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90자)
곳간 지붕
소림사 절고양이 · 마하솔
날이 밝자 공양은 덕칠의 바짓단을 물었다. 물고 뒷걸음질 쳤다. 일주문 쪽으로, 산길 쪽으로, 골짜기 바닥에서 검은 물결이 흐르던 쪽으로 끌었다. 덕칠은 물 지게를 진 채 한 발짝 끌려왔다가 멈췄다.
“배고프냐?”
공양은 바짓단을 놓고 야옹 울었다. 아니라고 울었다.
“배고프구나.”
덕칠은 지게를 내려놓고 소매를 뒤졌다. 누룽지는 나오지 않았다. 어제 보자기에 싼 누룽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덕칠은 빈 소매를 털어 보이며 겸연쩍게 웃었다.
“오늘은 없다. 저녁에 줄게.”
공양은 다시 바짓단을 물었다. 덕칠은 이번에는 공양을 번쩍 들어 올려 지게 위 물통 뚜껑에 앉혔다.
“놀아 달라는 거면 일 끝나고 놀자.”
공양은 물통 뚜껑 위에 앉아 우물까지 실려 갔다. 사람에게 무언가를 알리는 일은 쥐를 잡는 일보다 어려웠다. 쥐는 적어도 공양의 말을 알아들었다.
*
새벽 수련에서 무승들은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담을 뛰어올랐다. 몸을 가볍게 해 높이 뛰는 공부를 경공이라고 덕칠이 일러 준 적이 있었다. 덕칠은 경공을 배우면 지붕 위를 걸을 수 있다고 했고, 지붕 위를 걸어 다니는 놈은 공양 하나로 족하다고 했다.
무승들은 담 앞에서 세 걸음을 달렸다. 네 번째 걸음은 땅이 아니라 담 벽을 밟았다. 벽을 밟은 발이 몸을 한 번 더 위로 밀어 올렸고, 손이 담 머리를 짚었다. 무승 하나는 벽을 두 번 밟았다. 두 번째 발이 벽을 차는 순간 몸이 공중에서 돌아 담 위에 거꾸로 앉았다. 교두가 손뼉을 한 번 쳤다.
공양은 높이 뛰는 일이라면 무승들보다 나았다. 앉은자리에서 제 키의 다섯 배는 뛰었다. 다만 한 번 뛰면 그만이었다. 공중에서 더 밀어 올릴 것이 없었다.
벽을 한 번 밟는다.
공양은 곳간 돌담 앞에서 달렸다. 세 걸음 대신 네 발로 여섯 걸음이었다. 뛰었다. 앞발이 돌담 중턱에 닿았고, 뒷발이 따라와 돌을 찼다. 몸이 한 번 더 솟았다. 담 머리를 넘었다. 넘고 나서도 몸이 계속 올라갔다.
너무 올라갔다. 담 너머에 무승 하나가 서 있었다. 머리를 파랗게 민 무승이었다. 공양은 내려앉을 자리를 찾다가 무승의 정수리를 밟았다. 미끄러웠다. 밟은 발이 저절로 한 번 더 찼다. 공양은 무승의 머리를 디딤돌 삼아 대웅전 처마까지 날아올랐다.
무승은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았다. 교두가 처마 위의 공양을 올려다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머리를 밟고 가는 놈이 다 있네. 너는 저놈보다 못하다, 이놈아.”
교두는 머리를 감싼 무승의 등을 막대로 툭 쳤다. 처마 위에서 공양은 꼬리를 감고 앉아 앞발을 핥았다. 정수리를 밟은 발바닥에 아직 머리 기름 냄새가 남아 있었다.
*
밤에 공양은 장경각 서가 맨 아래 칸에서 귀를 세웠다. 쥐가 오지 않았다. 애꾸 쥐도, 꼬리 잘린 생쥐도, 종이 씹는 소리도 없었다. 장경각이 이렇게 조용한 밤은 공양이 온 뒤로 처음이었다.
흑수는 장경각을 비워 주겠다고 했다.
공양은 서가에서 뛰어내려 문지방 밑 틈으로 나갔다. 마당을 가로질러 대웅전 처마 밑을 지나자 바람이 바뀌었다. 바람에 쥐 냄새가 실려 있었다. 한두 마리 냄새가 아니었다. 젖은 털과 흙과 굶은 짐승의 시큼한 숨이 한데 엉긴 냄새가 대웅전 뒤 돌담 너머에서 넘어왔다. 곳간이었다.
공양은 돌담을 뛰어올랐다. 벽을 한 번 밟았다. 담 머리에 올라서자 곳간 지붕이 내려다보였다.
