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67자)

실록 밖의 송사

실록에 남은 조선의 불륜 재판 · 서지오

성종 23년, 1492년 6월, 한양 남산 아래 오순돌의 집 마당에는 땔감이 한 단 놓여 있었다.

땔감 장수가 아침 일찍 지고 와서 사립문 안에 내려놓고 갔다. 나라 거 아닌 걸로 가져왔다는 말을 분이에게 세 번이나 하고 갔다고 했다. 분이는 그 땔감을 아궁이 옆에 쌓다가 한 번 웃고, 쌓다가 또 한 번 웃었다. 땔감 한 단이 집에 들어온 것보다 그 말이 더 우스운 모양이었다.

순돌은 마루에 앉아 쌀독을 무릎 사이에 끼고 있었다. 바닥 한가운데 금 간 쌀독이었다. 서른 해 가까이 분이가 저녁마다 그 금에 낀 쌀알을 숟가락으로 파냈다. 순돌은 옥에 나가지 않게 된 첫날 아침에 그 금을 메우겠다고 나섰다. 송진을 녹여 금에 붓고, 그 위에 삼베 조각을 덧대고, 다시 송진을 부었다. 송진 냄새가 마당까지 퍼졌다.

“그거 메우면 쌀알 안 껴?”

“안 끼오.”

“그럼 나는 저녁마다 뭘 긁어?”

순돌은 송진 묻은 손을 든 채 분이를 보았다. 분이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서른 해 가까이 긁던 것이 없어지면 저녁에 할 일 하나가 없어지는 셈이었다. 순돌은 송진 붓던 손을 멈추고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반만 메우겠소.”

“반은 왜?”

“반은 긁으시오.”

분이가 마루 끝에 주저앉아 웃었다. 웃다가 눈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녹봉 없는 첫날이었다.

*

점심 무렵 사립문 밖에 늙은 선비 하나가 섰다. 갓이 비뚜름했다. 그 비뚜름한 각도가 순돌의 눈에 익었다.

“오 나장 댁이오?”

“나장 아니오. 그만뒀소.”

“그럼 오 나장이었던 분 댁이오?”

선비는 허락도 받지 않고 사립문을 밀고 들어왔다. 마루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소매에서 접힌 종이 뭉치를 꺼냈다. 종이는 누렇게 바래 있었고, 접힌 자리마다 닳아서 보풀이 일었다.

“기억하시오? 열두 해 전 판자 틈. 형장 앞줄. 상소의 끝 줄.”

순돌은 그제야 알아보았다. 공무로 구경 왔다던 그 생원이었다. 얼굴에 주름이 늘었고 수염이 희어졌다. 갓의 각도만 그대로였다.

“상소는 올리셨소?”

“못 올렸소.”

생원은 종이 뭉치 가운데 하나를 펼쳐 보였다. 열두 해 전 그 상소 초안이었다. 끝 줄이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날 나장이 출처를 물었잖소. 그 말이 걸려서 끝 줄을 못 썼소. 끝 줄을 못 쓰니 상소를 못 올렸고. 그 뒤로 이것저것 모으기 시작했소. 장터에서 도는 송사 이야기, 고을에서 올라온 재판 이야기. 누가 누구를 고발했고, 관아가 어떻게 판결했는지. 출처를 따져 보려고 모으기 시작했는데, 모으다 보니 출처 없는 게 더 많소.”

생원은 종이 뭉치를 마루 위에 펼쳐 놓다가, 마루 끝에 놓인 쌀독을 보았다. 송진이 반쯤 굳어 번들거렸다. 생원은 손가락으로 그 송진을 꾹 눌러 보고는 손가락이 떨어지지 않아서 한참을 애썼다. 분이가 부엌에서 그것을 보고 행주를 던져 주었다. 생원은 행주로 손가락을 닦으며 이 집은 쌀독도 사람을 붙잡는다고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야 종이를 마저 펼쳤다. 손글씨가 빽빽했다. 순돌은 글을 다 읽지는 못했다. 읽을 수 있는 글자보다 못 읽는 글자가 많았다.

“어제 장터 판에 나도 있었소. 나장이 한 말을 들었소. 예순다섯 해 치 판결. 그걸 다 듣고 싶어서 왔소.”

“그걸 왜 들으시오?”

“모으려고.”

“모아서 뭘 하시오?”

생원은 그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갓을 고쳐 썼다. 고쳐 썼는데도 갓은 다시 비뚜름해졌다.

