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131자) · 유단 · 10월 21일

세 번째 밸브

돌아가지 않기로 한 밤 · 서지오

열아흐레째 아침에 바람이 바뀌었다. 열여드레 동안 남서풍이던 것이 밤사이 북동으로 돌았고, 섬 뒤편 억새밭이 일제히 반대쪽으로 누웠다. 이 철에 북동으로 돌면 사흘 안에 날이 궂었다. 십 년 배를 탄 사람이면 그 정도는 알았고, 스물두 해 배를 탄 선장은 새벽부터 갑판에서 하늘만 보고 있었다. 내일 새벽 물때를 놓치면 보름을 더 묶여야 했다.

유단은 기관실로 내려갔다. 항해사는 기관을 안 만지는 게 이 배의 규칙이었는데, 규칙을 어기는 데 대단한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배에 기관을 만질 사람이 그밖에 없었다.

기름종이에 싸인 냉각기 부품을 풀었다. 기관장이 정리해 두고 간 공구가 크기대로 걸려 있어서 찾기는 쉬웠는데, 쉬워서 오히려 손이 무거웠다. 볼트 여덟 개를 풀고, 굳은 개스킷을 긁어내고, 새 부품을 맞춰 넣고, 볼트를 대각선 순서로 조였다. 석대근이면 두 시간에 했을 일을 여섯 시간에 했다. 기관실 바닥은 기름때와 녹물로 미끈거렸고, 백열등 하나가 흔들릴 때마다 배관 그림자가 벽을 타고 기어 다녔다. 다 끝냈을 때 그의 손톱 밑은 새까맸고, 팔뚝에는 뜨거운 배관에 덴 자국이 두 줄 생겨 있었다.

갈고 나서 떼어 낸 부품을 들여다봤다. 냉각수 배관 안쪽이 누렇게 삭아 손톱으로 긁으니 부스러져 떨어졌다. 그런 부식은 짠물을 오래 돌려야 생겼다. 냉각에는 담수를 써야 했다. 배는 항구마다 담수를 실어 탱크에 채우고, 그 물로 기관을 식혔다.

유단은 냉각수 탱크 뚜껑을 열고 국자로 물을 떠서 입에 댔다. 혀에 닿자마자 짠맛이 목구멍 뒤까지 쑥 번졌다. 부엌 마당 무국보다 짰다.

그는 조타실로 올라갔다.

“선장님, 냉각수가 해수입니다.”

선장이 해도에서 고개를 들었다. 둘은 같이 내려갔다. 선장이 손가락을 탱크 물에 적셔 핥았다.

“짜구먼. 이러면 냉각기가 삭지.”

“세 번 고장 난 게 이것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탱크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둔한 소리가 났다가, 어느 높이부터 소리가 비었다. 소리로 수위를 보는 법은 선장이 유단에게 가르친 첫 번째 일이었다.

“절반쯤 남았어. 마지막으로 물 넣은 게 남포항이지.”

“남포에서 해수를 넣었을 리는 없습니다.”

둘은 배관을 따라갔다. 담수 탱크에서 냉각기까지 열여덟 미터, 중간에 밸브가 넷이었다. 첫째와 둘째는 잠겨 있었다. 셋째 앞에서 유단은 손을 멈췄다. 셋째 밸브 옆구리에 해수 인입관이 붙어 있었다. 정박 중에 배관을 씻을 때 바닷물을 끌어들이는 관이었다. 그 밸브 손잡이가 반쯤 돌아가 있었다.

“이건 항해 중엔 잠그는 거야.”

선장은 그렇게만 말하고, 누가 열었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이 밸브를 만지는 사람은 기관장과 기관조수뿐이었고, 윤은 이 밸브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

저녁에 유단은 언덕 위 빈집으로 올라갔다. 지붕은 다 덮여 있었다. 석대근은 마당 평상에 앉아 할머니가 내온 고구마를 까먹고 있었다. 엄지에 헝겊을 감았다.

“기관장님, 세 번째 밸브 여셨습니까?”

석대근이 유단을 오래 봤다. 고구마 껍질을 다 벗기고 한 입 베어 먹고 나서야 대답했다.

“열었어.”

유단은 그 대답이 그렇게 빨리 나올 줄 몰랐다. 준비해 온 말이 전부 쓸모없어졌다.

“왜 여셨습니까?”

“열두 해 전에는 안 열었어. 그때는 진짜로 고장 났어. 여덟 해 전에는 반쯤 열었지. 반쯤이면 티가 안 나거든. 한 항해에 조금씩 삭아. 이번에는 두 항해 전에 열었어.”

