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02자)

잡는 손

소림사 절고양이 · 마하솔

덕칠의 소매에서 떨어진 것은 조 세 알이었다⁠. 세 알이 곳간 돌바닥에 떨어져 톡⁠, 톡⁠, 톡 소리를 냈다⁠. 계율원 수좌는 세 알을 하나씩 주워 갉힌 섬의 터진 데에 넣었다⁠. 넣고 나서 덕칠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곳간에 들지 마라⁠. 물은 두 배로 길어라⁠.⁠”

덕칠은 고개를 숙이고 곳간을 나갔다⁠. 나가면서 공양을 한 번 돌아보았다⁠. 공양은 따라 나가지 않았다⁠. 곳간지기였다⁠. 덕칠의 발소리가 돌담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공양은 문지방 안쪽에 앉아 꼬리 끝만 까딱였다⁠.

저녁에 공양의 밥그릇은 비어 있었다⁠. 덕칠은 공양간 문지방 너머에서 손짓만 했다⁠. 들어오라고 하고 싶은데 들어오면 안 되는 사람이 하는 손짓이었다⁠. 공양은 문지방 앞에 앉아 덕칠의 손을 보았다⁠. 손이 비어 있었다⁠.

*

이튿날 새벽⁠, 담 위에 엎드린 공양을 무승 교두가 올려다보았다⁠. 오래 올려다보았다⁠. 무승들은 마보를 선 채 교두가 어디를 보는지 눈알만 굴려 따라갔다⁠.

“⁠저놈이다⁠.⁠”

교두가 막대로 담을 가리켰다⁠.

“⁠열흘째 저기 엎드려 있다⁠. 내가 주먹을 지르면 앞발을 내민다⁠. 내가 앉으면 엉덩이를 내린다⁠. 어제는 짚 다발 맞는 걸 보더니 밤나무 밑에 가서 밤송이를 맞더라⁠. 내가 모를 줄 알았지⁠?⁠”

무승들 사이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교두는 막대를 내려놓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엉덩이는 내리고 있어라⁠. 교두가 도둑 잡으러 간다⁠.⁠”

교두가 담을 향해 달렸다⁠. 세 걸음⁠, 네 번째 걸음에 벽을 밟고 담 머리를 짚었다⁠. 공양은 이미 담 위에 없었다⁠. 대웅전 처마로 건너가 있었다⁠. 교두가 처마로 뛰었다⁠. 공양은 처마에서 지붕 경사를 타고 용마루로 올랐다⁠. 교두가 기와를 밟고 따라 올랐다⁠. 기와 한 장이 교두의 발밑에서 미끄러져 마당으로 떨어졌다⁠. 마보를 선 무승들이 고개만 돌려 깨지는 기와를 보았다⁠.

“⁠기와 값은 내가 낸다⁠! 엉덩이 들지 마라⁠!⁠”

공양은 용마루를 따라 달렸다⁠. 끝에서 종루 지붕으로 뛰었다⁠. 교두도 뛰었다⁠. 교두의 몸이 공중에서 한 번 돌았고⁠, 종루 지붕에 내려앉았다⁠. 공양은 종루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 줄을 타고 지붕 아래 들보로 내려갔다⁠. 교두는 처마 끝에 엎드려 들보를 내려다보았다⁠. 숨이 거칠었다⁠.

“⁠너⁠, 내 경공을 훔쳤구나⁠. 내 걸음이다⁠, 그거⁠.⁠”

공양은 들보 위에 앉아 교두를 올려다보았다⁠. 교두의 콧등에 땀이 맺혀 있었다⁠. 교두는 종루 지붕에 벌렁 드러누웠다⁠. 하늘을 보고 한참 웃었다⁠.

“⁠고양이한테 졌다⁠. 마흔 놈이 아래서 다 봤다⁠.⁠”

교두는 드러누운 채 한 손을 하늘로 뻗었다⁠. 손가락이 허공의 무엇을 움켜쥐었다⁠. 움켜쥔 손목을 안쪽으로 비틀었다⁠. 비틀면서 팔꿈치를 몸 쪽으로 당겼다⁠. 아주 천천히⁠.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혼자 하는 몸짓이었다⁠.

