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60자)

대기실

싱글대디와 어린이집 선생님 · 탁은담

5월 6일 저녁 일곱 시 십삼 분⁠, 표다엘은 볕뜰어린이집 현관 계단 앞에서 우산을 접었다⁠. 일 분 일찍 왔다⁠. 해준은 전화로 일곱 시 십사 분이라고 두 번 말했고⁠, 다엘은 일 분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계단 아래에서 휴대전화 시계를 보았다⁠. 십삼 분이 십사 분이 되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유리문 안쪽에 노란 모자가 있었다⁠. 솔찬이 이마를 대고 있었다⁠. 이마 자국 옆으로 손바닥 둘이 붙으려다 멈추었다⁠. 솔찬은 계단 아래에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있는 것을 보고 입을 벌렸다⁠. 다엘은 손을 흔들었다⁠. 해준이 흔드는 것처럼 흔들려고 했는데⁠, 손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몰라서 병원에서 환자 가족을 배웅하듯 흔들었다⁠.

문을 연 사람은 남궁기윤이었다⁠. 보조교사는 아이가 열이 나서 다섯 시에 먼저 퇴근했고⁠, 원장은 시청 회의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일곱 시 반까지 어린이집에 남은 어른은 기윤 하나였다⁠. 기윤은 젖은 노란 우산을 신발장 옆에 세워 두었다⁠. 앞치마 가슴에서 노란 이름표가 흔들렸다⁠.

“⁠어머님⁠, 오셨어요⁠. 아버님 전화 받았습니다⁠.⁠”

“⁠조사실에서 뵈었는데 또 뵙네요⁠.⁠”

“⁠오늘은 길이 다 한군데로 나 있네요⁠.⁠”

솔찬이 다엘에게 달려오다가 계단 맨 위에서 멈추고 돌아섰다⁠. 기윤의 앞치마 자락을 잡아당겼다⁠.

“⁠선생님⁠, 엄마는 처음이야⁠. 오늘의 한 줄 알려 줘야 돼⁠.⁠”

기윤은 솔찬을 내려다보았다가 다엘을 보았다⁠. 서약서에는 하루 이야기만 하라고 쓰여 있었다⁠. 오늘의 한 줄은 하루 이야기였다⁠. 기윤은 무릎을 굽혀 솔찬과 눈높이를 맞추고⁠, 다엘에게 말했다⁠.

“⁠어머님⁠, 오늘의 한 줄 들으실래요⁠?⁠”

“⁠그게 뭔데요⁠?⁠”

“⁠솔찬이가 오늘 한 말 중에 하나요⁠. 아버님은 넉 달 동안 하나도 안 빼고 들으셨어요⁠.⁠”

다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나서야 무엇을 끄덕였는지 알았다⁠.

“⁠오늘은 비가 하늘이 세수하는 거래요⁠. 근데 하늘이 세수를 너무 오래 해서 엄마한테 혼날 거래요⁠.⁠”

다엘이 웃었다⁠. 짧게 끊기지 않는 웃음이었다⁠. 솔찬이 다엘의 웃음을 보고 자기도 웃었다⁠. 그리고 계단에 앉아 운동화 끈을 풀더니 발을 내밀었다⁠.

다엘은 계단 맨 아래 칸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정장 치마 위로 빗물이 스몄다⁠. 끈을 감았다⁠. 한 번 감고⁠, 두 번째 고리를 만들다가 놓쳤다⁠.

“⁠엄마⁠, 아빠는 토끼 귀 먼저 만들어⁠.⁠”

“⁠토끼 귀⁠?⁠”

“⁠고리가 토끼 귀야⁠. 토끼 귀 두 개 만들고 뽀뽀시키는 거야⁠.⁠”

다엘은 토끼 귀 두 개를 만들고 뽀뽀를 시켰다⁠. 매듭은 비뚤었지만 풀리지 않았다⁠. 기윤이 문턱에서 노란 가방 끈을 한 번 접어 내밀었다⁠. 다엘은 접힌 끈을 받으며 접힌 자리를 보았다⁠. 해준이 넉 달 동안 받아 온 것이 접힌 끈이었다는 것을 다엘은 그제야 알았다⁠.

