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14자)

사자후

소림사 절고양이 · 마하솔

아침에 덕칠은 말을 하지 않았다⁠. 물을 긷고⁠, 장작을 패고⁠, 공양간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공양은 덕칠의 발치를 따라다녔다⁠. 우물에서 나뭇간으로⁠, 나뭇간에서 공양간으로⁠. 덕칠의 입은 닫혀 있었다⁠. 수좌 스님 눈썹 얘기도⁠, 산 아래 어머니 얘기도⁠, 강호의 마교 얘기도 없었다⁠. 덕칠이 입을 닫으니 절이 이렇게 조용한 줄 공양은 처음 알았다⁠.

공양은 덕칠의 바짓단을 물었다⁠. 덕칠이 내려다보았다⁠. 공양은 야옹 하고 울었다⁠.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배고프냐⁠.⁠”

덕칠의 목소리에는 물음이 들어 있지 않았다⁠. 덕칠은 소매에서 누룽지를 꺼내 공양 앞에 내려놓고 도로 장작을 팼다⁠. 공양은 누룽지를 먹지 않고 덕칠의 등을 보았다⁠. 도끼가 장작에 박힐 때마다 덕칠의 어깨가 한 번씩 내려앉았다⁠.

*

새벽 수련 마당에서 무승들은 숨을 모으고 있었다⁠. 마보를 선 채 두 손을 배꼽 아래에 겹쳐 대고⁠, 들이쉬고⁠, 들이쉬고⁠, 또 들이쉬었다⁠. 무승 교두가 줄 앞에서 손을 번쩍 들었다⁠.

“⁠합⁠!⁠”

마흔 명이 한꺼번에 소리를 질렀다⁠. 소리가 마당을 치고 담을 넘어 대웅전 처마의 풍경을 울렸다⁠. 담 위에 엎드려 있던 공양의 털이 소리에 밀려 뒤로 누웠다⁠. 귓속이 웅웅거렸다⁠.

“⁠목으로 지르면 목이 쉬고⁠, 배로 지르면 산이 쉰다⁠. 사자후는 소리로 상대의 기를 꺾는 공부다⁠. 사자가 한 번 울면 들판의 짐승들이 다 엎드린다⁠. 동짓날 밤에 쥐 수만이 올라온다는데⁠, 우리가 쥐를 때려죽일 수는 없다⁠. 그러면 무엇으로 막느냐⁠?⁠”

“⁠소리로 막습니다⁠!⁠”

“⁠그렇지⁠. 다시⁠.⁠”

“⁠합⁠!⁠”

공양은 담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뒷다리로 앉아 앞발 둘을 배에 붙였다⁠. 들이쉬었다⁠. 배가 부풀었다⁠. 고양이 배는 작아서 금방 찼다⁠. 공양은 한 번 더 들이쉬었다⁠. 배가 북처럼 팽팽해졌다⁠. 수염 끝까지 숨이 찼다⁠.

공양은 배에서 소리를 끌어올렸다⁠.

나온 소리는 사자 소리가 아니었다⁠. 고양이 둘이 지붕 위에서 싸울 때 나는 소리를 열 배로 늘인 소리였다⁠. 길고⁠, 갈라지고⁠, 끝이 위로 치솟다가 뒤집혔다⁠. 마당 맞은편 담 위에서 외발 서기를 하던 무승 하나가 소리를 듣고 몸을 움찔하다가 담 밖으로 떨어졌다⁠. 담 너머에서 퍽 소리와 함께 신음이 들렸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마흔 명이 일제히 공양을 보았다⁠.

교두가 먼저 웃었다⁠. 웃다가 허리를 굽혔다⁠. 허리를 굽힌 채 담 너머를 향해 소리쳤다⁠.

“⁠괜찮으냐⁠?⁠”

“⁠괜찮습니다⁠! 엉덩이부터 떨어졌습니다⁠!⁠”

“⁠너는 저놈한테 사자후로 졌다⁠. 오늘 고양이한테 진 놈이 둘이다⁠. 나하고 너⁠.⁠”

공양은 담 위에서 목을 움츠렸다⁠. 목구멍이 따끔따끔했다⁠. 배로 지르려고 했는데 끝에 가서 목으로 질렀다⁠. 목이 쉬었다⁠. 산은 쉬지 않았다⁠.

