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54자) · 유단 · 10월 20일
일곱 번째
돌아가지 않기로 한 밤 · 서지오
열여드레째 아침에 기관장 석대근이 안 보였다.
공태만의 사흘은 이미 지났다. 지난 저녁 무선전화로 다시 불려 간 유단은, 기관장 없이 부품을 갈 수 없다는 말을 세 번 되풀이한 끝에 스무날째 새벽 물때까지라는 말을 받아 냈다. 부장은 마지막이라고 했고, 마지막이라는 말도 세 번 했다. 그런데 그 새벽을 이틀 앞두고 기관장이 사라졌다.
기관실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유단은 이상한 걸 알아챘다. 공구가 정리되어 있었다. 스패너는 크기대로 벽에 걸려 있었고, 드라이버는 손잡이 색깔별로 통에 꽂혀 있었으며, 걸레는 개켜져 공구함 위에 얹혀 있었다. 석대근은 십 년 동안 공구를 한 번도 정리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자기만 알면 된다고 했고, 실제로 그는 기름때 범벅인 바닥에서 눈을 감고도 십 밀리 스패너를 집어 올렸다. 공구를 정리하고 간 사람은 그 공구를 다시 쓸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유단은 사다리를 올라가 섬으로 갔다.
*
기관장은 언덕 위 빈집 지붕에 올라가 있었다. 슬레이트가 반쯤 날아간 집이었는데, 그 자리에 새 슬레이트를 한 장씩 대고 못을 박는 중이었다. 예순 가까운 사내가 무릎을 꿇고 지붕 경사에 몸을 기댄 모양이 꼭 기관실 바닥에 엎드려 배관 밑을 들여다볼 때와 같았다.
“기관장님, 거기서 뭐 하십니까?”
“어, 유단이 왔냐. 보면 모르냐?”
“내려오십시오.”
“지금은 못 내려가. 이거 마저 해야 돼.”
석대근이 망치를 들었다가 내리쳤다. 못 대신 엄지를 쳤다. 그는 망치를 떨어뜨리고 엄지를 입에 문 채 한참 지붕 위에서 몸을 웅크렸다. 망치가 슬레이트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와 유단의 발치에 떨어졌다. 유단은 그 망치를 주워 들었다.
“기관장님, 모레 새벽에 뜹니다.”
“알고 있어.”
“기관장 없이는 못 뜹니다.”
석대근이 엄지를 입에서 뺐다. 손톱 밑이 벌써 검붉게 멍들고 있었다.
“그것도 아는데, 이 지붕은 나 없으면 못 덮여.”
“그럼 지붕 다 덮고 내려오십시오.”
“유단아, 너는 꼭 그렇게 말끝을 잡더라.”
기관장이 지붕 용마루에 걸터앉았다. 바람이 그의 작업복 소매를 부풀렸다.
“나 이거 육십 평생 처음 해 봐.”
“지붕을요?”
“응. 배는 삼십오 년 고쳤는데 지붕은 처음이야. 배는 고치면 떠나잖아. 지붕은 고치면 그 밑에서 누가 자.”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중요하진 않은데 재밌어.”
유단은 그 말에 화가 났다. 화가 난 건 그 말이 가벼워서가 아니라 정확해서였다. 그는 망치를 쥔 손에 힘을 줬다.
“기관장님, 우리 배 화물이 뭔지 아십니까?”
“의약품이잖아, 남쪽 세 항구 보건지소 거.”
“스무 날 늦었습니다.”
“그것도 알고 있어.”
“그런데도 여기 계십니까?”
“유단아, 그거 내가 안 가도 가.”
“기관장 없이 어떻게 갑니까?”
석대근이 턱으로 마을 아래쪽을 가리켰다. 바다 쪽으로 난 헛간 지붕 하나가 보였다.
“저기 가 봐. 이 섬에 기관 볼 줄 아는 사람 있어. 열두 해 전에 내린 사람이야.”
유단은 망치를 지붕 처마 끝에 올려놓고 돌아섰다. 처마 밑 툇마루에 할머니 하나가 앉아 있다가, 유단에게 저 양반 오늘 엄지를 세 번째 치는 거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고는 고구마 하나를 쥐여 주었다. 기관장이 뒤에서 망치 고맙다고 소리쳤다. 유단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했으면 웃었을 것 같아서였다.
