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176자) · 유단 · 1987년 10월 14일

열이틀째

솥을 뒤집을 때마다 사람이 늘어나는 섬 · 서지오

수리는 사흘이면 끝난다고 했는데 오늘로 열이틀째였다. 부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냉각기 부품은 엿새째 되는 날 만석호 편에 왔고, 기름종이에 싸인 채 지금도 기관실 공구함 위에 얹혀 있었다. 갈 사람이 없어서였다.

동진 3호는 아홉 명이 타는 배였다. 오늘 아침 배에 있는 사람은 셋이었다.

유단은 조타실 문턱에 서서 부두를 내려다봤다. 499톤짜리 연안 화물선이 무명도의 하나뿐인 부두를 절반 넘게 차지하고 있었고, 녹슨 뱃전에는 열이틀 동안 말라붙은 소금이 허옇게 앉아 있었다. 썰물이라 선체가 한 뼘쯤 내려앉아 계류줄이 팽팽했다. 디젤 냄새 대신 갯내와 장작 연기가 배 안까지 들어왔다. 기관이 멈춘 배에서는 소리가 안 났고, 소리가 안 나는 배는 배 같지가 않았다.

선장 하경철은 해도대 앞에서 불을 안 붙인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스물두 해 선장을 하는 동안 담배를 끊었는데, 손은 아직 끊지 못했다.

“가서 데려와.”

“명령입니까?”

“부탁이야.”

선장이 해도대 서랍에서 전보 한 장을 꺼내 건넸다. 어제 만석상회 무선전화로 받아 적은 것을 누가 배까지 들고 온 종이였다. 본사 운항부장 공태만. 오늘 오전 열한 시 무선전화 대기. 일등항해사 직접 받을 것.

“부장이 자네를 찾더라.”

“선장님을 안 찾고요?”

“나는 두 번 찾았으니 이제 안 찾지.”

선장이 담배를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유단은 그 말이 농담인지 아닌지 가늠하지 못한 채 사다리를 내려갔다.

*

갑판원 박은 부둣가 그물 널린 자리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 섬 그물은 뭍의 것과 달랐다. 코가 넓고 실이 굵고, 오래 바닷물에 절어 손으로 쥐면 뻣뻣한 소리가 났다. 박은 찢어진 자리마다 바늘을 넣었다가 빼면서 실을 한 바퀴씩 감았다. 십 년을 같이 배를 탔는데, 유단은 박이 그렇게 웃으면서 일하는 얼굴을 처음 봤다.

“박 씨, 짐 챙기셔야죠.”

“제 짐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금방 챙기시겠네요.”

“그러니까 안 챙겨도 되는 거죠.”

박이 바늘을 입에 물고 그물을 들어 보였다. 유단은 그 논리의 어디가 틀렸는지 찾다가 못 찾고 돌아섰다. 등 뒤에서 박이 바늘을 문 채로 뭐라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고 웃음소리만 들렸다.

*

조리장 진은 부두에서 올라가는 첫 골목 끝, 마을 공동 부엌 마당에 있었다. 흙바닥 마당에 아궁이가 다섯 줄로 나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에만 불이 들어 있었다. 나머지 넷 위에는 무쇠 솥 둘이 엎어져 있었고, 둘은 솥도 없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불이 든 솥에서 김이 올라와 마당 한쪽 감나무 가지까지 닿았다. 쌀 익는 냄새와 장작 타는 냄새가 섞여서, 배 주방의 석유 풍로 냄새만 맡던 코가 한동안 멍해졌다.

진은 국자를 들고 솥 앞에 서 있었다. 옆에는 쉰 줄의 여자가 앉아 양은 그릇을 행주로 닦고 있었다. 부엌 마당 옆집에 사는 여옥이었다.

“진 씨, 내일모레쯤 뜰 것 같습니다.”

“드시고 가세요.”

“뜨는 얘기를 하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드시고 가셔야죠. 뜨면 못 드시잖아요.”

진이 그릇 하나에 밥을 퍼서 내밀었고, 유단은 엉겁결에 받아 들었다. 한 술 떠 넣자마자 혀끝이 먼저 짠맛을 알았다. 밥이 짤 수는 없는데, 같이 퍼 준 무국이 짰고 그 짠맛이 밥알 사이로 번져 있었다.

“짜죠?”

여옥이 그릇을 닦던 손을 안 멈추고 물었다.

“조금요.”

“배에서는 그렇게 먹었다오. 아홉이 땀을 흘리니까.”

