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53자)

말뚝 위

소림사 절고양이 · 마하솔

화로에서 숯이 탁 튀었다⁠. 공양은 수좌의 방 바닥에 깔린 헌 장삼 위에 누워 있었다⁠. 갈비뼈 언저리가 숨을 쉴 때마다 찔렀다⁠. 숨을 반만 쉬면 반만 찔렀다⁠. 공양은 숨을 반만 쉬었다⁠.

계율원 수좌는 공양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대나무를 쪼개고 있었다⁠. 젓가락만 한 대나무 두 가닥을 칼로 다듬었다⁠. 다듬은 대나무를 공양의 꼬리 양쪽에 대고 헝겊으로 감기 시작했다⁠. 꺾인 자리에 헝겊이 닿자 공양은 고개를 틀어 수좌의 손목을 물었다⁠.

수좌는 손을 빼지 않았다⁠. 공양의 이빨이 수좌의 손목 살에 박혀 있는 채로 헝겊을 한 바퀴 더 감았다⁠. 공양은 입을 벌렸다⁠. 수좌의 손목에 이빨 자국 넷이 났다⁠. 피가 맺혔다⁠. 수좌는 피를 닦지 않고 헝겊 끝을 묶었다⁠.

“⁠쥐 이빨도 넷이라더라⁠. 위에 둘⁠, 아래 둘⁠.⁠”

수좌는 덕칠이 하던 말을 했다⁠. 덕칠이 언제 이 말을 수좌에게 했는지 공양은 알 수 없었다⁠.

수좌는 화로 앞에 돌아앉았다⁠. 부젓가락으로 숯을 뒤적였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공양에게 하는 말인지 화로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목소리였다⁠.

“⁠나는 쉰 해 전에 이 산에 올라왔다⁠. 열 살이었다⁠. 아비 어미는 산 아래 무덤에 있고⁠. 그해도 흉년이었지⁠. 일주문 앞에서 죽을 얻어먹다가 눌러앉았다⁠.⁠”

숯이 다시 튀었다⁠. 수좌는 튄 불티를 손가락으로 눌러 껐다⁠.

“⁠서른몇 해 전에는 강이 넘쳤다⁠. 나는 젊은 중이었고⁠, 일주문 앞에 솥을 걸자고 한 것이 나였다⁠. 곳간이 넉넉하다고 했다⁠. 넉넉하지 않았다⁠. 넉넉한 줄 알았다⁠. 잘못 세었다⁠. 국자를 들고 줄 선 사람을 세면서 퍼 주었다⁠. 애가 보이면 국자 바닥을 한 번 더 긁었다⁠. 긁을 때마다 한 국자가 더 나갔다⁠. 그해 겨울 내가 긁은 국자를 다 모으면 몇 섬이 되는지⁠, 나는 이듬해 봄에 알았다⁠.⁠”

수좌는 부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월에 곳간 바닥이 보였다⁠. 삼월에 사미 일곱이 누웠다⁠. 나처럼 산 아래서 올라온 애들이었다⁠. 일곱을 내 손으로 묻었다⁠. 땅이 얼어서 곡괭이가 안 들어갔다⁠.⁠”

공양은 장삼 위에서 수좌의 등을 보았다⁠. 수좌의 어깨는 움직이지 않았다⁠. 선방의 스님들처럼 배로만 숨을 쉬었다⁠. 다만 숨이 길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국자를 긁지 않는다⁠. 섬을 센다⁠.⁠”

공양은 일어났다⁠. 갈비뼈가 찔렀다⁠. 부목을 댄 꼬리가 바닥에 끌렸다⁠. 공양은 세 발과 반으로 걸어 수좌의 소매 끝에 코를 댔다⁠. 소매 안에 두 가지 냄새가 있었다⁠. 구리 고리의 냄새와⁠, 세 겹 매듭 새끼줄의 냄새⁠. 공양은 소매에 머리를 넣어 새끼줄을 물고 끌어냈다⁠. 끌어낸 새끼줄을 수좌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수좌는 무릎 위의 새끼줄을 내려다보았다⁠.

“⁠안다⁠.⁠”

수좌가 말했다⁠.