“⁠이건 금나수다⁠. 잡고 꺾는 손⁠. 상대 손목을 잡으면 뼈가 꺾이는 길로만 돌린다⁠. 뼈는 제 길로 돌면 안 아프고 거꾸로 돌면 아프다⁠. 너는 이건 못 따라 하지⁠. 손가락이 없으니까⁠.⁠”

교두는 손을 내리고 들보의 공양을 흘끗 보았다⁠.

“⁠따라 해 봐라⁠, 이놈아⁠. 못 할 거다⁠.⁠”

교두는 지붕에서 일어나 처마로⁠, 처마에서 마당으로 내려갔다⁠. 마당에서 다시 호령이 들렸다⁠. 엉덩이 들었던 놈 나와라⁠. 셋이 나왔다⁠.

공양은 들보 위에서 제 앞발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은 없었다⁠. 발톱은 있었다⁠.

*

공양은 곳간 담 밑에서 새끼줄 토막을 상대로 금나수를 익혔다⁠. 사람은 손가락으로 잡았다⁠. 고양이는 발톱으로 걸었다⁠. 앞발 둘의 발톱을 새끼줄에 걸고 몸을 옆으로 굴렸다⁠. 새끼줄이 비틀렸다⁠. 굴린 몸을 따라 뒷발이 올라왔다⁠. 공양은 뒷발 둘로 새끼줄을 연달아 걷어찼다⁠. 사람이 손목을 잡고 비트는 동안 고양이는 앞발로 잡고 몸으로 비틀고 뒷발로 찼다⁠. 고양이가 원래 하는 짓이었다⁠. 다만 원래는 순서가 없었다⁠.

순서를 붙이자 새끼줄이 끊어졌다⁠.

공양은 갈라진 발톱 쪽 앞발은 쓰지 않았다⁠. 성한 앞발 하나로 걸고 굴렀다⁠. 반쪽짜리 금나수였다⁠. 반쪽으로도 새끼줄은 끊어졌다⁠. 다만 걸 때마다 아픈 앞발이 저절로 따라 나가려 했다⁠. 공양은 아픈 앞발을 배 밑에 깔고 다시 굴렀다⁠.

*

한낮에 일주문 밖이 소란해졌다⁠. 공양은 곳간 담에서 일주문 기둥 위로 옮겨 앉아 내려다보았다⁠.

길섶의 유민이 늘어 있었다⁠. 여남은이던 사람이 쉰은 넘어 보였다⁠. 아이를 업은 아낙도 있었고 지게를 진 노인도 있었다⁠. 모두 일주문을 보고 앉아 있었다⁠. 문지기 무승이 막대를 가로 쥔 채 땀을 흘렸다⁠.

유민 틈에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앉아 있는데 혼자 서 있었다⁠. 얼굴이 희었고⁠, 볼에 살이 붙어 있었다⁠. 흉년에 살이 붙은 얼굴은 드물었다⁠. 등에는 약초 상자를 지고 있었다⁠. 약장수였다⁠. 약장수는 허리춤에서 뼈로 깎은 피리를 꺼내 입에 댔다⁠.

가늘고 높은 소리가 났다⁠. 골짜기에서 검은 물결 위로 지나가던 소리였다⁠.

공양의 등털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꼬리가 두 배로 부풀었다⁠. 유민들은 피리 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었다⁠. 사람 귀에는 그저 높은 피리 소리였다⁠. 공양의 귀에는 피리 소리 밑에 한 줄이 더 깔려 있었다⁠. 말이 아닌데 말처럼 들리는 소리였다⁠. 모여라⁠. 기다려라⁠. 모여라⁠.

일주문 담 밑 풀숲이 바스락거렸다⁠. 쥐 열댓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다가 피리 소리가 멎자 다시 들어갔다⁠.

약장수가 피리를 내리고 일주문 기둥 위의 공양을 올려다보았다⁠. 웃었다⁠. 공양에게 눈을 찡긋했다⁠. 사람이 고양이에게 하는 짓이 아니었다⁠.

약장수의 소매에서 쥐 냄새가 났다⁠. 한 마리 냄새였다⁠. 숯처럼 검은 털에서 나던 냄새였다⁠.

