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29자)

밤짐

소림사 절고양이 · 마하솔

판자벽 왼쪽 위 귀퉁이에는 정말로 못이 없었다⁠. 공양은 섬 더미 꼭대기에 올라가 앞발로 귀퉁이를 긁었다⁠. 긁고⁠, 덕칠을 돌아보고⁠, 다시 긁었다⁠. 덕칠은 도끼를 든 채 공양을 올려다보다가 귀퉁이에 손을 댔다⁠. 판자가 손가락 끝에서 덜컥 움직였다⁠.

“⁠너 이거 어떻게 알았냐⁠?⁠”

공양은 대답 대신 귀퉁이를 한 번 더 긁었다⁠.

“⁠처음이다⁠. 네가 하는 짓을 내가 한 번에 알아들은 거⁠.⁠”

덕칠은 도끼날을 판자 틈에 밀어 넣었다⁠. 지렛대처럼 눌렀다⁠. 못 하나가 끽 소리를 내며 빠졌다⁠. 덕칠은 소리가 날 때마다 숨을 멈추고 곳간 문을 돌아보았다⁠. 돌아보면서도 입은 쉬지 않았다⁠.

“⁠수좌 스님은 이 시간에 주무신다⁠. 아니다⁠, 안 주무신다⁠. 수좌 스님은 원래 안 주무신다는 말도 있다⁠. 앉아서 섬을 세다 날이 샌다고⁠. 그러니까 지금도 세고 계실 거다⁠. 몇 섬⁠, 몇 섬 하면서⁠. 세실 때는 귀가 먹으신다더라⁠. 그러니까 괜찮다⁠. 아마⁠.⁠”

공양은 섬 더미에서 내려와 덕칠의 입에 앞발을 댔다⁠. 발바닥 볼록살이 덕칠의 입술을 눌렀다⁠.

“⁠알았다⁠, 알았어⁠.⁠”

덕칠은 판자 한 장을 들어냈다⁠. 사람 하나가 몸을 옆으로 세우면 지나갈 틈이었다⁠. 덕칠은 뒤 칸에 들어가 세 겹 매듭 섬을 찾았다⁠. 공양이 끌고 나갔던 새끼줄 때문에 섬은 반쯤 풀려 있었다⁠. 덕칠은 섬을 무릎에 놓고 새끼를 새로 감았다⁠. 세 겹으로 감고⁠, 마지막 고를 뒤로 넘겼다⁠. 손이 서툴렀다⁠. 두 번을 다시 감았다⁠.

덕칠은 섬을 등에 지기 전에 섬 앞에 쪼그려 앉았다⁠. 도끼를 내려놓고 두 손을 무릎에 얹었다⁠. 공양을 보지 않고 섬을 보며 말했다⁠.

“⁠나 여덟 살 때도 흉년이었다⁠. 그해는 메뚜기가 아니라 물이었지⁠. 강이 넘쳐서 밭이 다 쓸려 갔다⁠. 어머니가 나를 업고 이 산을 올라왔다⁠. 일주문 앞에 솥을 걸어 놓고 죽을 퍼 주던 스님이 있었다⁠. 젊은 스님이었는데⁠, 국자를 들고 줄 선 사람을 한 명 한 명 세더라⁠. 세면서 퍼 주더라⁠. 나한테는 국자 바닥을 한 번 더 긁어서 줬다⁠. 애라고⁠.⁠”

덕칠은 섬의 매듭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그 스님 얼굴은 생각이 안 난다⁠. 국자 긁는 소리만 생각난다⁠. 그 소리 듣고 나는 이 절에 살고 싶었다⁠. 열다섯에 올라와서 불목하니가 됐지⁠. 머리는 못 깎았다⁠. 글을 몰라서⁠.⁠”

덕칠은 일어나 섬을 등에 졌다⁠. 앞 칸 섬의 반만 한 섬이었는데 덕칠의 허리가 휘었다⁠.

“⁠씨앗이 먹는 조보다 무겁다⁠. 이상하지⁠.⁠”

*

산길에는 눈이 얇게 깔려 있었다⁠. 낮에 녹았다가 밤에 다시 얼어서 디딜 때마다 바스락 깨졌다⁠. 덕칠은 섬을 지고 지팡이를 짚었다⁠. 공양은 덕칠보다 열 걸음 앞에서 걸었다⁠. 걸으면서 귀를 사방으로 돌렸다⁠. 바람은 산 위에서 아래로 불었다⁠. 씨앗 냄새가 덕칠의 등에서 산 아래로 흘러 내려갔다⁠.

