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167자) · 유단 · 10월 15일
여섯 명의 이유
돌아가지 않기로 한 밤 · 서지오
무명도는 남북으로 사 킬로미터, 동서로 이 킬로미터였다. 예순여덟 집에 이백열 명이 살았고, 부두는 하나였다. 걸어서 한 시간이면 섬을 가로질렀으니 사람을 찾는 데 오래 걸릴 까닭이 없었는데, 유단은 사흘 동안 남은 셋을 찾아다녔다. 찾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찾아 놓고 할 말이 없는 게 어려웠다.
공태만이 준 사흘 가운데 첫날이었다. 아침부터 바람이 남서에서 불어 골목마다 멸치 말리는 냄새가 낮게 깔렸고, 돌담 위에 널린 발 위로 은빛 멸치가 햇볕에 뒤집히며 반짝였다.
기관조수 윤은 여옥의 집 뒤꼍에 있었다. 석유 풍로 위에 찜솥을 얹고 김을 올리는 중이었는데, 찜솥 뚜껑 틈으로 새는 김에서 밀가루 냄새와 막걸리 냄새가 같이 났다. 막걸리로 반죽을 부풀린다고 했다. 윤은 스물여섯이었고, 배에서는 기관실 계기판 앞에 앉아 바늘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윤 씨, 뭐 하십니까?”
“찐빵이요. 배우는 건 아니고 손이 심심해서요.”
윤이 뚜껑을 열었다. 김이 확 올라왔다가 걷히자 모양만은 그럴듯한 찐빵 여섯 개가 보였다. 유단이 하나를 집어 들었는데, 손바닥에 얹힌 무게가 찐빵이 아니라 조약돌이었다.
“이거 드셔 보셨습니까?”
“아직 안 먹어 봤어요. 무서워서요.”
유단은 한 입 베어 물었다. 이가 겉껍질에서 한 번 튕겼고, 두 번째에 들어갔는데 속은 덜 익어 끈적했다. 윤이 유단의 얼굴을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막걸리가 모자랐네요. 어제는 넘쳐서 반죽이 솥 밖으로 기어 나왔거든요. 오늘은 줄였더니 이래요. 내일은 그 중간으로 해 보려고요.”
“윤 씨, 모레 뜹니다.”
“그러니까 내일이 중간이죠.”
“타실 겁니까?”
윤이 반죽 그릇에 손을 넣었다. 밀가루가 손등까지 허옇게 묻었다.
“항해사님, 배에서 제가 뭐 하는지 아세요? 열여덟 시간 중에 열두 시간은 기다려요. 고장 나면 고치고, 안 나면 기다려요. 육 년을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뭘 만들면 만들어져요. 돌이 나와도 만들어진 거잖아요.”
유단은 손에 든 찐빵을 내려다봤다. 반쯤 베어 문 자리에 이 자국이 선명했다.
*
조리원 하 씨는 부엌 마당 담 밑에 앉아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예순둘이었고, 동진 3호에서 제일 오래 탄 사람이었다. 진이 조리장이 되기 전부터 하 씨는 그 배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다.
“하 씨는 왜 안 오십니까?”
“나? 나는 다리가 아파.”
“배에서는 안 아프셨습니까?”
“아팠지. 근데 배에서는 아프다고 하면 안 되잖아. 하나가 빠지면 여덟이 나눠 지니까. 그래서 스무 해를 안 아팠어.”
하 씨가 고구마순 한 줄기를 끝까지 벗겨 소쿠리에 넣었다. 벗긴 껍질이 치마 위에 가늘게 쌓였다.
“여기서는 아프다고 하면 앉으래.”
유단은 그 말에 대답을 못 했다. 하 씨가 앉은 자리 옆에 방석이 하나 더 놓여 있었는데, 누가 갖다 놓았는지 하 씨도 몰랐다. 첫날 아프다고 했더니 이튿날 아침에 거기 있더라고 했다. 유단은 그 방석을 한참 봤다. 배에는 방석이 없었다. 방석을 깔 자리에는 전부 짐이 있었다.
*
갑판원 정은수를 찾는 데는 하루가 더 들었다. 정은 섬 남쪽 산비탈 고구마밭에 있었는데, 밭주인 노인이 허리를 다쳐서 대신 캐 주는 중이라고 했다. 스물아홉, 배에서 제일 어렸다.
“정은수 씨.”
정이 고개를 들었다가, 한 번 더 들었다.
“네, 네?”
“왜 대답을 두 번 하십니까?”
