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62자)

뒤 칸

소림사 절고양이 · 마하솔

일주문이 닫힌 첫날 밤⁠, 문짝 너머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주먹으로 치다가⁠, 손바닥으로 치다가⁠, 나중에는 이마로 기대는 소리가 났다⁠. 공양은 곳간 지붕에서 일주문을 내려다보았다⁠. 문지기 무승 둘이 문 안쪽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다⁠. 둘 다 눈을 감고 경을 외웠다⁠. 경 외는 소리가 두드리는 소리를 덮지 못했다⁠.

덕칠은 나뭇간 앞에 쪼그려 앉아 장작을 패지도 않고 도끼 자루만 쥐고 있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덕칠의 어깨가 움찔했다⁠. 공양이 다가가 정강이에 머리를 문질렀다⁠. 덕칠은 공양을 보지 않고 말했다⁠.

“⁠저기 우리 동네 목소리도 있다⁠. 감나무 집 영감 목소리다⁠. 그 영감이 나 어릴 때 감 따 줬다⁠.⁠”

덕칠은 대사 끝을 맺지 못했다⁠. 도끼 자루를 쥔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

밤이 깊어 공양은 곳간 섬 사이에 엎드려 있었다⁠. 찢어진 귀 끝이 아물면서 가려웠다⁠. 앞발로 긁으면 다시 터질 것 같아 귀를 섬에 대고 문질렀다⁠. 섬의 거친 새끼가 귀를 긁어 주었다⁠.

벽에서 소리가 났다⁠. 곳간 서쪽 벽⁠, 돌과 돌 사이에 회칠이 떨어져 나간 틈이었다⁠. 틈 너머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공양은 몸을 일으켜 틈 앞으로 갔다⁠. 냄새로 알았다⁠. 숯처럼 검은 털⁠, 지금은 잿불에 그을린 털⁠.

“⁠고리를 잃으니 꼬리가 가볍다⁠.⁠”

흑수의 목소리가 틈을 타고 들어왔다⁠.

“⁠덕분에 피리 소리가 덜 들린다⁠, 털보⁠. 고맙다고 해야 하나⁠?⁠”

“⁠들어오면 귀를 물어 주마⁠. 내 귀처럼⁠.⁠”

“⁠안 들어간다⁠. 오늘은 말만 하러 왔다⁠.⁠”

틈 너머에서 흑수가 자리를 고쳐 앉는 소리가 났다⁠.

“⁠곳간 안에서 가장 귀한 섬을 찾아봐라⁠. 앞 칸 말고 뒤 칸⁠. 찾고 나서 네 수좌가 그 섬을 어디로 보내려는지 들어 봐라⁠. 그러면 네가 누구를 지키는지 알게 된다⁠.⁠”

“⁠네가 어떻게 아냐⁠?⁠”

“⁠쥐는 벽 속에 산다⁠. 벽은 다 듣는다⁠. 계율원 벽도⁠.⁠”

틈 너머가 조용해졌다⁠. 공양은 틈에 코를 대고 오래 서 있었다⁠. 흑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

곳간 뒤 칸은 앞 칸과 판자벽 하나로 나뉘어 있었다⁠. 판자벽에 따로 문이 있었고⁠, 문에는 작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공양은 곳간에 온 뒤로 뒤 칸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쥐는 늘 앞 칸을 노렸다⁠. 공양도 앞 칸만 지켰다⁠.

판자벽 꼭대기⁠, 들보와 벽 사이에 손바닥만 한 바람구멍이 있었다⁠. 공양은 섬 더미를 밟고 올라가 앞발로 들보를 짚었다⁠. 갈라진 발톱 자리가 욱신거렸다⁠. 벽을 한 번 밟는다⁠. 공양은 판자벽을 한 번 차고 몸을 비틀어 바람구멍에 머리를 밀어 넣었다⁠. 머리가 들어가니 몸도 들어갔다⁠. 고양이는 머리가 들어가는 데라면 다 들어갔다⁠.

뒤 칸은 앞 칸보다 서늘했다⁠. 바닥에 짚을 두툼하게 깔고 섬을 쌓았다⁠. 섬이 작았다⁠. 앞 칸 섬의 반만 했다⁠. 공양은 섬 하나에 코를 댔다⁠. 곡식 냄새가 아니었다⁠. 먼지 냄새와 마른 흙 냄새 밑에 아주 엷은 풀 냄새가 깔려 있었다⁠. 겉껍질을 벗기지 않은 낟알 냄새였다⁠.

