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343자)

심리

싱글대디와 어린이집 선생님 · 탁은담

6월 24일 아침 일곱 시⁠, 표다엘의 식탁 위에 김밥이 세 줄 놓여 있었다⁠. 외할머니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말았다⁠. 김밥 은박지마다 매직으로 날짜가 쓰여 있었다⁠. 「⁠6/24⁠」

“⁠엄마⁠, 법원에 김밥을 왜 싸⁠.⁠”

“⁠법원 가면 배고파⁠. 배고프면 다 똑같은 말 한다더라⁠.⁠”

“⁠누가 그래⁠.⁠”

“⁠교회 권사님 아들이 법원 경비야⁠.⁠”

다엘은 김밥 한 줄을 가방에 넣었다⁠. 솔찬은 식탁 의자에 앉아 공룡 칫솔을 입에 문 채 김밥 꼬투리를 쳐다보았다⁠. 다엘이 꼬투리 하나를 솔찬 입에 넣어 주고 노래를 불렀다⁠. 양치 노래 두 곡 가운데 두 번째 곡이었다⁠. 솔찬이 김밥을 씹으며 노래를 따라 했다⁠. 입 안의 김밥 때문에 가사가 다 뭉개졌다⁠.

외할머니가 앞치마를 벗고 다엘을 보았다⁠.

“⁠나도 갈 거야⁠.⁠”

“⁠엄마는 당사자 아니야⁠.⁠”

“⁠방청석은 아무나 앉는다더라⁠. 이것도 권사님 아들이 그랬어⁠.⁠”

다엘은 말리지 않았다⁠. 말려서 멈출 어머니였으면 단톡방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외할머니는 이날 아침 보라색 누빔 조끼를 입지 않았다⁠. 옷장에서 가장 얌전한 회색 카디건을 꺼내 입었다⁠.

*

오전 열한 시⁠, 법원 고양지원 심리실은 생각보다 작았다⁠. 판사석이 조금 높았고⁠, 판사석 아래에 해준과 다엘이 나란히 앉는 긴 책상이 있었다⁠. 해준의 변호사가 해준 옆에 앉았다⁠. 다엘 옆은 비어 있었다⁠. 다엘은 대리인 없이 나왔다⁠. 벽 쪽 의자에 석애리가 앉아 있었고⁠, 뒷줄 방청석에 외할머니와 마봉칠이 한 줄 건너 앉아 있었다⁠. 봉칠은 크롭 바람막이 대신 양복을 입었다⁠. 양복 소매가 짧아 손목이 다 나왔다⁠.

판사는 쉰 살쯤 된 남자였다⁠. 판사는 가사조사 보고서를 넘기다가 열한 장째에서 멈췄다⁠.

“⁠상대방⁠, 보고서에 진술 신빙성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사 때 전 담임교사와 아무 사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같은 말씀이세요⁠?⁠”

해준은 일어났다⁠. 한 번에 일어났다⁠. 변호사가 해준의 조끼 자락을 당기려다 그만두었다⁠. 해준은 오늘 남색 조끼를 입지 않았다⁠. 회색 작업복 위에 셔츠를 입고 왔는데⁠, 목에 수건만은 두르고 오지 않았다⁠. 목이 허전했다⁠.

“⁠아니요⁠. 조사관님께 거짓말했습니다⁠.⁠”

판사가 펜을 내려놓았다⁠. 석애리는 표정이 바뀌지 않았다⁠.

“⁠아무 사이 아닌 게 아닙니다⁠. 저는 남궁기윤 씨를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해준은 이 문장을 넉 달 반 동안 입 안에 물고 있었다⁠. 꺼내고 보니 짧았다⁠. 이렇게 짧은 걸 왜 못 했는지 해준은 알 수 없었다⁠.

“⁠남궁기윤 씨는 이제 솔찬이 선생님이 아닙니다⁠. 제 말 때문에 그만둔 게 아니고⁠, 제가 말을 안 해서 그만뒀습니다⁠. 혼자 다 말하고 혼자 그만뒀어요⁠. 저는 그동안 바나나우유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방청석에서 봉칠이 고개를 끄덕였다⁠. 판사가 바나나우유라는 말에 잠깐 해준을 보았다가 다시 서류를 보았다⁠.