지붕이 움직이고 있었다. 기와 위에 쥐 수백이 엎드려 기왓장 틈을 갉았다. 기와 밑 서까래까지 뚫으려는 것이었다. 곳간 벽 아래에서도 흙 파는 소리가 났다. 돌바닥 밑을 파고드는 소리였다. 지붕 한가운데에서 애꾸 쥐가 꼬리를 깃발처럼 세우고 소리를 질렀다.
“한 장만, 한 장만 들어내면 됩니다요! 서까래는 솔이라 무릅니다요!”
공양은 담에서 지붕으로 뛰었다. 기와는 밤이슬에 젖어 미끄러웠다. 네 발이 닿는 순간 몸이 지붕 경사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갔다. 공양은 뒷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렸다. 꼬리를 기와에 붙였다. 다리 둘에 꼬리 하나. 미끄러지던 몸이 처마 끝 한 뼘 앞에서 멈췄다.
쥐들이 공양을 보았다. 기와 갉는 소리가 멎었다.
“고양이 도령이시다!”
“앉으시는 건 잘 앉으십니다요!”
애꾸 쥐가 외쳤다. 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지려다 말았다. 공양이 오른 앞발을 가슴께로 당겼다.
첫 쥐가 덤볐다. 공양은 몸을 틀지 않고 앞발을 곧게 놓았다. 볼록살이 쥐의 가슴을 쳤고, 쥐는 지붕 경사를 굴러 처마 밖으로 떨어졌다. 두 마리가 양옆에서 왔다. 왼발이 나갔고, 왼발이 돌아오기 전에 오른발이 나갔다. 한 손이 나가면 한 손은 돌아온다. 두 마리가 거의 함께 처마 밖으로 떨어졌다. 아래에서 떨어진 쥐들이 흙바닥을 치는 소리가 났다. 죽을 높이는 아니었다. 떨어진 쥐들은 투덜거리며 다시 벽을 타고 올라왔다.
공양은 열을 떨어뜨렸다. 스물을 떨어뜨렸다. 떨어진 쥐들이 다시 올라오는 속도가 공양이 떨어뜨리는 속도보다 빨랐다. 지붕 위의 쥐는 줄지 않았다. 앞발 볼록살이 화끈거리다가 감각이 무뎌졌다.
곳간 벽 밑에서 흙 파는 소리가 커졌다. 지붕은 미끼였다.
공양은 처마 끝에서 뛰어내렸다. 땅에 닿기 전에 곳간 벽을 한 번 밟았다. 벽을 찬 몸이 옆으로 날아 담 밑 구멍 앞에 내려앉았다. 구멍에서 쥐 머리가 막 올라오던 참이었다. 공양은 앞발 대신 몸으로 구멍을 막고 앉았다. 마보였다. 엉덩이 밑에서 쥐들이 밀었다. 밀어도 공양은 밀리지 않았다. 밑에서 누군가 공양의 엉덩이를 물었다. 공양은 이를 악물고 앉아 있었다.
지붕에서 애꾸 쥐가 소리쳤다.
“형님들, 서까래 나왔습니다요!”
공양은 구멍을 버리고 다시 벽을 탔다. 한 번 밟고, 두 번 밟았다. 두 번째 발이 벽을 찬 순간 몸이 돌아 지붕 위에 거꾸로 내려앉았다. 아침에 본 무승처럼. 기와 한 장이 들어내져 있었고, 들어낸 자리 밑으로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가 시커멓게 벌어져 있었다. 애꾸 쥐가 틈으로 머리를 막 집어넣고 있었다.
공양은 애꾸 쥐의 꼬리를 물었다. 깨물지는 않았다. 물고 당겼다. 애꾸 쥐가 틈에서 뽑혀 나왔다. 공양은 고개를 휘둘러 애꾸 쥐를 처마 밖으로 던졌다. 던진 반동에 몸이 경사를 따라 미끄러졌다. 공양은 앞발 발톱을 기와 끝에 걸었다.
발톱 하나가 기와 끝에 끼었다. 몸무게가 통째로 발톱 하나에 실렸다. 발톱이 뿌리에서부터 세로로 갈라졌다. 소리가 났다. 공양의 귀에만 들린 소리였다. 앞발에서 어깨까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운 것이 치달았다. 공양은 입을 벌리고 소리 없이 숨을 들이켰다. 그래도 발톱을 빼지 않았다.
“그만.”
높은 데서 목소리가 내려왔다. 장경각 용마루였다. 소림에서 가장 높은 지붕의 꼭대기 끝에 흑수가 앉아 있었다. 달이 흑수 뒤에 있었다. 검은 털이 달빛을 등지고 둥글게 빛났다. 꼬리 끝의 구리 고리가 반짝였다.