“이름으로 부르셔서요. 한 번은 놀라서 하고 한 번은 대답하느라고요.”
정이 흙 묻은 손으로 이마를 훔치자 이마에 흙이 한 줄 생겼다.
“배에서는 저를 부르실 일이 없잖아요. 부르셔도 갑판원이라고 하시지. 여기 오니까 할머니들이 은수야, 은수야 해요. 처음엔 누구를 부르는지 몰라서 뒤를 돌아봤어요.”
유단은 밭고랑에 쭈그려 앉았다. 캐 놓은 고구마가 붉은 흙을 묻힌 채 줄지어 누워 있었다. 정이 하나를 집어 흙을 털고 유단에게 건넸다. 생고구마를 베어 무니 단물이 이 사이로 번졌다. 그는 배에서 날것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배에서는 뭐든 끓이고 볶아서 먹었다.
“정은수 씨, 모레 뜹니다.”
“네, 네.”
“이번엔 왜 두 번입니까?”
“한 번은 알았다는 거고요, 한 번은 그래도 안 간다는 거예요.”
정이 호미로 고랑을 한 번 더 긁었다. 흙 속에서 주먹만 한 고구마가 하나 더 나왔다. 정은 그것을 들어 올려 유단에게 보여 주고는, 할머니가 이만한 건 제일 나중에 쪄 먹는다고 했다며 따로 바구니 한쪽에 놓았다. 유단은 그 바구니를 들어 줄까 하다가 그만뒀다. 들어 주면 여기 남는 일을 거드는 것 같았다. 안 들어 주고 밭둑을 내려오는 동안, 그는 제가 그런 셈을 한다는 게 우스웠다.
*
내려오는 길에 유단은 만석상회에 들렀다. 외상 전표를 한 장씩 보고 싶다고 하자, 계산대의 소하가 서랍에서 누런 종이 묶음을 꺼내 줬다. 날짜와 이름과 쌀 몇 되가 적혀 있었는데, 여섯 사람 이름은 하나도 없고 전부 여옥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여섯 분들 이름은 없네요.”
“아버지는 누가 먹었는지보다 누구 쌀독에서 나갔는지를 적으세요. 섬에서는 그게 더 정확하거든요. 사람은 떠나도 쌀독은 안 떠나니까요.”
소하가 전표를 도로 묶으면서 말했다. 끈을 두 번 감고 매듭을 짓는 손이 빨랐다. 유단은 그 손을 보다가, 뭍에서 무엇을 하다 왔느냐고 물었다. 소하는 사범대를 이 년 다니다 왔다고 했다. 아버지가 무선전화로 들어오라고 한 날, 하숙집 주인이 수화기를 넘겨주던 손이 떨렸다는 얘기를 웃으면서 했다. 왜 떨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항해사님은 이 전표 보시고 뭐 하시게요?”
“외상이 얼마인지 알면, 제가 갚을 수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갚으시게요? 그 여섯 분들 밥값을요?”
“제 배 사람들입니다.”
소하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건 이유 같네요.”
*
그날 저녁 진은 부엌 마당에서 둘째 솥을 뒤집었다.
여옥은 그 솥은 두시오, 하고 한 번 말렸고, 진이 솥 귀를 잡자 한 번 더 말했다. 진은 솥 귀를 놓지 않았다. 아침에 스물여섯을 폈고 점심에 서른이 왔다. 넷은 빈 그릇을 들고 서 있다가 돌아갔다. 진은 십사 년 동안 모자란 적이 없었다. 모자란 것을 본 손이 저녁이 되도록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솥을 뒤집자 아홉 해 묵은 먼지가 한꺼번에 일어났다. 먼지 밑의 무쇠는 녹이 슬어 붉었고, 안쪽 바닥에 마지막으로 지은 밥의 누룽지 자국이 검게 눌어붙어 있었다. 진은 그 자국을 손끝으로 쓸었다. 아홉 해 전 누가 이 솥으로 마지막 밥을 지었는지, 그 밥을 누가 먹었는지 진은 몰랐지만 여옥은 알았다.
진이 모래와 짚으로 녹을 벗기는 동안 여옥은 부엌 문턱에 앉아서 그것을 봤다. 한 시간쯤 지나 셋째 솥 앞으로 가더니, 진보다 먼저 제 손으로 솥 귀를 잡아 뒤집었다.
그때 마당 입구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 지만석이 가죽 조끼 차림으로 서 있었다.
