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026자)
곤장과 변방
실록에 남은 조선의 불륜 재판 · 서지오
세종 9년, 1427년 9월 14일, 한양의 옥 마당에서 처음으로 구경 값이 오갔다.
값은 쌀이 아니었다. 첫 손님은 마포 쪽에서 왔다는 닭 장수였는데, 쌀 대신 산 닭 한 마리를 두 다리 묶어 거꾸로 들고 왔다. 억쇠는 닭을 받아 들고 한참 망설였다. 쌀은 손바닥에서 튕겨 무게를 재면 되는데, 닭은 튕기면 퍼덕였다. 억쇠는 닭의 무게를 끝내 재지 못하고 옥졸 방 기둥에 묶어 두었다.
“한 번만이오. 얼굴만.”
닭 장수는 판자 틈에 눈을 댔다. 억쇠가 그날 아침 송곳으로 그 판자 틈을 냈다. 갑산은 억쇠가 판자 앞에 쪼그려 앉아 송곳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송곳이 판자를 뚫고 나올 때 나무 부스러기가 억쇠의 무릎에 떨어졌고, 억쇠는 그것을 털지도 않고 틈 너머를 한 번 들여다보았다. 들여다본 다음에 억쇠는 웃었다. 갑산은 그 웃음을 오래 기억했다. 무언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닭 장수는 한참 들여다보다가 눈을 떼고 고개를 갸웃했다.
“어둡소.”
“옥이 원래 어둡소.”
“닭 한 마리 값으로는 너무 어둡소.”
“그럼 닭을 반 마리만 받을까?”
닭 장수가 대답하기 전에 기둥에 묶인 닭이 끈을 풀고 옥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황소가 소리를 지르며 뒤를 쫓았다. 황소는 쥐는 무서워했지만 닭은 무서워하지 않았다. 다만 잡지를 못했다. 닭은 옥 마당을 세 바퀴 돌고 우물 돌 위에 올라가 홰를 쳤다. 닭 장수는 제 닭을 보며 박수를 쳤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 가운데 판자 틈 너머의 여자를 생각한 사람은 갑산 하나였다.
*
판자 너머의 여자는 유감동이었다.
갑산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남편을 떠난 여자라고 했다. 떠난 뒤로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그 일이 드러나자 조정에서 처벌하라는 말이 이어졌고, 그 말들 가운데에는 극형을 달라는 말도 있었다.
같은 날 궐 안에서는 그 말이 임금 앞에 올라가 있었다. 실록은 극형을 요구하는 쪽과, 형률에 있는 대로 하겠다는 세종의 뜻을 함께 적는다. 신하들이 어떤 말로 극형을 청했는지 그 결은 실록에 남았다. 말은 이런 모양이었을 것이다.
“한 여자가 남편을 버리고 여러 사내와 어울렸습니다. 이 일을 가볍게 다스리면 집집마다 아내들이 이를 보고 배웁니다. 나라의 풍속이 이 한 사람에게 달렸습니다. 극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임금의 뜻은 짧았을 것이다. 형률이 정한 것을 넘지 않겠다는 것. 미운 죄가 있다고 해서 법에 없는 벌을 덧붙이지 않겠다는 것. 극형을 청하는 말은 그치지 않았고, 이틀 뒤에는 다른 길이 열렸다.
옥 마당의 갑산은 그 말들을 직접 듣지 못했다. 그날 저녁 억쇠가 어디서 들었는지 그 말을 옥졸 방에 옮겨 놓았다.
“극형은 안 된대. 임금께서 형률대로 하라셨대.”
억쇠는 그 말을 하면서 얼굴이 어두웠다. 갑산은 그 얼굴이 이상했다.
“왜 그러십니까? 사람 하나 안 죽으면 좋은 일 아닙니까?”
“좋지. 좋은데, 구경꾼이 줄어.”
억쇠는 진심이었다. 갑산은 그 진심이 무서웠다. 옥에서 한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가 억쇠에게는 줄 선 사람의 수였다.
*
9월 16일, 상소 하나가 올라갔다. 곤장을 치고, 변방 고을의 노비로 보내자는 상소였다. 세종은 그 상소를 받아들였다. 극형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벼운 벌도 아니었다. 매를 맞은 몸으로 먼 변방 고을까지 가서, 거기서 남은 날을 나라의 종으로 살아야 했다.
