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096자)
따로 적힌 관계
실록에 남은 조선의 불륜 재판 · 서지오
성종 11년, 1480년 10월의 그날 새벽, 의금부 옥 마당에는 서리가 하얗게 앉아 있었다.
순돌은 우물 두레박을 내리기 전에 줄에 붙은 얼음부터 손톱으로 긁어냈다. 얼음 조각이 우물 안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한참 뒤에야 올라왔다. 물을 길어 사발에 담자 사발 바깥에 금세 이슬이 맺혔고, 이슬이 엄지에 닿는 자리가 떨어져 나간 귀 자리였다. 순돌은 사발을 들고 북쪽 칸으로 걸어갔다. 판자의 송곳 자국은 밤사이 누가 헝겊으로 막아 놓았다. 순돌이 막은 것이 아니었다. 맹 서리일지 젊은 나졸일지, 순돌은 묻지 않기로 했다.
사발을 판자 아래로 밀어 넣었다. 손이 사발을 끌어갔다. 사발은 나오지 않았다.
순돌은 판자 앞에 쪼그려 앉은 채 기다렸다. 마당 저편에서 압송할 나졸들이 모이는 소리가 났다. 오랏줄을 푸는 소리, 짚신 끈을 다시 묶는 소리, 누가 하품을 참다 실패하는 소리. 사발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순돌은 일어섰다. 무릎에 판자 바닥의 냉기가 둥글게 남았다.
*
압송 길은 옥문에서 형장 마당까지 몇백 걸음이 되지 않았다. 평소라면 짧은 길이었다. 그날은 길 양쪽에 사람이 서 있어서, 걸음마다 사람 얼굴이 하나씩 지나갔다. 새벽 서리가 녹은 길바닥은 질척했고, 사람들 짚신에서 튄 진흙이 길 가운데까지 흩어져 있었다. 누군가 아침으로 먹다 들고 나온 군밤 냄새가 났고, 그 냄새 사이로 지난밤 형장 마당에 피워 둔 모닥불의 젖은 재 냄새가 섞여 들었다. 담장 위에는 아이들이 아니라 다 큰 사내들이 올라앉아 있었다. 득룡이 반 말씩 받았다는 자리였다.
순돌은 맨 앞에서 걸었다. 뒤에서 여자가 걸었다. 여자 양옆에 나졸이 하나씩 붙었다. 여자의 얼굴을 순돌은 보지 않았다. 앞을 보고 걸었다. 뒤에서 짚신 끄는 소리가 났다. 일정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길가 사람들 사이로 웬 사내 하나가 걸음을 맞춰 따라왔다.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갈라져 있었고, 갈라진 목소리를 일부러 더 갈라지게 냈다. 저잣거리 이야기판에서 입방울이라고 불리는 이야기꾼이었다. 입에서 말이 방울처럼 굴러 나온다고 붙은 이름인데, 아무도 그의 본명을 몰랐다.
“여러분, 들으시오! 옥에서 마지막 밤에 저 여자가 뭐라고 했는지 아시오? 나장이 물을 주니까 물은 됐고 술을 달라 했다는 거요! 술을 주니까 술은 됐고 사내를 달라 했다는 거요!”
길가에서 웃음이 터졌다. 웃음은 길을 따라 앞뒤로 번졌다. 순돌의 귀에는 그 웃음이 뒤에서 걸어오는 짚신 소리를 덮는 것으로 들렸다.
순돌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신 입방울 쪽으로 고개만 돌렸다.
“그 말 누구한테 들었소?”
“나장한테 들었지!”
“어느 나장이오?”
입방울은 대답 대신 길가 사람들에게 두 팔을 벌려 보였다. 사람들이 또 웃었다. 그 웃음 사이로 득룡의 얼굴이 보였다. 득룡은 길가 둘째 줄에 서서 뒷짐을 지고 있었다. 입방울이 그쪽을 한 번 흘끗 보았다.
순돌은 걸음을 멈췄다. 압송하는 나장이 길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추면 뒤의 나졸들도 멈춰야 했다. 짚신 소리가 그쳤다. 길 양쪽이 조용해졌다.
“그 여자는 아무 말도 안 했소. 물을 달라고도 안 했고, 술을 달라고도 안 했소. 내가 그 칸 물을 날랐소.”
