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95자)

조모가 아프다는 말

실록에 남은 조선의 불륜 재판 · 서지오

세종 9년, 1427년 8월 24일의 한양은 늦더위가 꺾이지 않아 골목마다 쉰내가 났다.

오갑산은 옥졸이 된 지 보름째였다. 나이는 스물넷이었고, 옥졸 옷이 아직 몸에 맞지 않아 소매 끝을 두 번 접어 입었다. 허리춤에는 놋 사발 하나를 끈으로 묶어 달고 다녔다. 어머니가 옥에 들어가는 아들에게 무엇을 줄까 고민하다가 부엌에서 제일 좋은 그릇을 골라 주었다. 손잡이 귀가 양쪽에 하나씩 달린 사발이었다. 새것은 아니었지만 귀 두 개가 다 멀쩡했고, 재로 닦아서 누런빛이 돌았다.

“옥에 들면 사람들이 목이 마를 거다. 물부터 줘라.”

어머니는 그 말만 했다. 갑산은 그것이 옥졸의 일인 줄 알았다. 보름 동안 옥을 지켜 보니 아니었다. 옥졸의 일은 문을 지키는 것이었고, 물은 누가 시키지 않으면 아무도 주지 않았다. 갑산은 시키지 않아도 주었다. 그래서 보름 동안 우두머리 구억쇠에게 두 번 혼이 났다.

그날 아침 억쇠가 갑산을 불렀다.

“너, 나 따라와. 양반 집에 간다.”

“무슨 일입니까?”

“양반 집 안방 일이야. 우린 문밖에 서 있으면 돼. 입 다물고.”

억쇠는 서른이었다. 어깨가 넓고 목소리가 컸는데, 그 목소리는 아랫사람 앞에서만 컸다. 옥에 높은 관원이 들어오면 억쇠의 목소리는 갑산이 놀랄 만큼 작아졌다. 같은 옥졸 황소는 그것을 두고 억쇠 나리 목에는 문이 달려 있다고 했다. 위로는 닫히고 아래로는 열리는 문이라고.

*

권채의 집은 담이 높았다. 대문 앞에 조사 나온 관원 하나와 서리 하나가 서 있었고, 갑산과 억쇠는 그 뒤에 섰다. 관원은 젊었다. 갑산이 보기에 자기보다 서너 살쯤 많아 보였는데, 대문을 두드리기 전에 갓끈을 세 번 고쳐 맸다.

이 일이 어떻게 나라에 알려졌는지 갑산은 몰랐다. 아는 것은 길에서 서리가 관원에게 낮게 읽어 준 몇 줄이 전부였다. 권채라는 관리의 집에 덕금이라는 비첩이 있다. 비첩은 종의 신분으로 주인의 첩이 된 여자다. 덕금이 병든 조모를 보러 다녀온 뒤, 권채의 아내 정씨가 덕금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고 의심했다. 그 뒤로 덕금은 갇혔고 심하게 상했다.

“조모를 보러 간 게 죄요?”

갑산이 무심코 물었다. 억쇠가 갑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쳤다. 숨이 턱 막혔다.

“입 다물라고 했지.”

대문이 열렸다. 늙은 하인이 나와 관원에게 허리를 숙였다. 하인은 관원의 얼굴을 보지 않고 관원의 신발을 보았다. 집 안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났다가 금방 그쳤다. 갑산은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목소리가 그친 뒤 집 전체가 숨을 참는 것 같았다.

관원과 서리가 안으로 들어갔다. 억쇠는 대문 문턱 바깥에 버티고 섰다. 갑산도 따라 섰다.

“우린 여기까지야.”

“안에 사람이 다쳤다면서요.”

“남의 집 종이야. 남의 집 물건이 상한 거고. 그 집 주인이 알아서 할 일이야. 우리가 들어가서 뭘 해? 양반 집 안마당에 옥졸이 발을 들이면 그게 다 내 목으로 돌아와.”

억쇠의 말은 틀린 데가 없어 보였다. 갑산은 그래서 더 답답했다. 억쇠는 양반을 무서워했고, 그 무서움은 매번 옳은 말의 모양을 하고 나왔다.

마당 안쪽에서 관원이 불렀다.

“옥졸, 들어와라. 사람을 들어 옮겨야겠다.”

억쇠는 잠깐 얼굴이 굳었다가, 곧 갑산의 등을 떠밀었다.