진이 솥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아홉을 잡았습니다, 항해사님. 십사 년 동안 그랬습니다. 쌀을 아홉 사람 몫으로 잡으면 아홉 그릇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손이 자꾸 나갑니다. 오늘 아침에 스물여섯이 나왔습니다.”

“스물여섯이면 누가 먹습니까?”

“오는 사람이 먹습니다.”

유단은 마당을 둘러봤다. 담벼락에 기대 앉은 노인 둘, 그물 손질을 하다 온 듯한 젊은 어부 셋, 책가방을 멘 여자아이 하나가 저마다 그릇을 들고 있었다. 엎어진 솥 두 개 위에는 먼지가 두껍게 앉아 있었다.

“저 솥들은 왜 엎어 두셨습니까?”

여옥이 행주를 접었다.

“아홉 해 됐소.”

그 말 뒤에 아무것도 안 붙였다. 유단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여자아이가 그릇을 든 채 다가와서 유단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저씨도 배 사람이에요?”

“그래.”

“그럼 아저씨도 안 가요?”

“아저씨는 가.”

아이가 유단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릇에 남은 밥을 한 숟갈 크게 떠 넣고 말했다.

“다들 처음엔 그러던데요.”

진이 국자로 솥 가장자리를 긁다가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여옥이 아이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은지라고, 자기 손녀라고 했다. 유단은 빈 그릇을 돌려주면서 엎어진 솥 두 개를 한 번 더 봤다. 먼지 위에 닭 발자국이 찍혀 있었고, 그 발자국조차 오래돼서 모서리가 뭉개져 있었다.

*

조타수 오를 찾는 데는 두 시간이 걸렸다. 오는 섬 북쪽 언덕 꼭대기, 억새가 허리까지 오는 자리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그냥 있어요.”

유단은 옆에 앉았다. 억새 밑동 흙은 낮 햇볕을 먹어 미지근했고, 바지 엉덩이로 그 온기가 천천히 올라왔다. 배 갑판은 한낮에도 쇠라서 앉으면 차갑거나 뜨거웠지 미지근한 적이 없었다. 둘은 십 분쯤 아무 말도 안 했다. 억새가 바람에 한쪽으로 눕고, 멀리서 발동선 하나가 통통거리며 섬을 돌아 나갔다.

“항해사님, 저 여기 남으면 뭐가 문제입니까?”

유단은 대답을 준비했다. 계약이 있고, 임금 정산이 있고, 승선 기록이 있었다. 그런데 입 밖으로 내려고 보니 그건 문제가 아니라 절차였다.

“모르겠습니다.”

오가 웃었다.

“저도요.”

*

만석상회는 부두에서 올라오는 길목에 있었다. 쌀가마와 기름통과 그물 뭉치가 천장까지 쌓인 가게 안쪽에 계산대가 있었고, 계산대 뒤 벽에 무선전화 한 대가 걸려 있었다. 섬에 하나뿐인 전화였다. 계산대에는 스물 몇쯤 된 여자가 앉아 주판을 놓고 있었다.

“동진 3호 항해사님이시죠? 열한 시 전화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 섬 좁아요.”

여자가 수화기를 들어 주파수를 맞추고 넘겨 줬다. 지직거리는 소리 사이로 사람 목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유단 항해사? 운항부장 공태만이오.”

“예, 부장님.”

“사흘 주겠소. 사흘 안에 아홉 싣고 나와요. 안 나오면 섬에 있는 여섯은 무단 이탈로 청에 올리겠소. 수첩에 이탈 한 줄 들어가면 이 나라 어느 배도 못 타는 거 알지요.”

“여섯은 도망간 게 아닙니다. 어디 있는지 다 압니다.”

“어디 있는지 아는데 왜 못 데려와요?”

유단은 대답을 못 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공태만이 한숨을 쉬었고, 그 한숨까지 지직거렸다. 수화기는 손때가 반들반들했고 귀에 대는 쪽에서 남의 머릿기름 냄새가 났다. 이 섬 사람들이 뭍에 있는 자식에게 돈 부쳐 달라는 말도, 병원 자리를 알아봐 달라는 말도 다 이 구멍에 대고 했을 터였다.

“무명도는 정식 기항지가 아니오. 거기서 내리면 하선이 아니라 이탈이야. 규정이 그래요. 그리고 항해사, 그 섬 올해 짐이 스무 톤 남짓이오. 나는 그 섬에 배를 대는 것부터가 손해요.”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가 뚝 끊겼다. 유단이 수화기를 걸자, 쌀가마 사이에서 쉰 줄의 사내가 나왔다. 가죽 조끼에 돋보기를 걸었고, 손에 누런 전표 한 묶음을 들고 있었다.