입방울이 순돌을 보았다. 이야기꾼의 눈은 의외로 맑았다. 그 맑은 눈이 순돌을 위아래로 훑었다.
“아무 말도 안 했으니까 내가 지어내는 거요, 나장 나리. 아무 말도 안 하면 이야기가 안 되잖소?”
득룡이 둘째 줄에서 한 걸음 나왔다. 길가 사람들의 고개가 한쪽으로 쏠렸다.
“오 나장. 압송 중이야. 걸어.”
“이 사람 말을 거두게 하시오. 그럼 걷겠소.”
“말을 어떻게 거둬? 말은 쌀이 아니야. 한번 뱉으면 끝이지. 걸어. 안 그러면 자네가 형을 늦춘 걸로 올라가.”
순돌은 득룡을 보았다. 그 뒤로 길가의 얼굴들을 보았다. 아침의 생원이 있었다. 떡 함지를 인 할미가 있었다. 말뚝을 안고 따라오던 총각이 있었다. 모두 순돌을 보고 있었고, 순돌 뒤의 여자를 보고 있었다.
순돌은 맹 서리의 말을 떠올렸다. 그 얘기는 하지 마, 아무한테도. 그 얘기가 떠돌면 이야기가 재미없어지거든.
“이 여자와 엮인 일 가운데, 협박으로 맺어진 일이 있다고 따로 조정에 올라갔소.”
순돌은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길 양쪽이 숨을 죽이고 있어서 끝까지 다 들렸다. 입방울의 입이 반쯤 벌어진 채로 멈췄다.
“누가 누구를 겁줘서 맺은 일이오. 그것도 좋아서 한 짓이라고 하시겠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길을 한 번 쓸고 지나갔다. 떡 함지 위의 보자기가 펄럭였다.
득룡이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낮았다.
“걸어, 오 나장.”
순돌은 걸었다. 뒤에서 짚신 소리가 다시 났다. 아까와 같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순돌은 그 소리가 아까와 같다는 것이 이상하게 아팠다. 길가의 이야기 하나가 바뀌었다고 뒤의 걸음이 바뀌지는 않았다. 바뀌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기록은 그 길에서 그녀가 무엇을 들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
맹 서리는 형장 마당 담장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엿은 꺼내지 않았다.
“내가 하지 말랬지.”
“들었소.”
“들었는데 왜 해?”
“나리도 그 글 얘기를 왜 나한테 했소?”
맹 서리는 대답하지 못하고 제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소매 안에서 엿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나는 그냥 아는 걸 말하는 사람이야. 아는 걸 말하면 사람들이 나를 찾아. 그게 다야. 근데 자네는 아는 걸 길바닥에서 말하잖아. 그건 달라.”
“뭐가 다르오?”
“나는 엿을 받고, 자네는 매를 받지.”
맹 서리는 그 말을 해 놓고 스스로 놀란 얼굴이 되었다. 농담인지 아닌지 말한 사람도 몰랐다. 순돌은 담장 너머 마당을 보았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느라 웅성거렸다. 말뚝 없는 앞줄에는 아무도 서지 못하고 나졸들만 섰다. 득룡이 밤새 다시 박아 놓은 말뚝은 둘째 줄부터였다.
“협박한 사람은 어떻게 됐소?”
“나도 몰라.”
“나리가 모르는 게 요즘 많소.”
“요즘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아졌어. 엿이 안 넘어가.”
*
형은 짧았다.
순돌은 앞줄에 섰다. 그리고 형틀을 등지고 섰다. 형틀 쪽을 보지 않고 사람들 쪽을 보았다. 나장이 형장에서 그렇게 서는 법은 없었다. 그래도 아무도 순돌에게 돌아서라고 하지 않았다. 둘째 줄의 생원이 상소에 쓸 마지막 한 줄을 보려고 순돌의 어깨 너머로 목을 뺐다. 순돌은 어깨를 조금 옆으로 옮겼다. 생원의 목이 같이 옮겨 왔다. 순돌이 다시 옮겼다. 생원은 세 번째에 포기하고 목을 거두었다.
등 뒤에서 소리가 났다. 나무가 삐걱이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숨을 들이쉬는 소리. 그다음은 바람 소리뿐이었다. 떡장수 할미의 함지는 끝까지 보자기를 벗지 않았다. 할미는 떡 두 함지를 그대로 이고 마당을 나갔다. 나가면서 아무에게도 떡을 팔지 않았다.