“⁠상대방⁠, 연애는 이 법정이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법정이 판단하는 건 그 연애가 아이의 밤에 무엇을 하느냐예요⁠.⁠”

“⁠밤에 애 옆에 안 갑니다⁠. 지난주 새벽 세 시에 애가 열이 났을 때도 주차장에서 두 시간 기다렸어요⁠. 저는 허리가 굳어서 운전을 못 했고⁠, 그 사람이 운전했어요⁠. 애 엄마 집 앞까지만⁠.⁠”

판사가 다엘을 보았다⁠.

“⁠청구인⁠, 사실입니까⁠?⁠”

다엘은 앉은 채로 대답하려다 일어섰다⁠. 다엘은 회의하듯 말하는 사람이었다⁠.

“⁠사실입니다⁠. 베란다에서 봤습니다⁠. 두 시간 동안 차에서 안 내렸습니다⁠. 제가 보리차 들고 내려갔을 때 처음 내렸어요⁠.⁠”

해준이 다엘을 보았다⁠. 다엘은 해준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판사님⁠, 저는 그래도 양육자 변경 청구를 접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거짓말을 고쳤다고 해서 제가 아침을 포기하는 건 아니에요⁠.⁠”

*

뒷줄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외할머니가 일어섰다⁠. 회색 카디건 단추를 한 번 만졌다⁠. 판사가 방청석을 보았다⁠.

“⁠어머님⁠, 방청석에서는 발언하실 수 없습니다⁠.⁠”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솔찬이 외할미입니다⁠.⁠”

판사가 펜 끝으로 서류를 두 번 두드렸다⁠. 석애리가 판사석 쪽으로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판사는 손바닥을 펴서 짧게 하라는 뜻을 보였다⁠.

“⁠학부모 단톡방에 사진 올린 거⁠, 법원 서류 올린 거⁠, 그거 제가 했습니다⁠. 우리 딸은 몰랐습니다⁠. 새벽 기도 가는 길에 사진 찍은 것도 저고요⁠. 하나님이 보여 주셨다고 했는데⁠, 그건 제 눈이 본 거지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게 아니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심리실이 조용했다⁠. 외할머니가 한 번 더 단추를 만졌다⁠.

“⁠그리고 하나 더⁠. 지난 수요일에 저녁 먹으러 애 아빠 집에 갔는데⁠, 애 아빠가 애 운동화 끈 매 주는 걸 봤어요⁠. 두 번 감더라고요⁠. 우리 딸은 토끼 귀를 만들어요⁠. 둘 다 안 풀려요⁠.⁠”

외할머니가 앉았다⁠. 봉칠이 한 줄 건너에서 휴지를 내밀었다⁠. 외할머니는 휴지를 받고⁠, 봉칠의 짧은 양복 소매를 보고⁠, 휴지를 다시 돌려주었다⁠. 봉칠이 돌려받은 휴지로 자기 코를 풀었다⁠.

판사가 헛기침을 했다⁠. 서류를 덮었다⁠.

“⁠두 분⁠, 조정위원 기록을 봤습니다⁠. 같은 말을 일곱 번 하셨다고요⁠. 오늘은 네 번밖에 안 하셨네요⁠. 나아지고 있습니다⁠.⁠”

판사가 벽 쪽 의자를 보았다⁠.

“⁠조사관님⁠, 보고서에 보충하실 게 있습니까⁠?⁠”

석애리가 일어나지 않고 대답했다⁠. 높낮이 없는 목소리였다⁠.