중턱 너럭바위를 지났을 때 바람에 다른 것이 섞였다⁠. 골짜기 바닥에서 피리 소리가 아주 가늘게 올라왔다⁠. 약장수가 어디선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 모여라⁠. 기다려라⁠. 공양의 등털이 일어났다⁠.

소나무 사이에서 눈이 움직였다⁠. 눈 위에 검은 점이 하나 찍히고⁠, 열이 찍히고⁠, 다시 서른이 찍혔다⁠. 쥐들이었다⁠. 씨앗 냄새를 맡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쥐들이었다⁠. 피리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온 배고픈 것들이었다⁠. 쥐들은 산길 위아래를 막고 덕칠을 둘러쌌다⁠.

“⁠어어⁠, 이놈들 봐라⁠.⁠”

덕칠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쥐들은 지팡이 끝을 피해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덕칠의 발목에 한 마리가 달라붙었다⁠. 덕칠이 비명을 지르며 발을 털었다⁠. 섬이 등에서 기우뚱했다⁠.

공양은 덕칠의 발치로 뛰어들었다⁠. 발목에 달라붙은 쥐의 꼬리를 앞발 발톱으로 걸었다⁠. 걸고⁠, 굴렀다⁠. 쥐가 덕칠의 발목에서 떨어져 나와 공양과 함께 눈 위를 굴렀다⁠. 공양의 뒷발이 쥐의 배를 찼다⁠. 쥐가 눈 위로 날아가 소나무 둥치에 부딪혔다⁠.

다른 쥐들이 덤볐다⁠. 사방에서 왔다⁠. 공양은 앞발을 곧게 질렀다⁠. 왼발이 나가면 오른발이 돌아왔다⁠. 셋을 떨어뜨렸다⁠. 네 번째 쥐가 공양의 뒷다리를 물었다⁠. 공양은 숨을 뱉었다⁠. 철포삼⁠. 이빨이 살에서 멈췄다⁠. 뼈까지 오지 않았다⁠. 아팠지만 다리가 꺾이지 않았다⁠.

쥐는 줄지 않았다⁠. 덕칠의 등에 매달리는 놈이 생겼다⁠. 섬을 갉으려고 새끼줄에 이빨을 댔다⁠. 덕칠이 섬을 지키려고 몸을 웅크렸다⁠.

공양은 산길 한가운데 바위에 뛰어올랐다⁠. 뒷다리로 앉았다⁠. 앞발을 배에 붙였다⁠. 들이쉬었다⁠. 들이쉬었다⁠. 배가 팽팽해질 때까지 들이쉬었다⁠. 오늘 아침에는 끝에 가서 목으로 질렀다⁠. 이번에는 목을 열고 배에서 끝까지 밀었다⁠.

소리가 산을 갈랐다⁠.

고양이 싸움 소리가 아니었다⁠. 낮고 길게 깔렸다가 바닥에서부터 솟구치는 소리였다⁠. 소나무 가지에 얹힌 눈이 소리에 떨려 후드득 떨어졌다⁠. 쥐들이 있던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덕칠도 엎드렸다⁠. 섬을 등에 진 채 눈 위에 넙죽 엎드렸다⁠.

소리가 끝났다⁠. 공양의 목구멍이 화끈거렸다⁠. 쉬지는 않았다⁠. 산이 쉬었다⁠.

쥐들이 하나씩 고개를 들었다⁠. 공양이 바위 위에서 앞발 하나를 가슴께로 당겼다⁠. 쥐들은 공양과 섬을 번갈아 보았다⁠. 배고픈 눈이었다⁠. 무서운 눈이기도 했다⁠. 배고픔과 무서움이 한 눈 안에서 서로를 밀었다⁠.

“⁠형님들⁠, 그 섬은 두고 가십시다요⁠.⁠”

소나무 뒤에서 애꾸 쥐가 나왔다⁠. 절뚝거리며 쥐들 한가운데로 걸어왔다⁠.

