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30자) · 진 · 10월 22일
돌아갈 곳
돌아가지 않기로 한 밤 · 서지오
스무날째 새벽 다섯 시, 진은 부엌 마당에 마지막으로 들렀다. 물때는 여섯 시 사십 분이었다. 이 부두는 수심이 얕아서 만조 앞뒤 두 시간에만 배가 드나들었고, 놓치면 반나절을 기다려야 했다. 바람은 여전히 북동이었다. 하늘 한쪽이 멍든 것처럼 누렜다.
마당에는 닭 두 마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궁이 넷이 다 식어 있었고, 솥 넷이 뚜껑을 덮은 채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릇 마흔넷은 벽 쪽 선반에 엎어져 있었는데, 진이 어젯밤에 엎어 놓은 그대로였다. 새벽 공기에 식은 무쇠에서 쇳내가 희미하게 올라왔고, 평상 위에는 밤에 올려 둔 그릇 셋이 비어 있었다. 오늘은 그 옆에 멸치 대신 삶은 고구마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여옥의 집 부엌 문이 열려 있었다. 여옥이 부뚜막 앞에 쪼그려 앉아 뭔가를 싸고 있었다.
“이거 가져가시오.”
진이 받아 든 것은 보온 가방이었다. 낡아서 안쪽 은박이 반쯤 벗겨졌고, 끈 한쪽은 노끈으로 이어 붙였다. 열어 보니 밥이 들어 있었다. 한 그릇이 아니었다. 양은 도시락 아홉 개가 두 줄로 포개져 있었다.
“누가 하셨습니까?”
“내가 했소. 맛은 없소, 그래도 가져가시오.”
“오늘 배에는 아홉이 아니라 넷입니다.”
“넷이 먹고 남는 다섯은 진포에서 누가 먹겠지.”
여옥이 그렇게 말하고는 진을 올려다봤다. 아궁이 앞에 앉아 있어서 그런지 여옥의 얼굴이 불 없이도 붉었다.
“진 씨, 배를 타시오.”
진은 그 말을 여옥한테서 들을 줄 몰랐다. 사흘 전부터 그는 배에 돌아갈 핑계를 찾는 중이었고, 동시에 안 돌아갈 핑계를 찾는 중이었는데 둘 다 못 찾았다. 배 주방의 석유 풍로와 솥 둘, 포개지는 규격 그릇 아홉, 선반에 끈으로 묶어 둔 간장 통이 눈앞에 떠올랐다. 십사 년 동안 흔들리는 바닥에서 한 방울도 안 흘리고 국을 나르던 손이 그 주방을 기억했다. 부엌 마당의 흙바닥은 흔들리지 않아서 오히려 첫날에는 발이 헛디뎌졌다. 이제 겨우 발이 익었는데 떠나야 했다.
“이 마당에 쌀이 어디서 오는지 아시오? 저 배가 오면 오고, 안 오면 지만석이 배로 오오. 지만석이 배로 오는 쌀은 외상이오. 진 씨가 저 배에 있으면 저 배가 또 오오. 진 씨가 여기 있으면 저 배는 안 와도 그만이지.”
“제가 없으면 솥 넷을 아주머니 혼자 저으셔야 합니다.”
“아홉 해를 안 저었으니 넷쯤이야 저을 만하오.”
여옥이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넷째는 진 씨가 놓은 거요. 다음에 오면 다섯일 거요.”
*
부두에 나가니 사람이 서 있었다. 진은 걸음을 멈췄다. 새벽 다섯 시 반이었다. 물때까지 한 시간이 넘게 남았고, 섬 사람들이 부두에 나올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서 있었다. 장화를 신은 어부들, 머릿수건을 쓴 할머니들, 아이를 업은 여자, 담 밑에서 기다리던 그 넷도 있었다.
진은 한 사람씩 짚어 가며 세었고, 세고 나니 마흔넷이었다.
은지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손에 대접 하나를 들고 있었다. 이가 나간 사기 대접이었다. 이 나간 자리가 손가락 두 마디쯤 됐다.
“아저씨, 할머니가 이거 주래요.”
“이건 할머니 거잖니.”
“삼촌 거래요. 구 년 동안 아무도 안 썼대요.”
진은 여옥을 찾아 고개를 들었다. 여옥은 사람들 맨 뒤에 서서 다가오지 않았다. 진은 대접을 받았다. 이 나간 자리가 손가락에 걸렸다.
“아저씨, 마흔넷이에요. 두 번 셌어요.”
