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45자)
아니라고 했다
실록에 남은 조선의 불륜 재판 · 서지오
성종 23년, 1492년 5월의 한양 전옥서 마당에는 오디가 떨어져 검붉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전옥서는 형벌과 소송을 맡던 관청 형조에 딸린 옥이었다. 담장 안쪽 귀퉁이에 늙은 뽕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해마다 이맘때면 오디가 익어 떨어졌고, 나졸들의 짚신 바닥은 저녁마다 보랏빛이 되었다. 마흔여섯의 오순돌은 아침마다 그 오디를 비로 쓸었다. 쓸어도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떨어져 있었다. 순돌은 그 일을 싫어하지 않았다. 매일 같은 자리를 쓰는 일은 옥에서 드문 일이었다. 옥에서는 대개 매일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순돌이 의금부에서 이곳으로 옮겨 온 지 몇 해가 되었다. 옮긴 것은 순돌의 뜻이 아니었다. 길바닥에서 협박 이야기를 한 해부터 순돌의 이름은 의금부 윗사람들 사이에서 「물 주는 나장」으로 불렸고, 그 이름은 칭찬이 아니었다. 몇 해를 버티다 결국 밀려났다. 밀려와 보니 구득룡이 먼저 와 있었다. 득룡은 쉰둘이었고, 전옥서 옥 우두머리였다. 득룡은 의금부보다 전옥서에 사람이 더 많이 든다는 것을 일찍 알아챘다. 사람이 많이 드는 곳에 이야기가 많았다.
순돌의 허리춤에는 귀 떨어진 사발이 매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처음 옥에 들고 들어간 지 예순다섯 해가 된 사발이었다.
*
그달 동쪽 칸에 성철종이라는 여자가 들어 있었다.
형조가 캐는 줄기는 이랬다. 성철종은 남편에게 버림받았다. 그 뒤에 막동이라는 사람과 달아나 함께 살았다. 아우가 그녀를 찾아 데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떠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장달생이라는 사람과의 관계로 조사를 받았다.
순돌은 그 줄기를 형조 마루 아래에서 들었다. 심문하는 관원이 그 줄기를 한 줄씩 읽어 내려갔다. 읽는 목소리는 단단했다. 한 줄 한 줄이 이미 정해진 일처럼 들렸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 막동과 달아나 살았다. 아우가 데려왔으나 다시 나갔다. 이제 장달생과 관계를 맺었다. 맞느냐?”
성철종은 마루 아래 거적에 꿇어앉아 있었다. 고개를 들고 있었다. 순돌은 그것이 이상했다. 대부분은 이 마루 아래에서 고개를 숙였다.
“장달생과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마루 위까지 닿았다. 관원이 종이에서 눈을 들었다.
“막동과 달아난 것은 맞지 않느냐?”
성철종은 대답하지 않았다. 관원이 다시 물었다. 성철종은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세 번째로 물었을 때 관원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성철종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장달생과는 아닙니다.”
관원은 그 말을 받아 적게 했다. 서리가 붓을 놀렸다. 붓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마루 아래까지 들렸다.
순돌은 그 대답을 오래 생각했다. 막동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장달생에 관해서는 아니라고 했다. 무엇을 아니라고 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 그 사이에 그녀가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순돌은 몰랐다. 기록도 말하지 않는다. 기록은 그녀가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고만 남겼다.
*
맹 서리가 전옥서까지 찾아왔다. 맹 서리도 이제 마흔을 넘겨 어금니가 시원찮아져서, 엿을 이로 끊지 못하고 아버지처럼 입에 넣어 녹였다. 녹이는 동안 말을 못 하니, 맹 서리의 소식은 예전보다 반 박자씩 늦게 나왔다.
“오 나장, 그 여자.”
“동쪽 칸.”
“음. 형조에서 골치래. 끝까지 인정을 안 한대. 그런데 그 일이 말이야…….”
맹 서리가 엿을 굴리느라 말을 멈췄다. 순돌은 기다렸다. 맹 서리는 엿을 다 녹이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아니다. 그건 내가 확실히 모르는 거니까 안 할래.”
“나리가 모르는 걸 안 하시는 날이 다 있소?”