“장은 우리 옥에서 친다.”
억쇠가 옥졸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그리고 갑산을 가리켰다.
“네가 쳐.”
“제가요?”
“네가 저 여자한테 물 나르잖아. 정 붙은 놈이 쳐야 사람들이 더 본다. 정 붙은 놈이 어떻게 치나 보려고. 그리고 세게 쳐. 구경꾼이 소리를 들어야 돈을 내지.”
“형률에 정한 대로만 치겠습니다.”
“형률에 세게 치지 말란 말이 있냐?”
“세게 치란 말도 없습니다.”
황소가 옆에서 입을 막고 웃음을 참았다. 억쇠가 황소를 노려보았다. 황소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붉어졌고, 결국 딸꾹질이 터졌다. 딸꾹질은 그날 저녁까지 그치지 않았다. 억쇠는 황소의 딸꾹질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갑산의 말이 다시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날 억쇠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
장을 치는 날 아침, 옥 마당 담장 위에 사람이 열 남짓 올라앉아 있었다. 억쇠는 담장 위 자리에도 값을 매겼다. 값은 이번에는 쌀이었다. 닭은 받지 않는다고 대문에 써 붙였는데, 글을 아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대문 앞에서 입으로 다시 말해야 했다.
갑산은 장을 치기 전에 우물에서 물을 길었다. 사발에 물을 담아 형틀 쪽으로 걸어갔다. 형틀 곁에 유감동이 서 있었다. 나졸 둘이 양옆에 있었다. 갑산은 여자의 얼굴을 보지 않고 사발만 내밀었다.
“물이오.”
여자의 손이 사발을 향해 올라왔다. 그때 억쇠가 다가왔다.
“물은 매 맞고 나서 줘. 매 맞기 전에 물 먹으면 기운이 나서 소리를 안 질러. 소리가 안 나면 구경이 안 돼.”
억쇠는 그렇게 말하면서 갑산의 손목을 쳤다. 세게 친 것이 아니었다. 귀찮은 파리를 쫓듯 손등으로 툭 쳤을 뿐이었다. 사발이 갑산의 손에서 미끄러졌다. 갑산은 사발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손끝에 귀 하나가 걸렸다가 빠져나갔다. 사발은 형틀 받침돌에 떨어졌다. 맑은 소리가 났다. 놋그릇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높았다. 담장 위 구경꾼들이 그 소리에 한꺼번에 고개를 돌렸다.
물이 돌 위에 쏟아져 번졌다. 사발은 돌 아래로 굴러 엎어졌다. 갑산이 사발을 집어 들었을 때 한쪽 귀가 없었다. 떨어져 나간 귀는 받침돌 옆 흙 속에 반쯤 박혀 있었다.
갑산은 귀를 줍지 않았다. 사발을 들고 다시 우물로 갔다. 억쇠가 뒤에서 무어라 소리쳤는데 갑산은 듣지 않았다. 물을 다시 길었다. 귀 하나 남은 사발에 물을 담아 다시 형틀로 왔다. 억쇠 앞을 지나 여자에게 사발을 내밀었다.
“물이오.”
억쇠는 이번에는 손을 들지 않았다. 담장 위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 그 눈들이 억쇠의 손을 막았다. 억쇠가 판 구경이 억쇠를 묶은 셈이었다.
여자는 사발을 받아 물을 마셨다. 떨어져 나간 귀 자리에 갓 생긴 날카로운 결이 있었다. 갑산은 여자의 입술이 그 결에 닿지 않도록 사발을 받쳐 든 손을 조금 돌렸다. 여자는 물을 다 마셨다. 기록은 그 아침 그녀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갑산은 사발이 비어서 돌아왔다는 것만 알았다.
*
갑산은 형률이 정한 대로 쳤다. 형률이 정한 수를 넘지 않았고, 정한 수에서 빼지도 않았다. 빼지 않은 것을 갑산은 평생 한 번도 자랑하지 않았다. 넘지 않은 것도 자랑하지 않았다.
억쇠가 바라던 소리는 담장 위까지 올라가지 않았다. 구경꾼 몇은 중간에 담장에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쌀값을 돌려 달라고 했고, 억쇠는 돌려주지 않았다. 대문 앞에서 한참 실랑이가 났다. 그 실랑이 소리가 장 치는 소리보다 컸다.