*

순돌은 들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생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왜 안 되오?”

“생원이 모으는 것 가운데 구 나장 이야기도 있소?”

“있소.”

“입방울 이야기도?”

“있소. 막동이 이야기도 적어 두었소. 어제 들은 그대로.”

순돌은 송진 묻은 손을 무릎에 문질렀다. 송진이 무명 바지에 들러붙었다.

“그럼 내 이야기를 그 옆에 놓으시겠소? 지어낸 이야기 옆에?”

“그럼 어디에 놓으란 말이오?”

생원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마루 위의 종이 한 장이 바람에 들썩였다.

“나장. 나장이 말한 판결은 다 조정에서 정한 것이오. 조정에서 정한 건 조정 문서로 남소. 그런데 그 문서는 누가 쓰오? 조정 사람들이 쓰오. 신하들이 한 말, 임금이 한 말, 형조가 올린 보고. 그 여자들이 한 말은 거기 몇 줄이나 있소? 아니라는 말 한마디, 그게 다요. 나머지는 다 남이 그 여자들을 두고 한 말이오.”

순돌은 대답하지 못했다.

“구 나장 이야기는 거짓이오. 그건 나도 아오. 그런데 나장 이야기는 나장 눈이오. 나장이 판자 앞에서 본 것, 나장 할아버지가 우물가에서 본 것. 그것도 그 여자들 말은 아니잖소. 조정 문서도 그 여자들 말이 아니고, 구 나장 이야기도 아니고, 나장 이야기도 아니오. 그럼 그 여자들 말은 어디 있소?”

“없소.”

순돌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없으니까, 없다고 해야 하오. 조정 문서가 조정 눈이고 내 말이 내 눈이면, 그건 그렇다고 하면 되오. 그런데 구 나장은 그 여자 입에다 말을 넣었소. 그 여자가 아니라고 한 자리에다 막동이라는 말을 넣었소. 생원이 그걸 내 말 옆에 나란히 놓으면, 사람들은 둘 중에 더 재미있는 걸 믿을 거요.”

생원은 오래 말이 없었다. 마당에서 분이가 아궁이에 땔감을 넣는 소리가 났다. 나라 거 아닌 땔감이 탁탁 소리를 내며 탔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생원이 말했다.

“나장이 본 건 나장이 본 거라고 쓰겠소. 구 나장이 지어낸 건 지어냈다고 쓰겠소. 조정에서 정한 건 조정에서 정했다고 쓰겠소. 그리고 그 여자들 마음은, 모른다고 쓰겠소.”

“그렇게 쓰면 재미가 없을 거요.”

“재미없으면 내가 혼자 읽지.”

생원은 종이 뭉치를 다시 접었다. 이번에는 접는 손이 서툴지 않았다.

*

해 질 녘 사립문 밖에 쌀가마가 하나 놓였다. 한 섬이었다. 쌀가마 옆에 득룡이 서 있었다.

“들어가도 되나?”

“이미 들어왔소.”

득룡은 사립문을 넘어 마당 한가운데 섰다. 분이가 부엌에서 나와 득룡을 보았다가, 쌀가마를 보았다가, 순돌을 보았다. 분이의 눈이 쌀가마에서 제일 오래 머물렀다. 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부엌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런데 부엌문을 닫지 않았다.

“그 사발 팔아.”

득룡이 말했다.

“한 섬이야. 귀 떨어진 놋 사발 하나에 한 섬. 장터에서 이보다 후하게 쳐 줄 사람 없어.”

“그걸 사서 뭘 하오?”

“이야기판에 걸어 둘 거야. 어제 판 봤지? 사람들이 자네 말 듣고 떡장수 할미 따라 다 일어섰어. 판이 깨졌지. 그런데 나는 그걸 보고 알았어. 사람들이 다음에 듣고 싶은 게 뭔지. 막동이 이야기가 아니야. 물 주는 나장 이야기야. 예순다섯 해 동안 한 집안이 같은 사발로 죄인한테 물을 준 이야기. 그 사발을 판 한가운데 걸어 두면, 입방울이 그 앞에서 이야기를 할 거야.”

순돌은 허리춤의 사발을 만졌다.

“입방울이 무슨 이야기를 하겠소?”

“그거야 입방울 마음이지. 자네 할아버지가 그 여자들 하나하나랑 무슨 사이였는지. 자네가 동쪽 칸 여자한테 왜 그렇게 물을 날랐는지. 사람들은 그런 걸 궁금해해. 자네가 모른다고 하는 그 빈자리 말이야. 나는 그걸 채울 줄 알아.”

