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69자)

쇠 같은 살

소림사 절고양이 · 마하솔

곳간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공양은 곳간지기가 된 첫날 아침을 섬 사이의 그늘에서 맞았다⁠. 갈라진 발톱 자리가 밤새 부어서⁠, 헝겊을 감은 앞발이 다른 앞발보다 한 마디는 굵어 보였다⁠. 걸을 때마다 앞발을 디디기 전에 숨부터 멈췄다⁠.

새벽 종이 울리자 공양은 세 발로 곳간을 나와 담에 올랐다⁠. 담 아래 마당의 무승들은 오늘 마보를 서지 않았다⁠. 둘씩 마주 서서 서로의 팔뚝을 볏짚 다발로 내리치고 있었다⁠. 볏짚이 팔에 닿을 때마다 퍽 소리가 났다⁠. 맞는 무승은 피하지 않았다⁠. 볏짚이 닿는 순간 입으로 숨을 짧게 뱉으며 팔뚝에 힘을 넣었다⁠.

“⁠맞을 자리를 알고 맞아라⁠.⁠”

무승 교두가 줄 사이를 걸으며 말했다⁠.

“⁠모르고 맞으면 뼈가 맞고⁠, 알고 맞으면 살이 맞는다⁠. 살은 쇠가 된다⁠. 철포삼은 쇠로 지은 옷이다⁠. 오늘 짚으로 맞고⁠, 내일 대나무로 맞고⁠, 동짓날까지 몽둥이로 맞는다⁠.⁠”

무승들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동짓날이라는 말에 공양의 귀가 쫑긋 일어났다⁠.

교두가 지나간 줄에서 무승 하나가 짚 다발을 맞고 팔을 감싸 쥐었다⁠. 숨을 뱉는 때를 놓친 무승이었다⁠. 짝이 된 무승이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가⁠, 교두에게 엉덩이를 한 대 맞았다⁠.

“⁠미안하면 더 세게 쳐라⁠. 덜 치면 동짓날 쟤가 죽는다⁠.⁠”

공양은 제 앞발을 내려다보았다⁠. 발톱이 갈라질 때 공양은 숨을 들이켰다⁠. 들이켜고 참았다⁠. 무승들은 맞는 순간 숨을 뱉었다⁠.

수련이 끝나자 무승 하나가 마당을 비질하기 시작했다⁠. 공양은 담에서 내려와 비질하는 자리 한가운데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숨을 뱉을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 대빗자루가 다가왔다⁠. 공양은 숨을 뱉고 온몸에 힘을 넣었다⁠.

빗자루는 공양을 때리지 않았다⁠. 쓸었다⁠. 공양은 낙엽과 함께 쓸려 마당을 미끄러져 가다가 쓰레받기 안으로 들어갔다⁠. 무승은 쓰레받기를 들어 올리다 안을 들여다보고 놀라 손을 놓았다⁠. 공양은 낙엽을 뒤집어쓴 채 쓰레받기에서 걸어 나왔다⁠. 무승이 합장을 하며 중얼거렸다⁠.

“⁠나무아미타불⁠. 오늘 쓸린 것 가운데 제일 무겁네⁠.⁠”

공양은 털에 붙은 낙엽을 털지도 않고 곳간으로 돌아갔다⁠. 맞으려면 때리는 것이 있어야 했다⁠. 쓸리는 것은 철포삼이 아니었다⁠.

*

곳간 담 옆에 밤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밤은 가을에 다 털렸지만 꼭대기 가지에 빈 밤송이가 아직 매달려 바람이 불 때마다 하나씩 떨어졌다⁠. 공양은 밤나무 밑에 앉았다⁠. 마보를 잡고 등을 둥글게 말았다⁠.

바람이 불었다⁠. 밤송이 하나가 공양의 등에 떨어졌다⁠. 가시가 털을 뚫고 살갗을 찔렀다⁠. 공양은 펄쩍 뛰어 밤나무에서 세 걸음 물러났다⁠. 등이 따끔따끔했다⁠.

공양은 다시 앉았다⁠. 이번에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밤송이 꼭지가 끊어지는 작은 소리⁠. 소리가 나고 나서 밤송이가 떨어지기까지 숨 한 번만큼 틈이 있었다⁠. 공양은 소리를 듣자마자 숨을 뱉고 등 가죽에 힘을 넣었다⁠.