*

해가 지고 곳간 높은 창으로 무언가가 날아 들어왔다⁠. 공양 앞의 돌바닥에 떨어진 것은 말린 생선 껍질이었다⁠. 창밖에서 덕칠의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

“⁠곳간에 들지 말랬지⁠, 던지지 말란 말은 없었다⁠.⁠”

공양은 생선 껍질을 물었다⁠. 짜고 비렸다⁠. 사흘 만에 먹는 비린 것이었다⁠.

“⁠너 교두 스님을 지붕까지 끌고 다녔다며⁠? 무승 놈들이 하루 종일 그 얘기만 한다⁠. 교두 스님이 고양이한테 졌다고⁠. 교두 스님은 저녁 공양 때 밥을 두 그릇 드셨대⁠. 분해서⁠. 잘했다⁠, 이놈아⁠. 나는 오늘 물을 마흔 지게 길었다⁠. 어깨가 내 어깨가 아니다⁠.⁠”

덕칠은 창밖에서 한참 더 떠들었다⁠. 수좌 스님 눈썹 얘기가 한 번 더 나왔고⁠, 산 아래 어머니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덕칠이 어머니 얘기를 빼먹는 날은 없었다⁠. 공양은 생선 껍질을 다 먹고 나서야 어머니 얘기가 빠진 것을 알아챘다⁠. 창밖에서 발소리가 멀어졌다⁠.

*

밤에 공양은 곳간 대신 공양간으로 갔다⁠. 공양간에서 쥐 냄새가 났다⁠. 문지방 밑 틈으로 들어가자 아궁이 앞에 검은 것이 앉아 있었다⁠. 아궁이에는 아직 잿불이 붉었고⁠, 잿불 빛에 흑수의 눈이 두 점으로 빛났다⁠.

흑수는 누룽지 단지에 앞발을 넣고 있었다⁠. 덕칠이 긁어 모아 둔 누룽지였다⁠.

“⁠절 부엌에도 누룽지가 남는구나⁠. 산 아래에서는 볏짚도 남지 않는데⁠.⁠”

흑수는 누룽지 한 조각을 꺼내 앞발로 돌려 가며 씹었다⁠.

“⁠네 밥그릇이 비었더구나⁠, 털보⁠. 불목하니가 쫓겨났다지⁠? 사람은 제 어미에게 조 한 줌 가져간 놈을 내친다⁠. 쥐는 그런 짓 안 한다⁠.⁠”

“⁠덕칠은 안 쫓겨났다⁠. 곳간에만 못 들어간다⁠.⁠”

“⁠곧 쫓겨난다⁠. 사람 일은 늘 그렇게 간다⁠.⁠”

공양은 뛰지 않았다⁠. 아궁이 앞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마보를 잡지 않았다⁠. 몸을 낮추고 성한 앞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흑수가 누룽지를 내려놓았다⁠.

흑수의 앞발이 옆에서 들어왔다⁠. 장경각에서 공양의 코를 가른 앞발이었다⁠. 이번에는 보였다⁠. 보이는 앞발은 크게 돌아 들어왔다⁠. 공양은 고개를 숙여 흘려보내고⁠, 흑수의 앞발이 돌아 나가는 길에 발톱을 걸었다⁠.

걸고⁠, 굴렀다⁠.

공양의 몸이 옆으로 구르자 흑수의 앞발이 따라 비틀렸다⁠. 뼈가 꺾이는 길로⁠. 흑수가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짧고 날카로운 찍 소리였다⁠. 굴러간 공양의 뒷발이 올라왔다⁠. 흑수의 배를 연달아 찼다⁠. 흑수가 아궁이 앞 잿더미로 나가떨어졌다⁠. 재가 확 피어올랐다⁠.

공양은 일어나 다시 몸을 낮췄다⁠. 재가 가라앉았다⁠. 흑수가 재를 뒤집어쓰고 일어났다⁠. 검은 털이 잿빛이 되어 있었다⁠.

“⁠누가 가르쳤느냐⁠?⁠”

“⁠지붕에서 배웠다⁠.⁠”

흑수가 다시 들어왔다⁠. 이번에는 앞발이 아니라 이빨이었다⁠. 몸을 곧게 펴고 곧게 들어왔다⁠. 공양이 배운 주먹처럼 짧고 빨랐다⁠. 공양은 피하지 못했다⁠. 흑수의 이빨이 공양의 왼쪽 귀를 물었다⁠. 물고 비틀었다⁠. 귀 끝이 찢어졌다⁠.

