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74자)

꺾인 꼬리

소림사 절고양이 · 마하솔

대웅전 앞마당에 덕칠이 무릎을 꿇었다⁠. 밤새 쌓인 눈을 무승들이 쓸어 놓은 자리였다⁠. 쓸고 남은 눈이 덕칠의 무릎 밑에서 녹아 바지에 스몄다⁠. 공양은 덕칠의 옆에 앉았다⁠. 쥐에게 물린 뒷다리를 접지 못해 옆으로 뻗고 앉았다⁠.

섬돌 위에 방장이 앉았고⁠, 방장 곁에 계율원 수좌가 섰다⁠. 마당 둘레에 무승들과 스님들이 모였다⁠. 무승 교두는 맨 앞줄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대웅전 풍경만 바람에 딸랑거렸다⁠.

“⁠씨앗이 어디 있느냐⁠?⁠”

방장이 물었다⁠. 덕칠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어머니 부뚜막 밑에 묻었습니다⁠.⁠”

“⁠먹었느냐⁠?⁠”

“⁠안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방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고 나서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덕칠의 무릎 밑 눈이 다 녹을 때쯤 방장이 수좌를 돌아보았다⁠.

“⁠계율원은 무어라 하느냐⁠?⁠”

“⁠불목하니가 곳간 판자벽을 뜯고 섬을 지고 나갔습니다⁠. 제 어미 것이라 하나 맡은 섬은 절의 섬입니다⁠. 맡은 것을 맡긴 사람이 와서 찾아갈 수는 있어도⁠, 맡은 집의 일꾼이 밤에 지고 나갈 수는 없습니다⁠. 법도대로라면 절을 떠나야 합니다⁠.⁠”

수좌의 목소리는 새벽처럼 고르게 낮았다⁠. 밤새 쪽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의 목소리였다⁠.

“⁠법도는 계율원의 일이다⁠.⁠”

방장은 더 덧붙이지 않았다⁠. 덕칠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공양은 덕칠의 무릎에 머리를 댔다⁠.

“⁠저것도 내보내야 합니다⁠.⁠”

수좌가 공양을 보았다⁠.

“⁠바람구멍으로 뒤 칸에 들고⁠, 씨앗 새끼줄을 절 마당에 끌고 다녔습니다⁠. 불목하니가 섬을 지고 나간 길을 고양이가 앞서 걸었다고 문지기가 봤습니다⁠.⁠”

교두가 팔짱을 풀었다⁠.

“⁠방장 스님⁠,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방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이 곳간 지붕을 막았습니다⁠. 쥐 수백을 혼자서요⁠. 엉덩이로 구멍을 막고 앉아 있었답니다⁠. 무승 하나 몫은 했습니다⁠. 아니⁠, 무승 하나보다 낫습니다⁠. 저는 지붕 위에서 저놈한테 졌고⁠, 제 무승 하나는 담 위에서 저놈 사자후에 떨어졌습니다⁠.⁠”

마당 둘레에서 누군가 웃음을 삼켰다⁠. 담에서 떨어졌던 무승이 엉덩이를 문질렀다⁠.

방장이 공양을 내려다보았다⁠. 늘어진 눈꺼풀 밑에서 눈이 반쯤 보였다⁠.

“⁠고양이는 곳간을 지켰다⁠. 씨앗 섬은 사람이 지고 나갔다⁠.⁠”

방장은 천천히 말했다⁠.

“⁠고양이는 남는다⁠.⁠”

수좌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고개를 숙였다⁠. 허리의 열쇠가 소리를 내지 않았다⁠.

*

덕칠의 짐은 보자기 하나였다⁠. 헌 저고리 한 벌과 짚신 한 켤레⁠, 숫돌 하나⁠. 덕칠은 보자기를 어깨에 메고 나뭇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장작이 처마 밑에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덕칠이 어제 오후까지 팬 장작이었다⁠.

“⁠동짓날까지는 땔 만큼 됐다⁠.⁠”

덕칠은 장작더미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공양은 덕칠의 발치에 있었다⁠.

