 채로 말했다.
“이 종이는 12월 20일까지 여기 있을 거요. 그날까지 가져가도 되오.”
유단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문고리를 잡았을 때 공태만이 한마디를 더 했다. 자기도 스물다섯에 배를 탔다고, 삼 년 타고 멀미 때문에 내렸다고. 그래서 뭍에서 배를 굴리는 사람이 됐다고. 유단은 돌아보지 않고 그 말을 들었다. 멀미를 한다는 운항부장의 얼굴을 떠올리려다가 잘 안 돼서 그만뒀다.
*
본사 일 층 우편함에 유단 앞으로 온 봉투가 하나 더 있었다. 무명도 만석상회, 소하. 봉투 뒤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배에는 주소가 없다고 하셔서 항해사님 이름으로 보냅니다.
유단은 부두로 내려가는 길에 그 편지를 읽었다.
아버지가 지난주에 만석호를 타고 남포에 가셨어요. 공 부장님을 만나셨대요. 돌아오셔서 섬 쌀을 다 사들이셨어요. 집집마다 한 가마씩 남은 것까지요. 값을 두 배로 쳐 주셔서 다들 파셨어요. 그러고 나니 부엌 마당에 댈 쌀이 없어요. 어부 아저씨들이 제 집 쌀을 가져오던 것도 이제 못 가져와요. 판 쌀이라서요.
여옥 아주머니는 그래도 솥 넷에 불을 넣으세요. 고구마를 찌고, 멸치 대가리로 국을 끓이세요. 예순이 오면 예순이 먹어요. 밥은 없는데 모자란 날은 없어요.
저는 계산대에서 아버지 전표를 적어요. 적으면서 항해사님이 쓰신 보증서를 생각해요. 기한 없음이라고 적힌 칸을요.
다음에 오시면 섬에서 주무세요. 제가 그 말을 벌써 두 번째 하네요. 이유는 안 물으셔도 돼요. 저도 아직 못 찾았어요.
유단은 편지를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남포항 바람이 차가웠다. 부둣가 포장마차에서 어묵 국물 냄새가 김과 같이 번져 왔다. 그는 그 냄새 속에 서서 한참 크레인들을 올려다봤다. 공태만의 책상 위에 남아 있는 종이 한 장과, 주머니 속 종이 한 장의 무게를 저울에 올리는 것처럼 번갈아 생각했다. 둘 다 가벼웠는데 하나는 주머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