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352자)

새벽 세 시

싱글대디와 어린이집 선생님 · 탁은담

6월 10일 목요일 오후 다섯 시⁠, 남궁기윤은 고양시 덕양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실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이력서는 원장의 책상 위에 덮인 채로 있었다⁠. 원장은 이력서를 넘겨 보지도 않고 경력이 좋으시다고 했고⁠, 지금은 자리가 없다고 했다⁠. 기윤은 두 문장 사이에 숨이 몇 번 쉬어졌는지 알았다⁠. 한 번이었다⁠. 결정은 기윤이 들어오기 전에 나 있었다⁠.

어린이집 정문을 나서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미금이었다⁠.

“⁠통과했어요⁠. 재심사⁠.⁠”

“⁠원장님⁠…⁠”

“⁠선생님 덕분이라는 말은 안 할게⁠. 선생님 때문이라는 말도 안 할게⁠. 둘 다 반만 맞아⁠.⁠”

전화기 너머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 연장반이었다⁠. 원장은 연장반 아이들 사이에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심사위원이 반대표 엄마들 의견서를 읽었대요⁠. 원장이 연장반 직접 하는 거 몇 달이나 버티겠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무릎 보여 줬어요⁠. 세 번 만에 일어나는 거⁠.⁠”

기윤은 길 한복판에서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돌아보았다⁠.

“⁠그리고 선생님⁠, 행신동 공동육아나눔터 알죠⁠? 시에서 하는 거⁠. 동네 엄마 아빠들이 애 데리고 와서 같이 노는 데⁠. 거기 돌봄 선생님 자리가 하나 났어요⁠. 시간제예요⁠. 월급은 반이고⁠. 내가 거기 센터장한테 전화했어요⁠. 그 센터장은 원장들 단톡방에 없어요⁠. 단톡방 싫어하는 사람이야⁠.⁠”

“⁠원장님⁠, 왜⁠…⁠”

“⁠면접 때 선생님이 그랬잖아⁠. 마지막 아이가 마지막 어른 손에 넘어가는 걸 보고 싶다고⁠. 나눔터는 마지막 아이가 없어요⁠. 다 엄마 아빠가 옆에 있어⁠. 그거 한번 봐요⁠. 손에 넘어가는 거 말고 옆에 있는 거⁠.⁠”

*

6월 11일 금요일 오전 열 시⁠, 기윤은 행신동 공동육아나눔터 놀이방 매트 위에서 아빠 넷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엄마들은 오후에 왔고⁠, 오전에는 아빠들이 왔다⁠. 넷 다 육아휴직 중이었다⁠. 나눔터 게시판에 시에서 붙인 포스터가 있었다⁠. 「⁠아빠 육아휴직 역대 최고 — 아빠도 나눔터로 오세요⁠」 기윤은 볕뜰 현관 모니터에서 같은 문구를 본 적이 있었다⁠. 저는 휴직하면 그냥 휴예요⁠, 직이 없어요⁠. 현관 계단에서 웃으며 그렇게 말한 사람은 지금 물류센터 이층에서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이제는 휴직할 회사가 있었고⁠, 휴직하면 데리고 있을 아이가 수요일 저녁에만 있었다⁠.

아빠 하나가 이유식 숟가락을 든 채 물었다⁠.

“⁠선생님⁠, 애가 숟가락을 던져요⁠. 던지면 주워 줘요⁠, 말아요⁠?⁠”

“⁠몇 번째 던졌어요⁠?⁠”

“⁠오늘 열한 번째요⁠.⁠”

“⁠그럼 열두 번째는 안 주워 주셔도 돼요⁠. 대신 아버님 숟가락을 하나 더 드세요⁠. 애는 아빠가 숟가락 들고 있는 걸 보는 거예요⁠.⁠”

아빠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휴대전화에 받아 적었다⁠. 다른 하나가 기윤의 앞치마를 보며 물었다⁠. 나눔터 앞치마는 주황색이었다⁠.

“⁠선생님 원래 어린이집 계셨죠⁠? 왜 그만두셨어요⁠?⁠”

기윤은 대답을 고르다가 숟가락을 하나 집어 아이 앞에서 들어 보였다⁠. 아이가 숟가락을 던지려다 멈추고 기윤의 숟가락을 보았다⁠.

