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5,317자)

현관

싱글대디와 어린이집 선생님 · 탁은담

6월 25일 금요일 저녁 여섯 시 오십 분⁠, 남궁기윤은 공동육아나눔터 미닫이문을 닫고 신발장 위의 출입 기록판을 정리했다⁠. 오늘 마지막 가족이 막 나갔다⁠. 아빠 하나가 아이를 업고⁠, 다른 손에 숟가락 넷이 든 지퍼백을 들고 나갔다⁠. 숟가락은 아이가 던질 몫까지 챙긴 것이었다⁠.

미닫이문이 다시 열렸다⁠. 기윤은 손님이 다시 온 줄 알고 돌아보았다⁠. 고해준이 문턱에 서 있었다⁠. 회색 작업복 위에 셔츠를 입었고⁠, 목에 수건이 없었다⁠. 해준은 수건 없는 목이 어색한지 자꾸 목덜미를 만졌다⁠.

“⁠직접 한다고 했잖아요⁠.⁠”

“⁠어디서 하는지는 안 알려 줬잖아요⁠.⁠”

“⁠알려 주면 당신이 미리 연습할 것 같아서요⁠. 나만 연습하려고⁠.⁠”

해준은 문턱을 넘지 않았다⁠. 나눔터 현관 바닥에 아이 운동화와 어른 운동화가 섞여 있던 자리가 비어 있었다⁠. 해준은 비어 있는 바닥을 보다가 기윤을 보았다⁠.

“⁠남궁기윤 씨⁠.⁠”

“⁠네⁠.⁠”

“⁠좋아해요⁠. 사랑해요⁠. 판사님한테 먼저 해서 미안해요⁠. 판사님이 더 무서워서 판사님한테 먼저 연습했어요⁠.⁠”

기윤은 웃음을 참으려다 실패했다⁠. 웃음이 터지고 안경이 콧등에서 미끄러졌다⁠. 해준이 손을 뻗어 안경을 밀어 올려 주었다⁠. 손가락이 안경테에 닿았고⁠, 은테가 저녁 볕에 따뜻했다⁠.

“⁠연습한 거치고는 짧네요⁠.⁠”

“⁠넉 달 반 동안 입에 물고 있었더니 닳았어요⁠.⁠”

“⁠나는 길게 들어도 돼요⁠. 기다리는 거 잘하니까⁠.⁠”

“⁠그러니까 이제 기다리지 마요⁠.⁠”

해준이 시계를 보았다⁠. 여섯 시 오십육 분이었다⁠.

“⁠같이 가요⁠. 일곱 시 십사 분⁠.⁠”

“⁠나 보호자 아니에요⁠. 볕뜰에 들어가면 또 민원이에요⁠.⁠”

“⁠안 들어가요⁠. 계단 아래요⁠. 계단 아래는 보호자 아니어도 서 있을 수 있잖아요⁠. 주차장보다 조금 가까워요⁠.⁠”

기윤은 주황색 앞치마를 벗어 신발장 위에 개어 두었다⁠. 출입 기록판의 마지막 칸에 자기 퇴근 시각을 썼다⁠. 여섯 시 오십칠 분⁠.

*

일곱 시 십삼 분⁠, 해준은 볕뜰어린이집 담장 옆에 차를 대고 시동을 껐다⁠. 기윤은 조수석에서 내려 담장 끝⁠, 계단 세 칸이 시작하는 자리보다 두 걸음 뒤에 섰다⁠. 거기서 더 다가오지 않았다⁠.

현관 유리문 안쪽에 노란 모자가 있었다⁠. 솔찬이 이마를 대고 있었다⁠. 이마 자국 옆으로 손바닥 하나가 붙었다가⁠, 계단 아래를 보고 손가락으로 하나씩 셌다⁠. 해준을 가리키고⁠, 기윤을 가리키고⁠,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가 아직 없었다⁠.

일곱 시 십사 분⁠, 다엘의 차가 골목으로 들어왔다⁠. 다엘은 일 분 일찍 오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면서 휴대전화 시계를 해준 쪽으로 들어 보였다⁠. 십사 분⁠. 그리고 담장 끝의 기윤을 보았다⁠. 다엘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기윤에게 고개를 숙였다⁠. 기윤도 고개를 숙였다⁠.