“⁠네가 무얼 말하려는지 반은 안다⁠. 나머지 반을 모르겠다⁠. 씨앗을 마을에 내려보내면 관아가 땅을 거둔다⁠. 앞 칸을 열면 사미들이 눕는다⁠. 너는 다른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이냐⁠?⁠”

공양은 대답하지 못했다⁠. 야옹 소리만 났다⁠. 수좌는 새끼줄을 소매에 도로 넣었다⁠.

“⁠고양이한테 묻는 내가 잘못 짚었구나⁠.⁠”

*

이틀 뒤 아침⁠, 공양은 수좌의 방을 나와 수련 마당 담 위에 엎드렸다⁠. 담에 오를 때 벽을 밟지 않았다⁠. 섬 더미를 밟고 장독대를 밟고 세 번에 나누어 올랐다⁠. 꼬리에 감은 부목이 기와에 부딪혀 딱딱 소리를 냈다⁠.

마당에는 말뚝이 박혀 있었다⁠. 무릎 높이부터 사람 키 높이까지 굵은 나무 말뚝 수십 개가 매화 꽃잎 모양으로 둥글게 늘어서 있었다⁠. 매화장이라고 무승들이 불렀다⁠. 말뚝 위를 걸으며 싸우는 수련이었다⁠. 동짓날 밤 담 위에서 쥐 떼를 막으려면 좁은 데서 서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교두가 말했다⁠.

무승들은 말뚝 위에서 마보를 잡았다⁠. 한 발씩 말뚝을 옮겨 디뎠다⁠. 무승 하나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 떨어진 무승은 엉덩이를 문지르며 다시 올라갔다⁠. 담에서 공양의 사자후에 떨어졌던 무승이었다⁠. 무승은 올라가면서 담 위의 공양을 흘겨보았다⁠.

“⁠오늘은 소리 지르지 마라⁠. 너 소리 지르면 나 또 떨어진다⁠.⁠”

공양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승은 말뚝 위에서 두 팔을 벌리고 한참 휘청거리다가⁠, 결국 혼자 떨어졌다⁠. 공양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마당의 무승들이 일제히 공양을 보았다가 떨어진 무승을 보았다⁠.

“⁠이번엔 저놈 탓 아니다⁠.⁠”

교두가 말했다⁠. 떨어진 무승은 억울한 얼굴로 다시 올라갔다⁠.

공양은 무승들의 뒤를 보았다⁠. 무승들은 꼬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다⁠. 꼬리 없는 몸으로 말뚝 위에 섰다⁠. 기울면 팔을 벌렸다⁠. 팔이 꼬리 노릇을 했다⁠. 팔을 쓰지 않는 무승은 허리를 낮췄다⁠. 허리를 낮추면 몸의 무게가 말뚝 쪽으로 가라앉았다⁠. 무게가 가라앉으면 덜 흔들렸다⁠.

공양은 담에서 내려와 말뚝 하나 앞에 섰다⁠. 무릎 높이의 말뚝이었다⁠. 뛰었다⁠. 앞발이 말뚝 머리에 닿았고 뒷발이 따라왔다⁠. 네 발이 손바닥만 한 나무 위에 모였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다⁠. 꼬리를 쳤다⁠. 꼬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공양은 말뚝에서 떨어졌다⁠.

다시 뛰었다⁠. 다시 떨어졌다⁠. 떨어질 때마다 갈비뼈가 찔렀다⁠. 꼬리는 몸이 기울 때마다 제가 할 일을 하려고 움찔거렸고⁠, 움찔거릴 때마다 꺾인 자리가 부목 안에서 욱신거렸다⁠. 일곱 번째에 공양은 말뚝 밑에 엎드려 한참 숨을 골랐다⁠.

“⁠꼬리 꺾인 놈이 왔네⁠.⁠”

교두가 말뚝 사이를 지나가다 공양을 내려다보았다⁠. 공양의 꼬리에 감긴 부목을 보고 눈썹을 올렸다⁠.

“⁠수좌 스님 솜씨구나⁠. 수좌 스님은 부목도 반듯하게 대신다⁠. 섬 세듯이⁠.⁠”

교두는 공양 곁에 쪼그려 앉아 혼잣말을 했다⁠.