“그럼 여기 세우려고 고장을 내신 겁니까?”

“그렇지.”

석대근이 먹던 고구마를 평상에 내려놓았다. 섬 위로 별이 떠 있었다.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마을 아래에서 웅웅 올라왔다.

“열두 해 전에 여기 여섯이 남았어. 그중 하나가 내 동생이야.”

유단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헛간의 대팻밥 냄새가 코끝에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았다.

“대호 씨가요?”

“성을 안 댔지? 그놈은 형 성을 대기 싫어해. 형이 저를 두고 간 줄 알거든. 사실은 저가 나를 두고 내린 건데.”

석대근이 헝겊 감은 엄지를 다른 손으로 감싸 쥐었다.

“여덟 해 전에 왔을 때 만났어. 잘 살더라. 배를 짓고 있었어. 나도 남고 싶었는데 그때는 배에 사람이 모자랐어. 기관사가 없는 배에서 기관장까지 내리면 그 배는 여기서 녹이 슬어. 그래서 반만 열고 갔다가, 이번엔 미리 열었어.”

“기관장님, 그건 배를 위험하게 하는 겁니다. 화물이 의약품입니다.”

“나 그거 다 알고 했어.”

유단은 마당에서 삼십 분쯤 서 있었다.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내다봤다가, 서 있는 두 사내를 번갈아 보고는 도로 닫았다. 문 닫히는 소리가 아주 조심스러웠다.

“보고하겠습니다.”

“하면 되지.”

“징계 받으실 겁니다. 면허가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나 이제 배 안 타. 그러니까 보고해.”

석대근이 일어서면서 한마디를 더 했다.

“유단아, 대호한테 가서 하루만 기관 봐 달라고 해 봐. 그놈은 형 말은 안 들어도 배 소리는 들어. 내일 새벽에 저 배가 안 뜨면, 여섯은 여기서 이탈이 되고 나는 고장 낸 놈이 되고 너는 못 데려온 놈이 돼. 그놈이 하루만 봐 주면 셋 다 조금씩 덜 된다.”

*

유단은 그 길로 바닷가 헛간에 내려갔다. 석대호는 남포등을 기둥에 걸어 놓고 판자에 구멍을 뚫고 있었다. 송곳을 돌릴 때마다 가느다란 나무 가루가 불빛 속으로 흩날렸다. 유단이 형 얘기를 꺼내자 송곳이 한 번 멈췄다가 다시 돌았다.

“형이 밸브를 열었다고 합디까?”

“알고 계셨습니까?”

“열두 해 전에 내가 여기 남은 날, 형이 기관실에서 안 나왔소. 여덟 해 전에 왔을 때는 반만 나왔지. 부두에 서서 한 시간을 떠들고는 배로 돌아갔소. 형은 뭘 반만 하는 사람이오. 이번에는 다 나왔다니, 나는 그게 더 무섭소.”

“내일 새벽에 기관을 하루만 봐 주실 수 있습니까? 다음 항구 진포까지입니다. 거기서 본사가 기관사를 구해 줄 겁니다.”

대호가 송곳을 내려놓았다. 판자에 난 구멍으로 남포등 불빛이 한 점 새어 나와 헛간 바닥에 떨어졌다.

“열두 해 동안 안 만졌소.”

“기관장님이 그러셨습니다. 형 말은 안 들어도 배 소리는 들으실 거라고요.”

대호가 웃었다. 이번에는 짧게 웃었다.

“그 양반은 꼭 남의 입을 빌려서 부탁을 하오. 제 입으로는 못 하고.”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헛간 구석의 궤짝을 열어 기름 먹인 천에 싸인 연장 꾸러미를 꺼내 들었다. 천을 풀자 녹 하나 없는 스패너들이 불빛에 번들거렸다. 열두 해 동안 안 만졌다던 연장에 기름이 새로 먹여져 있었다.

*

같은 저녁 진은 부엌 마당의 넷째 아궁이 앞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아궁이 다섯 가운데 솥이 걸린 건 셋이었다. 넷째와 다섯째는 돌만 쌓인 채 입을 벌리고 있었고, 그 안에 아홉 해 치 재가 굳어 있었다. 진은 부지깽이로 재를 긁어냈다. 재 밑에서 타다 만 솔방울이 나왔다.