공양은 섬 하나의 터진 귀퉁이에서 낟알을 혀로 핥아 보았다⁠. 딱딱했다⁠. 겉껍질이 혀에 까끌거렸다⁠. 먹는 조가 아니었다⁠. 뿌리는 조였다⁠.

섬마다 매듭이 달랐다⁠. 두 번 감은 매듭 옆에 꽁지를 길게 뺀 매듭이 있었고⁠, 맨 안쪽에 세 겹으로 감고 마지막 고를 뒤로 넘긴 매듭이 있었다⁠. 공양은 섬을 하나하나 맡으며 걸었다⁠. 열두 가지 냄새였다⁠. 열두 가지 흙이었다⁠.

공양은 세 겹 매듭 섬의 터진 귀퉁이에 입을 넣고 낟알을 한가득 물었다⁠. 볼이 불룩해졌다⁠. 바람구멍으로 다시 나가려니 볼 때문에 머리가 걸려 빠지지 않았다⁠. 공양은 바람구멍에 머리를 끼운 채 뒷다리를 허우적거렸다⁠. 한참을 허우적대다 낟알을 반만 남기고 반은 뱉었다⁠. 뱉고 나서야 빠졌다⁠.

*

덕칠은 나뭇간 장작더미 옆에 거적을 덮고 자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코를 골았다⁠. 공양은 덕칠의 가슴 위로 올라가 볼에 문 낟알을 쏟아 놓았다⁠. 침에 젖은 씨조가 덕칠의 저고리 앞섶에 노랗게 흩어졌다⁠.

덕칠은 코를 한 번 크게 골고 눈을 떴다⁠. 가슴 위의 공양과 눈이 마주쳤다⁠.

“⁠배고프냐⁠?⁠”

공양은 앞발로 씨조를 덕칠의 턱 밑으로 밀었다⁠.

“⁠네가 배고파서 나한테 밥을 갖다주냐⁠? 거꾸로 됐다⁠, 이놈아⁠.⁠”

덕칠은 씨조 한 알을 집어 손톱으로 눌러 보았다⁠. 눈이 가늘어졌다⁠.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거 먹는 조 아니다⁠. 씨조다⁠. 겉껍질째네⁠. 이걸 어디서⁠…⁠…⁠.⁠”

덕칠은 앞섶에 붙은 낟알 사이에서 짧은 새끼 토막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공양이 낟알과 함께 물어 온 토막이었다⁠. 세 겹으로 감고 마지막 고를 뒤로 넘긴 매듭이 반쯤 풀려 있었다⁠.

“⁠어머니 씨앗이다⁠.⁠”

덕칠이 공양을 보았다⁠.

“⁠뒤 칸에 들어갔냐⁠? 거길 어떻게⁠…⁠… 아니⁠, 그건 됐고⁠. 왜 이걸 나한테 가져왔냐⁠?⁠”

공양은 덕칠의 가슴에서 뛰어내려 나뭇간 문 앞에 앉았다⁠. 곳간을 보고 앉았다⁠. 꼬리를 바닥에 붙였다⁠. 덕칠은 공양을 한참 보다가 거적을 걷고 일어났다⁠.

“⁠너 오늘은 배고프다는 소리가 아니구나⁠.⁠”

덕칠은 앞섶의 씨조를 한 알도 흘리지 않게 손바닥에 쓸어 모았다⁠. 모은 것을 새끼 토막과 함께 헝겊에 싸서 허리춤에 넣었다⁠. 넣고 나서 공양 앞에 쪼그려 앉았다⁠.

“⁠수좌 스님은 밤마다 곳간을 한 바퀴 도신다⁠. 쥐 떼 친 뒤로는 꼭 도셔⁠. 오늘은 늦었고⁠. 내일 밤에 가 보자⁠. 뒤 칸에 씨앗이 있는 거야 동네 사람 다 안다⁠. 그걸 왜 네가 물어 왔는지가 궁금하다⁠, 나는⁠.⁠”

덕칠은 거적을 다시 덮고 누웠다⁠. 눈은 감지 않았다⁠. 공양은 덕칠의 옆구리에 붙어 엎드렸다⁠. 덕칠은 날이 밝을 때까지 코를 골지 않았다⁠.