“나이 들면 그렇게 돼. 젊어서는 아는 걸 다 말했는데, 늙으니까 모르는 게 더 많이 보여. 자네 할아버지가 그래서 말이 없으셨나 봐.”
맹 서리는 소매에서 엿을 하나 더 꺼내다가 순돌의 사발을 보았다.
“그 사발 아직도 쓰나?”
“쓰오.”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어. 그 사발 귀 떨어질 때 옥 마당에 있었다고. 구억쇠가 쳤다고.”
순돌은 대답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누가 쳤는지 안 중요하다고 했다. 득룡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
저녁에 집에 가니 분이가 마당에서 순돌의 짚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흔셋의 분이는 짚신 바닥만 보고도 남편이 오늘 어디를 몇 번 오갔는지 맞혔다.
“오디 밟고 동쪽으로 열 번, 서쪽으로 두 번. 동쪽 칸에 누가 있구먼.”
“어찌 아오?”
“동쪽 마당 흙이 붉잖아. 서른 해 가까이 그 짚신 빨았어. 이제 흙 색깔로 칸을 알아.”
분이는 짚신을 대야에 담그며 말을 이었다. 쌀독은 여전히 그 금 간 쌀독이었고, 저녁마다 바닥을 긁는 소리도 그대로였다.
“떡장수 할미 알지? 그 할미가 아직 살아 있어. 여든은 됐을걸. 이빨이 없어서 이제 떡을 못 먹는데도 떡을 팔아. 그 할미가 오늘 그러더라. 장터에 또 큰 이야기가 하나 들어온다고. 전옥서에 든 여자 이야기라고. 구 나장이 이야기꾼이랑 뭘 꾸민대.”
“아직 살아 있는 사람 이야기를?”
“할미 말로는, 살아 있는 사람 이야기는 값이 반이래. 끝이 안 났으니까.”
분이는 짚신을 대야 물에 치대다가 손을 멈췄다. 보랏빛 물이 대야 가장자리로 번졌다.
“자네, 또 무슨 일 벌일 얼굴이야.”
“아직 아무 일 없소.”
“아직이라고 했어.”
분이는 다시 짚신을 치댔다. 이번에는 더 세게 치댔다. 오디 물이 분이의 손목까지 튀었다.
*
밤이 깊어서 순돌은 동쪽 칸 쪽에서 사람 목소리를 들었다. 야번이었다. 순돌은 창을 세우고 소리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득룡이 동쪽 칸 판자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손에 물그릇이 들려 있었다. 순돌의 사발이 아니었다. 새로 산 백자 그릇이었다. 등불 하나가 득룡 옆 바닥에 놓여 있었다.
“이봐, 장달생 일만 말해. 한마디만. 맞다고. 그럼 이 물 주지. 밥도 내일부터 두 그릇 넣어 주고. 형조에는 내가 잘 말해 주고.”
칸 안은 조용했다.
“아니면 막동 얘기라도 해. 막동이 어떤 놈이었는지. 종놈이었나? 잘생겼나? 어디서 만났나? 그거 하나만 말해도 물 주지.”
순돌은 득룡의 등 뒤에 섰다. 득룡은 돌아보지 않았다. 등불에 순돌의 그림자가 판자에 걸렸는데도 돌아보지 않았다. 순돌이 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칸 안에서 목소리가 났다. 낮에 마루 아래에서 들은 그 목소리였다.
“아닙니다.”
득룡의 어깨가 한 번 들썩였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순돌은 알 수 없었다. 득룡은 백자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무릎이 뚝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순돌이 오래전 할아버지 무릎에서 듣던 소리와 똑같았다.
“자네 왔나.”
“왔소.”
“이 여자 고집이 자네 할아버지만 해. 물 한 그릇에 말 한마디 바꾸자는데도 안 바꿔.”
“물은 바꾸는 게 아니오.”
“오씨네 말버릇 또 나오네.”
득룡이 순돌을 돌아보았다. 등불 아래 득룡의 얼굴은 늙어 있었다. 아버지 억쇠의 얼굴이 거기 겹쳐 보였다.