“⁠그 섬은 감나무 집 아랫집 할미 섬입니다요⁠. 우리 장독대 집이요⁠. 할미가 봄에 저걸 뿌리면 여름에 조가 서고⁠, 조가 서면 우리 새끼들이 이삭을 줍습니다요⁠. 지금 갉으면 지금 한 입이고⁠, 봄에 뿌리면 여름에 백 입이지요⁠.⁠”

“⁠동짓날까지 살아 있어야 여름이지⁠.⁠”

쥐 하나가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동짓날에 곳간을 먹으면 됩니다요⁠. 이 섬 말고⁠.⁠”

애꾸 쥐는 공양을 흘끔 보았다⁠. 쥐들은 서로를 보다가 하나씩 소나무 사이로 물러났다⁠. 마지막으로 물러나던 쥐가 덕칠의 지팡이에 대고 침을 뱉었다⁠. 덕칠은 엎드린 채로 침 뱉은 쥐를 노려보았다⁠.

“⁠저놈은 내가 기억한다⁠.⁠”

*

오두막 거적을 걷고 들어가자 늙은 여자는 아궁이 앞에 앉아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다⁠. 덕칠이 섬을 내려놓자 늙은 여자는 섬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손을 뻗어 매듭을 만졌다⁠.

“⁠이거 내 매듭이 아니다⁠.⁠”

“⁠어머니 매듭이에요⁠. 제가 다시 묶었어요⁠.⁠”

“⁠고를 반대로 넘겼다⁠. 내 매듭은 뒤로 넘기는 게 아니라 아래로 넘긴다⁠. 서른 해를 봤으면 알아야지⁠.⁠”

늙은 여자는 매듭을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세 겹으로 감고⁠, 마지막 고를 아래로 넘겼다⁠. 손이 빨랐다⁠. 공양은 거적 틈에서 늙은 여자의 손을 보았다⁠. 곳간에서 본 매듭이 이제야 맞았다⁠.

“⁠절 것 가져오면 못쓴다⁠.⁠”

“⁠어머니 것이에요⁠. 맡긴 거 찾아온 거예요⁠.⁠”

늙은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부뚜막 아래 흙바닥을 손으로 팠다⁠. 덕칠이 거들었다⁠. 둘은 구덩이에 섬을 묻고 흙을 덮은 다음 부뚜막 돌을 얹었다⁠. 늙은 여자가 돌 위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이건 먹으면 안 된다⁠.⁠”

늙은 여자는 덕칠에게 하는 말인지 저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소리로 말했다⁠. 말하고 나서 거적 틈을 보았다⁠. 공양과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는 왜 데려왔냐⁠? 잡아먹으라고⁠?⁠”

“⁠어머니⁠!⁠”

“⁠농이다⁠. 고양이는 질겨⁠.⁠”

늙은 여자는 부뚜막 돌을 한 번 더 두드리고 나서 물었다⁠.

“⁠절에 수좌 스님은 잘 계시냐⁠? 눈썹 진한 스님⁠.⁠”

“⁠잘 계세요⁠. 눈썹이 요새는 한 줄이 되셨어요⁠.⁠”

“⁠그 스님이 너 어릴 때 죽 퍼 줬다⁠. 너 기억 못 하지⁠? 너한테 국자 바닥을 한 번 더 긁어 줬어⁠. 애라고⁠.⁠”

덕칠의 입이 벌어진 채 멈췄다⁠. 공양은 덕칠의 얼굴을 보았다⁠. 장작을 패다 도끼가 옹이에 박혔을 때의 얼굴이었다⁠.

“⁠그 스님이요⁠?⁠”

“⁠그때는 젊었지⁠. 나도 젊었고⁠.⁠”

덕칠이 얼굴을 감쌌다⁠. 공양은 거적 틈에서 한 발 물러났다⁠. 늙은 여자가 처음으로 웃었다⁠. 이가 몇 개 남지 않은 웃음이었다⁠.

*

산길을 다시 오르는 동안 하늘이 밝아 왔다⁠. 덕칠은 빈 등이 가벼워서 오히려 비틀거렸다⁠. 공양은 덕칠보다 앞서 걸으며 소나무 사이를 살폈다⁠. 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웃었다⁠. 너 봤냐⁠? 석 달 만이다⁠. 고양이 질기다는 농으로 웃었어⁠. 우리 어머니 농은 늘 그렇다⁠. 사람이 웃을 데서 안 웃고 웃으면 안 될 데서 웃는다⁠.⁠”

덕칠은 한참 걷다가 다른 소리를 했다⁠.