*

이튿날 아침 공양은 수련 마당 대신 선방으로 갔다⁠. 선방에서는 스님 스무 명이 벽을 보고 앉아 있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공양은 문지방 너머에서 스님들의 등을 한참 보았다⁠. 처음에는 스님들이 쥐구멍을 노리는 줄 알았다⁠. 그렇게 오래 벽을 노려보는 짐승은 쥐구멍 앞의 고양이뿐이었다⁠.

공양은 스님들 끝자리로 걸어 들어가 벽을 보고 앉았다⁠. 젊은 스님 하나가 실눈을 뜨고 공양을 보았다가 도로 감았다⁠.

스님들은 숨을 길게 들이쉬고 더 길게 내쉬었다⁠. 배만 움직이고 어깨는 움직이지 않았다⁠. 공양이 따라 하자 수염이 떨리지 않았다⁠. 숨이 길어지자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귀 끝 가려운 것도 잊혔다⁠. 한 식경쯤 지났을 때⁠, 공양이 노려보던 벽 밑 구멍에서 정말로 쥐 하나가 머리를 내밀었다⁠.

공양은 움직이지 않았다⁠. 눈알만 굴렸다⁠. 쥐가 공양과 눈이 마주쳤다⁠. 쥐는 고양이가 스님들 사이에 끼어 벽을 보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한참을 굳어 있다가⁠, 기겁을 하고 구멍으로 들어갔다⁠.

“⁠찍⁠.⁠”

구멍 안에서 쥐가 동무에게 하는 말이 공양의 귀에만 들렸다⁠. 고양이가 출가했다⁠. 고양이가 출가했어⁠.

곁의 젊은 스님이 어깨를 떨었다⁠. 웃음을 참느라 숨이 길어지지 못했다⁠. 죽비가 젊은 스님의 어깨를 쳤다⁠. 공양은 끝까지 배로만 숨을 쉬었다⁠. 죽비는 공양의 어깨를 치지 않았다⁠.

*

밤이 되었다⁠. 곳간 앞 칸의 섬 사이는 사람 하나가 들어가 숨기에 좁았다⁠. 덕칠은 몸을 옆으로 세워 섬과 섬 사이에 끼어들었다⁠. 곳간 문 자물쇠가 망가진 것은 쥐 떼가 친 뒤로 덕칠만 알았다⁠. 덕칠이 공양을 내려다보며 입 모양만으로 말했다⁠. 수좌 스님한테 들키면 우리 둘 다 끝이다⁠.

공양은 덕칠의 발치에 엎드려 배로만 숨을 쉬었다⁠. 어깨도 수염도 움직이지 않았다⁠. 덕칠은 공양처럼 숨을 쉬지 못했다⁠. 덕칠의 배 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덕칠이 제 배를 두 손으로 눌렀다⁠. 다시 꾸르륵 소리가 났다⁠. 공양은 덕칠의 발등을 앞발로 꾹 눌렀다⁠. 누른다고 멎을 소리가 아니었지만⁠, 덕칠은 숨을 참았고 소리는 멎었다⁠.

등불이 들어왔다⁠. 계율원 수좌와 무승 교두였다⁠. 수좌는 뒤 칸 판자문 앞에서 허리끈의 작은 열쇠로 자물쇠를 열었다⁠. 등불이 뒤 칸 안을 비췄다⁠. 수좌는 섬을 세었다⁠. 손가락으로 짚으며 입속으로 셌다⁠. 다 세고 나서 교두에게 말했다⁠.

