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32자) · 권오섭 · 11월 3일

사십일 퍼센트

돌아가지 않기로 한 밤 · 서지오

권오섭이 하월에 내린 것은 십일월 첫 주 화요일이었다. 남포에서 새벽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하월 버스 터미널에서 부두까지 삼십 분을 걸었다. 옆구리에 서류철을 끼고 있었는데, 서류철 맨 위에 공태만 부장이 빨간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친 숫자가 있었다. 사십일 퍼센트였다. 동그라미 옆에는 징계 사유 확인이라는 글씨가 부장 특유의 오른쪽으로 쏠린 필체로 적혀 있었다. 권오섭은 입사 칠 년 동안 그런 동그라미를 서른 번쯤 받았고, 스물아홉 번은 동그라미 친 대로 끝냈다.

하월은 큰 항구였다. 배가 스무 척 댔고, 부두를 따라 얼음 공장과 창고와 선구점이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크레인이 돌아가는 소리와 지게차 경적이 쉬지 않았다. 동진 3호는 삼 번 부두 끝에 붙어 있었는데, 권오섭은 멀리서도 그 배를 알아봤다. 갑판 뒤쪽 주방 환기구에서 김이 오르고 있었다. 오후 세 시였다.

주방 문을 두드리자 앞치마를 두른 사내가 나왔다. 손에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조리장 진 씨 되십니까? 본사 운항과 권오섭 대리입니다.”

“예, 제가 진입니다.”

권오섭은 주방 안을 둘러봤다. 석유 풍로 둘에 솥이 둘 걸려 있었고, 선반에는 배 그릇 아홉이 포개져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규격이 다른 그릇이 스물 몇 개 더 쌓여 있었고, 이 나간 사기 대접 하나가 혼자 따로 서 있었다.

“식자재 소모가 지난 분기 대비 사십일 퍼센트 늘었는데, 그 사유를 여쭙겠습니다.”

“더 폈습니다.”

권오섭이 서류철을 폈다.

“승선 인원은 아홉으로 동일한데요. 아홉이 사십일 퍼센트를 더 먹습니까?”

진은 그 물음에 대답을 골랐고, 권오섭은 기다렸다. 기다리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아홉이 다 먹는 게 아니라 밖에서 옵니다. 어제 열여덟이었고, 그제는 스물셋이었습니다.”

“밖이라면 어디입니까?”

“옆 배들인데, 진포에서부터 그랬습니다.”

권오섭은 볼펜을 놓았다. 서류철 여백에 적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식자재 부정 유출, 이라고 적으면 되는데 손이 안 갔다. 부정 유출이라는 말을 적으려면 누군가 그 쌀로 이문을 남겼어야 했다. 이 사람은 쌀을 밥으로 만들어 남의 배 선원 입에 넣었다.

“진 씨, 이건 횡령입니다.”

진이 앞치마를 풀었다.

“그러면 제가 내겠습니다.”

“무엇을요?”

“쌀값을요.”

권오섭은 계산기를 꺼내 두드렸다. 쌀 포대 단가에 늘어난 포대 수를 곱하고, 부식비를 더했다. 숫자를 보여 줬다. 진의 한 달 급료 절반이 조금 넘는 돈이었다.

“그만큼 내겠습니다.”

“매달 내실 겁니까?”

“예, 매달 내겠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진이 앞치마를 두 손으로 개켰다.

“물어보길래 했습니다. 밥 주느냐고 물어보는 사람한테 안 준다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권오섭은 서류철을 덮고 일어섰다. 일어서다가 도로 앉았다. 주방 솥에서 올라오는 김이 그의 안경을 뿌옇게 덮었다. 안경을 벗어 넥타이 끝으로 닦으면서 그가 말했다.

“진 씨, 저 오늘 저녁 먹고 가도 됩니까?”

*

그날 저녁 하월 삼 번 부두 끝 동진 3호 갑판에 스물둘이 왔다. 권오섭은 그 스물둘 가운데 하나였다. 넥타이를 풀어 양복 주머니에 넣고 화물창 덮개 위에 앉아 무국에 밥을 말았다. 양옆에는 모르는 배의 선원들이 앉아 있었다. 왼쪽 사내는 오징어잡이 배를 탄다고 했고, 오른쪽 사내는 모래 운반선을 탄다고 했다. 둘 다 권오섭이 본사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도 숟가락을 안 멈췄다.