밤송이가 등에 떨어졌다⁠. 아팠다⁠. 아프기는 아팠는데⁠, 가시가 털 위에서 멈췄다⁠. 살갗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등 가죽이 북처럼 팽팽해서 가시가 미끄러졌다⁠.

“⁠너 뭐 하냐⁠?⁠”

덕칠이 장작을 지고 지나가다 멈췄다⁠. 공양은 밤나무 밑에서 등을 말고 앉아 있었고⁠, 등에 밤송이 두 개가 붙어 있었다⁠.

“⁠밤 줍냐⁠? 밤은 다 털었다⁠. 그건 껍데기야⁠, 이놈아⁠. 배가 얼마나 고프면⁠.⁠”

덕칠은 혀를 차며 밤송이를 떼어 주었다⁠. 가시가 덕칠의 손가락을 찔렀다⁠. 덕칠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공양을 노려보았다⁠.

“⁠너는 안 아프냐⁠?⁠”

공양은 대답 대신 숨을 뱉었다⁠. 해 질 녘까지 공양은 밤송이를 열여섯 번 맞았다⁠. 열 번째부터는 가시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갈라진 발톱만 쇠가 되지 않았다⁠.

*

밤이 깊어 덕칠이 곳간 앞을 지나갔다⁠. 발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소매가 불룩했다⁠. 공양은 섬 사이에서 귀를 세웠다가 문틈으로 빠져나가 덕칠을 따라갔다⁠.

덕칠은 일주문을 지나 산길을 내려갔다⁠. 공양이 생쥐를 따라 내려갔던 길이었다⁠. 덕칠은 길을 눈 감고도 아는 사람처럼 걸었다⁠. 돌부리마다 발을 비켜 디뎠다⁠. 중턱 너럭바위를 지나자 덕칠이 혼잣말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또 화내실 거다⁠. 절 것 가져오면 못쓴다고⁠. 그러고 다 드실 거다⁠. 화내는 것도 기운이 있어야 내지⁠.⁠”

덕칠은 혼자 말하고 혼자 웃었다⁠. 공양은 덕칠의 뒤에서 열 걸음을 두고 따라갔다⁠. 덕칠이 뒤를 돌아보면 길섶 풀숲에 엎드렸다⁠. 덕칠은 세 번 돌아보았고⁠, 세 번 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골짜기 바닥에 닿자 냄새가 바뀌었다⁠. 산에서는 송진 냄새가 났는데 들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사람 사는 데서 밥 짓는 냄새가 안 나는 것이 공양은 처음이었다⁠. 밭에는 메뚜기가 먹다 남긴 조 대궁이 허리가 꺾인 채 서걱거렸다⁠. 마을 어귀의 감나무에는 감이 하나도 없었다⁠. 까치밥까지 따 간 감나무였다⁠.

덕칠은 마을 끝의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오두막 문은 거적이었다⁠. 공양은 처마 밑 장독대에 숨었다⁠. 장독 뚜껑이 다 열려 있었다⁠. 공양은 독 하나에 코를 넣어 보았다⁠. 바닥까지 비어 있었다⁠. 바닥을 손가락으로 훑은 자국만 둥글게 남아 있었다⁠.

거적 너머에서 늙은 여자의 목소리가 났다⁠.

“⁠절 것 가져오면 못쓴다⁠.⁠”

“⁠절 것 아니에요⁠. 어머니가 낸 조예요⁠. 어머니 매듭에서 한 줌 덜어 온 거예요⁠.⁠”

“⁠낸 것은 절 것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늙은 여자는 조를 받았다⁠. 조를 솥에 붓는 소리가 났다⁠. 물 붓는 소리가 났다⁠. 아궁이에 불 붙이는 소리가 났다⁠. 솥이 끓는 동안 늙은 여자가 말했다⁠.