“네가 가.”

*

헛간은 안채 뒤에 있었다. 문에 빗장이 걸려 있었고, 빗장 나무는 손때가 아니라 새로 깎은 결이 보였다. 누군가 그 문을 잠그려고 일부러 새 빗장을 깎아 달았다. 하인이 빗장을 벗겼다. 손이 떨려서 두 번 만에 벗겼다.

문이 열리자 냄새가 먼저 나왔다. 오래 갈지 않은 짚과 땀과, 상처에서 나는 냄새였다. 갑산은 그 냄새를 맡고 한 걸음 물러섰다가, 물러선 자기가 부끄러워서 두 걸음 들어갔다.

여자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갑산은 여자의 몸을 오래 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자는 일어서지 못했다. 관원이 무어라 묻자 여자는 고개를 숙였다.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대답할 힘이 목까지 올라오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갑산은 허리춤의 사발을 풀었다. 헛간 밖 물동이에서 물을 떠 왔다. 물동이는 마당 한가운데 있었는데, 갑산이 물을 뜨는 동안 안채의 문 하나가 아주 조금 열렸다가 닫혔다. 갑산은 그쪽을 보지 않았다.

“물이오.”

여자가 사발을 받았다. 두 손으로 받았는데, 두 손이 다 떨려서 물이 사발 귀를 타고 흘러내렸다. 갑산은 사발 밑을 손바닥으로 받쳐 주었다. 여자는 물을 마셨다. 다 마시고 나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쉬어서 거의 숨소리였다.

“할머니는요.”

갑산은 대답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 살아 있는지 갑산은 아무것도 몰랐다. 관원도 몰랐다. 서리도 몰랐다. 그 집에서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기록은 그 조모의 이름도, 그 뒤에 그 조모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모르오. 알아보겠소.”

갑산은 그렇게 말해 버렸다. 옥졸이 할 수 있는 약속이 아니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사발을 갑산에게 돌려주었다. 사발 귀에 물기가 남아 있었다.

*

덕금은 관아 뒤채로 옮겨졌다. 조사를 받는 동안 몸을 누일 자리가 필요했고, 그 자리를 지킬 사람이 필요했다. 억쇠가 그 일을 갑산에게 넘겼다.

“네가 들쳐 업고 나왔으니 네가 지켜.”

그날 밤 덕금은 열이 올랐다. 갑산은 뒤채 문밖에 앉아 있다가 안에서 이가 딱딱 부딪는 소리를 들었다. 늦더위에 사람이 그렇게 떨 수 있다는 것을 갑산은 처음 알았다.

갑산은 억쇠를 찾아갔다. 억쇠는 옥졸 방에서 황소와 내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종이 쪽지에 숫자를 그려 하나씩 뒤집는 놀이였는데, 황소가 이미 사흘 치 저녁밥을 잃은 판이었다.

“약을 좀 써야겠습니다.”

“약?”

억쇠가 쪽지를 내려놓았다.

“약값은 누가 내? 나라가 내? 그 집 주인이 내? 그 집 안주인이 패 놓은 종한테 그 집에서 약값을 대 주겠냐? 나라는 조사를 하지 약을 안 해. 쓸데없는 데 쌀 쓰지 마.”

“그럼 제 쌀로 쓰겠습니다.”

“네 쌀?”

억쇠가 웃었다. 황소는 웃지 않았다. 황소는 갑산의 얼굴을 보다가 슬그머니 쪽지를 접었다. 판이 끝났다는 뜻이었고, 사흘 치 저녁밥을 지킨 셈이었다.

“네 녹봉으로 남의 집 종 약을 사겠다고? 그 종이 낫으면 어디로 가는 줄 아냐? 그 집으로 간다. 그 집 주인 물건이니까. 네가 고쳐서 그 집에 돌려보내는 거야. 그 안주인한테. 그래도 사겠냐?”

갑산은 대답하지 못했다. 억쇠의 말에서 가장 아픈 데가 그것이었다. 억쇠는 그것을 알고 말했다.

갑산은 그래도 약을 샀다. 다음 날 아침 받기로 한 녹봉 쌀 가운데 다섯 되를 미리 약방에 잡혔다. 약방 주인은 옥졸이 약을 사러 온 것은 처음 본다며 반 되를 깎아 주었다. 깎아 준 반 되만큼 약방 주인은 이것저것 캐물었고, 갑산은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약방 주인은 대답을 못 들은 값으로 반 되를 도로 받을까 하는 얼굴을 하다가 말았다.