“그래, 나도 셌는데 마흔넷이더라.”
“그럼 세 번이네요.”
진은 웃다가 대접을 두 손으로 고쳐 쥐었다.
사람들 틈에서 하 씨가 방석을 든 채 손을 흔들었다. 부두까지 방석을 들고 나온 건 서 있기 힘들면 앉으려고 그랬다고, 옆에 선 정은수가 대신 말해 줬다. 진이 정은수 씨, 하고 부르자 정은 네, 네, 하고 두 번 대답했고 주위 할머니들이 그 대답에 까르르 웃었다. 오는 언덕에서 내려오지 않았는지 안 보였다. 대신 언덕 꼭대기 억새 사이에 사람 하나가 앉은 점이 보였다.
*
유단이 부두에 내려왔을 때 지만석이 먼저 와 있었다. 가죽 조끼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외상 전표가 아니라, 지급 보증서라고 인쇄된 양식이었다.
“여섯은 남고 배는 가니, 남은 사람 밥값은 누가 갚소? 회사 이름으로는 안 되오. 공 부장이 그 여섯은 회사 사람이 아니라 이탈자라고 했소.”
지만석이 보증서를 부두 말뚝 위에 펼쳤다. 바람에 종이 모서리가 퍼덕였다.
“항해사가 여기 이름을 쓰면 여섯은 계속 밥을 먹소. 안 쓰면 오늘부터 외상을 끊소. 이 섬에서 외상이 끊기면 밥이 끊기는 거요.”
“부엌 마당이 있습니다.”
“부엌 마당 쌀도 내 가게에서 나가오. 여옥이 쌀독 바닥 보인 지 사흘 됐소.”
유단은 보증서를 들여다봤다. 보증인 칸, 월 급여에서 공제, 기한 없음. 기한이 없다는 말이 제일 무거웠다. 여섯이 여기 있는 동안 계속이라는 말이었다.
“계장님은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하는 게 아니라 셈하는 거요. 동진 3호가 이번에 내리고 실은 게 몇 톤인지 아시오? 올해 무명도 짐이 이번 것까지 스물한 톤이오. 내가 대리점이라 내가 적소. 회사는 서른이 안 되면 이 섬을 뺀다고 했소. 빠지면 이 섬 짐은 다 내 배로 오가오. 그걸 알면서 나더러 외상을 계속 주라는 거요?”
지만석의 말은 이번에도 틀린 데가 없었다. 유단은 볼펜을 꺼냈다. 소하가 계산대에서 가져온 도장 통을 들고 아버지 뒤에 서 있었다. 유단이 보증인 칸에 이름을 쓰는 동안 소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쓰고 나서 도장을 찍을 인주를 내밀었을 때 인주 뚜껑이 이미 열려 있었다.
“스물한 톤이면 아홉 톤 남았습니다.”
유단의 말에 지만석이 보증서를 접어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항해사, 여기 사람들은 석 달에 한 번 오는 배를 기다리면서 아홉 해를 살았소. 아홉 톤은 아홉 해 치요.”
지만석이 가게 쪽으로 올라가고 나서도 소하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인주 통 뚜껑을 닫았다가 열었다가 했다.
“월급에서 떼면 얼마나 남아요?”
“배에서는 돈 쓸 데가 없습니다.”
“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
“소하 씨는 대답 아닌 걸 잘 찾아내십니다.”
소하가 인주 통을 닫았다. 이번에는 다시 안 열었다.
“다음에 오시면 배에서 주무시지 말고 섬에서 주무세요. 여섯 분들 밥값 대는 사람이 섬에서 한 번도 안 자면, 그거 좀 이상하잖아요.”
유단은 대답을 못 했다. 대답을 안 해도 소하는 기다리지 않고 돌아섰는데, 몇 걸음 가다가 뒤돌아서 인주 묻은 엄지를 들어 보였다. 도장 찍을 때 그녀 손에도 묻은 모양이었다.
*
기관장 석대근은 부두 끝에 서 있었다. 유단이 다가가자 먼저 물었다.
“보고서 썼냐?”
“썼는데 밸브는 뺐습니다.”
석대근이 유단을 봤다.
“왜 뺐어?”
“쓰면 이 항로가 없어집니다. 기관장이 일부러 고장을 낸 섬에 회사가 배를 또 대겠습니까? 그럼 열두 해 전 여섯하고, 여덟 해 전 넷하고, 이번 여섯이 뭍으로 영영 못 나갑니다. 배가 안 오면 편지도 안 옵니다.”
