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21자)

거둬 간 고신

실록에 남은 조선의 불륜 재판 · 서지오

세조 3년, 1457년 5월의 한양 의금부 옥 마당에는 보리 이삭 냄새가 담장을 넘어 들어왔다.

열한 살 오순돌은 보자기에 싼 도시락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대문 문턱을 넘었다. 도시락은 할아버지 몫이었다. 어머니가 아침마다 보리밥을 눌러 담고 그 위에 짠지 세 쪽을 얹었다. 짠지가 세 쪽인 것은 할아버지가 하나는 점심에, 하나는 저녁 전 허기에, 하나는 남겨서 손자에게 주기 때문이었다. 순돌은 그 세 번째 쪽을 바라고 매일 도시락 심부름을 자원했다.

대문 안쪽에 열일곱 살 구득룡이 서 있었다. 득룡은 옥 우두머리 구억쇠의 아들이었고, 아직 정식 나장은 아니었지만 아버지 곁에서 문간 일을 배우고 있었다. 키가 순돌의 갑절이었고, 그 키를 매일 순돌에게 써먹었다.

“통행료.”

득룡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무슨 통행료요?”

“의금부 대문 통행료. 여긴 나라 대문이야. 공짜로 드나드는 데가 아니야. 그 보자기 안에 뭐 있어?”

“할아버지 밥이요.”

“짠지 있지? 짠지 하나.”

순돌은 보자기를 품에 끌어안았다. 세 번째 쪽은 순돌의 것이었고,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할아버지 것이었다. 득룡에게 줄 쪽은 어디에도 없었다.

“없어요.”

“있잖아. 냄새나는데.”

득룡이 보자기 끝을 잡아당겼다. 순돌은 놓지 않았다. 둘이 보자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당 한복판에서 버텼다. 보자기 매듭이 풀리기 직전에 마당 저편에서 갑산의 목소리가 났다.

“순돌아.”

득룡이 보자기를 놓았다. 순돌은 뒤로 넘어지면서 보자기를 하늘로 쳐들었다.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도시락은 흙에 닿지 않았다. 갑산이 다가와 손자를 일으켜 세우고, 득룡을 한 번 보았다. 쉰넷의 옥졸은 열일곱의 우두머리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 대신 허리춤의 사발을 풀어 우물로 갔다. 귀 하나가 떨어져 나간 사발이었다.

“할아버지, 저 형이 짠지를 달래요.”

“달라면 줘라.”

“그럼 제 쪽이 없어지잖아요.”

“그럼 주지 마라.”

순돌은 할아버지의 말이 어느 쪽인지 몰라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갑산은 사발에 물을 담으면서 웃었다. 웃을 때 이가 두 개 빠진 자리가 보였다.

*

그달 옥에는 조안이라는 사람의 일이 걸려 있었다.

조안은 관직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 내자시의 여종 우지 사이의 관계가 문제가 되었다. 내자시는 궁에 들일 쌀과 장과 술 같은 것을 맡아보던 관청이었고, 우지는 그 관청에 딸린 종이었다. 관직을 가진 남자와 관청의 여종. 두 사람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두고 말이 엇갈렸다.

순돌은 그 말이 무엇인지 몰랐다. 다만 심문하는 마루 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것을 마당 끝 우물가에서 들었다. 한 목소리가 무언가를 말하면 다른 목소리가 아니라고 했고, 그러면 처음 목소리가 다시 무언가를 말했다. 말은 들리지 않고 높낮이만 들렸다. 높낮이는 서로 맞지 않았다.

“할아버지, 저 사람들 왜 싸워요?”

“싸우는 거 아니다. 말이 안 맞는 거다.”

“말이 안 맞으면 어떻게 해요?”

갑산은 대답하지 않고 사발을 들어 물을 마셨다. 대답 대신 물을 마시는 것이 할아버지의 버릇이라는 것을 순돌은 그해에 알았다.

대답은 그날 오후 억쇠의 입에서 나왔다. 억쇠는 예순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컸지만 등이 굽어서, 큰 목소리가 땅바닥을 향해 나갔다.