“⁠씨앗은 절에 맡겼으니 됐다⁠. 봄에 그거 받아다 뿌리면 된다⁠. 집에 두면 쥐가 먹든 내가 먹든 먹는다⁠. 절에 두면 아무도 못 먹지⁠.⁠”

“⁠그렇죠⁠. 아무도 못 먹죠⁠.⁠”

공양은 거적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늙은 여자는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굵었고⁠, 손톱 밑이 까맸다⁠. 늙은 여자는 불을 보면서도 손을 가만두지 않았다⁠. 무릎 위에 놓인 새끼 토막을 세 겹으로 감았다가⁠, 마지막에 고를 하나 뒤로 넘기고⁠, 다시 풀었다⁠. 곳간의 섬에서 본 매듭이었다⁠. 할 일이 없는 손이 버릇으로 매듭을 지었다가 풀고 있었다⁠.

덕칠이 늙은 여자의 손에서 새끼 토막을 빼앗았다⁠.

“⁠그만 좀 묶으세요⁠. 묶을 것도 없는데⁠.⁠”

“⁠묶을 것이 생기면 묶어야지⁠.⁠”

덕칠의 대답이 짧았다⁠. 덕칠이 짧게 대답하는 것을 공양은 처음 들었다⁠.

*

장독대 아래에서 찍 소리가 났다⁠. 공양은 고개를 숙였다⁠. 장독대 돌 틈에 애꾸 쥐가 앉아 있었다⁠. 애꾸 쥐 뒤에 털도 덜 난 새끼 쥐 여섯이 엉겨 붙어 있었다⁠. 새끼들은 울지도 않았다⁠. 울 기운이 없었다⁠.

“⁠아이고⁠, 고양이 도령이 여기까지 웬일로요⁠?⁠”

“⁠네 집이냐⁠?⁠”

“⁠올해 봄까진 집이었지요⁠. 가을엔 무덤이고요⁠.⁠”

애꾸 쥐는 돌 틈 안쪽을 앞발로 가리켰다⁠. 새끼 몇이 거기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공양은 고개를 돌렸다⁠.

“⁠지붕에서는 꼬리를 물고 던지셨지요⁠. 고맙습니다요⁠. 덕분에 꼬리가 반 마디 늘었습니다요⁠.⁠”

“⁠흑수 따라가면 새끼들이 사냐⁠?⁠”

“⁠서왕님 따라가면 곳간이 있고⁠, 곳간에는 섬이 있고⁠, 섬에는 이 마을 조가 있지요⁠. 제 새끼들이 먹던 밭의 조요⁠. 도령⁠, 우리가 남의 것을 먹으러 가는 겁니까요⁠, 제 것을 찾으러 가는 겁니까요⁠?⁠”

공양은 대답하지 못했다⁠. 거적 너머에서 조죽 끓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새끼 쥐 여섯이 동시에 코를 들었다⁠.

*

덕칠은 새벽이 오기 전에 오두막을 나왔다⁠. 공양은 먼저 마을 어귀로 달려갔다⁠. 어귀의 우물가에 횃불 두 개가 밝혀져 있었다⁠.

관아에서 나온 사령 둘이 우물가 느티나무에 종이 한 장을 붙이고 있었다⁠. 사령은 현령 밑에서 심부름하는 하인이었다⁠. 밤인데도 마을 사람 열댓이 우물가에 모여들었다⁠. 모두 맨발이었고 모두 말이 없었다⁠. 사령 하나가 종이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펴고 소리 내어 읽었다⁠.

“⁠정월 보름⁠, 현에서 진휼미를 나누어 준다⁠. 한 집에 한 말씩⁠. 현령 나리의 은혜다⁠.⁠”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맨 앞의 노인이 지팡이에 턱을 괴고 종이를 올려다보았다⁠.

“⁠정월 보름까지 살아 있으면 받겠네⁠.⁠”

사령은 대꾸하지 않았다⁠. 횃불을 들고 다음 마을로 갔다⁠. 마을 사람들은 횃불이 멀어질 때까지 느티나무 밑에 서 있다가 하나씩 흩어졌다⁠. 종이에 찍힌 붉은 인장만 달빛에 남았다⁠.

공양은 감나무 위로 올라가 기다렸다⁠. 덕칠이 지나가면 뒤에 따라붙을 생각이었다⁠.