솔찬의 손가락이 세 번째 사람을 가리켰다⁠. 손바닥 둘이 유리에 납작하게 붙었다⁠.

해준과 다엘이 계단 맨 아래 칸 앞에 나란히 섰다⁠. 유리문 안에서 원장 엄미금이 문고리를 잡은 채 기다렸다⁠. 원장은 문을 열지 않았다⁠. 계단 아래 어른 둘이 무언가를 정하러 왔다는 것을 원장은 알았다⁠. 원장은 이십 년 동안 현관에서 그런 얼굴을 여러 번 보았다⁠.

다엘이 유리문을 보았다⁠. 솔찬의 이마가 유리에 동그랗게 눌려 있었다⁠. 다엘은 유리 아래쪽⁠, 아이 이마 높이에 겹겹이 남은 자국을 보았다⁠. 날마다 닦는데 저녁마다 다시 생기는 자국이었다⁠.

“⁠해준아⁠, 걔 우리 집에서 자기 전에 뭐라는지 알아⁠?⁠”

“⁠뭐라는데⁠.⁠”

“⁠내일 일곱 시 십사 분에 아빠 와⁠? 그러고 자⁠. 우리 집에서 자면서 너희 집 저녁을 기다려⁠.⁠”

다엘이 핸드백 손잡이를 놓았다⁠. 손바닥이 빨갰다⁠.

“⁠밤은 너 해⁠.⁠”

해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엘이 말을 짧게 끊지 않고 이어 갔다⁠.

“⁠대신 아침은 나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곱 시 반에 너희 빌라 앞으로 갈게⁠. 내가 데리고 나와서 아침 먹이고⁠, 양치 노래 두 곡 부르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해⁠. 아침밥은 우리 엄마 김밥이야⁠. 날짜 써서⁠.⁠”

“⁠일곱 시 반에 우리 빌라 앞이면 너 출근 늦어⁠.⁠”

“⁠병원에 말했어⁠. 국제진료센터는 아홉 시 반 출근 조가 있어⁠. 월급은 조금 줄어⁠.⁠”

“⁠얼마나⁠?⁠”

“⁠네 바나나우유 한 달 치만큼⁠.⁠”

해준이 웃었다⁠. 다엘은 웃지 않고 하나를 더 보탰다⁠.

“⁠그리고 저 선생님이랑 같이 사는 건⁠, 일 년 뒤에⁠. 솔찬이한테 천천히⁠. 그건 내가 정할 일 아닌 거 아는데⁠, 솔찬이 엄마로서 부탁하는 거야⁠.⁠”

해준은 담장 끝을 돌아보았다⁠. 기윤이 두 걸음 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엘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현관 앞이 조용했다⁠.

“⁠알았어⁠. 그리고 다엘아⁠, 나도 하나만⁠.⁠”

“⁠말해⁠.⁠”

“⁠하원 동의서에 저 사람 이름 올려도 돼⁠? 내가 허리 또 나가면⁠, 네가 아침에 병원 가 있으면⁠.⁠”

다엘은 유리문 안쪽의 솔찬을 보았다⁠. 솔찬이 세 사람을 차례로 가리키는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응⁠. 대신 나도 올라가 있어⁠. 맨 위에⁠.⁠”

“⁠맨 위는 나야⁠.⁠”

“⁠그럼 둘째⁠.⁠”

“⁠둘째는 할머니야⁠. 아랫집⁠.⁠”

“⁠그럼 셋째 넷째는 알아서 해⁠. 나는 일곱 시 반만 있으면 돼⁠.⁠”

*

원장이 문을 열었다⁠. 원장은 연두색 앞치마를 입고 있었고⁠,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있었다⁠. 6월 세 번째 주에 새 연장보육 교사가 왔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원장은 일곱 시 반 칸에서 이름을 지울 수 있었다⁠.

“⁠두 분 다 오셨네⁠. 오늘의 한 줄은 내가 몰라요⁠. 나는 그런 거 못 해⁠. 나는 알림장만 써⁠.⁠”

솔찬이 노란 가방을 메고 계단 맨 위에 섰다⁠. 운동화 끈을 풀기 전에 손을 들었다⁠.