“⁠현관이 좀 좁아서요⁠. 여기는 현관이 넓네요⁠.⁠”

나눔터 현관은 미닫이문이었고⁠, 신발장이 두 개였고⁠, 아이와 어른의 신발이 섞여 놓여 있었다⁠. 마지막 아이를 마지막 어른 손에 넘기는 일은 없었다⁠. 아이들은 어른 손을 잡고 들어와서 어른 손을 잡고 나갔다⁠. 기윤은 오후 내내 미닫이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

6월 12일 토요일 오후⁠, 고해준은 빌라 거실에서 혼자 빨래를 갰다⁠. 솔찬의 옷은 수요일 저녁에 한 벌씩 생겼다가 목요일 아침이면 다엘의 집으로 돌아갔다⁠. 해준은 솔찬의 양말 두 짝을 오래 개었다⁠. 두 번 접고⁠, 펴고⁠, 다시 접었다⁠.

마봉칠이 치킨 상자를 들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법원 사람 오기 전날 청소하라고 알려 준 비밀번호를 봉칠은 잊지 않았다⁠.

“⁠형님⁠, 벨은 누르고 들어와요⁠.⁠”

“⁠치킨 가져온 사람이 벨 누르면 치킨이 식어⁠. 오늘 토요일이잖아⁠. 솔찬이 엄마 집 갔지⁠? 너 혼자 이 집에 있으면 바나나우유 통이랑 대화하잖아⁠.⁠”

봉칠은 치킨 상자를 식탁에 펼치고 다리 하나를 해준에게 주었다⁠. 단백질이라고 했다⁠. 해준은 웃으며 받았다⁠.

“⁠물류센터는 어때⁠?⁠”

“⁠스물아홉 살 팀장이 저보고 영서른여덟이래요⁠.⁠”

“⁠그거 칭찬이야⁠?⁠”

“⁠그냥 피곤해 보인대요⁠.⁠”

“⁠맞는 말이네⁠.⁠”

봉칠은 닭다리를 다 먹고 손가락을 휴지로 닦았다⁠. 휴지를 접어 상자 안에 넣고⁠, 해준을 보지 않고 말했다⁠.

“⁠해준아⁠. 너 오늘 밤에 그 선생님 집 가라⁠.⁠”

“⁠형님⁠.⁠”

“⁠바나나우유 열여섯 통 뒤에 숨는 거 이제 그만해⁠. 나는 전처가 영포티라고 했을 때 집에 안 들어갔어⁠. 집에 좀 있으라는 말을 욕으로 들었어⁠. 너는 들은 말 있잖아⁠. 기다리는 거 잘한대며⁠. 그 사람 기다리는 거 잘한다고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건데⁠.⁠”

해준은 닭다리를 내려놓았다⁠. 봉칠이 기윤의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묻지 않았다⁠. 동네가 단톡방보다 빨랐다⁠. 봉칠은 일어나면서 치킨 상자 뚜껑에 매직으로 「⁠단백질⁠」이라고 써 놓고⁠,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으며 한 번 더 돌아보았다⁠.

*

밤 아홉 시⁠, 기윤의 원룸 냄비에서 라면 두 개가 끓었다⁠. 해준은 원룸에 들어와서 앉을 데를 몰라 냄비 앞에 서 있었다⁠. 원룸에는 의자가 하나였고⁠, 침대가 하나였고⁠, 책상 위에 그림책이 서른 권쯤 쌓여 있었다⁠. 그림책 맨 위에 공룡이 알에서 나오는 책이 있었다⁠.

“⁠라면에 계란 넣어요⁠?⁠”

“⁠넣어요⁠. 두 개⁠.⁠”

“⁠한 사람에 하나씩요⁠?⁠”

“⁠한 사람에 두 개씩요⁠. 나 오늘 단백질 먹으라고 들었어요⁠.⁠”

기윤이 계란 네 개를 깨 넣었다⁠. 둘은 책상 하나에 냄비를 놓고 의자 하나와 침대 끝에 나누어 앉아 라면을 먹었다⁠. 해준이 침대 끝에 앉았다⁠. 허리가 울렸고⁠, 기윤이 말없이 등 뒤에 베개를 받쳐 주었다⁠. 국물이 끝날 때쯤 해준이 말했다⁠.