국이 짰는데도 권오섭은 짠 국물을 한 숟갈 더 떠먹었다. 짠맛 뒤에 무에서 우러난 단맛이 늦게 왔고, 그 단맛이 혀 뒤쪽에 오래 남았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 하숙집 밥을 먹었고, 남포 본사에 와서는 구내식당 밥을 먹었다. 둘 다 싱거웠다. 싱거운 밥을 먹을 때는 옆 사람과 말을 안 했다. 짠 국을 먹으니 자꾸 물을 찾게 되고, 물 주전자를 건네다 보니 옆 사람과 말을 하게 됐다.

오징어잡이 배 사내는 이 배 밥 얘기를 진포 사람한테 들었다고 했다. 모래 운반선 사내는 오징어잡이 배 사내한테 들었다고 했다. 권오섭이 그럼 다음 항구에서는 누가 누구한테 듣느냐고 묻자, 둘이 동시에 권오섭을 가리켰다. 본사 양반이 들었으니 본사 양반이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권오섭은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웃었고, 웃다가 사레가 들려서 한참 기침을 했다. 모래 운반선 사내가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 손이 커서 두드릴 때마다 화물창 덮개가 울렸다.

갑판 끝에서는 새로 온 황 기관장이 선장 옆에 앉아 있었다. 선장은 밥그릇을 무릎에 올려놓고 불 안 붙인 담배를 귀에 꽂고 있었다. 권오섭은 본사에서 그 선장의 인사 기록을 본 적이 있었다. 스물두 해 무사고, 표창 둘, 그리고 무명도 기항 때마다 선원 이탈. 기록에는 그 셋이 나란히 적혀 있었는데, 갑판에서 보니 그 셋이 한 사람의 얼굴에 다 들어 있었다.

다 먹고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진이 개수대 앞에 서 있었다.

“진 씨, 쌀값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어떻게요?”

“선원 복리후생비라는 항목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우리 배 선원한테 쓰는 거 아닙니까?”

“우리 선원이 밥을 더 잘 먹게 됐으면 복리후생이지요.”

“남의 배 사람이 먹었는데요.”

“그건 안 적으면 됩니다.”

진이 그릇을 헹구던 손을 멈췄다.

“그건 거짓말 아닙니까?”

“아닙니다. 다 안 적었을 뿐입니다. 거짓말은 없는 걸 적는 겁니다. 저는 있는 걸 반만 적습니다.”

“그럼 나머지 반은 어디 갑니까?”

권오섭이 안경을 고쳐 썼다.

“제가 알고 있으면 그거면 됩니다.”

*

이튿날 아침 권오섭은 하월 대리점 전화로 남포 본사를 불렀다. 공태만 부장은 첫마디부터 목소리가 높았다.

“권 대리, 조리장 징계 사유는 나왔소?”

“부장님, 사유는 없습니다. 대신 결재 올릴 게 하나 있습니다. 하월항 정박 중 인근 선박 승조원 급식 제공, 자율입니다. 선사 안내문에 한 줄 넣겠습니다.”

“그걸 왜 회사가 합니까?”

권오섭은 서류철을 폈다. 밤새 동진 3호 재고표와 폐기물 기록을 맞춰 본 종이였다.

“작년 한 해 동진 3호에서 버린 밥이 이백 킬로입니다. 올해 지난 석 달은 이 킬로입니다. 이백이 이가 됐습니다. 잔반 감소로 올리겠습니다. 식자재 소모 증가 사유, 취사 효율 개선에 따른 잔반 감소.”

“권 대리, 그거 말장난이오.”

“말장난이 아니라 숫자입니다. 숫자는 제가 안 적어도 나옵니다.”

수화기 너머가 한참 조용했다. 공태만이 헛기침을 했다.

“결재는 해 주겠소. 대신 하나만 알아 두시오. 무명도는 올해로 끝이오. 그 배 조리장이 거기서 무슨 짓을 했든, 스물한 톤은 스물한 톤이오.”

전화를 끊고 돌아서니 대리점 문간에 동진 3호 일등항해사가 서 있었다. 서른 중반쯤 된 사내였는데 손톱 밑이 까맸다. 유단이라고 자기를 소개하고는, 통화를 다 들었다고 사과부터 했다.

“대리님, 서른 톤이 되면 무명도는 어떻게 됩니까? 그냥 항로에 남는 겁니까?”