“⁠이백이다⁠. 꼭 이백⁠.⁠”

“⁠씨앗을요⁠, 스님⁠?⁠”

교두의 목소리가 낮았다⁠. 수련 마당에서 호령하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현령은 정월까지 진휼미 이백 섬을 바치라 했다⁠. 앞 칸은 사백이다⁠. 앞 칸에서 이백을 내면 사백 식구가 이백 섬으로 봄을 나야 한다⁠. 무승들이 반 그릇으로 동짓날 쥐 떼를 막을 수 있느냐⁠? 마교 놈이 일주문 밖에 서 있는데⁠.⁠”

“⁠씨앗을 바치면 봄에 마을은 무엇을 뿌립니까⁠?⁠”

“⁠공문에 적혀 있다⁠. 봄에 현에서 진휼 씨앗을 내려보낸다고⁠.⁠”

“⁠현령의 공문을 믿으십니까⁠?⁠”

수좌는 대답하지 않았다⁠. 등불을 들어 섬 하나의 매듭을 비췄다⁠. 세 겹 매듭이었다⁠. 반쯤 풀려 있었다⁠. 수좌의 손가락이 풀린 매듭 위에서 멈췄다⁠.

“⁠바치지 않으면 관이 절 땅을 거둔다⁠. 땅이 없으면 씨앗이 있어도 뿌릴 데가 없다⁠. 둘 중 하나는 잃는다⁠. 나는 땅을 남긴다⁠.⁠”

섬 사이에서 덕칠의 몸이 움직였다⁠. 공양은 덕칠의 발등에 앞발을 올렸다⁠. 덕칠은 공양의 앞발을 밟을 듯이 걸어 나갔다⁠.

“⁠어머니는 맡긴 겁니다⁠.⁠”

등불이 휙 돌아 덕칠의 얼굴을 비췄다⁠. 교두가 한 걸음 물러났다⁠. 수좌는 물러나지 않았다⁠.

“⁠덕칠아⁠.⁠”

“⁠바친 게 아니라 맡긴 겁니다⁠. 쥐가 먹을까 봐⁠, 당신이 먹을까 봐⁠, 절에 두면 아무도 못 먹는다고⁠. 어머니가 그랬습니다⁠. 절에 두면 아무도 못 먹는다고⁠.⁠”

“⁠맡은 것을 지키려면 맡은 집이 서 있어야 한다⁠.⁠”

수좌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 높아지지 않아서 더 단단했다⁠.

“⁠이 절이 땅을 잃으면 열두 마을이 내년에 부칠 땅도 없다⁠. 사백 식구가 굶으면 동짓날 이 곳간에 쥐가 든다⁠. 쥐가 들면 앞 칸도 뒤 칸도 없다⁠. 네 어머니 씨앗도 없다⁠. 내가 잘못 세었느냐⁠? 잘못 세었으면 말해 보아라⁠.⁠”

덕칠은 말하지 못했다⁠. 입술이 떨렸다⁠. 교두가 등불 그림자 속에서 덕칠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다 거두었다⁠. 거둔 손으로 제 뒷목을 문질렀다⁠.

“⁠스님⁠, 절반만 씨앗으로 내면 어떻습니까⁠? 백 섬은 앞 칸에서 내고요⁠. 무승들은 제가 반 그릇으로 굴리겠습니다⁠. 동짓날까지는 버팁니다⁠.⁠”

“⁠동짓날 다음은⁠?⁠”

교두는 대답하지 못했다⁠.

“⁠앞 칸에서 백을 내면 정월에 사백 식구가 삼백 섬이다⁠. 이월에 바닥이 보이고 삼월에 노스님들부터 눕는다⁠. 나는 그런 봄을 한 번 보았다⁠.⁠”

수좌는 판자문 손잡이를 쥔 채 돌아보지 않았다⁠. 덕칠이 목멘 소리로 물었다⁠.

“⁠스님은 산 아래서 오셨다면서요⁠. 저보다 먼저⁠.⁠”

“⁠그래서 섬을 센다⁠.⁠”

수좌의 대답은 짧았다⁠. 짧아서 다른 말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수좌가 판자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열쇠를 돌리는 소리가 뒤 칸 안에서 울렸다⁠.

“⁠날이 풀리는 대로 수레를 내라⁠. 현까지는 이틀이다⁠.⁠”

수좌는 곳간을 나갔다⁠. 교두도 나갔다⁠. 덕칠만 섬 사이에 서 있었다⁠. 등불이 떠난 곳간은 캄캄했다⁠. 공양은 덕칠의 발치에 앉아 덕칠의 숨소리를 들었다⁠. 선방의 스님들처럼 길게 들이쉬지 못하고 짧게⁠, 짧게 끊어졌다⁠.

서쪽 벽 틈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들었느냐⁠, 털보⁠. 사람도 절도⁠.⁠”

6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