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114자)

여섯 개의 판결

실록에 남은 조선의 불륜 재판 · 서지오

성종 23년, 1492년 6월, 한양 운종가 장터 한복판에 멍석 열두 장이 깔렸다.

운종가는 도성 한가운데 나라에서 허가한 시전 가게들이 늘어선 큰 장거리였다. 그 거리 끝 빈터에 멍석이 깔리고, 멍석 둘레로 사람이 겹겹이 섰다. 앞줄은 앉았고, 둘째 줄은 쭈그렸고, 셋째 줄부터는 서 있었으며, 그 뒤로는 남의 어깨에 손을 짚고 발뒤꿈치를 든 사람들이 있었다. 처마 위에도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올라가 있었다. 볕이 뜨거워서 사람들 정수리에서 김이 오르는 것 같았다. 땀 냄새와 참외 냄새와 소금에 절인 생선 냄새가 한데 엉겨 있었다.

멍석 앞자리에서 득룡이 쌀을 받고 있었다. 이번에는 판자 틈도 형장 앞줄도 아니었다. 이야기를 듣는 값이었다. 앞줄 한 되, 둘째 줄 반 되. 셋째 줄부터는 공짜였는데, 득룡은 공짜로 듣는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려 다음 판의 손님을 데려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득룡의 셈은 아버지 억쇠보다 한 수 위였다.

멍석 한가운데 입방울이 섰다. 갈라진 목소리를 더 갈라지게 내며 부채를 폈다.

“자, 여러분! 오늘은 막동이 이야기요! 버림받은 여자가 막동이라는 놈하고 달아났소! 아우가 잡아 왔소! 그런데 또 달아났소! 이번엔 누구하고? 장달생이하고! 그런데 말이오, 옥에 갇혀서 마지막 날 밤에 이 여자가 누구 이름을 불렀는지 아시오?”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입방울은 부채를 접었다가 탁 폈다.

“막동이! 막동이 하나뿐이었다고! 장달생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옥 나장이 물을 주니까 그 물을 다 마시고 그렇게 말했다는 거요!”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누구는 혀를 찼고, 누구는 눈가를 훔쳤다. 득룡이 쌀자루를 끌어당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팔리는 대목이었다.

*

순돌은 셋째 줄 뒤에 서 있었다. 공짜 자리였다. 분이가 순돌의 소매를 잡고 있었다. 소매를 두 번 접은 자리를 쥐고 있었다.

“가만있어.”

“가만있소.”

“발이 앞으로 가고 있잖아.”

순돌은 제 발을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반 걸음 앞으로 나가 있었다. 분이는 소매를 더 세게 쥐었다.

순돌 옆에 맹 서리가 서 있었다. 엿을 입에 넣고 녹이는 중이었다. 맹 서리는 엿이 다 녹을 때까지 아무 말도 못 했다. 다 녹이고 나서 낮게 말했다.

“오 나장. 저거, 자네가 들은 거랑 다르지?”

“다르오.”

“그럼 어쩔 거야?”

“나리는 어쩌라고 하시겠소?”

맹 서리는 엿을 하나 더 꺼내 입에 넣었다. 그것이 대답이었다. 엿이 녹는 동안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멍석 앞쪽에서 떡장수 할미가 앉아 있었다. 여든이 넘은 할미는 이가 하나도 없었는데, 무릎 앞에 떡 함지를 놓고 있었다. 함지에는 떡이 가득했다. 할미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떡을 팔지 않았다. 듣기만 했다.

입방울이 다시 부채를 폈다.

“그럼 그 나장이 누구냐! 바로 이 판을 연 구 나장 어른이시오! 마지막 물을 준 사람!”

득룡이 멍석 앞에서 손을 들어 보였다. 사람들이 득룡을 보았다.

순돌의 소매에서 분이의 손이 미끄러졌다. 분이가 놓은 것인지 순돌이 뺀 것인지는 둘 다 몰랐다.

*

순돌은 셋째 줄과 둘째 줄과 앞줄을 지나 멍석 위로 올라섰다. 짚신 바닥에 아직 오디 물이 배어 있어서 멍석 위에 보랏빛 발자국이 났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입방울이 부채를 든 채 멈췄다.

득룡이 일어섰다.

“오 나장. 내려가.”