“남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년 보조금이 끊기면 회사가 제 돈으로 도는 항로가 되니, 기항지를 새로 정해 청에 올려야 합니다. 서른 톤을 넘긴 곳은 정식 기항지로 올라갑니다. 임시 기항이 아니라요.”

유단이 한 걸음 다가섰다.

“정식 기항지가 되면, 거기서 배를 떠난 사람은 하선입니까?”

권오섭은 그 물음이 무엇을 묻는지 알았다. 이탈 보고를 올린 것은 그였다. 공태만이 불러 주는 이름 여섯을 양식에 옮겨 적었고, 도장을 받으러 부장실을 두 번 오갔다.

“이탈 기록은 그해 안에 하선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같은 해에 그 자리가 정식 기항지로 올라가고, 선장이 하선 신청서에 서명하고, 그 기항지 대리점이 확인 도장을 찍으면요. 셋 다 있어야 합니다.”

“대리점이 확인해야 한다고요?”

“예. 무명도 대리점은 지만석 씨입니다.”

유단은 한참 말이 없었다. 권오섭은 그 얼굴을 보면서, 이 사람이 방금 서른 톤과 선장 서명과 도장 하나를 한 줄로 늘어놓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줄의 맨 끝에 서 있는 사람이 이 사람을 제일 싫어할 사람이었다.

“항해사님, 그 섬 짐이 두 달 안에 아홉 톤이 늘어날 수 있습니까?”

“진 씨는 솥이 다섯이면 된다고 합니다.”

권오섭은 그 말이 무슨 셈인지 몰랐다. 모르면서도 그 말을 머릿속에 새겨 두었다.

유단이 돌아간 뒤 권오섭은 서류철 맨 뒷장을 폈다. 회사 양식이 아닌 빈 종이였다. 그는 거기에 한 줄을 적었다. 십일월 삼일, 하월, 저녁, 스물둘 중 하나. 적고 나서 서류철을 덮었다.

*

권오섭이 버스 시간에 맞춰 떠나기 전 다시 주방에 들렀을 때, 진은 국을 끓이고 있었다. 한 국자 떠서 맛을 보더니 인상을 쓰고 물을 한 바가지 부었다. 다시 맛을 보더니 이번에는 더 인상을 썼다.

“싱겁습니까?”

“한 바가지가 너무 많았습니다. 반 바가지였어야 합니다.”

진이 소금 단지에 손을 넣었다가 한 꼬집만 집어 넣었다. 국자로 한 번 젓고 맛을 봤다. 그제야 얼굴이 풀렸다. 권오섭은 그 모습을 보다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진 씨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한 꼬집이 맞는지요.”

“혀로 압니다. 혀로 아는 건 적을 수가 없어서 날마다 합니다.”

권오섭은 서류철을 옆구리에 고쳐 끼웠다.

“진 씨, 무명도 얘기 들었습니다. 보름 만에 마흔넷이 됐다고요.”

“지금은 몇인지 모릅니다. 배가 뜬 뒤로 소식을 못 들었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진이 솥을 봤다.

“궁금합니다.”

“본사 운반선이 두 주에 한 번 진포와 하월을 돕니다. 편지는 그 배로 오갑니다. 무명도는 만석호가 진포까지 싣고 나오고요. 편지를 쓰시면 제가 챙기겠습니다.”

권오섭은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가는 동안 서류철 뒷장을 두 번 더 펴 봤다. 스물둘 중 하나라는 줄은 그대로 있었다. 버스에 올라 창가에 앉았을 때, 그는 공태만 부장에게 보여 줄 서류와 보여 주지 않을 서류가 한 서류철 안에 같이 들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무게가 전보다 조금 무거웠다.

*

그날 밤 진은 편지를 썼다. 무명도 여옥에게 쓰는 첫 편지였는데, 쓰는 데 세 시간이 걸렸다. 잘 지낸다고 쓰고 지웠다. 솥 넷은 잘 걸려 있느냐고 쓰고 또 지웠다. 마지막에 남긴 것은 이런 말이었다.

아주머니, 무명도 짐이 올해 서른 톤이 되면 배가 계속 옵니다. 부엌에서 드는 쌀은 만석상회 말고 배로 들이십시오. 한 가마라도요.

봉투를 붙이고 나서 진은 한 줄을 더 적고 싶었는데,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몰라서 봉투 뒤에 은지야, 두 번 세라, 하고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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