“⁠나눔터 간다면서요⁠.⁠”

“⁠원장님이 소개해 주셨어요⁠. 거기는 마지막 아이가 없대요⁠.⁠”

“⁠원장님은 왜 그렇게까지 해요⁠?⁠”

“⁠원장님은 다정하게 자르고 다정하게 붙여요⁠. 둘 다 진심이에요⁠.⁠”

라면 냄비가 비었다⁠. 기윤이 냄비를 싱크대에 넣고 돌아섰다⁠. 원룸은 좁아서 돌아서면 바로 해준이 있었다⁠. 해준이 침대 끝에서 일어났다⁠. 한 번에 일어났다⁠. 시술하고 다섯 주 만이었다⁠.

기윤의 손바닥이 해준의 허리 보조대를 찾았다⁠. 오늘은 보조대가 없었다⁠. 손바닥이 흰 티셔츠 위에서 멈췄다⁠. 해준은 기윤의 안경을 벗겼다⁠. 은테가 손가락 사이에서 차가웠다⁠. 안경을 책상 위 그림책 더미 위에 올려 두는 동안⁠, 기윤의 숨이 해준의 목에 감긴 수건 끝을 흔들었다⁠. 해준은 수건을 풀었다⁠. 넉 달 반 동안 하원 현관에서 둘 사이에 있던 것은 가방 끈 한 뼘이었다⁠. 오늘 밤 원룸에는 끈이 없었다⁠.

창밖으로 마지막 버스가 지나갔다⁠. 둘 다 버스 소리를 세지 않았다⁠.

새벽 한 시⁠, 기윤은 해준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유리문에 이마를 대는 아이처럼⁠. 해준은 기윤의 밤색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솔찬에게 하던 손이었다⁠. 기윤이 해준의 손바닥 아래서 물었다⁠.

“⁠법원에서 뭐라고 할 거예요⁠?⁠”

해준의 손이 멈췄다⁠.

“⁠보고서 읽었어요⁠. 석 조사관님이 나한테도 보여 주진 않았는데⁠, 원장님이 물어보시더라고요⁠. 아버님이 아무 사이 아니라고 했다는데 맞느냐고⁠.⁠”

“⁠그건⁠…⁠”

“⁠괜찮아요⁠. 그날은 그게 맞았을 수도 있어요⁠. 나는 조사실에서 말했어요⁠. 당신은 아직 한 번도 안 했어요⁠. 법원에서도⁠, 나한테도⁠.⁠”

해준은 대답하려고 숨을 들이마셨다⁠. 원룸 책상 위에서 해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이 천장을 하얗게 비췄다⁠. 새벽 세 시 사 분이었다⁠. 화면에 다엘의 이름이 떠 있었다⁠.

*

“⁠애가 아빠 찾아⁠. 열이 삼십구 도야⁠.⁠”

다엘의 목소리 뒤로 솔찬의 울음이 들렸다⁠. 울음 사이사이 아빠⁠, 소리가 섞였다⁠. 다엘이 빠르게 말했다⁠. 해열제는 두 시에 먹였다⁠. 열이 안 내려간다⁠. 엄마는 교회 수련회에 갔다⁠. 다엘은 아침 일곱 시에 병원 국제 환자 이송이 잡혀 있었다⁠. 무엇보다 솔찬이 아빠를 찾았다⁠.

“⁠갈게⁠.⁠”

해준이 일어나다가 허리를 잡았다⁠. 한밤의 허리는 저녁의 허리와 달랐다⁠. 굳어 있었다⁠. 기윤이 이미 바지를 입고 있었다⁠.