“여옥이, 이 마당은 어촌계 것이오. 잔치하고 제사에나 쓰라고 계에서 쌓은 거요. 외지 뱃사람이 여기서 밥장사를 하면 계원들 보기가 안 좋소.”
진이 솥을 짚은 채 일어섰다.
“장사가 아닙니다. 돈을 안 받습니다.”
“돈을 안 받으니까 더 곤란하오. 우리 가게 밥은 돈을 받거든.”
지만석은 웃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여옥이 짚 뭉치를 내려놓았다.
“이 마당 아궁이 다섯은 우리 영감이 쌓았소. 돌도 영감이 져 날랐소.”
“영감 배는 내 외상이었소.”
마당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담 밑에서 고구마순을 벗기던 하 씨가 손을 멈췄고, 솥에 물을 붓던 윤도 바가지를 든 채 섰다. 여옥은 한참 지만석을 보다가, 녹을 반쯤 벗긴 셋째 솥을 아궁이 위에 올려놓았다. 무쇠가 돌에 닿는 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그 외상은 영감이 바다에 갖고 갔소. 솥은 내가 걸겠소.”
지만석은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진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뱃사람 쌀은 뱃사람 배에서 오는 거요. 그 배가 모레 뜬다던데.”
그날 저녁 진은 솥 셋으로 서른 그릇을 폈다. 쌀은 여옥의 쌀독에서 나왔는데, 쌀독 바닥이 보였다. 진은 국자를 쥔 손이 뜨거운 걸 알았다. 무쇠 솥 셋에서 올라온 열이 팔뚝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와 있었다. 배 주방의 솥 둘로는 한 번도 그렇게 뜨거워 본 적이 없었다.
은지가 그릇 수를 셌다. 마당을 한 바퀴 돌며 손가락으로 짚어 서른이라고 하더니, 고개를 갸웃하고 처음부터 다시 셌다. 두 번째도 서른이었다. 진이 왜 두 번 세느냐고 묻자 은지는 한 번 세면 틀릴 수 있어서라고 했다.
“두 번 세면 안 틀리니?”
“두 번 다 틀리면 틀린 거죠. 근데 그런 적은 없어요.”
진은 웃다가 국자를 솥에 빠뜨릴 뻔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나니 솥 바닥에 밥이 세 그릇쯤 남아 있었다. 진은 그것을 그릇 셋에 나눠 담아 부엌 문간 평상에 올려놓고, 뚜껑 대신 소쿠리를 덮었다. 그리고 부엌 처마에 걸린 남포등의 심지를 낮춰 켜 둔 채 마당을 나왔다. 배에서 십사 년 동안 남은 밥은 밤에 그가 혼자 먹었다. 오늘은 배가 불러서 못 먹겠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는데, 그게 핑계라는 건 그도 알았다.
이튿날 새벽에 가 보니 그릇 셋이 비어 있었다. 누가 먹었는지는 몰랐다. 그릇 옆에 말린 멸치 한 줌이 신문지에 싸여 놓여 있었다.
*
밤에 유단은 조타실에서 선장에게 보고했다.
“여섯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박 씨는 끝이 있는 일을 하고 싶답니다. 그물은 열두 장이면 열두 장이라고요. 윤 씨는 만들면 만들어지는 일을, 하 씨는 아프다고 말해도 되는 자리를, 정은수 씨는 이름을요. 오 씨는 그냥 있고 싶답니다. 진 씨는 모자란 걸 못 봅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알고 계셨습니까?”
선장이 해도를 접었다. 해도 귀퉁이가 여러 번 접혔다 펴져서 보풀이 일어 있었다. 무명도 근처 바다만 유독 연필 자국이 많았다.
“열두 해 전에도 그랬어. 그때는 내가 직접 가서 들었지. 여섯 사람한테 여섯 번 들었는데, 다 맞는 말이더라.”
“그럼 왜 저를 보내셨습니까?”
“이유를 들으라고. 들으면 억지로는 못 데려가. 억지로 데려간 사람은 다음 항구에서 없어져.”
“만석상회에서 여섯 밥값을 달라고 합니다. 열이틀치입니다. 부장님은 사흘 안에 아홉을 싣고 나오라고 하고요.”
“지만석이는 열두 해 전에도 그 가게에 있었어. 그때는 조끼가 좀 덜 낡았지.”
선장이 그 말만 하고 더는 보태지 않았다.
선장이 불 안 붙인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뺐다.
“자네 이유는 뭐야?”
유단은 대답하지 못했다. 선장은 떠나야 하는 이유를 물은 게 아니라, 유단이 남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