실록은 교형이 집행되었다고 적는다. 그 앞에 신하들이 무엇을 다투었는지도 적는다. 그 여자가 마지막에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적지 않는다. 순돌도 보지 못했다. 순돌은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
사람들이 흩어질 때 생원이 순돌을 붙잡았다. 생원의 손에는 접힌 종이가 들려 있었다. 상소 초안이었다. 끝 한 줄이 비어 있었다.
“나장. 아까 길에서 한 말, 협박 얘기. 그거 어디서 나온 말이오? 누가 누구를 협박했소? 이름을 대 주시오.”
“모르오.”
“모르는데 그런 말을 했소?”
“그런 글이 조정에 올라갔다는 것만 아오.”
생원은 혀를 찼다. 종이를 펴서 빈 줄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출처도 모르는 말을 어떻게 상소에 쓰겠소? 상소는 아무 말이나 쓰는 데가 아니오.”
“아까 그 이야기꾼 말은 쓰시려 했잖소. 술 달라 했다는 말.”
생원의 손가락이 빈 줄 위에서 멈췄다. 생원은 순돌을 한참 보다가 헛기침을 했다. 갓끈이 목에 걸려 다시 헛기침이 났다.
“그건…… 다들 아는 말이니까.”
“다들 아는 말은 출처가 있소?”
생원은 대답 대신 종이를 도로 접었다. 접는 손이 서툴러서 종이 귀퉁이가 두 번 접혔다. 생원은 그것을 소매에 넣고 돌아섰다. 몇 걸음 가다가 돌아보고 무슨 말을 할 듯하더니, 하지 않고 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총각이 순돌에게 다가왔다. 총각은 오늘 빈손이었다.
“나장님. 상소에 끝 줄이 안 들어가면 상소가 안 올라가요?”
“나도 모르오.”
“그럼 오늘 모르는 사람 많네요.”
총각은 그 말을 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당을 나갔다. 순돌은 그 말이 오늘 형장 마당에서 나온 말 가운데 가장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
해가 지고 나서 순돌은 북쪽 칸에 들어갔다.
칸은 비어 있었다. 짚이 한쪽 구석으로 쓸려 모여 있었는데, 누가 쓸어 놓은 것인지 몸이 오래 한쪽에 기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벽에 손톱으로 그은 금 같은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칸이었다.
사발은 칸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엎어 놓은 것이 아니라 바로 놓여 있었다. 순돌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사발 안은 말라 있었다. 새벽에 담은 물은 다 마신 것인지, 짚에 쏟은 것인지, 순돌은 알 수 없었다. 귀 떨어진 자리가 문 쪽을 향하고 있었다. 순돌이 늘 엄지를 대던 자리였다.
순돌은 사발을 집어 들었다. 놋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손바닥 안에서 사발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할아버지 오갑산이 이 사발을 처음 들고 옥에 들어간 해를, 순돌은 아버지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세종 9년, 1427년이었다. 쉰세 해 전이었다. 그해 할아버지는 스물넷이었고, 갓 옥졸이 된 해였다.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할아버지가 처음 맡은 큰일은 남의 집 비첩의 일이었다고 했다. 병든 조모를 보러 갔다가 돌아와서 갇혔다고 했다. 갇힌 곳은 옥이 아니었다. 안주인의 집이었다.
순돌은 사발을 품에 넣고 빈 칸을 나왔다. 문간에 득룡이 서 있었다.
“오늘 길바닥에서 한 말, 위에 올라갔어.”
“그럴 줄 알았소.”
“자네 할아버지도 그렇게 고집이 셌다더군.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어. 오씨네는 물 한 사발 때문에 대대로 녹을 덜 받는다고.”
순돌은 대답하지 않고 득룡을 지나쳤다. 등 뒤에서 득룡이 말했다.
“그 사발 귀가 왜 떨어졌는지 자네는 알아?”
순돌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몰랐다. 그리고 득룡은 아는 얼굴이었다.
바탕: 『성종실록』 122권, 성종 11년(1480) 10월 18일 1기사·5기사(협박으로 맺어진 관계는 따로 실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