*

한낮에 방장이 일주문으로 내려왔다⁠. 일주문 큰 문짝은 닫혀 있었지만 옆에 사람 하나 겨우 드나드는 쪽문이 있었다⁠. 방장은 문지기 무승에게 쪽문을 열라고 했다⁠. 문지기 무승이 계율원 수좌의 말을 꺼내자 방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어라⁠.⁠”

문지기는 열었다⁠. 방장은 쪽문을 지나 길섶의 유민들 사이로 걸어가 앉았다⁠. 맨땅에 앉았다⁠. 유민들이 놀라 일어나려 하자 방장은 손을 들어 앉혔다⁠. 공양은 방장을 따라 나가 방장의 무릎 옆에 앉았다⁠.

유민은 백은 넘어 보였다⁠. 첫눈이 올 것 같은 하늘 아래 모두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방장은 소매에서 곶감 세 개를 꺼내 앞에 앉은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곶감을 받아 들고 한참 보다가⁠, 옆의 아낙에게 하나⁠, 아낙이 업은 아이에게 반을 떼어 주었다⁠. 방장은 곶감이 나뉘는 것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양은 유민들의 다리 사이에서 냄새를 맡았다⁠. 사람 냄새 밑에 쥐 냄새가 깔려 있었다⁠. 유민들의 짚신 밑에⁠, 등짐 사이에⁠, 해진 옷자락 속에 쥐들이 숨어 있었다⁠. 사람이 굶으니 쥐도 사람 곁에 붙어 있었다⁠. 사람이 흘리는 부스러기라도 바라고⁠.

“⁠털보⁠.⁠”

노인의 등짐 밑에서 흑수가 고개를 내밀었다⁠. 꼬리에 고리가 없었다⁠. 꼬리 끝이 잿불에 그을려 털이 짧았다⁠.

“⁠여기서는 싸우지 말자⁠. 사람이 많다⁠. 사람이 고양이 싸움을 보면 고양이를 잡는다⁠.⁠”

공양은 털을 세우다 말았다⁠. 흑수의 말이 맞았다⁠. 길섶의 사내들이 방장 곁의 공양을 흘끔흘끔 보고 있었다⁠.

“⁠흥정을 하자⁠.⁠”

흑수가 등짐 밑에서 공양 쪽으로 반 뼘 기어 나왔다⁠.

“⁠곳간 뒷벽 하나만 비켜 서라⁠. 뒤 칸 판자벽 밑을 파서 씨앗 섬을 끌어내겠다⁠. 끌어낸 섬은 반은 우리가 먹고⁠, 반은 마을 마당에 내려놓는다⁠. 관아 수레가 오기 전에⁠.⁠”

“⁠쥐가 씨앗을 마을에 갖다 줄 리 없다⁠. 다 먹겠지⁠.⁠”

“⁠반은 먹는다고 했다⁠. 거짓말은 안 했다⁠. 관아는 다 먹는다⁠, 털보⁠. 현령의 창고로 들어간 섬이 정월 보름에 한 집에 한 말씩 나온다지⁠? 이백 섬이 들어가면 몇 섬이 나올 것 같으냐⁠?⁠”

공양은 마을 우물가 느티나무에 붙은 종이를 떠올렸다⁠. 붉은 인장⁠. 정월 보름까지 살아 있으면 받겠네⁠.

“⁠곳간은 내가 지킨다⁠.⁠”

“⁠무엇을 위해서⁠?⁠”

흑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너를 거기 둔 수좌는 씨앗을 관아에 바치려 한다⁠. 너는 수좌의 곳간을 지키느냐⁠, 마을의 씨앗을 지키느냐⁠? 둘은 같은 섬인데 가는 데가 다르다⁠.⁠”

“⁠쥐한테 주면 마을 씨앗이 반으로 준다⁠.⁠”

“⁠관아에 주면 없어진다⁠.⁠”

공양은 대답하지 못했다⁠. 흑수는 등짐 밑으로 다시 들어가며 말했다⁠.