“⁠아빠는⁠?⁠”

“⁠아빠 허리가 오늘 쉬는 날이야⁠.⁠”

“⁠허리도 쉬어⁠?⁠”

“⁠쉬어야 돼⁠. 너무 오래 일했어⁠.⁠”

*

일곱 시 사십 분⁠, 남궁기윤이 연장반 불을 끄고 나오는데 원장 엄미금이 젖은 우산을 접으며 현관에 들어섰다⁠. 시청 회의에서 곧장 온 길이었다⁠. 원장의 구두 앞코가 빗물에 검게 젖어 있었다⁠. 기윤은 가방에서 흰 봉투를 꺼내 원장 앞에 내밀었다⁠.

“⁠면담 다녀왔습니다⁠. 거짓말은 안 했습니다⁠.⁠”

원장은 봉투를 받았다⁠. 받고 나서 열지 않았다⁠. 원장실까지 걸어가 서랍을 열고⁠, 봉투를 서랍 맨 아래에 눕혔다⁠.

“⁠시청에서 뭐라던지 알아요⁠? 심사위원 한 분이 그러대⁠. 논란 교사 거취를 정리하면 다른 건 다 괜찮다고⁠. 다른 건 다 괜찮대요⁠. 급식도⁠, 안전 점검표도⁠, 석 달 치 다 써 간 거⁠.⁠”

“⁠정리하시면 되잖아요⁠.⁠”

“⁠정리가 사람한테 쓰는 말이에요⁠? 서랍한테 쓰는 말이지⁠.⁠”

원장은 서랍을 닫고 서랍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서랍이 빗물 냄새를 품고 닫혔다⁠.

“⁠6월 10일까지만 내 서랍에 있어요⁠. 그때까지 내가 다른 길 찾으면 선생님 이거 도로 가져가요⁠. 못 찾으면 그날 열어요⁠.⁠”

“⁠원장님⁠, 다른 길이 있어요⁠?⁠”

“⁠없으니까 찾는다고 하지⁠. 있으면 벌써 갔어요⁠.⁠”

기윤은 원장실 문을 나서다가 신발장 옆의 노란 우산을 집어 원장에게 돌려주었다⁠. 원장은 우산을 받지 않았다⁠. 내일도 비 온대요⁠, 하고 서류철을 펼쳤다⁠.

*

5월 7일 오후⁠, 고해준은 정형외과 병실 침대에 엎드린 채 천장 대신 바닥 타일을 세고 있었다⁠. 신경 시술은 생각보다 짧았고⁠, 의사는 두 주 동안 무거운 것을 들지 말라고 했다⁠. 무거운 것의 예로 의사가 든 것이 다섯 살 아이였다⁠. 해준은 의사에게 아이는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병실 문이 열리고 마봉칠이 바나나우유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선물 아니야⁠. 두 개 사니까 하나 더 주더라⁠.⁠”

해준이 엎드린 채 웃다가 허리를 잡았다⁠.

“⁠형님⁠, 그거 어디서 들었어요⁠.⁠”

“⁠너 맨날 그렇게 말하면서 들어갔다며⁠. 반대표 엄마가 대리점에 택배 찾으러 왔다가 그러더라⁠. 그 집 아빠는 선생님한테 두 개 사 가서 두 개 다 자기가 마신다고⁠.⁠”

“⁠단톡방이에요⁠?⁠”

“⁠아니⁠, 그건 단톡방 말고 그냥 동네야⁠. 동네가 단톡방보다 빨라⁠.⁠”

봉칠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바나나우유에 빨대를 꽂아 해준 입 앞에 대 주었다⁠. 해준은 엎드린 채로 빨대를 물었다⁠. 봉칠이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소장님이 전해 달래⁠. 고양 허브 분류 관리⁠, 주간직⁠. 아홉 시 출근⁠, 여섯 시 퇴근⁠, 정규직⁠. 석 달 수습⁠. 상자 안 들고 태블릿 들어⁠. 월급은 지금 낮 택배보다 적어⁠.⁠”

“⁠얼마나요⁠?⁠”

“⁠네 바나나우유 한 달 치보다 조금 많이⁠.⁠”

해준은 서류를 보았다⁠. 「⁠분류 관리 주간직 — 주말 근무 없음⁠」 주말 근무 없음이라는 줄에서 눈이 멈췄다⁠. 토요일마다 다엘에게 솔찬을 넘기고 해준은 오후 배송을 뛰었다⁠.