“⁠운전 내가 할게요⁠. 당신 지금 핸들 못 돌려요⁠.⁠”

“⁠당신이 가면⁠…⁠”

“⁠주차장에 있을게요⁠. 애 옆에는 안 가요⁠.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릴게요⁠.⁠”

일산까지 새벽 도로는 비어 있었다⁠. 기윤은 해준의 낡은 승용차를 조심스럽게 몰았다⁠. 신호등이 노란불로 깜빡였다⁠. 해준은 조수석에서 앞을 보았다⁠. 조수석 아래 바닥에 솔찬이 떨어뜨린 초록 공룡 하나가 굴러다녔다⁠.

*

새벽 세 시 사십 분⁠, 해준이 십칠 층 현관문을 열자 다엘이 솔찬을 안고 서 있었다⁠. 솔찬의 볼이 빨갛고 뜨거웠다⁠. 솔찬은 해준을 보자 다엘의 품에서 몸을 비틀어 해준에게 팔을 뻗었다⁠. 해준은 허리를 생각하지 않고 받아 안았다⁠. 허리가 울렸다⁠. 해준은 울림을 무시했다⁠.

해준은 솔찬을 안고 아이 방 바닥에 앉았다⁠. 다엘이 미지근한 물수건을 가져왔다⁠. 둘은 솔찬의 이마와 겨드랑이와 발바닥을 번갈아 닦았다⁠. 결혼했을 때도 이렇게 했다⁠. 그때는 다엘이 닦고 해준이 물을 갈았다⁠. 오늘은 해준이 닦고 다엘이 물을 갈았다⁠.

네 시 반⁠, 체온계가 삼십팔 도를 가리켰다⁠. 솔찬은 해준의 팔을 베고 잠들었다⁠. 잠들기 직전에 눈을 반쯤 뜨고 말했다⁠. 아빠⁠, 엄마 집 밤은 길어⁠. 다엘이 물수건 대야를 든 채 멈췄다⁠.

부엌 식탁에서 다엘이 물을 따랐다⁠.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밤이 이렇게 길 줄 몰랐어⁠. 시애틀 밤 근무보다 길어⁠. 거기서는 밤이 끝나면 퇴근했는데⁠, 여기서는 밤이 끝나면 출근해⁠.⁠”

“⁠나도 몰랐어⁠. 처음엔⁠.⁠”

“⁠너는 삼 년 동안 혼자 했잖아⁠.⁠”

“⁠할머니가 소파에서 해 줬어⁠. 그리고 한 번은 선생님이 부엌 바닥에서 해 줬고⁠.⁠”

다엘이 컵을 내려놓았다⁠.

“⁠그 선생님 지금 어디 있어⁠?⁠”

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엘은 해준의 얼굴을 보다가 창밖을 보았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입구에 해준의 차가 들어가는 것을 다엘은 베란다에서 보았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이 해준이 아니었다는 것도⁠.

*

새벽 다섯 시⁠, 다엘은 지하 주차장 불빛 아래로 내려갔다⁠. 손에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있었다⁠. 해준의 낡은 승용차 운전석에 기윤이 앉아 있었다⁠. 기윤은 시동을 끄고 창문을 조금 내린 채⁠, 핸들 위에 팔을 얹고 엘리베이터 문을 보고 있었다⁠. 다엘을 보고 차에서 내렸다⁠.

“⁠어머님⁠. 애 옆에는 안 갔습니다⁠.⁠”

“⁠알아요⁠. 베란다에서 봤어요⁠. 두 시간 동안 차에서 안 내리셨어요⁠.⁠”

다엘이 종이컵 하나를 내밀었다⁠. 커피가 아니라 보리차였다⁠. 기윤은 받아 들고 마시지 않았다⁠.

“⁠열 내렸어요⁠. 삼십팔 도⁠. 그 사람 팔 베고 자요⁠.⁠”

“⁠다행입니다⁠.⁠”

다엘은 자기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주차장 환풍기가 웅웅 울렸다⁠. 다엘이 기윤을 똑바로 보았다⁠. 법원 처마 밑에서처럼⁠.

“⁠선생님⁠, 그 사람이랑 살 거예요⁠?⁠”

기윤은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다엘이 물컵을 감싸는 손과 같은 모양이었다⁠. 다엘도 그것을 보았다⁠.

“⁠그 사람이 말하면요⁠.⁠”

1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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