“⁠하나 있습니다⁠. 아동 면담 때 아이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보고서에는 사본을 붙였는데⁠, 제목을 적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붙인 제목이 있습니다⁠. 계단 세 칸이 있고⁠, 계단 위에 한 사람⁠, 계단 아래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유리문에 동그라미가 하나 있고요⁠. 누가 누군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제목을 이렇게 붙였습니다⁠. 일곱 시 십사 분⁠.⁠”

판사가 보고서 뒤쪽을 넘겨 그림 사본을 찾았다⁠. 해준은 그림을 보지 않았다⁠. 계단 아래의 두 사람이 누구인지 해준은 알 수 없었고⁠, 묻지 않기로 했다⁠. 다엘이 책상 아래에서 핸드백 손잡이를 꽉 쥐었다⁠.

판사가 날짜를 불렀다⁠. 일주일⁠. 두 사람이 함께 쓴 양육 계획서⁠. 아침과 저녁과 주말과 명절과 밤⁠. 한 사람씩 쓰지 말고 한 장에⁠.

“⁠계획서는 한 번만 쓰세요⁠. 일곱 번 쓰지 마시고⁠.⁠”

심리실을 나오자마자 해준은 복도 창가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받는 사람은 남궁기윤이었다⁠. 서약서는 기윤이 사직한 날 끝났다⁠. 서약서가 끝나고 해준이 기윤에게 보내는 첫 메시지였다⁠.

「⁠말했어요⁠. 판사님한테⁠. 당신한테는 직접 할게요⁠.⁠」

*

열두 시 이십오 분⁠, 남궁기윤은 공동육아나눔터 놀이방 매트 위에서 아이 넷의 점심 숟가락을 걷다가 앞치마 주머니의 진동을 느꼈다⁠. 주황색 앞치마였다⁠. 기윤은 숟가락 넷을 한 손에 쥔 채 휴대전화를 꺼냈다⁠. 해준의 이름이 화면에 떠 있었다⁠. 서약서를 쓴 날부터 기윤은 해준의 번호를 차단하지도 지우지도 않았고⁠, 한 번도 누르지 않았다⁠.

기윤은 메시지를 세 번 읽었다⁠. 판사님한테⁠. 당신한테는 직접⁠.

이유식 숟가락을 열한 번 던지던 아이의 아빠가 기윤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선생님⁠, 좋은 소식이에요⁠? 얼굴이 숟가락 안 던진 날 우리 애 같아요⁠.⁠”

“⁠그런 얼굴이 있어요⁠?⁠”

“⁠있어요⁠. 일 년에 두 번쯤⁠.⁠”

다른 아빠들이 웃었다⁠. 기윤은 숟가락을 싱크대에 넣고 답장을 썼다⁠. 기다렸어요⁠, 라고 썼다가 지웠다⁠. 넉 달 반이라는 말을 넣었다가 지웠다⁠. 기다리는 거 잘한다고 한 사람이 기다렸다고 쓰면 억울한 말이 되었다⁠. 결국 기윤은 세 글자만 보냈다⁠.

「⁠어디서요⁠?⁠」

보내고 나서 휴대전화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가 무거웠다⁠. 오후 내내 기윤은 나눔터 미닫이문이 열릴 때마다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기윤은 그것도 대답으로 받았다⁠. 직접 하겠다는 사람은 화면으로 장소를 말하지 않았다⁠.

*

열두 시 반⁠, 법원 복도의 의자는 이번에도 둘씩 붙어 있었다⁠. 해준과 다엘은 의자 두 개를 차지하고 무릎 사이에 빈 달력 양식을 펼쳤다⁠. 해준의 변호사는 자판기 앞에서 외할머니가 싸 온 김밥을 받아먹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변호사에게 이 김밥은 상대편 김밥이라고 했고⁠, 변호사는 김밥에는 편이 없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김밥 한 줄을 더 건넸다⁠.

다엘이 볼펜을 들었다⁠.