“⁠형님⁠, 나 이거 할게요⁠.⁠”

“⁠진짜⁠? 너 레일에서 상자 안 들면 뭐 해⁠. 손이 심심해서⁠.⁠”

“⁠손은 애 들어야죠⁠. 두 주 뒤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다엘이었다⁠. 사진 한 장이 와 있었다⁠. 욕실 거울 앞에서 솔찬이 칫솔을 입에 물고 있었다⁠. 칫솔에 공룡이 그려져 있었다⁠. 사진 아래 글자는 짧았다⁠. 「⁠양치 삼 분⁠. 노래 두 곡⁠.⁠」 해준은 사진을 오래 보았다⁠. 다엘은 해준에게 솔찬 사진을 보낸 적이 없었다⁠. 삼 년 동안 사진은 늘 해준이 보냈다⁠.

*

5월 13일 오후 세 시⁠, 법원 고양지원 가사조사실 앞 복도에는 의자가 둘씩 붙어 있었다⁠. 해준은 허리 보조대를 조끼 안에 차고 의자 하나에 앉았고⁠, 다엘은 나머지 하나에 앉았다⁠. 둘씩 붙은 의자 말고는 앉을 데가 없었다⁠. 아동 면담실 문은 닫혀 있었다⁠. 문 안에서 석애리와 솔찬이 크레파스를 쥐고 있었다⁠.

문틈으로 솔찬의 목소리가 조금 새어 나왔다⁠. 거북이는 왜 집을 들고 다녀⁠? 석애리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너 허리 보조대 찼어⁠?⁠”

“⁠시술했어⁠. 두 주 동안 애 들지 말래⁠.⁠”

“⁠의사가 애를 무거운 거라고 했지⁠.⁠”

“⁠어떻게 알아⁠.⁠”

“⁠나도 병원에서 일해⁠. 의사들은 다 그렇게 말해⁠.⁠”

해준은 자판기를 보았다⁠. 목이 말랐다⁠. 일어서서 캔커피 단추를 눌렀는데⁠, 캔은 자판기 맨 아래 꺼내는 칸에 떨어졌다⁠. 해준은 허리를 굽히지 못하고 꺼내는 칸을 내려다보았다⁠. 다엘이 일어나 캔을 꺼내 해준 손에 쥐여 주었다⁠. 해준이 한 개 더 눌렀고⁠, 다엘이 한 개 더 꺼냈다⁠.

“⁠시애틀 병원 자판기는 허리 높이에서 나와⁠.⁠”

“⁠미국은 허리를 생각해 주네⁠.⁠”

“⁠거기 사람들 허리가 다 나가서 그래⁠. 야간 근무자들이 민원 넣었대⁠.⁠”

“⁠민원은 어디나 있구나⁠.⁠”

다엘이 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결혼했을 때 싸운 날 물컵을 감싸던 손이었다⁠. 해준은 손을 알아보았다⁠.

“⁠이 주 동안 애 데리고 살아 보니까 알겠더라⁠.⁠”

다엘이 캔을 따지 않은 채 손에 들고 말했다⁠.

“⁠너 진짜 일곱 시 십사 분에 매일 갔더라⁠. 애가 일곱 시 십사 분이 되면 현관에 서⁠. 내가 십오 분에 가면 내가 늦은 거야⁠. 화요일에 차가 막혀서 십육 분에 갔더니 애가 유리문에 이마를 대고 울고 있었어⁠. 이 분 때문에⁠.⁠”

“⁠이 분이면 울어⁠. 걔한테 이 분은 길어⁠.⁠”

“⁠너는 아침에 애 깨우는 거 어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나도⁠.⁠”

둘은 동시에 캔을 땄다⁠. 같은 소리가 두 번 났다⁠.