일주문 쪽문까지 공양은 덕칠을 따라 걸었다⁠. 덕칠은 걷는 내내 떠들었다⁠. 말을 멈추면 무언가가 무너질 사람처럼 떠들었다⁠.

“⁠공양간 아궁이는 왼쪽 것이 불을 잘 안 먹는다⁠. 새로 오는 놈이 모르면 연기만 들이마신다⁠. 너라도 알아 둬라⁠. 우물 두레박 줄은 동지 지나면 갈아야 한다⁠. 수좌 스님 눈썹은⁠, 아이고⁠, 이제 그 얘기는 안 해도 되겠다⁠. 이제 내가 그 눈썹 볼 일이 없으니까⁠.⁠”

쪽문 앞에서 덕칠이 멈췄다⁠. 문지기 무승이 쪽문을 열었다⁠. 문밖으로 하얀 산길이 보였다⁠. 길섶의 유민들은 눈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덕칠이 문턱을 넘었다⁠. 공양도 문턱 앞까지 갔다⁠. 앞발 하나를 문턱 위에 올렸다⁠.

산 아래에는 덕칠이 있었다⁠. 늙은 여자의 부뚜막이 있었다⁠. 생선 껍질과 누룽지가 있었고⁠, 공양이 무슨 소리를 내든 배고프냐고 물어 줄 사람이 있었다⁠. 산 위에는 곳간이 있었다⁠. 뒤 칸에 씨앗 섬 백아흔아홉이 있었다⁠. 날이 풀리면 관아로 갈 섬이었다⁠. 동짓날 밤이면 쥐 떼가 올라올 섬이었다⁠.

공양은 문턱 위에 올린 앞발을 내렸다⁠.

덕칠이 문밖에서 돌아보았다⁠. 공양이 문턱 안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덕칠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덕칠이 말을 하지 않는 동안 눈이 덕칠의 정수리에 쌓였다⁠.

“⁠그래⁠. 남아라⁠, 이놈아⁠.⁠”

덕칠은 보자기를 풀어 무언가를 꺼냈다⁠. 말린 생선 껍질이었다⁠. 문턱 안쪽으로 던져 주었다⁠.

“⁠동짓날 곳간 지켜라⁠. 씨앗 섬 지켜라⁠. 관아 수레에 안 실리게 지켜라⁠. 네가 어떻게 지키는지는 모르겠다만⁠.⁠”

덕칠은 돌아서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배고프면⁠…⁠…⁠. 아니다⁠. 너 배고프다는 소리 안 하는 거 이제 안다⁠.⁠”

쪽문이 닫혔다⁠. 공양은 문 안쪽에 앉아 생선 껍질을 보았다⁠. 먹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 눈 밟는 소리가 멀어졌다⁠. 소리가 다 사라진 뒤에야 공양은 생선 껍질을 물고 곳간으로 돌아갔다⁠.

*

오후에 쪽문 밖에서 말방울 소리가 났다⁠. 관아 사령 하나가 나귀를 타고 올라와 있었다⁠. 사령은 쪽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지기 무승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공양은 곳간 담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종이 아래쪽에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계율원 수좌가 쪽문까지 나와 종이를 받았다⁠. 읽는 동안 수좌의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수를 읽는 입이었다⁠.

“⁠현령 나리께서 정월까지 기다리지 않으신답니다⁠. 동짓날 이튿날 관아 수레를 올려 보내신답니다⁠. 진휼미 이백 섬을 그날 싣겠다고요⁠. 눈이 와서 절 수레가 못 내려오면 관아 수레가 올라오면 된다고 하십니다⁠.⁠”

사령은 나귀 위에서 말했다⁠. 나귀가 콧김을 뿜었다⁠. 수좌는 종이를 접어 소매에 넣었다⁠.

“⁠이백이라 했느냐⁠?⁠”

“⁠이백입니다⁠.⁠”

사령이 나귀 머리를 돌려 내려갔다⁠. 수좌는 쪽문 앞에 선 채 손가락을 접었다⁠. 접었다 폈다 다시 접었다⁠. 공양은 수좌의 손가락을 보았다⁠. 이백에서 하나가 모자랐다⁠. 백아흔아홉⁠. 하나는 늙은 여자의 부뚜막 밑에 있었다⁠.