오늘 저녁에 마흔넷이 왔다. 솥 셋으로는 마흔이 끝이었다. 넷은 그릇을 들고 서 있다가 마당 가장자리 담 밑에 앉아 기다렸고, 진이 첫 솥 바닥을 박박 긁어 누룽지에 물을 부어 숭늉 밥을 만들어 줄 때까지 아무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이 기다리는 걸 보는 동안 진의 손바닥에 땀이 찼다. 배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배의 아홉은 밥이 늦으면 주방 문을 두드렸다. 여기 넷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릇을 무릎에 올려놓고, 솥에서 김이 오르는 쪽만 보면서, 제 차례가 안 올 수도 있다는 걸 아는 얼굴로 기다렸다.

“아주머니, 넷째를 놓으면 어떻겠습니까?”

여옥이 설거지하던 손을 멈췄다.

“솥이 없소, 셋이 다요.”

“뭍에서 부어 오면 두 달은 걸릴 겁니다.”

여옥이 앞치마에 손을 닦고 제 집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에 나왔을 때 그는 옆구리에 무쇠 솥 하나를 끼고 있었다. 셋보다 작고 검었고, 뚜껑 손잡이에 붉은 실이 감겨 있었다.

“내 혼수 솥이오. 시집올 때 친정 엄마가 이고 왔소.”

그때 마당 입구에서 발소리가 났다. 지만석이 인부 둘을 데리고 서 있었다. 인부들은 만석상회 앞에서 쌀가마를 지던 사내들이었다.

“여옥이, 어촌계에서 정했소. 이 마당은 배가 뜨면 다시 닫소. 외지 사람이 쓰던 아궁이에 새 솥 거는 거 아니오.”

진이 부지깽이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외지 사람이 걸 게 아닙니다. 아주머니 솥입니다.”

“진 씨는 내일 배 타고 가오. 그럼 솥 넷을 누가 젓소? 여옥이 혼자 넷을 젓다가 허리가 나가면 그 약값은 누구 외상이오?”

지만석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잘 들렸다. 마당에 남아 있던 어부 둘이 그릇을 든 채 서로를 봤다. 둘 다 만석상회에 외상이 있는 얼굴이었다.

“계장님.”

진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저는 십사 년 동안 아홉을 잡고 아홉을 폈습니다. 한 번도 모자란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여기서 넷이 모자랐는데, 그 넷이 담 밑에서 기다렸습니다. 제가 누룽지를 긁을 때까지 한 사람도 안 갔습니다. 그 사람들이 계장님 외상 밥을 먹었으면 기다릴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기다렸습니다.”

지만석이 진을 잠깐 봤다. 그러고는 여옥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옥이, 아홉 해 전에 이 마당 닫은 건 여옥이였소. 나는 그걸 지켜 준 거요.”

여옥은 대답 대신 혼수 솥을 넷째 아궁이 위에 올려놓았다. 솥 밑바닥이 돌에 맞게 앉으면서 둔하고 깊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담 밑의 닭이 푸드덕 날았다.

“놓자고 한 건 진 씨요. 놓자고 하는 사람이 없으면 안 놓소. 거는 건 내가 거오.”

지만석은 한참 서 있다가 인부들에게 턱짓을 하고 돌아섰다. 인부 하나가 돌아서기 전에 마당 한구석 평상 쪽을 흘끗 봤다. 진이 밤마다 남은 밥을 올려 두는 평상이었다.

그날 밤 진은 넷째 솥에 첫 불을 넣었다. 밥은 안 지었다. 여옥이 새로 건 솥은 첫 불에 물만 끓인다고 했다. 물이 끓는 동안 둘은 아궁이 앞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장작 타는 열이 무릎에 닿아 바지가 뜨거워졌고, 솥 뚜껑 틈으로 김이 가늘게 새어 나와 붉은 실을 적셨다.

“아주머니, 다음에 오면 다섯일까요?”

“진 씨가 오면 다섯이오. 안 오면 넷이고.”

솥 안에서 물이 끓기 시작하자 녹 냄새 섞인 쇳내가 올라왔다가 차츰 맹물 냄새로 바뀌었다. 여옥은 그 냄새가 바뀌는 걸 코로 맡고 있다가, 이제 됐다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무엇이 됐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진은 불을 들여다봤다. 내일 새벽에 배가 뜨면 이 불은 여옥 혼자 지켜야 했다. 그는 그 생각을 하면서도 장작을 하나 더 넣었다.

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세 번째 밸브 · 돌아가지 않기로 한 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