감나무 아래로 사내 하나가 지나갔다⁠. 덕칠이 아니었다⁠. 손에 돌을 쥐고 있었다⁠. 사내가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공양과 눈이 마주쳤다⁠. 일주문 길섶의 사내와 같은 눈이었다⁠.

돌이 날아왔다⁠. 공양은 피할 틈이 없었다⁠. 돌이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밤송이 꼭지가 끊어지는 소리처럼⁠. 공양은 숨을 뱉고 옆구리에 힘을 넣었다⁠.

돌이 옆구리를 쳤다⁠. 살이 쳤고⁠, 뼈는 비켜 갔다⁠. 공양은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사내가 두 번째 돌을 줍는 동안 공양은 감나무에서 담으로⁠, 담에서 지붕으로 건너뛰어 마을을 빠져나갔다⁠. 옆구리가 걸음마다 뻐근했다⁠. 뻐근한 자리는 하나였다⁠. 숨을 들이켜고 맞았다면 둘이었을 것이다⁠.

*

아침 공양이 끝나자 덕칠은 곳간 문 앞에서 계율원 수좌를 기다렸다⁠. 공양은 곳간 문지방 안쪽에 앉아 있었다⁠. 옆구리를 핥고 싶었지만 수좌 앞에서는 핥지 않았다⁠.

수좌가 열쇠를 들고 왔다⁠. 덕칠이 앞을 막았다⁠.

“⁠스님⁠, 세 섬만 빌려주십시오⁠. 우리 어머니 동네에요⁠. 봄에 갚겠습니다⁠. 제가 장작을 두 배로 패겠습니다⁠.⁠”

“⁠무엇으로 갚느냐⁠?⁠”

“⁠봄보리로요⁠.⁠”

“⁠봄보리를 심을 사람이 봄까지 살아 있으면 갚겠지⁠.⁠”

“⁠그러니까 빌려 달라는 겁니다⁠. 봄까지 살아 있으라고요⁠.⁠”

수좌는 열쇠를 쥔 손을 내렸다⁠. 소매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종이 아래쪽에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공양은 냄새로 알았다⁠. 관아의 냄새였다⁠. 먹과 인주와 낯선 말 땀 냄새가 났다⁠.

“⁠현령의 공문이다⁠. 정월까지 진휼미 이백 섬을 현에 바치라 한다⁠. 바치지 못하면 절 땅을 관에서 거두겠다고 한다⁠.⁠”

“⁠절 땅을요⁠?⁠”

“⁠네 어머니가 부치는 땅이 절 땅이다⁠. 관에서 거두면 내년에는 네 어머니에게 소작도 없다⁠.⁠”

덕칠은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수좌는 공문을 다시 접었다⁠.

“⁠사백 식구에 사백 섬이다⁠. 관에 이백을 바치면 사백 식구가 이백 섬으로 봄을 나야 한다⁠. 세 섬을 어디서 내느냐⁠? 네가 말해 보아라⁠.⁠”

덕칠은 말하지 못했다⁠. 한참 만에 덕칠이 꺼낸 말은 엉뚱했다⁠.

“⁠스님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무슨 소리냐⁠?⁠”

“⁠스님도 어머니가 계셨을 거 아닙니까⁠. 어디 계셨습니까⁠?⁠”

수좌는 덕칠을 보았다⁠. 눈썹이 한 줄이 되지 않았다⁠. 대신 눈꺼풀이 한 번 천천히 내려왔다가 올라갔다⁠.

“⁠나도 산 아래서 왔다⁠. 너보다 먼저⁠.⁠”

수좌는 더 말하지 않았다⁠. 곳간 문을 열고 들어가 섬을 세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으며 입속으로 셌다⁠. 공양은 수좌의 발을 따라 섬 사이를 걸었다⁠. 수좌는 쥐에게 갉혔던 섬 앞에서 멈췄다⁠. 섬을 두 손으로 들어 보았다⁠. 내려놓고 다시 들어 보았다⁠.

“⁠어제보다 가볍다⁠.⁠”

수좌가 문간의 덕칠을 돌아보았다⁠. 덕칠의 소맷부리 바느질 땀 사이에 노란 조 알갱이 세 개가 끼어 있었다⁠.

“⁠덕칠아⁠. 소매를 털어 보아라⁠.⁠”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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