*

황소가 약 달이는 일을 거들었다. 황소는 덩치가 갑산의 갑절인데 쥐를 무서워했다. 뒤채 부엌 아궁이 옆으로 쥐 한 마리가 지나가자 황소는 약탕관을 든 채 부뚜막 위로 뛰어올랐다. 약은 한 방울도 쏟지 않았다. 갑산은 그것이 오늘 본 것 가운데 가장 대단한 재주라고 생각했다.

“형님, 쥐가 무서운데 옥졸은 어떻게 하시오?”

“옥에는 쥐가 많아서 오히려 괜찮아. 많으면 익숙해져. 한 마리가 무서운 거야. 한 마리는 어디서 나올지 모르거든.”

황소는 부뚜막에서 내려와 약탕관을 갑산에게 넘겼다. 그리고 문밖으로 나가다가 돌아보았다.

“근데 갑산아. 그 집주인은 어디 있었냐? 권채 나리 말이야. 자기 첩이 헛간에 갇혀 있는 동안.”

갑산은 그 물음을 다음 날 관원에게 그대로 했다. 관원은 뒤채 마루에 앉아 서리가 적은 종이를 넘기고 있었다. 관원은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그걸 묻는 게 조사다.”

“안주인이 가뒀다는 건 압니다. 주인은요?”

관원이 그제야 눈을 들었다. 갓끈은 오늘도 세 번 고쳐 맨 모양이었다.

“옥졸이 물을 일은 아니다.”

“압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낫으면 그 집으로 간다고 들었습니다.”

관원은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마루 끝으로 바람이 한 번 들어왔다. 늦더위가 처음으로 조금 꺾인 바람이었다.

“이 일은 위로 올라가 있다. 나라가 들여다보고 있다. 그 집 안주인 하나만 볼 일인지, 그 집 전체를 볼 일인지, 그건 내가 정하지 않는다.”

이 일은 실제로 위로 올라갔다. 8월 24일에 실록에 오른 일은 8월 27일에 다시 올랐고, 9월 3일에 또 올랐다. 한 집 안의 질투가 나라의 조사가 되었다. 그 기사들이 누구에게 무엇을 묻고 무엇을 정했든, 덕금이 그 조사 동안 무엇을 바랐는지는 거기에 없다. 비첩의 바람은 조사가 묻는 것이 아니었다.

*

덕금의 열은 사흘째에 내렸다. 갑산은 약 사발과 물 사발을 번갈아 들고 뒤채 문을 드나들었다. 덕금은 그동안 말이 없었다. 사흘째 저녁, 갑산이 물 사발을 내밀었을 때 덕금이 사발을 받지 않고 물었다.

“저는 그 집으로 돌아가요?”

갑산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억쇠의 말이 그대로 돌아왔다. 네가 고쳐서 그 집에 돌려보내는 거야.

“모르오.”

갑산은 오늘도 모른다고 말했다. 할머니도 모르고,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옥졸은 아는 것이 없었다.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 사발을 들고 서 있었다.

덕금은 한참 있다가 사발을 받았다. 물을 다 마셨다. 사발을 돌려주면서 덕금이 처음으로 갑산의 얼굴을 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는데, 하지 않았다. 갑산은 그 얼굴을 오래 기억했다. 늙어서 손자에게 이야기할 때도 그 얼굴만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

9월 초순, 갑산은 옥 마당으로 돌아왔다. 억쇠가 문간에 앉아 있었다. 억쇠 앞에 처음 보는 사람 셋이 줄을 서 있었다. 억쇠는 갑산을 보자 손짓으로 불렀다.

“너 돌아왔구나. 잘됐다. 곧 큰 손님이 든다.”

“누가 듭니까?”

“남편을 버리고 나간 여자. 이 사내 저 사내랑 관계를 맺었다는 여자. 조정에서 극형을 달라는 말까지 나왔대. 이름이 유감동이야.”

억쇠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리면서 손바닥을 비볐다. 줄 선 세 사람이 고개를 쭉 뺐다. 갑산은 허리춤의 사발을 만졌다. 귀 두 개가 다 멀쩡했다. 아직은.

바탕: 『세종실록』 37권, 세종 9년(1427) 8월 24일·8월 27일·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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