“말이 안 맞으면 매로 맞추는 거야. 의금부에서 고문으로 캐겠다고 위에 청을 올렸대. 임금께서 허락만 하시면 내일부터 형틀 놓는다.”

억쇠는 손바닥을 비볐다. 서른 해 전 성문 앞에서 사람 수를 세던 손이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더 두꺼워져 있었다.

“득룡아, 내일 담장 위 자리 준비해라. 관원 하나에 여종 하나니까 사람들 꽤 올 거다.”

득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순돌을 보았다. 순돌은 처음으로 득룡의 눈이 아버지 억쇠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보는데 사람 너머 담장 위를 보는 눈이었다.

*

그날 밤 순돌은 집에 가지 않고 옥졸 방 구석에서 잤다. 할아버지가 야번이었다. 어머니가 데리러 오지 않은 것은 데리러 와도 순돌이 안 갈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자다가 깨니 할아버지가 방에 없었다. 순돌은 맨발로 마당에 나갔다. 달이 밝았다. 할아버지가 옥 칸 하나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사발을 판자 아래 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칸 안에서 손 하나가 사발을 받아 갔다. 손이 가늘었다. 여자 손이었다.

순돌은 할아버지 등 뒤에 섰다. 갑산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발 시리겠다. 신 신고 와라.”

“저 사람이 우지예요?”

“그래.”

“내일 매 맞아요?”

“모른다. 임금께서 정하신다.”

사발이 판자 틈으로 돌아 나왔다. 비어 있었다. 갑산은 사발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는 왜 물을 줘요? 저 사람 할아버지가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다.”

“그럼 왜요?”

갑산은 사발 귀 떨어진 자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한참 그러고 있다가 말했다.

“사람이 옥에 들어오면 다들 그 사람한테 뭘 물어. 무슨 짓을 했느냐? 누구랑 했느냐? 왜 했느냐? 물 마시겠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어. 그래서 내가 묻는 거다.”

순돌은 그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들은 것은 하나였다. 할아버지는 묻지 않고 그냥 준다는 것. 묻는다고 했지만 묻지 않았다는 것.

칸 안에서 짚이 바스락거렸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우지가 무슨 마음이었는지 순돌은 몰랐다. 그날 밤 그 칸 안에서 무엇을 생각했는지, 조안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여겼는지, 기록은 말하지 않는다. 기록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여겼다는 말이 없다. 말이 엇갈렸다는 것만 있다.

*

이튿날 아침 억쇠는 답이 내려오기도 전에 형틀부터 마당에 내놓았다. 창고에서 꺼낸 형틀은 다리 하나가 짧아서 땅에 놓자 한쪽으로 기우뚱했다. 억쇠가 득룡에게 받칠 것을 가져오라고 했고, 득룡은 창고를 뒤지다가 깨진 기와 조각을 들고 나왔다. 기와를 받치니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기울었다. 득룡이 기와를 반으로 깨서 다시 받쳤다. 형틀이 겨우 섰다.

“아버지, 이거 사람 올리면 또 기울어요.”

“사람이 올라가면 사람 무게로 선다. 원래 그런 거야.”

순돌은 우물가에서 그 말을 듣고 할아버지를 보았다. 갑산은 형틀 쪽을 보지 않고 사발에 물을 담고 있었다. 순돌은 형틀이 끝내 아무도 올리지 않고 기와 조각 위에서 기우뚱한 채로 하루를 보내기를 바랐다. 그 바람이 무엇인지 열한 살 아이는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5월 18일, 위에서 답이 내려왔다. 맹씨 성을 가진 서리 하나가 그 답을 들고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뒷날 순돌이 엿 서리라고 부르게 되는 맹 서리의 아버지였고, 소매에 엿을 넣고 다니는 버릇은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그 엿을 이로 끊으며 서리가 외쳤다.

“논죄하지 말래요!”

억쇠가 서리를 돌아보았다.

“뭐?”

“임금께서 죄를 따지지 말라 하셨대요. 고문도 안 한대요. 조안의 고신만 거두랍니다.”

“고신?”