순돌은 마루에서 일어섰다. 송진이 무릎에서 쩍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안 파오.”

“한 섬인데?”

“안 파오.”

득룡은 쌀가마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웃었다. 앞니 빠진 자리가 검게 보였다. 열두 해 전 의금부 문간에서 보던 그 웃음이었다.

“그럼 사발 없이 하지. 사발이야 장터에서 귀 하나 떼면 그만이야. 이야기는 사발 없이도 팔려. 자네가 막을 수 있는 건 판자 틈이었지. 장터는 판자가 없어.”

득룡은 쌀가마를 다시 어깨에 메었다. 한 섬을 메고도 걸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사립문을 나가다가 돌아보았다.

“다음 판은 보름 뒤야. 운종가. 자네 이야기야. 와서 들어. 공짜 자리 줄게.”

*

득룡이 가고 나서 분이가 부엌에서 나왔다. 손에 쌀 됫박을 들고 있었다. 빈 됫박이었다.

“한 섬이면 몇 되인 줄 알아?”

“아오.”

“우리 쌀독 몇 번 채우는 줄 알아?”

“그것도 아오.”

“그런데 안 팔았어?”

“안 팔았소.”

분이는 빈 됫박을 순돌의 무릎에 내려놓았다. 됫박 바닥에 쌀겨가 조금 붙어 있었다. 분이는 그 쌀겨를 손가락으로 쓸어 모으면서 말했다.

“잘했어. 근데 다음에 또 오면 됫박 하나만 놓고 가라고 해. 사발 말고 됫박 값으로.”

“됫박은 왜 주오?”

“됫박 하나 받고 문 열어 주는 거지. 구 나장한테 배웠어. 쌀 받고 판자 틈 여는 거.”

순돌은 분이를 보았다. 분이는 진지했다가, 순돌이 어이없어하는 얼굴을 보고는 못 참고 웃었다. 웃으면서 됫박을 도로 빼앗아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 안에서 분이가 혼잣말을 했다. 한 섬이면 겨울을 나는데,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웃음이 아니었다. 순돌은 그 소리를 들은 척하지 않았다.

*

그날 밤 순돌은 마루에 앉아 사발에 우물물을 담아 놓고 오래 보았다. 등잔 불빛이 물 위에 떠 있었다. 떨어져 나간 귀 자리에 엄지가 닿았다.

분이가 옆에 와 앉았다. 반만 메운 쌀독을 끌어다 무릎 사이에 놓고, 숟가락으로 남은 금을 긁었다. 박박 긁는 소리가 마당까지 퍼졌다.

“보름 뒤에 갈 거지?”

“가오.”

“가서 또 멍석에 올라갈 거지?”

“모르오.”

“모른다는 말, 요즘 자네 입에서 제일 많이 나와.”

“제일 맞는 말이라서 그렇소.”

분이는 숟가락을 멈추고 순돌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긁었다.

사립문 밖으로 등불 하나가 지나갔다. 생원의 등불이었다. 생원은 문 앞에서 멈추지 않고, 지나가면서 소리만 남겼다.

“나장! 지난번에 말 안 한 게 있소. 내가 모은 송사 가운데, 고을 관아까지 갔다가 조정에는 끝내 안 올라간 재판이 수두룩하오. 그런 건 다 이야기책 쪽으로 가더이다. 다음에 그 얘기 하러 오겠소. 그땐 나장 눈으로 들어 주시오.”

등불이 골목 끝에서 꺾였다.

실록에 오르지 못한 송사들은 그 뒤 이야기를 모은 책 쪽에 남았다. 『용재총화』와 『어우야담』 같은 책이다. 그런 책들 안에도 고발과 판결의 이야기가 있고, 끝내 말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거기서는 누가 본 것을 적었고 누가 지어냈는지, 실록보다 더 가려내기 어렵다.

순돌은 사발의 물을 마셨다. 쇠 맛이 났다. 보름 뒤의 판에서 입방울이 무슨 이야기를 지어낼지 순돌은 몰랐다. 다만 그 판 셋째 줄 뒤 공짜 자리에, 비뚜름한 갓 하나와 땔감 지게 하나와 엿 녹이는 서리 하나가 나란히 서 있을 것은 알았다.

바탕: 『성종실록』 265권, 성종 23년(1492) 5월 25일 6기사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작가를 구독하면 다음 화가 올라올 때 알려 드립니다.

1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