“내려가겠소. 할 말만 하고.”

“여긴 내 판이야. 쌀 내고 들어온 사람들 판이야.”

“나는 공짜 자리에서 왔소. 공짜 자리 사람도 말은 하오.”

뒤쪽에서 누가 웃었다. 웃음이 몇 군데로 번졌다. 득룡의 얼굴이 굳었다.

순돌은 사람들 쪽으로 돌아섰다. 많은 얼굴이 순돌을 보고 있었다. 순돌은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서 본 적이 없었다. 손이 떨렸다. 허리춤의 사발을 풀어 두 손으로 쥐었다. 떨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 여자가 마지막 밤에 한 말은 아니라는 말이었소. 장달생과는 아니라고. 막동 얘기는 하지 않았소. 그 칸 앞에 내가 있었소. 구 나장도 있었소.”

사람들이 득룡을 보았다. 득룡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겠소.”

순돌은 사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세종 임금 때 옥졸이 되셨소. 그해에 한 여자가 남편을 떠나 여러 사내와 관계를 맺었다고 잡혀 왔소. 극형을 달라는 말이 나왔지만 임금은 형률대로 하자고 하셨고, 끝내 곤장을 맞고 변방 고을 노비로 갔소. 같은 해에 남의 집 비첩 하나가 병든 할머니를 보러 다녀왔다가 안주인한테 갇혀 몸이 상했소. 그 여자는 갇혀서 몸이 상했는데, 사람들은 그 여자가 다른 사내를 만났느냐만 물었소.”

장터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열한 살 때, 관직에 있던 사람 하나와 관청 여종 하나가 엮였다고 잡혀 왔소. 의금부는 매로 캐자고 했고, 임금은 죄를 따지지 말라 하셨소. 그 관원은 관직 증서 한 장만 빼앗겼소. 그 여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는 듣지 못했소. 내가 열여덟 살 때, 남의 아내와 간통했다는 승려가 잡혀 왔소. 그 뒤에 그 여자 남편의 아우가 누가 지른 불과 살인에 목숨을 잃었소. 승려는 매를 맞고 자백했소. 임금은 매로 받은 자백이라 다시 조사하라 하셨소.”

순돌은 숨을 골랐다. 멍석 위의 볕이 정수리를 눌렀다.

“열두 해 전, 어우동이라는 여자가 교형을 받았소. 형률에 죽이라는 조문이 없다며 반대한 신하들이 있었는데도 그랬소. 그 여자와 엮인 일 가운데에는 협박으로 맺어진 것도 있었다고 따로 조정에 올라갔소. 그리고 지난달, 그 동쪽 칸의 여자가 끝내 아니라고 하고 옥에서 죽었소.”

순돌은 사발을 들어 보였다. 귀 하나 떨어진 사발이 볕에 둔하게 빛났다.

“예순다섯 해 동안 이 사발로 물을 받은 사람들이오. 다 간통이라고 했소. 누구는 교형이고, 누구는 곤장이고, 누구는 종이 한 장이고, 누구는 옥에서 죽었소. 같은 말로 불렸는데 벌은 이렇게 달랐소. 왜 달랐는지는 나도 다 모르오. 형률이 달랐는지, 임금이 달랐는지,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가 달랐는지. 그런데 하나는 아오. 그 사람들이 마지막에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오. 나도 모르고, 구 나장도 모르고, 여기 이야기꾼도 모르오.”

*

장터는 조용했다. 처마 위의 어른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참외 장수가 칼을 든 채 멈춰 있었다.

득룡이 멍석 위로 올라왔다. 순돌 앞에 섰다. 두 사람은 같은 멍석 위에서 마주 보았다. 쉰둘과 마흔여섯이었다. 서른다섯 해 전 대문 앞에서 보자기 하나를 두고 버티던 두 사람이었다.

“다 했어?”

“다 했소.”

“그럼 내 말도 들어.”

득룡은 사람들 쪽으로 돌아서지 않고 순돌만 보고 말했다.