공양은 숨을 뱉었다⁠. 밤송이를 맞을 때처럼⁠. 아팠지만 몸이 굳지 않았다⁠. 귀를 물린 채로 공양은 몸을 굴렸다⁠. 흑수의 머리가 따라 돌았다⁠. 공양의 성한 앞발이 흑수의 꼬리를 쓸어 잡았다⁠. 발톱 끝에 꼬리 끝의 딱딱한 것이 닿았다⁠. 공양은 발톱을 오므려 움켜쥐었다⁠.

흑수가 귀를 놓고 아궁이 아가리로 뛰어들었다⁠. 잿불 위를 밟고 지나 굴뚝 길로 사라졌다⁠. 털 타는 냄새가 났다⁠. 공양의 발톱에 매달려 있던 것이 짤그랑 소리를 내며 아궁이 앞 바닥에 떨어졌다⁠.

구리 고리였다⁠.

굴뚝 안에서 흑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래로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그건 네가 가져라⁠, 털보⁠. 나는 이제 피리 없이도 간다⁠.⁠”

공양은 아궁이 앞에 앉아 숨을 골랐다⁠. 왼쪽 귀에서 피가 흘러 수염을 적셨다⁠. 귀 끝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이 느껴졌다⁠. 찢어진 귀는 찢어진 채로 아물 것이었다⁠.

*

아침에 공양은 구리 고리를 입에 물고 곳간 문 앞에서 계율원 수좌를 기다렸다⁠. 수좌가 열쇠를 들고 오자 공양은 고리를 수좌의 발 앞에 내려놓았다⁠. 생쥐를 내려놓았던 날처럼 꼬리를 세우고 앉아 올려다보았다⁠.

수좌는 고리를 집어 들었다⁠. 손톱만 한 고리였다⁠. 고리 안쪽에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수좌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침 수련을 마친 교두가 곳간 앞을 지나다 수좌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어디서 났습니까⁠, 그건⁠?⁠”

“⁠저것이 물어 왔다⁠.⁠”

교두가 고리를 받아 해에 비췄다⁠. 고리 안쪽에 불꽃 하나와 눈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교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마교 놈들 표식입니다⁠. 젊어서 강호를 돌 때 본 적이 있습니다⁠. 짐승을 길들여 부리는 놈들이에요⁠. 매를 부리는 놈도 있고 뱀을 부리는 놈도 있다더니⁠.⁠”

“⁠쥐를 부리는 놈도 있구나⁠.⁠”

수좌는 고리를 다시 받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고리를 내려다보는 동안 수좌의 눈썹이 한 줄이 되었다⁠. 공양은 수좌의 얼굴을 보며 꼬리를 바닥에 붙였다⁠. 수좌가 알아들었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알아들었다⁠.

“⁠관아에 알려야겠습니다⁠, 스님⁠.⁠”

“⁠관아는 진휼미 말고는 아무것도 안 듣는다⁠. 군사 한 명 안 보낸다⁠.⁠”

수좌는 고리를 소매에 넣었다⁠.

“⁠일주문을 닫아라⁠. 유민도 들이지 마라⁠. 저 틈에 무엇이 섞였는지 모른다⁠.⁠”

덕칠이 물지게를 지고 곳간 앞을 지나다 걸음을 멈췄다⁠. 지게 끝의 물통에서 물이 출렁 넘쳤다⁠.

“⁠스님⁠, 밖에 우리 어머니 동네 사람들도 있습니다⁠. 절에 오면 죽 한 그릇은 준다고 다들⁠…⁠…⁠.⁠”

“⁠닫아라⁠.⁠”

한낮에 일주문이 닫혔다⁠. 문지기 무승 둘이 육중한 문짝을 밀었다⁠. 문짝이 길섶의 유민들과 절 사이를 천천히 가렸다⁠. 닫히기 직전⁠, 문틈으로 공양은 길섶에 서 있는 약장수를 보았다⁠. 약장수는 닫히는 문을 보며 피리를 손바닥에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문은 약장수를 밖에 두었고⁠, 약장수는 문 안의 무엇에도 손을 댈 필요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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