“⁠수요일 저녁 수영⁠. 그건 내가 데려갈게⁠. 너 수요일 늦게 끝나잖아⁠.⁠”

“⁠수요일은 여섯 시 퇴근이야⁠.⁠”

“⁠수영은 다섯 시 반이야⁠.⁠”

“⁠그럼 수영을 바꿔⁠.⁠”

“⁠애가 수영 선생님을 좋아해⁠.⁠”

“⁠애는 모든 선생님을 좋아해⁠.⁠”

다엘이 볼펜으로 수요일 칸에 「⁠수영 — 엄마⁠」라고 썼다⁠. 해준이 옆 줄에 작게 「⁠저녁밥 — 아빠⁠」를 썼다⁠. 토요일은 다엘⁠, 일요일은 해준⁠. 생일은 아침을 다엘이⁠, 저녁을 해준이⁠. 추석은 해마다 번갈아⁠. 크리스마스에서 다엘의 볼펜이 멈췄다⁠.

“⁠크리스마스는 나 줘⁠. 삼 년 동안 화면으로 봤어⁠. 시애틀 크리스마스이브 밤이 여기 크리스마스 오후야⁠. 나는 늘 밤에 혼자 트리 앞에서 너네 오후를 봤어⁠.⁠”

“⁠가져⁠.⁠”

“⁠진짜⁠?⁠”

“⁠너 크리스마스 줄 테니까 어린이날은 나 줘⁠.⁠”

“⁠어린이날 지났잖아⁠.⁠”

“⁠내년 거⁠.⁠”

다엘이 웃었다⁠. 둘 다 웃었다⁠. 복도 끝에서 석애리가 서류를 들고 지나가다가 둘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달력이 거의 다 찼다⁠. 아침 칸은 다엘이 다 채웠다⁠. 저녁 칸은 해준이 다 채웠다⁠. 남은 것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과 다음 날 아침 사이의 칸이었다⁠. 밤이었다⁠.

“⁠주중 밤은 우리 집⁠.⁠”

다엘이 먼저 말했다⁠.

“⁠너 일곱 시 십사 분에 데려가서 저녁 먹이고⁠, 여덟 시 반에 우리 집에 데려다줘⁠.⁠”

“⁠그럼 걔는 자기 전에 차를 타⁠. 걔는 차에서 자⁠. 너희 집 도착하면 잠이 깨서 열 시까지 안 자⁠.⁠”

“⁠그럼 저녁도 우리 집에서 먹이면 돼⁠.⁠”

“⁠그럼 나는 뭐 해⁠. 일곱 시 십사 분에 데려가서 십오 분 만에 너한테 넘겨⁠?⁠”

“⁠차에서 자는 거면⁠, 트럭 사진이잖아⁠.⁠”

다엘의 말에 해준이 입을 다물었다⁠. 트럭 사진은 둘 사이에 처음부터 있었다⁠. 1월 16일 새벽 한 시 십이 분⁠.

“⁠주중 밤은 우리 집이야⁠, 다엘아⁠. 걔 방이 거기 있어⁠. 공룡 일곱 마리가 머리맡에 있어⁠.⁠”

“⁠우리 집에도 공룡 벽지 있어⁠. 공룡 열여덟 마리 이사 왔어⁠.⁠”

둘은 동시에 볼펜을 내려놓았다⁠. 밤 칸에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복도 창밖으로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법원 직원들이 지나갔다⁠. 해준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한 번 떨었다⁠. 해준은 꺼내 보고⁠, 세 글자를 읽고⁠, 답장하지 않고 도로 넣었다⁠.

다엘이 달력 양식을 반으로 접었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칸이 접힌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는 못 정하겠다⁠.⁠”

“⁠어디서 정해⁠.⁠”

“⁠애가 기다리는 데서⁠.⁠”

해준이 다엘을 보았다⁠. 다엘은 핸드백을 들고 일어섰다⁠.

“⁠애한테 고르라고 하자는 거 아니야⁠. 조사관님이 그건 절대 하지 말랬어⁠. 애가 유리문에 이마 대고 있는 거 보면서 우리가 정하자는 거야⁠. 서류 말고⁠, 그 앞에서⁠.⁠”

“⁠일곱 시 십사 분⁠?⁠”

“⁠내일 일곱 시 십사 분⁠. 현관에서 보자⁠. 나 일 분 일찍 안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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