“지삼득이오. 이 섬 어촌계장이고 동진해운 대리점이오.”

지삼득이 전표를 계산대에 펼쳤다.

“여섯이 먹은 쌀이오. 열이틀치, 두 가마 반. 부엌 마당에서 먹은 것도 그 쌀은 여기서 나갔소. 배가 뜨면 누가 갚소?”

“여옥 아주머니 쌀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집 쌀도 내 외상이오. 이 섬 쌀은 다 내 외상이오.”

지삼득이 돋보기를 벗었다.

“내 배가 남포까지 한 사람 오만 원에 실어다 주겠소. 그러면 부장님 사흘도 맞추고 외상도 끝나오. 항해사가 여기 서명만 하시오.”

“여섯은 제 배 사람입니다. 남의 배로 안 보냅니다.”

“그럼 외상은?”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알아볼 게 없소. 배가 석 달에 한 번 올 때 이 섬을 먹여 살린 건 내 외상이오.”

그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그래서 유단은 대꾸를 못 하고 가게를 나왔다.

*

계산대의 여자가 뒤따라 나왔다. 부두로 내려가는 길을 같이 걸었다. 여자는 자기 이름이 소하라고 했고, 지삼득의 딸이라고 했다.

“아버지 말 너무 담아 두지 마세요. 틀린 말은 아닌데, 맞는 말만 골라서 하시는 분이라서요.”

“그게 제일 어렵습니다.”

“항해사님은 왜 가세요?”

유단은 대답을 준비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라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일이 있어서라고 하기에는 정확하지 않았다.

“가야 되니까요.”

소하가 걸음을 늦췄다.

“그건 이유가 아니잖아요.”

유단은 그 자리에 발을 멈췄다. 부두가 보였고, 그 끝에 동진 3호가 있었다. 열이틀 동안 매일 본 배가 오늘 처음으로 작아 보였다.

“섬에서 한 번도 안 주무셨죠?”

“그것도 이 섬이 좁아서 아시는 겁니까?”

“아뇨, 그건 제가 봤어요. 저녁마다 열한 시에 발전기가 꺼지면 섬이 까매지잖아요. 그런데 부두 끝에 불이 하나 남아요. 그게 항해사님 방이더라고요.”

소하가 치마에 묻은 쌀겨를 털었다. 유단은 할 말을 찾다가, 배에는 배 발전기가 따로 있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아서 그 말을 했다. 소하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니까요. 다들 섬 불이 꺼지면 자는데, 항해사님만 자기 불을 켜 놓고 기다리시잖아요.”

“뭘 기다린다는 겁니까?”

“그건 항해사님이 아시겠죠.”

*

저녁에 선장은 갑판 난간에 기대 있었다. 섬 쪽 집집마다 발전기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셋 다 봤나.”

“셋 다 잘 지냅니다.”

“자네는.”

유단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열이틀 동안 그는 매일 배로 돌아왔다. 밥도 배에서 먹었고, 잠도 배에서 잤다. 그게 성실한 거라고 여겼는데, 오늘 언덕에서 오가 물었을 때 처음으로 다르게 보였다. 그는 무서워서 섬에서 안 잤다.

“선장님은 여기 오신 적 있으십니까?”

“두 번 왔지. 첫 번째에 여섯이 남았어. 두 번째엔 넷.”

유단은 셈해 봤다. 여섯, 넷, 그리고 이번에 또 여섯이었으니 줄지 않았다.

“선장님은 왜 안 남으셨습니까?”

선장이 처음으로 유단을 똑바로 봤다.

“내가 남으면 배가 여기 묶이잖아.”

선장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가, 불을 붙이지 않은 채 한참 들고 있다가, 도로 넣었다. 유단은 그 손을 오래 봤다. 이유가 있는 사람은 남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단은 아직 자기 이유를 몰랐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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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지오작가2026.10.09· 1화

    작가 서지오입니다. 배가 고장 나 묶인 섬에서 아홉 명 가운데 여섯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1화의 열이틀째를 읽고, 여러분이라면 그 섬에 남으셨을지 듣고 싶습니다.

  • 한화만더2026.05.25· 1화

    이 작가님 다른 작품도 찾아 읽는 중입니다.

    • 서지오작가2026.05.26

      설정을 앞세우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그렇게 봐 주셔서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