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66자) · 진 · 10월 27일
갑판에 스무 명
돌아가지 않기로 한 밤 · 서지오
진포는 닷새 만에 닿았다. 북동풍이 사흘을 불어 대는 바람에 동진 3호는 무명도와 진포 사이 작은 섬 뒤에 이틀을 숨어 있어야 했고, 그동안 진은 좁은 주방에서 넷의 밥을 지었다. 넷이면 한 번에 끝났다. 쌀을 넷 몫으로 잡으면 넷이 나왔다. 부엌 마당에서 들뜨던 손이 배에 오르자 제자리로 돌아와 버린 게, 진은 이상하게 서운했다.
진포는 배 다섯 척이 겨우 대는 작은 항구였다. 갈매기가 얼음 공장 지붕에 줄지어 앉아 있다가 배가 들어오자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방파제 안쪽에 어선들이 옆구리를 맞대고 묶여 있었고, 부두 뒤로 얼음 공장과 선구점과 국밥집 하나가 전부였다. 동진 3호는 여기서 짐을 내리고 이틀을 대기로 했다. 본사가 보낸 선원 여섯이 버스를 타고 온다고 했다. 기관장 대신 온 황 기관장은 쉰다섯이었고, 오자마자 기관실에 내려가 석대호와 한 시간 동안 배관 얘기를 하고는 올라와서 한마디만 했다. 저 양반이 왜 배를 내렸는지 모르겠다고.
석대호는 그날 오후 만석호를 타고 무명도로 돌아가기로 했다. 만석호는 지만석의 운반선이었다. 무명도 멸치를 싣고 와 진포 공판장에 넘기고, 쌀과 기름을 싣고 돌아가는 배였다. 옆 부두에 붙은 만석호 갑판에서 선원 넷이 멸치 상자를 부리고 있었다. 넷 다 볕에 그을린 얼굴이 홀쭉했다.
진은 보온 가방을 들고 내려갔다. 닷새 동안 안 연 가방이었다. 열어 보니 도시락 다섯 개가 아직 미지근했다. 은박이 반쯤 벗겨진 가방이 닷새를 버텼다.
“이거 드시겠습니까?”
만석호 선원 가운데 제일 어린 사내가 멸치 상자를 내려놓고 도시락을 봤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 손이었다.
“무명도 부엌 마당 밥입니다. 여옥 아주머니가 싸 주셨습니다.”
사내가 그 이름을 듣더니 도시락을 받았다. 받자마자 부두 말뚝에 걸터앉아 뚜껑을 열었다. 나머지 셋도 하나씩 받아 들었고, 다섯째는 석대호에게 갔다. 다섯이 부두에 나란히 앉아 짜다고 하면서 먹었다. 진은 그 모습을 보다가 그 사내들 얼굴을 어디서 봤는지 생각났다. 부엌 마당에서는 한 번도 못 봤는데, 평상에 올려 둔 그릇이 새벽마다 비어 있던 그 무렵에 만석호가 무명도 부두에 붙어 있었다.
“새벽에 평상에서 드신 분들입니까?”
제일 어린 사내가 숟가락을 멈췄다. 대답은 안 하고, 도시락을 다 비운 다음 빈 통을 부둣물에 헹궈서 진에게 돌려줬다.
“계장님은 우리가 거기서 먹는 거 모르오. 아시면 우리가 곤란하오.”
*
첫날 저녁 진은 열여섯을 폈다. 새로 온 여섯까지 배의 아홉에, 혹시 몰라 일곱을 더 얹었다. 부두에 나와서 먹은 사람은 여섯이었다. 선원 아홉 가운데 셋은 뭍에 올라가 국밥집으로 갔고, 옆 배 선원 몇이 냄새를 맡고 왔다. 열이 남자 진은 그 열을 주방 문간 상에 올려놓고 소쿠리를 덮고 불을 켜 두었다.
이튿날 아침에는 셋만 남아 있었고, 밤사이 일곱이 비어 있었다.
둘째 날 저녁에는 스물을 폈다. 부두에 열둘이 왔다. 여덟이 남았고, 아침에 둘이 남았다. 밤에 먹는 사람이 있었다. 낮에는 안 오고 밤에 오는 사람이었다. 진은 그날 밤 안 자고 주방 옆 창고에 앉아 있어 봤다. 새벽 두 시에 갑판 사다리 삐걱이는 소리가 나고, 주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면 그 사람이 다시는 안 올 것 같았다. 그릇 부딪는 소리가 십 분쯤 나다가 그쳤다.