수좌가 고개를 들어 곳간 담 위의 공양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공양은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

밤에 눈이 다시 내렸다⁠. 공양은 곳간 섬 사이에 엎드려 생선 껍질을 앞발 사이에 두고 있었다⁠. 지붕 위에서 소리가 났다⁠. 짤그랑 소리는 아니었다⁠. 고리는 이제 수좌의 소매에 있었다⁠. 기와를 긁는 발톱 소리였다⁠.

“⁠털보⁠.⁠”

목소리는 곳간 지붕보다 높은 데서 왔다⁠. 공양은 곳간 문틈으로 나가 고개를 들었다⁠. 장경각 용마루 끝에 검은 것이 앉아 있었다⁠. 눈이 흑수의 등에 쌓이지 않고 미끄러져 내렸다⁠.

“⁠흥정은 끝났다⁠. 네가 산길에서 내 무리를 엎드리게 했다⁠. 사자후라고 하더냐⁠? 배고픈 것들이 소리 한 번에 엎드렸다⁠. 동짓날에도 그렇게 엎드리면 곤란하다⁠. 올라와라⁠. 동짓날 전에 네 꼬리를 보자⁠.⁠”

공양은 곳간 담에서 대웅전 처마로⁠, 처마에서 종루 지붕으로⁠, 종루에서 장경각 처마로 뛰었다⁠. 벽을 한 번 밟고⁠, 두 번 밟았다⁠. 쥐에게 물린 뒷다리가 벽을 찰 때마다 시큰거렸다⁠. 장경각 지붕 경사를 타고 용마루까지 올랐다⁠. 소림에서 가장 높은 지붕이었다⁠. 눈발 사이로 산 아래 골짜기가 하얗게 펼쳐졌다⁠. 골짜기 바닥의 어딘가에 늙은 여자의 오두막이 있었다⁠.

용마루는 손바닥 둘 너비였다⁠. 기와 위에 눈이 얇게 덮여 있었고 눈 밑은 얼어 있었다⁠. 공양은 용마루 위에 뒷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렸다⁠. 꼬리를 기와에 붙였다⁠. 다리 둘에 꼬리 하나⁠.

흑수는 용마루 반대 끝에서 천천히 걸어왔다⁠. 흑수도 뒷다리를 벌렸다⁠. 엉덩이를 내렸다⁠. 꼬리를 기와에 붙였다⁠.

마보였다⁠.

“⁠쥐도 담 너머를 본다⁠, 털보⁠. 너만 무승을 훔쳐본 줄 알았느냐⁠? 우리는 담 밑 구멍에서 봤다⁠. 너보다 오래⁠.⁠”

흑수가 들어왔다⁠. 곧게⁠. 앞발이 아니라 몸 전체가 곧게 들어왔다⁠. 공양은 앞발을 곧게 질렀다⁠. 볼록살이 흑수의 어깨를 쳤다⁠. 흑수는 밀리지 않았다⁠. 흑수의 몸은 공양의 절반이었지만 무게는 절반이 아니었다⁠. 산 아래 쥐 수만을 끌고 다닌 몸이었다⁠.

흑수의 이빨이 공양의 앞발을 노렸다⁠. 공양은 앞발을 거두고 다른 발을 질렀다⁠. 한 손이 나가면 한 손은 돌아온다⁠. 흑수가 질러 온 발을 피하지 않고 머리로 받았다⁠. 철포삼이었다⁠. 흑수도 맞을 자리를 알고 맞았다⁠.

공양은 금나수로 바꿨다⁠. 흑수의 앞발에 발톱을 걸고 굴렀다⁠. 흑수는 따라 구르지 않았다⁠. 공양이 구르는 방향으로 먼저 몸을 던졌다⁠. 공양의 몸이 용마루에서 반쯤 미끄러졌다⁠. 공양은 뒷발로 용마루 반대편 기와를 찍어 버텼다⁠.