*
헛간은 바닷가 자갈밭 위에 서 있었다. 문짝 없이 한쪽이 트인 헛간 안에 두 사람이 탈 만한 작은 배 한 척이 받침목 위에 얹혀 있었다. 배는 반쯤 지어져 있었다. 늑골이 드러난 선체에 삼나무 판자가 절반쯤 붙어 있었고, 헛간 바닥에는 대팻밥이 발목까지 쌓여 있었다. 송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갓 깎은 나무에서는 비 온 뒤 숲 냄새가 났고, 그 냄새가 갯내와 섞이면서 이상하게 달았다.
쉰 줄의 사내가 판자 한 장을 대패로 밀고 있었다. 대패가 나무를 지나갈 때마다 얇은 대팻밥이 둥글게 말려 떨어졌다.
“열두 해 전에 내리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들 말하오.”
“배 이름이 뭐였습니까?”
사내가 댄 이름을 유단은 알았다. 동진 2호, 선장 하경철이 동진 3호를 받기 전에 몰던 배였다.
“기관 보실 줄 아십니까?”
“봤었지. 지금은 배는 짓고 기관은 안 만지오.”
“왜 안 만지십니까?”
사내가 대패를 내려놓았다. 이름은 대호라고 했다. 성은 말하지 않았다.
“열두 해 전에 그만뒀으니까. 그만둔 걸 다시 만지면 그만둔 게 거짓말이 되잖소.”
유단은 대팻밥 위에 앉았다. 대팻밥이 엉덩이 밑에서 바스락 소리를 내며 꺼졌다.
“열두 해 동안 후회하신 적 있습니까?”
사내가 웃었는데, 대패를 든 손등으로 눈가를 훔칠 만큼 오래 웃었다.
“매일 하지.”
유단은 그 대답을 예상하지 못해서 그대로 되물었다.
“매일 하신다고요?”
“매일 아침에 먼바다에서 배 기관 소리가 들리면 후회해. 저건 몇 기통이구나, 저 소리는 헤드 개스킷이 샌다, 그런 게 다 들려. 들리니까 후회하지.”
“그럼 왜 안 가셨습니까?”
“가면 또 후회할 것 같아서. 어느 쪽을 후회할지 골라야 하는 거요. 안 후회하는 쪽은 없소.”
“어느 쪽을 고르셨습니까?”
사내가 짓고 있던 배의 뱃전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었다. 삼나무 결을 따라 손이 지나갔다.
“매일 후회하는 쪽으로 골랐소.”
“어째서 그쪽입니까?”
“매일 후회하면 매일 생각하니까. 한 번 후회하고 끝나는 쪽은 한 번 생각하고 끝나오. 나는 그게 더 무서웠소.”
유단은 반쯤 지어진 배를 올려다봤다. 두 사람이 타면 꽉 찰 배였다. 노 자리가 둘이고, 고물에 작은 선외기를 달 받침이 나 있었다. 누구랑 탈 배냐고 묻자 사내는 대답 대신 대패를 다시 들었다.
“열두 해 동안 이걸 네 척 지었소. 세 척은 섬 사람들이 가져갔고, 이게 넷째요. 이건 안 팔 거요.”
“왜 이건 안 파십니까?”
“이건 누가 올 때 태우러 나가려고. 부두가 얕아서 큰 배는 만조 때만 대잖소. 물 빠질 때 온 사람은 누가 나가서 태워 와야 하오.”
유단은 그 말을 그 자리에서 두 번 속으로 되뇌었다. 헛간 밖에서 파도가 자갈을 굴렸다가 놓는 소리가 들렸다.
*
그 시각 진은 부엌 마당에서 서른여덟 번째 그릇을 퍼 주고 있었다. 솥 셋이 다 불을 먹었고, 마당에는 줄이 생겼다. 아침에 멸치 배가 들어오면 어부들이 장화를 신은 채 그 줄에 섰다. 새벽 세 시에 배에서 찬밥을 먹고 나가 아홉 시에 들어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릇을 받으면 말없이 담 밑에 쭈그려 앉아 먹었고, 다 먹으면 그릇을 우물가 고무 대야에 담가 놓고 갔다.
여옥이 옆에서 무국을 퍼다가 말했다.
“저이들이 전에는 만석상회에서 먹었소. 한 그릇에 멸치 한 되를 달았지. 한 되면 오늘 잡은 것의 열에 하나가 되오.”
“그럼 여기서 먹으면 한 되가 남습니까?”
“남지. 남으니까 지만석이가 어제 여기 왔던 거요.”