“오 나장. 이 여자가 맞다고 하면 다 끝나. 형조도 편하고, 이 여자도 편하고, 나도 편해. 아니라고 하면 아무도 안 편해. 이 여자부터. 그런데 왜 아니라고 하겠어? 자네는 알아?”
“모르오.”
“모르면서 왜 막아?”
“막은 적 없소. 자네가 물을 내려놓았소.”
득룡이 바닥의 백자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그릇 안의 물에 등불이 비쳐 흔들렸다. 득룡은 그 그릇을 발끝으로 판자 쪽으로 밀었다. 판자 아래 틈으로 반쯤 들어갔다.
“그냥 줘. 말 안 해도 줘. 됐어?”
득룡은 등불을 들고 갔다. 순돌은 칸 앞에 남았다. 백자 그릇은 판자 틈에 반쯤 걸린 채 그대로 있었다. 한참 뒤 칸 안에서 손 하나가 그 그릇을 끌어갔다. 그릇이 돌아 나왔을 때 비어 있었다.
순돌은 제 사발에 물을 길어 왔다. 판자 아래로 밀어 넣었다. 그것도 비어서 돌아 나왔다. 그 밤 동쪽 칸은 물을 두 그릇 마셨다. 목이 많이 말랐다. 순돌은 빈 사발 두 개를 나란히 놓고 한참 앉아 있었다. 하나는 귀가 떨어졌고, 하나는 흠 하나 없었다.
*
며칠 뒤 새벽, 순돌은 동쪽 칸 앞에 사발을 밀어 넣었다. 손이 나오지 않았다.
순돌은 기다렸다. 뽕나무에서 오디가 하나 떨어져 마당 돌 위에서 터졌다. 순돌은 판자에 귀를 댔다. 짚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마른기침도 들리지 않았다.
순돌은 나졸 둘을 불러 칸 문을 열었다. 성철종은 벽에 기대어 있었다. 순돌은 무릎을 꿇고 손등을 그녀의 코 밑에 대 보았다.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무엇이 그녀를 죽게 했는지 순돌은 몰랐다. 병이었는지, 심문이었는지, 옥이었는지. 기록은 그녀가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채 옥에서 죽었다고 적는다. 그 앞의 줄들은 남편과 막동과 아우와 장달생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다. 그녀가 그들 가운데 누구를 어떻게 여겼는지는 한 줄도 없다.
칸 바닥에 백자 그릇이 놓여 있었다. 득룡이 밀어 넣은 그 그릇이었다. 순돌은 그 그릇을 집어 들고 칸을 나왔다.
*
5월 25일, 형조가 보고를 올렸다. 성철종이 장달생과의 일로 조사를 받다가 끝내 인정하지 않고 옥에서 죽었다는 보고였다. 실록에 그 보고가 남았다.
같은 날 저녁, 순돌은 전옥서 대문 밖에서 득룡을 보았다. 득룡은 대문 기둥에 기대어 서서 한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내는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갈라져 있었다. 열두 해 전 압송 길을 따라오던 그 이야기꾼, 입방울이었다. 입방울도 늙어서 목소리가 더 갈라져 있었다.
“마지막 날 밤에 내가 물을 줬거든.”
득룡이 말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물을 다 마시고 그러더라고. 막동이 보고 싶다고. 장달생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막동이 하나뿐이었다고.”
입방울이 손바닥을 비볐다. 억쇠가 비비던 그 손짓이었다.
“그거 좋소. 그거 팔리겠소. 종놈하고 달아난 여자, 옥에서 마지막으로 종놈 이름을 부르다.”
순돌은 백자 그릇을 쥐고 그 앞으로 걸어갔다. 득룡이 순돌을 보았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오 나장. 이건 옥 밖 일이야. 대문 밖. 자네 소관 아니야.”
순돌은 그릇을 득룡의 손에 쥐여 주었다. 비어 있는 그릇이었다.
“그 여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아니라는 말이었소. 자네도 들었잖소.”
득룡은 그릇을 받아 들고 순돌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리고 입방울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일 장터에서 해. 큰 판으로.”
바탕: 『성종실록』 265권, 성종 23년(1492) 5월 25일 6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