사자후⁠. 공양은 배에 숨을 채웠다⁠. 흑수가 웃었다⁠.

“⁠산길의 배고픈 것들은 엎드렸지⁠. 나는 배가 부르다⁠. 오늘 공양간 누룽지를 먹고 왔다⁠.⁠”

공양이 소리를 질렀다⁠. 소리가 용마루를 타고 눈발을 흩었다⁠. 흑수는 엎드리지 않았다⁠. 귀를 납작하게 눕히고 소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소리가 끝나자 흑수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아래였다⁠. 흑수는 공양의 몸통이 아니라 기와에 붙인 꼬리를 노렸다⁠. 공양이 소리를 지르느라 숨이 빈 틈이었다⁠. 흑수의 이빨이 꼬리 한가운데를 물었다⁠.

물고⁠, 비틀었다⁠.

뼈가 꺾이는 길로⁠. 공양이 공양간 아궁이 앞에서 흑수의 앞발을 꺾던 길과 똑같이⁠.

소리가 났다⁠. 이번에도 공양의 귀에만 들렸다⁠. 발톱이 갈라질 때보다 둔하고 깊은 소리였다⁠. 꼬리 한가운데에서 시작된 것이 등뼈를 타고 머리끝까지 치달았다⁠. 공양은 숨을 뱉지 못했다⁠. 들이켰다⁠. 들이켜고 굳었다⁠.

다리 둘에 꼬리 하나로 버티던 몸이 다리 둘만 남았다⁠. 꺾인 꼬리가 기와 위에서 제멋대로 늘어졌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바로잡으려고 꼬리를 오른쪽으로 쳐 보았다⁠. 꼬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공양은 용마루에서 미끄러졌다⁠.

지붕 경사를 굴렀다⁠. 눈과 함께 굴렀다⁠. 처마 끝에서 몸이 허공으로 떴다⁠. 고양이는 떨어질 때 꼬리로 몸을 돌려 네 발로 내려앉는다⁠. 공양은 꼬리를 돌렸다⁠. 꼬리가 돌지 않았다⁠. 몸이 반만 돌았다⁠.

옆구리로 떨어졌다⁠. 장경각 아래 눈 쌓인 마당이었다⁠. 눈이 받아 주었는데도 숨이 끊어졌다가 한참 만에 돌아왔다⁠. 갈비뼈 언저리가 숨 쉴 때마다 찌르듯 아팠다⁠. 공양은 눈 속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눈송이가 얼굴에 떨어져 녹았다⁠.

용마루 끝에서 흑수가 내려다보았다⁠.

“⁠동짓날에 보자⁠, 털보⁠. 그날 너는 지붕에 못 오른다⁠.⁠”

흑수가 용마루 너머로 사라졌다⁠. 공양은 일어나려고 앞발을 짚었다⁠. 앞발은 짚어졌다⁠. 뒷다리도 접혔다⁠. 꼬리만 눈 위에 꺾인 채 놓여 있었다⁠. 공양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남의 꼬리처럼⁠.

*

발소리가 왔다⁠. 눈을 밟는 소리가 고르고 무거웠다⁠. 곳간을 한 바퀴 도는 시각이었다⁠.

계율원 수좌가 장경각 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수좌는 눈 속의 공양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공양은 고개만 들어 수좌를 보았다⁠. 일어나지 못했다⁠. 꼬리를 바닥에 붙일 수도 없었다⁠.

수좌는 오래 서 있었다⁠. 수좌의 입에서 나온 김이 눈발 속으로 흩어졌다⁠.

“⁠저것이⁠…⁠…⁠.⁠”

수좌는 허리를 굽혔다⁠. 두 손을 공양의 몸 밑으로 밀어 넣었다⁠. 꺾인 꼬리를 손바닥으로 받쳤다⁠. 공양은 이를 드러냈다⁠. 수좌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공양을 들어 올려 장삼 품 안에 넣었다⁠. 수좌의 품은 따뜻했고⁠, 먹 냄새와 주판알 냄새가 났다⁠. 허리의 열쇠가 공양의 옆구리에 닿아 차가웠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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