“자네 말이 다 맞다고 치자. 아무도 모른다고 치자. 그럼 사람들은 뭘 들어? 모른다는 말 들으러 쌀 내고 오나? 사람들은 빈자리를 못 견뎌. 그 여자가 왜 그랬는지 알고 싶어 해. 아무도 안 알려 주니까 내가 알려 주는 거야. 지어서라도. 그게 그렇게 나빠? 자네 할아버지 이야기, 우물에 칼이 묻혀 있다는 거. 그것도 지어낸 거잖아. 자네도 지어낸 이야기 듣고 컸어.”

순돌은 그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득룡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우물 밑 칼은 할아버지가 지어낸 이야기였다. 순돌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물 이야기를 지어냈소. 우물은 말을 못 하니까. 자네는 사람 이야기를 지어냈소. 그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소. 말한 걸 덮고 지어낸 거요. 그건 다르오.”

득룡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멍석 앞자리에서 할미가 떡 함지를 짚고 일어섰다. 이가 없는 입으로 말했는데, 장터가 조용해서 다 들렸다.

“저 양반, 열두 해 전에 판자 틈 막고 섰던 그 나장이구먼. 떡을 판자 밑으로 넣어 준 나장.”

할미는 순돌을 오래 보았다. 그리고 떡 함지를 다시 머리에 이었다.

“오늘은 떡 안 팔아. 이야기가 끝났어.”

할미가 멍석 사이를 걸어 나갔다. 할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사람들이 길을 텄다. 할미 뒤로 한 사람이 일어섰고, 또 한 사람이 일어섰다. 셋째 줄의 공짜 자리 사람들이 먼저 흩어졌다. 앞줄에 쌀을 낸 사람들은 끝까지 앉아 있었지만, 입방울이 부채를 접자 그들도 일어섰다.

입방울이 득룡을 보았다. 득룡은 입방울을 보지 않았다.

*

사람들이 다 흩어진 빈터에서 순돌은 멍석 위에 혼자 서 있었다. 분이가 와서 순돌의 소매를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접은 자리가 아니라 손목을 잡았다.

그때 땔감 지게를 진 사내 하나가 멍석 쪽으로 왔다. 마흔 줄의 사내였는데, 얼굴이 어딘가 낯익었다. 사내가 지게를 내려놓고 순돌을 보았다.

“나장님, 저 기억하세요? 열두 해 전 형장 마당에서 말뚝 주워 들고 따라다니던 놈이요.”

순돌은 한참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줄에 서려면 무엇을 가져와야 하느냐고 묻던 그 총각이었다.

“그 말뚝, 땔감으로 안 썼어요. 나라 거라고 하셔서. 그래서 그 뒤로 땔감 장사를 시작했어요. 나라 거 말고 내 거 팔려고요. 그 열두 개가 아직 우리 집 헛간에 있어요.”

“그걸 왜 아직 두오?”

“버리기도 나라 거잖아요.”

분이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맹 서리도 엿을 문 채 웃다가 사레가 들려 한참 기침을 했다. 순돌은 웃지 않으려 했는데,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갔다. 그날 장터에서 순돌은 처음 웃었다.

땔감 장수는 지게를 다시 지고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이야기는 쌀 안 내고 들었으니까, 다음에 땔감 한 단 갖다 드릴게요. 나라 거 아닌 걸로.”

*

다음 날 아침 전옥서 대문에서 득룡이 순돌을 막았다.

“오늘부터 안 나와도 돼. 위에 그렇게 올렸어. 옥 안의 일을 저잣거리에서 떠벌렸다고.”

“자네도 떠벌렸소.”

“나는 지어냈지. 지어낸 건 옥 안의 일이 아니야. 자네는 진짜를 말했잖아. 진짜를 말하는 게 탈이야.”

득룡은 그 말을 하고 스스로도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말을 거두지는 않았다.

순돌은 대문 앞에서 허리춤의 사발을 풀었다. 이 사발은 나라 것이 아니었다. 오씨네 것이었다. 순돌은 사발을 손에 쥐고 대문을 등졌다. 뽕나무에서 오디가 떨어지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렸다. 내일 아침에는 다른 나졸이 그 오디를 쓸 것이었다.

바탕: 『세종실록』 37권(1427년 8월 24일·27일, 9월 3일·14일·16일) · 『세조실록』 7권(1457년 5월 18일 4기사)·33권(1464년 5월 8일 2기사) · 『성종실록』 122권(1480년 10월 18일 1·5기사)·265권(1492년 5월 25일 6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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