“⁠고양이는 꼬리로 서지⁠. 사람은 꼬리가 없어서 배로 선다⁠. 배꼽 밑에 무게를 모은다⁠. 머리는 가만히 두고⁠. 머리가 흔들리면 다 흔들린다⁠.⁠”

교두는 일어나 가 버렸다⁠. 공양은 말뚝 밑에 엎드려 교두의 말을 곱씹었다⁠. 머리는 가만히 두고⁠.

공양은 다시 뛰었다⁠. 말뚝 위에 네 발이 모이자 꼬리를 치지 않았다⁠. 대신 엉덩이를 내렸다⁠. 마보⁠. 배를 말뚝 머리 가까이 붙였다⁠. 몸이 기울었다⁠. 공양은 머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수염을 앞으로 모았다⁠. 수염 끝에 바람이 닿았다⁠. 왼쪽 수염에 닿는 바람이 오른쪽보다 셌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공양은 배 속의 무게를 오른쪽으로 아주 조금 옮겼다⁠.

멈췄다⁠. 말뚝 위에서 몸이 멈췄다⁠.

공양은 숨을 반만 쉬었다⁠. 무릎 높이에서 허리 높이로⁠, 허리 높이에서 가슴 높이로 말뚝을 옮겨 갔다⁠. 세 번 떨어졌고 네 번 다시 올랐다⁠. 해가 마당 담을 넘어갈 때 공양은 사람 키 높이의 말뚝 위에 앉아 있었다⁠. 꼬리는 부목에 감긴 채 말뚝 옆으로 늘어져 있었다⁠. 쓰지 않는 꼬리였다⁠.

*

쪽문이 시끄러웠다⁠. 공양은 말뚝에서 내려와 쪽문으로 갔다⁠. 쪽문 밖에 사람이 서른은 넘게 서 있었다⁠. 맨 앞에 덕칠이 있었다⁠. 덕칠 옆에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있었다⁠. 우물가 느티나무 밑에서 정월 보름까지 살아 있으면 받겠다던 노인이었다⁠.

“⁠씨앗을 찾으러 왔습니다⁠.⁠”

덕칠이 문지기 무승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열두 마을이 맡긴 씨앗입니다⁠. 맡긴 사람이 와서 찾아가는 건 된다고 수좌 스님이 대웅전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들었습니다⁠. 다들 들었습니다⁠.⁠”

문지기는 쪽문을 열지 않고 계율원으로 사람을 보냈다⁠. 수좌가 왔다⁠. 수좌는 쪽문을 반만 열고 문틈에 섰다⁠.

“⁠관아 수레가 동짓날 이튿날 온다⁠.⁠”

“⁠압니다⁠. 그러니까 지금 찾으러 왔습니다⁠.⁠”

“⁠지금 내주면 관아는 이백을 못 받는다⁠. 이백을 못 받으면 땅을 거둔다⁠. 너희 마을 이름이 공문 맨 위에 있다⁠.⁠”

“⁠땅은 봄에 거두고⁠, 씨앗은 봄에 뿌립니다⁠. 둘 다 봄입니다⁠. 씨앗이 먼저 땅에 들어가 있으면⁠, 관아도 자라는 조를 뽑지는 못합니다⁠. 뽑으면 현령 나리 진휼미가 안 나옵니다⁠.⁠”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 나섰다⁠.

“⁠스님⁠, 우리가 정월 보름까지 살아 있으면 관아 한 말을 받습니다⁠. 봄까지 살아 있으면 씨앗을 뿌립니다⁠. 씨앗만 주시면 봄까지는 살겠습니다⁠. 살아서 뿌리겠습니다⁠.⁠”

수좌는 노인을 보았다⁠. 수좌의 손이 허리의 열쇠를 쥐었다⁠.

“⁠닫아라⁠.⁠”

쪽문이 닫혔다⁠. 닫히기 직전에 덕칠이 문틈으로 공양을 보았다⁠. 공양의 꼬리를 보았다⁠.