“⁠동짓날까지는 기다리마⁠. 동짓날이 되면 흥정은 없다⁠. 그날은 다 먹는다⁠.⁠”

방장 맞은편⁠, 유민들 뒤에 약장수가 서 있었다⁠. 약장수는 피리를 꺼내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방장과 고양이를 보고 있었다⁠. 약장수는 흑수가 등짐 밑으로 들어가는 것도 보았다⁠. 약장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공양은 쪽문으로 뛰어 들어가 곳간으로 달렸다⁠. 방장은 아직 일주문 밖 맨땅에 앉아 있었다⁠. 방장에게 보여 주면 될 것이었다⁠. 사람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보여 줄 수는 있었다⁠.

공양은 판자벽 바람구멍으로 뒤 칸에 들어갔다⁠. 세 겹 매듭 섬 앞에서 새끼줄 끝을 물었다⁠. 섬을 묶은 새끼줄 한 가닥을 물고 뒷걸음질 쳤다⁠. 매듭이 풀리면서 새끼줄이 길게 딸려 나왔다⁠. 공양은 새끼줄을 문 채 바람구멍으로 다시 나갔다⁠. 새끼줄은 끝이 섬에 감겨 있어서 공양이 당기는 만큼 풀려 나왔다⁠.

공양은 곳간 문틈을 지나 돌담을 넘었다⁠. 새끼줄이 따라왔다⁠. 대웅전 마당을 가로질렀다⁠. 새끼줄이 따라왔다⁠. 마당을 쓸던 무승이 빗자루를 멈추고 고양이가 끌고 가는 새끼줄을 눈으로 따라갔다⁠. 새끼줄은 곳간 돌담 위에서 대웅전 섬돌 앞을 지나 종루 밑을 지나 일주문까지 길게 이어졌다⁠.

“⁠나무아미타불⁠. 고양이가 무얼 낚아 가나⁠.⁠”

새끼줄이 마당 한가운데에서 팽팽해졌다⁠. 섬에 감긴 끝이 다 풀린 것이었다⁠. 공양은 이빨에 힘을 주고 당겼다⁠. 새끼줄이 탁 끊어졌다⁠. 공양은 끊어진 줄을 물고 굴렀다가 일어나 다시 달렸다⁠.

일주문 쪽문을 지나 방장의 무릎 앞에 새끼줄을 내려놓았다⁠. 침에 젖고 흙에 끌린 새끼줄 끝에 세 겹 매듭이 반쯤 남아 있었다⁠. 공양은 새끼줄을 앞발로 방장 쪽으로 밀었다⁠. 그러고 나서 몸을 돌려 일주문 밖의 유민들 너머⁠, 산 아래 골짜기를 보고 앉았다⁠. 꼬리를 바닥에 붙였다⁠.

방장이 새끼줄을 집어 들었다⁠. 매듭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쥐 냄새가 나는구나⁠.⁠”

방장은 새끼줄을 무릎에 올려놓고 공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양이가 쥐 냄새를 쫓아 여기까지 왔구나⁠. 장하다⁠.⁠”

공양은 고개를 돌려 방장을 올려다보았다⁠. 아니라고 울려다가 목이 쉬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방장 뒤에서 열쇠 소리가 났다⁠. 계율원 수좌가 쪽문으로 나오고 있었다⁠. 수좌는 방장의 무릎 위 새끼줄을 보았다⁠. 매듭을 보았다⁠. 수좌의 눈썹이 한 줄이 되었다⁠.

“⁠방장 스님⁠, 그 매듭은 뒤 칸 씨앗 섬의 것입니다⁠.⁠”

“⁠그러냐⁠?⁠”

“⁠저것이 뒤 칸에 들었습니다⁠. 판자벽 바람구멍으로⁠.⁠”

수좌가 공양을 내려다보았다⁠. 공양은 수좌를 올려다보았다⁠. 공양은 일주문 밖 골짜기 쪽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가 돌아보았다⁠. 따라오라고⁠. 저기라고⁠.

“⁠바람구멍을 막아라⁠.⁠”

수좌는 공양을 따라오지 않았다⁠. 문지기 무승에게 말했다⁠.

“⁠오늘 안에 판자로 막아라⁠. 저것이 씨앗을 물고 다니면 쥐가 냄새를 맡고 따라 든다⁠.⁠”

방장은 무릎 위의 새끼줄을 수좌에게 건넸다⁠. 건네면서 수좌의 손을 잠깐 잡았다 놓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좌는 새끼줄을 소매에 넣고 쪽문으로 들어갔다⁠.