사흘째 새벽 진은 일부러 주방에 안 갔다. 아침에 가 보니 그릇이 다 비어 있었고, 씻겨 있었다. 선반에 엎어져 물기가 빠지는 중이었다.
십사 년 동안 진은 남의 손이 씻은 그릇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하나를 들어 봤다. 서툴게 씻은 그릇이었다. 안쪽에 기름기가 얇게 남아 손끝이 미끄러졌고, 밥알 하나가 테두리 밑에 말라붙어 있었다. 급하게, 소리 안 나게 씻느라 물을 조금만 썼을 터였다. 진은 그 그릇을 다시 씻었다. 뜨거운 물을 끼얹고 수세미로 문지르는 동안 웃음이 났다. 웃음이 멈추지 않아서, 다 씻고 나서도 한참 개수대를 짚고 서 있었다.
*
그날 오후 쉰쯤 된 사내가 부두에 서서 동진 3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뱃사람 차림은 아니었다. 낡은 점퍼에 슬리퍼를 신었고, 손이 굵었다. 진이 쓰레기를 내리러 사다리를 내려가자 사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밥 주는 데가 여기요?”
“오늘 저녁까지는 여기 있고 내일 뜹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려다 멈췄다.
“다음엔 언제 오오?”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럼 매일 나와 봐야겠소.”
진은 그 말에 주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점심에 남은 밥을 그릇 하나에 꾹꾹 눌러 담고, 무국을 데워 부었다. 들고 내려왔을 때 사내는 아직 거기 있었다. 진이 내미는 그릇을 받아 들더니, 부두 말뚝에 앉아 등을 돌리고 먹었다. 다 먹고 그릇을 돌려주면서 사내가 말했다. 진포에서 배를 접은 지 이 년 됐다고. 배를 접으면 부두에 나올 일이 없는데, 요 며칠 밤에 나왔다고.
“새벽에 그릇 씻으신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사내가 슬리퍼 끝으로 부두 바닥을 문질렀다.
“기름기 남았지요? 우리 마누라가 늘 그랬소. 당신은 설거지를 하고 나면 일이 하나 더 생긴다고.”
*
셋째 날 저녁 진은 스물다섯을 폈고, 스물이 왔다. 진포에 댄 배 다섯 척 가운데 네 척에서 선원들이 왔고, 슬리퍼 신은 사내도 왔다. 동진 3호 갑판이 그만큼 넓지 않아서, 밧줄 감는 자리와 화물창 덮개 위까지 사람이 앉았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무릎을 맞대고 앉아 서로 김치 그릇을 건넸다.
선장이 조타실에서 내려왔다. 갑판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진에게 왔다.
“진 씨, 이게 뭡니까?”
진은 국자를 든 채로 섰다.
“밥입니다, 선장님.”
“밥인 건 나도 압니다. 이 쌀 누구 겁니까?”
“배에 실은 쌀입니다.”
“배 쌀로 남의 배 사람을 먹였어요, 그거 알아요?”
“압니다.”
선장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은 안 붙였다.
“그럼 왜 했어요?”
진은 국자를 솥에 넣었다.
“물어보길래 했습니다.”
“진 씨, 나 지금 화났어요.”
“죄송합니다.”
“화는 났는데.”
선장이 갑판을 다시 둘러봤다. 스무 명이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화물창 덮개 위에 앉은 슬리퍼 사내가 선장과 눈이 마주치자 숟가락을 든 채로 꾸벅 인사했다.
“지금 내려가서 그만하라고 하면 내가 나쁜 놈이 되잖아요. 스무 명이 밥 먹는 데서 그릇 뺏는 놈이요.”
선장이 조타실 사다리로 가다가 돌아섰다.
“내일 아침에 오늘 몇 그릇 나갔는지 셈해서 가져와요. 쌀 몇 되 썼는지까지요.”
*
그 시각 유단은 진포 대리점 사무실에서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동진 3호 갑판에 켜진 백열등이 보였고, 사람들 머리가 그 불빛 아래 까맣게 모여 있었다.
“항해사, 지급 보증서에 이름 쓴 거 맞소?”
공태만의 목소리는 무명도에서보다 가깝게 들렸다. 지직거림이 없어서 더 차가웠다.
“맞습니다, 여섯이 먹은 밥값입니다.”