“⁠오늘의 한 줄은 내가 할래⁠.⁠”

어른 넷이 솔찬을 보았다⁠. 계단 아래의 둘과 문턱의 하나와 담장 끝의 하나⁠. 솔찬은 넷을 다 보고 나서 진지하게 말했다⁠.

“⁠오늘 점심에 브로콜리 먹었어⁠. 숲이 생겼어⁠.⁠”

해준이 웃다가 허리를 짚었고⁠, 다엘이 웃다가 눈가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원장은 알림장에 적어야겠다며 수첩을 꺼냈다⁠. 담장 끝에서 기윤이 안경을 벗었다⁠. 브로콜리를 먹으면 배 속에 숲이 생긴다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4월이었다⁠. 4월의 솔찬은 숲이 소중해서 먹지 않았다⁠.

솔찬이 운동화 끈을 풀어 해준 앞에 발을 내밀었다⁠. 해준이 무릎을 꿇었다⁠. 매듭을 한 번 감고⁠, 한 번 더 감았다⁠. 다엘이 옆에서 토끼 귀로 해야 한다며 투덜거렸고⁠, 솔찬은 둘 다 안 풀린다고 판결했다⁠.

*

7월 1일 오전⁠, 법원 고양지원 조정실에서 조정위원이 손뜨개 가방을 내려놓았다⁠. 해준과 다엘이 함께 쓴 양육 계획서는 한 장이었다⁠. 밤 칸에 해준의 글씨가⁠, 아침 칸에 다엘의 글씨가 들어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다엘⁠, 내년 어린이날은 해준⁠. 조정위원은 계획서를 끝까지 읽고 사탕 통을 열었다⁠.

“⁠한 번에 쓰셨네요⁠. 같은 말 안 하시고⁠.⁠”

“⁠딱 한 번 했어요⁠. 둘이 동시에 밤은요⁠, 라고⁠.⁠”

다엘이 대답했다⁠. 조정위원이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다엘은 청구를 조정으로 돌렸고⁠, 조정은 바로 성립했다⁠. 주 양육자는 아버지⁠, 아침 등원과 주말 하루는 어머니⁠. 다엘은 사탕을 입에 넣고 나서 조정실 창밖을 보았다⁠. 창밖에 호수공원은 보이지 않았다⁠. 창은 행신동을 향해 있었다⁠.

*

7월 3일 토요일 오전⁠, 마봉칠은 일산 아파트 십칠 층 복도에 상자 열여덟 개를 줄 세웠다⁠. 상자마다 공룡이 한 마리씩 들어 있었다⁠. 솔찬이 공룡은 한 상자에 한 마리씩 타야 멀미를 안 한다고 했고⁠, 봉칠은 대리점에서 남는 상자를 열여덟 개 가져왔다⁠. 상자마다 송장도 붙였다⁠. 받는 사람 고솔찬⁠, 요청 사항 「⁠공룡은 세워서 배송⁠」

“⁠형님⁠, 송장은 왜 붙여요⁠.⁠”

“⁠배송은 송장이 있어야 배송이지⁠. 송장 없으면 그냥 이사야⁠.⁠”

“⁠이거 그냥 이사예요⁠.⁠”

“⁠그러니까 배송으로 해 주는 거야⁠. 내 성의야⁠.⁠”

다엘이 아이 방 문 앞에서 웃음을 참았다⁠. 공룡 벽지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토요일 밤마다 솔찬이 자러 올 방이었다⁠. 침대 가드도⁠, 그림책 순서도 그대로였다⁠. 공룡만 열여덟 마리에서 열한 마리로 줄었다⁠. 일곱 마리는 엄마 집에 남겠다고 솔찬이 정했다⁠. 엄마 집 공룡도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외할머니가 부엌에서 은박지 뭉치를 들고 나왔다⁠. 김밥 다섯 줄이었다⁠. 은박지마다 매직으로 날짜가 쓰여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고 서방⁠, 이거 냉동실에 넣어 놓지 마⁠. 다엘이 아침마다 들고 갈 거야⁠. 이건 견본이야⁠.⁠”

“⁠어머니⁠, 저 이제 서방 아니에요⁠.⁠”

“⁠그럼 뭐라고 불러⁠.⁠”

외할머니가 해준을 오래 올려다보았다⁠. 보라색 누빔 조끼도 회색 카디건도 아닌 앞치마 차림이었다⁠. 앞치마 주머니에 휴대전화가 꽂혀 있었는데⁠, 화면 글씨가 이제 반만 컸다⁠.