*

오후 내내 문지기 무승이 판자벽 바람구멍에 판자를 덧대고 못을 박았다⁠. 망치 소리가 곳간 안에 울릴 때마다 공양은 귀를 눕혔다⁠. 무승은 못을 박다 손가락을 찧고 나무아미타불을 세 번 외웠다⁠. 세 번 다 목소리가 달랐다⁠.

무승이 가고 나자 곳간 바닥 물구멍에서 애꾸 쥐가 머리를 내밀었다⁠. 물구멍은 비 오는 날 물이 빠지라고 뚫어 둔 손가락 굵기의 구멍이었다⁠. 애꾸 쥐는 머리만 내밀고 몸은 내밀지 않았다⁠.

“⁠도령⁠, 흥정을 차셨다지요⁠.⁠”

“⁠들었냐⁠?⁠”

“⁠쥐는 다 듣습니다요⁠. 서왕님이 반을 마을에 내려놓는다 하셨으면 반은 내려놓으십니다요⁠. 서왕님은 거짓말은 안 하십니다요⁠. 따지실 뿐이지요⁠.⁠”

“⁠너도 흑수 편이냐⁠?⁠”

“⁠저는 제 새끼들 편입니다요⁠.⁠”

애꾸 쥐는 멀지 않은 눈 하나로 공양을 보았다⁠.

“⁠장독대 돌 틈에 여섯이 남았지요⁠. 넷이 되었습니다요⁠. 동짓날이면 몇이 남을지 모르지요⁠. 도령이 비켜 서시면 둘은 더 살 겁니다요⁠. 마을 씨앗 반이 남고요⁠. 안 비켜 서시면 동짓날 피리 소리에 수만이 올라옵니다요⁠. 수만이 올라오면 저는 새끼들을 데리고 올 수가 없습니다요⁠. 밟혀서⁠.⁠”

애꾸 쥐는 물구멍으로 머리를 빼다가 다시 내밀었다⁠.

“⁠그리고 도령⁠, 판자 박은 무승이 못을 하나 빼먹었습니다요⁠. 왼쪽 위⁠.⁠”

애꾸 쥐가 사라졌다⁠. 공양은 판자벽을 올려다보았다⁠. 왼쪽 위 귀퉁이에 못 자국만 있고 못이 없었다⁠.

*

해 질 녘 하늘에서 첫눈이 내렸다⁠. 굵지 않았다⁠. 마당에 내려앉자마자 녹았다⁠. 교두가 수레를 손보던 무승들에게 말했다⁠.

“⁠날이 안 풀리겠다⁠. 길이 얼면 수레는 못 간다⁠. 사흘은 늦어지겠다⁠.⁠”

공양은 곳간 문지방에 앉아 눈을 보았다⁠. 사흘이면 동짓날이 가까웠다⁠.

밤이 깊어 곳간 높은 창으로 덕칠의 얼굴이 나타났다⁠. 덕칠은 창턱에 팔을 걸치고 공양을 내려다보았다⁠. 아침부터 닫혀 있던 입이 열렸다⁠.

“⁠너 오늘 새끼줄 끌고 절 마당을 다 돌았다며⁠? 무승 놈들이 그 얘기를 한다⁠. 고양이가 낚시를 했다고⁠. 방장 스님한테 갖다 바쳤다고⁠.⁠”

공양은 창 밑으로 가서 앉았다⁠.

“⁠나는 안다⁠, 이놈아⁠. 너는 배고프다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아니었지⁠. 일주문으로 끌고 가던 날도⁠, 씨조 물어 온 날도⁠.⁠”

덕칠은 한참 공양을 보았다⁠. 눈이 덕칠의 어깨에 쌓였다가 녹았다⁠.

“⁠오늘 밤에 씨앗 섬 하나를 지고 내려간다⁠. 어머니 섬 하나만⁠. 판자벽은 도끼로 한 장 뜯으면 된다⁠. 수좌 스님이 아시면 나는 끝이다⁠. 그래도 간다⁠. 세 겹 매듭이 관아 창고에 들어가는 꼴은 못 본다⁠.⁠”

덕칠이 창턱에서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 누룽지가 있었다⁠.

“⁠같이 갈래⁠?⁠”

공양은 누룽지 대신 덕칠의 손가락을 물었다⁠. 아프지 않게⁠, 물고 놓았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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