“지만석이가 어제 전화를 했소. 동진해운 항해사가 이탈 선원 밥값을 보증했다고.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시오? 회사가 이탈을 돕는다는 뜻이오. 청에서 그걸 알면 우리 항로 면허가 흔들려요.”
“회사 이름은 안 쓰고 제 이름을 썼습니다.”
“동진 3호 일등항해사가 제 이름이오?”
유단은 대답을 못 했다. 공태만이 잠깐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이탈 보고는 오늘 올렸소. 섬에 남은 다섯에 기관장 석대근까지 여섯이오. 그리고 무명도는 올해로 끝이오. 12월 20일에 한 번 더 들러서 남은 짐 정리하고, 거기서 끝내요.”
“서른 톤이 되면 남긴다고 하셨습니다.”
“됐으면 남기지. 그런데 스물한 톤이오. 석 달에 한 번 들르는 섬이 두 달 만에 아홉 톤을 어디서 만들어요?”
대답할 틈도 없이 전화가 끊겼다. 유단은 수화기를 한참 들고 있었다. 창밖 갑판에서 누군가 크게 웃었고, 그 웃음소리가 대리점 유리를 흔들었다.
*
밤 열한 시가 넘어 손님들이 다 내려가고 나서, 유단은 주방 문간에 앉아 있는 진을 찾아갔다. 진은 솥 둘을 다 씻어 엎어 놓고, 남은 그릇 다섯을 상에 올려 소쿠리를 덮는 중이었다. 주방에서 나는 냄새가 무명도 부엌 마당과 달랐다. 장작 연기 대신 석유 풍로의 그을음 냄새가 났고, 흙냄새 대신 쇠 갑판에 밴 짠내가 났다. 그래도 밥 냄새는 같았다.
“진 씨, 12월 20일에 무명도를 한 번 더 들른답니다. 그게 마지막이랍니다.”
진이 소쿠리를 내려놓았다.
“서른 톤이 안 되면요?”
“안 되면 무명도는 항로에서 빠집니다. 그러면 섬 짐은 다 만석호로 오가고, 여섯은 영영 이탈로 남습니다. 지금 스물한 톤입니다.”
진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러다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입속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세다가, 모자라는지 다른 손 손가락까지 꼽았다.
“항해사님, 부엌 마당에서 마흔넷이 먹으면 하루에 쌀이 서 말 듭니다. 한 달이면 아흔 말, 아홉 가마입니다. 그 쌀을 만석상회에서 안 사고 배로 들이면, 그게 다 무명도에 내리는 짐입니다. 거기에 밀가루며 연탄이며 김치 담글 소금까지 치면요.”
“그래도 아홉 톤은 안 됩니다.”
“마흔넷이면 안 되지요. 그런데 솥이 다섯이면 백이 넘습니다.”
유단은 진을 봤다. 진은 셈을 끝내고 나서도 손가락을 편 채로 두었다. 열 손가락이 다 펴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멸치 배들이 부엌에서 밥을 먹으면 만석상회 외상이 줄지요. 외상이 줄면 잡은 멸치를 지만석 씨한테만 넘길 까닭이 없습니다. 그 멸치를 우리 배에 실으면, 그것도 톤이지요.”
“진 씨는 언제부터 그런 셈을 하셨습니까?”
“오늘 저녁 선장님이 셈을 해 오라고 하셔서요.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진이 소쿠리를 도로 덮고 불을 켜 두었다. 새벽에 누가 올지는 몰랐다.
*
진포를 뜨는 날 아침 부두에 사람 셋이 왔다. 어젯밤 갑판에서 밥을 먹은 옆 배 선원들이었다. 그중 나이 든 사람이 쌀자루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받으시오.”
“값을 받으려고 한 게 아닙니다.”
“값이 아니오. 우리 배 쌀이오. 댁네 배 쌀로 우리가 먹었으니 우리 배 쌀을 주는 거지. 우리 선장이 담았소.”
진은 그 자루를 주방에 들여놓고 선장에게 말했다. 선장이 재고표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배 재고표에는 실은 것과 쓴 것을 적는 칸이 있었고, 받은 것을 적는 칸은 없었다.
“진 씨, 일단 안 적읍시다. 적으면 내가 설명해야 하는데, 설명할 말이 없어요.”
진은 셈한 종이를 선장에게 내밀었다. 스물다섯 폈고, 스물 먹었고, 밤에 다섯이 비었다고 적혀 있었다. 선장이 그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버리지도 돌려주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