“⁠고 아빠⁠. 고 아빠라고 할게⁠. 그건 안 바뀌잖아⁠.⁠”

해준은 김밥 다섯 줄을 받아 들었다⁠. 은박지가 아직 따뜻했다⁠. 봉칠이 상자 열여덟 개 가운데 열한 개를 승강기에 싣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해준에게 화면을 들이밀었다⁠. 대리점 홍보 영상 조회수가 구백을 넘었다⁠. 영포티 챌린지였다⁠.

“⁠소장님이 나보고 대리점 얼굴 하래⁠. 영포티가 얼굴이야⁠, 이제⁠.⁠”

“⁠형님⁠, 댓글 봤어요⁠?⁠”

“⁠안 봐⁠. 댓글은 영포티한테 안 좋아⁠.⁠”

*

7월 5일 월요일 저녁 일곱 시 십사 분⁠, 볕뜰어린이집 현관 유리문 안쪽에 노란 모자가 있었다⁠. 솔찬이 이마를 대고 있었다⁠. 계단 아래에서 해준이 손을 흔들었고⁠, 해준의 한 걸음 뒤에서 기윤이 손을 흔들었다⁠. 유리에 작은 손바닥 둘이 납작하게 붙었다⁠.

먼저 아이를 데리고 나오던 추아란이 계단 옆에서 두 사람을 보고 반대표 수첩을 흔들었다⁠. 남편이 복직해서 아란은 이제 일곱 시에 예찬이를 데리러 왔다⁠. 가을에 임기가 끝나면 단톡방을 나가겠다고 아란은 지난주에 남편에게만 말했다⁠. 남편은 오리 이모티콘으로 대답했다⁠.

문을 연 사람은 새 연장보육 교사였다⁠. 스물여섯 살이었고 손이 빨랐다⁠. 새 교사는 노란 가방 끈을 한 번 접어 쥐고 있었다⁠. 원장이 첫날 가르쳐 준 것이었다⁠. 남궁 선생님은 이렇게 했대요⁠.

해준이 계단 맨 아래 칸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새 교사가 접힌 끈을 내밀었고⁠, 해준이 끈 아래쪽을 잡았다⁠. 솔찬이 운동화 끈을 풀어 발을 내밀었다⁠. 해준은 가방을 어깨 뒤로 넘겼다⁠. 등 뒤에 서 있던 기윤이 가방 끈을 받았다⁠. 기윤의 손가락이 끈 위에서 해준의 손가락을 지나갔다⁠. 솔찬은 발만 보고 있었다⁠. 매듭이 한 번 감기고⁠, 한 번 더 감겼다⁠.

계단 위 유리문이 천천히 닫혔다⁠. 아이 이마 높이에 동그란 자국이 하나 남아 있었다⁠. 저녁 볕이 자국을 통과해 현관 바닥에 작고 둥근 빛을 떨어뜨렸다⁠. 해준이 솔찬을 안아 올렸다⁠. 오른손으로 안았다⁠. 담장 옆 주차 칸 하나가 비어 있었다⁠. 저녁마다 다엘의 차가 서던 자리였고⁠, 다엘은 내일 아침 일곱 시 반에 빌라 공동 현관 앞에서 날짜 쓴 김밥 은박지를 들고 기다리기로 했다⁠. 기윤이 노란 가방을 한 손에 들고⁠, 끈을 한 번 접어 쥐고⁠, 두 사람 옆에서 주차장까지 걸었다⁠. 가방이 기윤의 무릎께에서 흔들렸고⁠, 흔들릴 때마다 가방 고리에 매달린 초록 공룡이 기윤의 손등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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