순돌이 할아버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갑산이 낮게 말했다.

“관직을 준다는 나라 증서다. 그걸 거둬 가면 그 사람은 벼슬이 없어지는 거다.”

“그럼 매는요?”

“안 맞는다.”

억쇠가 마당 한가운데서 손바닥을 비비던 손을 멈췄다. 득룡은 담장 위 자리에 깔려던 거적을 든 채 서 있었다. 거적 한쪽 끝이 땅에 끌렸다. 그 사이 마당 한가운데 형틀이 기와 조각 위에서 스르르 기울더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옆으로 쓰러졌다. 쿵 소리에 서리가 엿을 삼켜 버렸고, 한참 가슴을 두드렸다. 순돌은 웃음이 터질 뻔해서 할아버지 옷자락에 얼굴을 묻었다.

의금부는 매로 캐자고 했고, 임금은 그러지 말라 했다. 의금부가 청하고 임금이 물린 일, 실록에는 그것이 남았다. 같은 마루 위에서 청한 쪽과 물린 쪽이 어떤 얼굴로 서로를 보았는지는 남지 않았다. 다만 그 결정이 옥 마당에 닿았을 때, 억쇠의 얼굴과 갑산의 얼굴이 어떻게 달랐는지는 열한 살 아이가 보았다.

억쇠가 갑산에게 다가왔다.

“자네는 좋겠군.”

“좋을 게 뭐 있소?”

“아무도 안 맞으니까.”

“관원은 벼슬을 잃었소.”

“종이 한 장이야. 종이 한 장 잃는 게 매 맞는 거에 비하면 뭐야?”

갑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순돌은 할아버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몰랐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서른넷이 된 순돌이 같은 옥 마당에서 다른 여자의 칸 앞에 섰을 때 그날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고신은 조안을 향한 처분이었다. 우지에게 무엇이 내려졌는지 그날 마당에 닿은 말에는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 빠진 자리를 보고 있었다.

*

그날 오후 조안이 의금부를 나갔다. 순돌은 대문 옆 우물가에서 그 사람을 보았다. 얼굴은 순돌이 생각한 것보다 평범했다. 조안은 대문을 나서기 전에 옥 칸들 쪽을 한 번 돌아보았다. 오래 보지 않았다. 그리고 나갔다.

그 사람이 무엇을 보려고 돌아보았는지 순돌은 알 수 없었다. 기록도 말하지 않는다.

득룡이 거적을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순돌 곁을 지나갔다. 지나가다 멈춰 섰다.

“오늘 공쳤다. 짠지 하나 내놔.”

순돌은 보자기를 풀었다. 짠지 세 번째 쪽이 아직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가 남겨 준 쪽이었다. 순돌은 그것을 손가락으로 집어 득룡에게 내밀었다.

득룡이 놀란 얼굴로 순돌을 보았다.

“진짜 주냐?”

“오늘은 아무도 안 맞았잖아요.”

득룡은 짠지를 받아 입에 넣었다. 짰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찡그린 채로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고 대문 쪽으로 갔다. 대문 앞에서 아버지 억쇠가 기다리고 있었다. 억쇠는 아들의 입이 우물거리는 것을 보고 무엇을 먹느냐고 물었다. 득룡은 대답하지 않았다.

갑산은 우물가 돌에 앉아 도시락을 열었다. 보리밥 위에 짠지가 두 쪽 남아 있었다. 갑산은 한 쪽을 손자에게 주었다.

“네 쪽은 줬으니 이건 내 쪽이다. 반은 네 거다.”

순돌은 짠지를 반으로 갈랐다. 반은 할아버지 밥 위에 올리고 반은 제 입에 넣었다. 짰다. 보리밥이 달게 느껴질 만큼 짰다. 5월의 옥 마당에서 담장 너머 보리 이삭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은 정말로 아무도 맞지 않았다. 일곱 해 뒤 같은 옥 마당에서, 열여덟 살이 된 순돌은 처음으로 사람이 맞는 것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

바탕: 『세조실록』 7권, 세조 3년(1457) 5월 18일 4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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