“⁠수좌 스님이었대⁠. 국자⁠.⁠”

공양은 덕칠의 발치로 다가가 걸었다⁠. 쥐에게 물린 뒷다리가 걸음마다 시큰거렸다⁠. 덕칠은 공양이 절뚝이는 것을 보고 걸음을 늦췄다⁠.

“⁠너도 물렸구나⁠. 이따 쑥 붙여 줄게⁠. 나도 붙여야겠다⁠. 발목에 이빨 자국이 넷이다⁠. 쥐 이빨은 넷이다⁠, 알지⁠? 위에 둘 아래 둘⁠. 너는 알겠지⁠, 매일 보니까⁠.⁠”

덕칠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일주문이 보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일주문 쪽문 앞에서 덕칠의 말이 뚝 끊겼다⁠.

쪽문 앞에 계율원 수좌가 서 있었다⁠. 등불은 꺼져 있었다⁠. 기름이 다 탄 등불이었다⁠. 수좌의 어깨와 정수리에 눈이 쌓여 있었다⁠. 밤새 녹지 않을 만큼 오래 서 있던 눈이었다⁠.

덕칠이 걸음을 멈췄다⁠. 공양도 멈췄다⁠. 수좌는 덕칠의 빈 등을 보았다⁠.

“⁠몇 섬이냐⁠?⁠”

“⁠한 섬입니다⁠.⁠”

“⁠한 섬이면 이백에서 하나가 빈다⁠.⁠”

수좌의 목소리는 밤새 얼었다 녹은 목소리였다⁠. 갈라져 있었다⁠.

“⁠하나가 비면 현령은 이백이 안 된다며 절 땅 한 뙈기를 거둔다⁠. 어느 뙈기부터 거두겠느냐⁠? 공문에 이름이 적힌 마을부터 거둔다⁠. 네 어머니 마을이 맨 위에 적혀 있다⁠.⁠”

“⁠그러면 저는 그 땅에 그 씨앗을 뿌리겠습니다⁠. 거두기 전에요⁠. 관아가 와서 조 대궁을 뽑아 가는지 보겠습니다⁠.⁠”

“⁠뽑아 간다⁠.⁠”

수좌는 짧게 말했다⁠. 덕칠은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스님은 알고 계셨지요⁠. 판자 뜯는 소리 들으셨지요⁠. 섬을 세실 때도 귀는 안 먹으시지요⁠.⁠”

수좌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어깨의 눈을 털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덕칠이 섬을 지고 나간 시각부터 여기 서 있었다는 것을 어깨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다는 것도⁠.

덕칠이 한 걸음 다가갔다⁠.

“⁠스님⁠, 서른몇 해 전에 일주문 앞에서 죽을 퍼 주셨다면서요⁠. 국자 바닥을 한 번 더 긁어서⁠, 업힌 애한테⁠.⁠”

수좌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눈썹은 그대로였고 입가가 움찔했다⁠.

“⁠그해는 일주문 앞에 솥을 걸 수 있었다⁠. 곳간에 섬이 넉넉했다⁠.⁠”

“⁠올해는요⁠?⁠”

“⁠올해는 국자를 들면 사백 식구 몫을 퍼 주게 된다⁠.⁠”

수좌는 덕칠을 똑바로 보았다⁠.

“⁠국자를 긁어 준 애가 자라서 씨앗 섬을 지고 나갔구나⁠. 수가 맞지 않는 일이다⁠.⁠”

“⁠수가 맞는 일입니다⁠. 스님 국자 덕에 살아서 어머니 씨앗을 지고 간 겁니다⁠.⁠”

수좌는 손을 들어 어깨의 눈을 한 번 털었다⁠. 털기만 했다⁠.

“⁠날이 밝으면 나가거라⁠.⁠”

수좌는 쪽문을 열었다⁠. 문을 잡은 채 덕칠을 지나가게 했다⁠. 덕칠이 지나가자 수좌는 문 앞에 남은 공양을 내려다보았다⁠.

“⁠저것도 같이 내려보내라⁠.⁠”

8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