“⁠다음 주부터 물류센터 주간 관리직이야⁠. 아홉 시부터 여섯 시⁠. 주말 없어⁠. 밤일 없어⁠.⁠”

다엘이 캔을 입에 대다가 멈췄다⁠.

“⁠월급은⁠?⁠”

“⁠적어⁠.⁠”

“⁠얼마나⁠?⁠”

“⁠네 변호사비보다는 많아⁠.⁠”

다엘이 웃음을 삼켰다가 결국 웃었다⁠. 웃음이 복도에 울려 둘 다 면담실 문을 보았다⁠. 문은 닫혀 있었다⁠.

“⁠해준아⁠, 나 아침이 하고 싶어⁠. 아침밥 먹이고⁠, 양치시키고⁠, 공룡 칫솔로 노래 두 곡 부르고⁠, 어린이집 데려다주는 거⁠. 삼 년 동안 화면으로 저녁만 봤어⁠. 너네 저녁 일곱 시가 시애틀 새벽 세 시야⁠. 나는 새벽 세 시마다 일어나서 너네 저녁을 봤어⁠. 아침은 한 번도 못 봤어⁠.⁠”

“⁠나는 저녁을 해야 돼⁠. 일곱 시 십사 분⁠.⁠”

“⁠그럼 밤은⁠?⁠”

해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밤은 아침과 저녁 사이에 있었고⁠, 둘 다 밤을 원했다⁠. 밤에 아이가 누구 옆에서 자는지가 처음부터 이 싸움의 전부였다⁠.

*

오후 세 시 사십 분⁠, 면담실 문이 열렸다⁠. 석애리가 먼저 나왔고⁠, 솔찬이 거북이 인형을 안고 뒤따라 나왔다⁠. 석애리가 거북이를 돌려받으려 했지만 솔찬은 거북이를 놓지 않았다⁠.

“⁠거북이가 나랑 더 있고 싶대⁠.⁠”

“⁠거북이는 여기서 다른 친구들도 만나야 해⁠.⁠”

솔찬은 거북이를 한 번 꼭 안았다가 석애리에게 건넸다⁠. 그리고 해준에게 달려가다가 해준의 허리 보조대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안기지 않고 해준의 손을 잡았다⁠. 다섯 살이 아빠를 안지 않는 법을 이 주 동안 배웠다⁠.

석애리가 두 사람 앞에 섰다⁠. 수첩은 덮여 있었다⁠.

“⁠면담 내용은 보고서에 씁니다⁠. 지금은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가 아프면 엄마가 데리러 오고⁠, 엄마가 바쁘면 선생님이 데리러 온다고요⁠.⁠”

해준과 다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애리는 둘의 얼굴을 차례로 보았다⁠.

“⁠어느 선생님인지 물었더니⁠, 현관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이름은 몰라도 된대요⁠. 현관에 있으면 현관 선생님이래요⁠.⁠”

석애리가 목례를 하고 조사실로 돌아갔다⁠. 솔찬이 해준의 손을 흔들었다⁠. 아빠⁠, 거북이는 집이 무겁대⁠. 해준은 그렇구나⁠, 하고 대답했다⁠.

다엘이 핸드백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봉투를 해준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어제 사전처분 신청했어⁠. 결정 날 때까지 임시로 애 맡겠다는 거⁠. 네 허리 나을 때까지⁠, 그리고 네 새 일 수습 끝날 때까지⁠. 석 달⁠.⁠”

“⁠석 달⁠?⁠”

“⁠이 주로는 법원이 안 해 줘⁠. 나도 물어봤어⁠.⁠”

해준은 봉투를 열지 않았다⁠. 솔찬이 해준과 다엘 사이에 서서 두 사람의 손을 하나씩 잡았다⁠. 손이 짧아서 두 어른은 몸을 조금씩 기울여야 했다⁠.

“⁠너 지금 나 쓰러진 거로 이기려는 거야⁠?⁠”

“⁠아니⁠. 네가 쓰러질 때 내가 일곱 시 십사 분에 갈 수 있다는 걸 법원에 보여 주려는 거야⁠.⁠”

솔찬이 두 손을 흔들었다⁠. 해준의 허리가 울렸고⁠, 해준은 손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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