“유단아, 그건 거짓말이야.”
“압니다. 대신 밸브는 잠그고 잠금장치까지 달았습니다.”
유단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보였다.
“열쇠는 제가 갖습니다.”
석대근이 그 열쇠를 한참 봤다.
“그럼 다음에는 고장이 안 나겠네. 그럼 아무도 못 남겠네.”
“고장이 나야 남습니까?”
석대근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바람이 그의 성긴 머리칼을 한쪽으로 쓸어 넘겼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건 아니지.”
그때 부두 아래 자갈밭 쪽에서 석대호가 올라왔다. 기름 먹인 천에 싼 연장 꾸러미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형제는 서로 두 걸음 떨어져서 섰다. 한참 둘 다 말이 없었다. 석대호가 먼저 입을 뗐다.
“진포까지만이오, 하루요.”
“알아.”
“형이 연 밸브는 형이 잠갔어야지.”
“알아.”
석대호가 뱃전 사다리를 잡았다. 석대근은 사다리 발치에 서 있었다. 동생이 한 칸 오르자 형이 한 걸음 물러났고, 동생이 또 한 칸 오르자 또 한 걸음 물러났다. 열두 해 전 형이 기관실에서 안 나온 그 배와는 다른 배였지만, 사다리는 똑같이 철판에 녹이 슬어 있었다. 석대호가 갑판에 올라서서 뒤를 돌아봤을 때, 석대근은 부두 끝에서 엄지에 감은 헝겊을 풀고 있었다. 손을 흔든 게 아니었는데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윤이 뛰어와서 찐빵 스무 개가 든 봉지를 유단에게 안겼다.
“중간으로 했어요. 막걸리를 딱 중간으로요.”
유단은 그 자리에서 하나를 먹었다. 겉은 어제보다 덜 딱딱했고, 속은 여전히 덜 익어서 이에 쩍쩍 붙었다. 막걸리 시큼한 냄새가 코로 넘어왔다. 부두에 선 사람들이 유단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어서 그는 끝까지 씹었다.
“어때요?”
“다음 스무 개는 나을 겁니다.”
윤이 배를 잡고 웃었다. 박은 그물을 든 채로 소리쳤다. 그물 다 하면 편지를 쓰겠다고, 배 주소로 보내겠다고 했다. 배에는 주소가 없다고 유단이 소리쳐 대답했다. 그럼 항해사님 이름으로 보내겠다고 박이 다시 소리쳤다.
*
배가 부두를 밀고 나갔다. 부두의 마흔넷이 점점 작아졌다. 마흔넷이 마흔으로 보이고, 나중에는 셀 수 없게 됐다. 진은 갑판 난간을 잡고 셀 수 없게 된 뒤에도 한참 서 있었다.
조타실에서 선장이 물었다.
“유단이, 자네는 왜 안 남았어?”
유단은 그 물음을 스무 날 동안 기다렸다.
“여섯 사람 이유가 다 남을 이유였습니다. 저는 남을 이유를 못 찾았습니다. 그렇다고 떠날 이유를 찾은 것도 아닙니다.”
“그럼 왜 배에 있어?”
“돌아올 데를 정해 두려고요. 남으면 여기 여섯만 봅니다. 배에 있으면 여섯을 보러 올 수 있습니다.”
선장이 불 안 붙인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거 이유 맞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섯은 다 이유를 댔는데 저만 못 대면 억울해서요.”
선장이 소리 없이 웃었다.
점심때 진은 보온 가방을 열어 도시락 넷을 꺼냈다. 조타실에 둘, 기관실에 하나, 그리고 제 몫 하나였다. 선장이 한 술 뜨더니 숟가락을 멈췄다. 짜다고 했다. 기관실에서 올라온 석대호도 짜다고 했다. 둘 다 짜다고 하면서 도시락을 바닥까지 긁었다. 진은 남은 다섯 개를 가방에 도로 넣고 뚜껑을 닫았다. 식지 말라고 준 가방이라서, 진포에 닿을 때까지 열지 않기로 했다. 이 나간 대접은 주방 선반 맨 안쪽에 넣었는데, 배 그릇들과 규격이 달라 포개지지 않아서 혼자 따로 서 있었다.
섬이 등 뒤에서 돌았다. 기관 소리가 났다. 열두 해 만에 석대호가 보는 기관이었는데, 유단이 들어 본 중에 제일 고른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