장이 끝나고 갑산은 매를 놓았다. 손바닥이 매 자루 모양대로 붉게 패어 있었다. 갑산은 우물가에 가서 손을 씻었다. 우물물에서 쇠 맛이 났다. 그날 처음으로 갑산은 그 맛이 땅 밑에 묻힌 칼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지어낸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손자가 생기고 나서야 했다.
*
그날 저녁 닭 장수가 다시 왔다. 아침에 우물 돌 위에서 홰를 치던 닭은 하루 종일 옥 마당을 돌아다니다가, 해 질 녘에 옥졸 방 아궁이 옆 짚더미에 들어앉아 있었다. 황소가 들여다보니 닭 밑에 알이 하나 있었다.
“내 닭 돌려주시오. 구경은 어두워서 못 했으니까.”
“닭은 돌려주지. 알은 안 돼.”
억쇠가 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말했다. 이번에는 무게를 쟀다. 알은 튕겨도 퍼덕이지 않았다.
“알이 왜 안 되오?”
“우리 옥에서 낳았잖아. 우리 옥 짚에서. 짚값이야.”
“그럼 닭이 하루 종일 먹은 옥 마당 벌레는? 벌레값은 내가 받아야지.”
“벌레가 나라 거냐?”
“짚은 나라 거요?”
둘은 알 하나를 두고 한참을 다퉜다. 황소가 그 사이에 딸꾹질을 하며 닭을 안아다 닭 장수 품에 넣어 주었다. 닭 장수는 닭을 받아 들고도 알을 포기하지 못해 문간에 서 있었다. 결국 억쇠가 알을 갑산에게 던졌다.
“네가 먹어. 오늘 장 친 값이다.”
갑산은 알을 받아 닭 장수에게 건넸다. 닭 장수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알과 닭을 함께 안고 문을 나갔다. 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다음엔 오리를 가져오겠소. 오리는 알을 더 크게 낳으니까.”
억쇠는 오리가 들어오면 우물에 뛰어들 것이라며 대문에 「오리 안 받음」을 써 붙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글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
변방으로 떠나는 날, 갑산은 성문까지 따라갔다. 압송하는 일은 다른 옥졸이 맡았다. 갑산은 그저 따라갔다. 아무도 따라가라 하지 않았고,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 하지 않았다.
성문 밖으로 길이 멀리 뻗어 있었다. 그 길 끝에 어느 고을이 있는지, 거기까지 며칠이 걸리는지 갑산은 몰랐다. 그 고을에서 그 여자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몰랐다. 기록은 거기까지 따라가지 않는다.
억쇠도 성문까지 나와 있었다. 억쇠는 압송 행렬을 보지 않고 성문 앞에 모인 사람들의 수를 세고 있었다.
“이번엔 별로였어. 다음엔 더 큰 걸로 해야 돼.”
“더 큰 게 뭡니까?”
“사형. 죽는 건 다들 보러 와. 극형 소리 나올 때 내가 얼마나 기대했는데.”
억쇠가 갑산의 사발을 흘끗 보았다. 귀 떨어진 자리를 보았다.
“그거 새로 하나 사. 귀 떨어진 사발 들고 다니면 옥졸 체면이 뭐가 돼?”
“이걸로 됐습니다.”
“왜?”
갑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은 자기도 몰랐다. 다만 손가락 끝이 떨어져 나간 귀 자리에 닿을 때마다 그날 아침의 소리가 났다. 놋그릇이 돌에 부딪히는 높은 소리. 그 소리를 잊지 않으려면 이 사발이 있어야 했다.
억쇠는 혀를 차고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중에 내 아들한테 다 일러 줄 거다. 오씨네는 사발 귀 떨어진 것 하나로 평생 고집 부린다고.”
억쇠의 아들은 그로부터 열세 해 뒤에 태어난다. 이름은 득룡이 된다. 쌀 만 섬을 모으라고 지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서른 해 뒤 1457년, 의금부 옥 마당에는 열한 살 사내아이 하나가 보자기에 싼 도시락을 들고 들어온다. 갑산의 손자, 순돌이었다.
바탕: 『세종실록』 37권, 세종 9년(1427) 9월 14일·9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