“⁠너 꼬리가 왜 그러냐⁠? 막대기를 달았냐⁠?⁠”

문이 닫혔다⁠. 문 너머에서 덕칠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누가 그랬냐⁠, 이놈아⁠. 흑수냐⁠? 쥐냐⁠? 목소리가 멀어지지 않았다⁠. 덕칠은 문 앞에서 떠나지 않고 한참을 떠들었다⁠. 쑥은 붙였냐⁠, 부목은 누가 댔냐⁠, 수좌 스님이 몸소 고양이 꼬리를 만지셨단 말이냐⁠, 한 줄 눈썹을 하고서⁠. 마지막 말은 웃음에 섞여 나왔다⁠. 덕칠은 웃다가 기침을 했고⁠, 기침이 그치자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놈아⁠, 동짓날 밤에 우리 다 올라온다⁠. 관아 수레 오기 전에⁠. 다 같이 와서 문 앞에 앉을 거다⁠. 수좌 스님이 문을 안 열면 문 앞에서 밤을 샌다⁠. 너는 안에서 곳간을 지켜라⁠. 우리는 밖에서 씨앗을 지킨다⁠.⁠”

노인의 지팡이가 언 땅을 짚는 소리가 덕칠의 목소리 뒤를 따라 내려갔다⁠.

*

밤에 곳간 담 위에 애꾸 쥐가 올라와 있었다⁠. 공양은 장독대를 밟고 담에 올랐다⁠. 애꾸 쥐는 공양의 꼬리를 보고 혀를 찼다⁠.

“⁠서왕님이 독하셨습니다요⁠.⁠”

“⁠할 말이 있으면 해라⁠.⁠”

“⁠약장수가 기름을 사 모았습니다요⁠. 동짓날 밤 쥐들이 곳간 담을 무너뜨리면⁠, 무너진 자리에 기름을 붓고 불을 놓는답니다요⁠. 소림이 굶어야 숭산이 마교 것이 된다고요⁠. 쥐가 먹든 불이 먹든 곳간만 비면 된답니다요⁠.⁠”

“⁠흑수도 아냐⁠?⁠”

“⁠아는 것뿐인가⁠.⁠”

담 아래 어둠에서 흑수가 올라왔다⁠. 흑수는 애꾸 쥐 곁에 앉아 애꾸 쥐를 오래 보았다⁠.

“⁠아는 것을 고양이에게 다 말하는 늙은이가 있구나⁠.⁠”

“⁠서왕님⁠, 불타면 씨앗도 탑니다요⁠.⁠”

애꾸 쥐는 물러서지 않았다⁠. 멀지 않은 눈 하나로 흑수를 올려다보았다⁠.

“⁠씨앗은 사람 것이다⁠.⁠”

“⁠씨앗이 서야 여름에 이삭이 있지요⁠. 이삭이 있어야 제 새끼들이 줍지요⁠. 서왕님 새끼들도 주웠을 거고요⁠. 살아 있었으면⁠.⁠”

흑수의 수염이 한 번 떨렸다⁠. 흑수는 애꾸 쥐를 물지 않았다⁠. 대신 공양을 보았다⁠.

“⁠불나기 전에 다 먹으면 된다⁠. 씨앗까지⁠. 그러면 탈 것도 없다⁠.⁠”

흑수는 담 아래로 사라졌다⁠. 애꾸 쥐는 한참을 담 위에 앉아 있다가 공양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물구멍으로 내려갔다⁠.

*

동지 전날 해 질 녘⁠, 공양은 가장 높은 말뚝 위에 앉아 있었다⁠. 부목은 아직 감겨 있었다⁠. 갈비뼈는 숨을 다 쉬어도 찌르지 않았다⁠.

교두가 말뚝 사이로 걸어왔다⁠. 손에 사발 하나를 들고 있었다⁠. 교두는 공양이 앉은 말뚝 옆의 말뚝⁠, 같은 높이의 말뚝 꼭대기에 사발을 올려놓았다⁠. 사발에 물이 찰랑찰랑 담겨 있었다⁠.

“⁠무승들은 매화장 꼭대기에서 물그릇을 받는다⁠. 엎지르지 않고 마시면 내려와도 된다는 뜻이다⁠.⁠”

교두는 공양을 올려다보지 않고 돌아섰다⁠.

“⁠내일 밤이다⁠, 이놈아⁠.⁠”

공양은 옆 말뚝으로 건너갔다⁠. 꼬리를 치지 않았다⁠. 머리를 가만히 두었다⁠. 사발 앞에서 몸을 낮추고 혀를 내밀었다⁠. 물이 사발 가장자리에서 흔들렸다가 가라앉았다⁠.

1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말뚝 위 · 소림사 절고양이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