진은 국자를 멈췄다. 여옥은 멈추지 않고 국을 펐다.
“아홉 해 전 추석 앞날이었소. 외상 결산하는 날이라 우리 영감이 아들을 데리고 멸치를 잡으러 나갔소. 바람이 북동으로 돌았는데, 지만석이가 결산은 결산이라고 했소. 한 배만 더 채우면 된다고.”
여옥이 국자로 솥 바닥을 긁었다. 긁는 소리가 길게 났다.
“그날 이 솥 셋에 추석 밥을 앉혀 놨었소. 둘이 안 와서 그 밥은 내가 다 퍼다 버렸소. 그러고는 솥을 엎었지.”
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대신 여옥이 들고 있던 국자를 받아 제 손으로 국을 펐다. 여옥은 놓아주었다. 줄 끝에 서 있던 은지가 그릇을 내밀면서 서른아홉이라고 세었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처음부터 세러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
돌아오는 길에 만석상회 앞을 지났다. 소하가 가게 앞 평상에 앉아 멸치 상자에 무게 표를 붙이고 있었다.
“기관장님 찾으셨어요?”
“찾았는데 못 모셔 왔습니다. 지붕에 계십니다.”
“아, 김 할머니 집이요. 할머니가 비 새는 데 밑에 대야를 여섯 개 놓고 사셨거든요. 어젯밤에 대야가 다섯 개로 줄었대요.”
소하가 무게 표를 하나 더 붙였다.
“아버지가 그러시던데요, 동진 3호 기관장까지 내리면 그 배 이번엔 진짜 못 뜬다고요. 좋아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게 왜 좋으신 겁니까?”
“배가 안 가면 섬 짐은 만석호가 싣잖아요.”
소하는 그 말을 하면서 유단을 안 보고 멸치 상자만 봤다. 상자 모서리에 붙인 무게 표가 비뚤게 붙어 있었는데, 소하는 그것을 떼어 다시 붙이지 않고 그냥 두었다.
“소하 씨는 좋으십니까?”
“저요? 저는 이 섬에 배가 안 오면 편지가 두 배로 늦어져요. 사범대 동기들 편지가요. 그러니까 저는 안 좋아요. 근데 아버지 딸이라서, 안 좋다고 말하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
저녁에 선장은 조타실에 있었다.
“기관장은 어떻게 됐나.”
“안 오십니다. 대신 열두 해 전 기관사가 이 섬에 있습니다. 대호라는 분입니다.”
선장이 해도에서 손을 뗐다.
“알고 있었어. 그 사람이 내 기관사였어. 동진 2호 기관실에서 여섯 해를 같이 있었지. 그 사람 내리던 날 나는 조타실에서 안 내려갔어. 내려가면 붙잡을 것 같아서.”
유단은 조타실 문틀을 잡았다.
“그러면 선장님은 열두 해 전에 이 섬에 사람을 두고 가셨습니다.”
“여섯 두고 갔지.”
“그리고 여덟 해 전에 넷을 두고 가셨고요.”
“그래, 넷이었어.”
“그런데 또 오셨습니까?”
선장이 창밖을 봤다. 섬 쪽 불빛이 몇 개 떠 있었다.
“오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항로야.”
“항로를 바꾸면 됩니다.”
“바꿨어, 두 번.”
선장이 해도를 폈다. 연필로 그은 항로가 세 개였는데, 셋 다 무명도에서 한 뼘도 안 떨어진 자리를 지나고 있었다.
“바꿔도 고장이 나.”
유단은 해도를 오래 봤다. 연필 자국 셋이 무명도 앞에서 모였다가 흩어졌다.
“몇 번 고장 났습니까?”
“세 번 났지.”
“세 번 다 여기서요?”
“응, 세 번 다.”
선장이 불 안 붙인 담배를 입에 물었다. 유단은 그 담배 끝을 보면서 기관실의 정리된 공구를 떠올렸다. 세 번 다 여기서 고장 났는데 세 번 다 기관장이 기관실에 있었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한 바퀴를 돌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선장도 묻지 않았다. 조타실 창에 김이 서렸다가 걷히는 동안, 부엌 마당 쪽에서 남포등 하나가 밤새 꺼지지 않고 흔들렸다. 유단은 그 불빛을 보다가 소하가 한 말을 떠올렸다. 섬 불이 다 꺼져도 부두 끝에 불이 하나 남는다고 했다. 오늘 밤에는 불이 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