쥐들이 갉던 것을 멈췄다. 땅 밑의 소리도 멎었다.
“오늘은 시험이었다, 털보. 곳간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 지붕 서까래가 무슨 나무인지, 고양이가 몇 번 치면 지치는지.”
“안 지쳤다.”
공양은 갈라진 발톱을 기와에서 뽑아 가슴에 붙였다. 피가 털에 스몄다.
“동짓날 밤에는 오늘의 백 배가 온다.”
“백 배면 백 번 치면 된다.”
흑수가 웃었다. 짧고 낮게, 사람처럼 웃었다.
“수를 셀 줄 모르는구나. 그것도 좋다. 수를 셀 줄 아는 놈은 일찍 지친다.”
짤그랑. 흑수가 용마루 너머로 사라졌다. 쥐들이 지붕에서, 벽에서, 땅 밑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처마 밑에 떨어져 있던 애꾸 쥐가 절뚝거리며 일어나 공양을 올려다보았다.
“도령, 꼬리는 놓고 던지셔야지 꼬리 물고 던지시면 저는 꼬리가 길어집니다요.”
*
등불이 여럿 왔다. 계율원 수좌가 앞섰고, 무승 교두와 무승 다섯이 막대를 들고 뒤따랐다. 덕칠이 맨 뒤에서 횃불을 들고 숨을 헐떡였다. 등불이 곳간 지붕을 비췄다. 기와 한 장이 빠져 있었다. 처마 밑 흙바닥에는 쥐들이 떨어진 자국과 쥐똥이 어지러웠다. 담 밑 구멍은 반쯤 무너져 있었다.
지붕 위에 공양이 앉아 있었다. 마보는 풀었지만 꼬리는 여전히 기와에 붙이고 있었다. 앞발 하나를 들고 있었다.
수좌는 곳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공양도 지붕에서 내려와 문틈으로 따라 들어갔다. 곳간 안은 곡식 냄새로 숨이 막혔다. 조와 수수와 밀이 섬마다 차곡차곡 쌓여 천장 들보 아래까지 닿았다. 들어낸 기와 밑, 서까래 틈 바로 아래의 섬 하나가 귀퉁이를 갉혀 있었다. 조 알갱이가 돌바닥에 노랗게 흘러 있었다. 한 섬이었다. 사백 섬 가운데 한 섬.
수좌는 쪼그려 앉아 흘린 조를 손바닥에 모았다. 한 알도 남기지 않으려고 손가락으로 돌 틈을 훑었다.
“한 섬이면 사백 식구의 하루치 죽이다.”
수좌는 모은 조를 갉힌 섬의 터진 데에 도로 부었다. 그러고 나서 문간의 공양을 보았다. 공양은 들고 있던 앞발을 내려놓으려다 아파서 다시 들었다.
“한 섬이 났다. 한 섬만 났다.”
교두가 문간에 기대어 말했다.
“담 밑을 막고 앉아 있더랍니다. 무승 하나가 담 위에서 봤답니다. 엉덩이로 구멍을 틀어막고 있더래요.”
수좌는 오래 말이 없었다. 허리의 열쇠를 한 손으로 쥐었다.
“저것을 곳간에 두어라. 장경각 말고.”
“그믐 기한은요, 스님?”
덕칠이 횃불을 든 채 물었다.
“곳간에서 다시 센다.”
수좌는 곳간을 나가며 문간의 공양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으로 공양을 똑바로 보았다.
“관아에 바칠 섬을 쥐가 먼저 먹게 생겼다. 저것이라도 써야지.”
*
해 뜰 녘에 덕칠은 장경각 서가 밑에서 공양의 짚방석을 꺼내 옆구리에 끼었다. 석 달 동안 공양이 깔고 자서 가운데가 고양이 모양으로 꺼진 방석이었다. 공양은 덕칠의 발치를 따라 걸으며 장경각 계단을 돌아보았다. 서가 맨 아래 칸은 오후 해가 오래 머무는 자리였다. 곳간 안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방장이 선방 마루에 앉아 해를 쬐다가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한 마리를 내려다보았다.
“장경각에서 곳간으로 갔으면 벼슬이 오른 게냐, 내린 게냐?”
“오른 겁니다, 방장 스님. 경전은 못 먹어도 곡식은 먹으니까요.”
덕칠이 대답하자 방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끄덕이는 동안 덕칠이 숨을 세 번 쉬었다.
“곡식을 먹으면 안 되지.”
“그러니까 오른 겁니다. 먹으면 안 되는 걸 지키는 자리니까요.”
방장은 덕칠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눈을 감았다. 감은 건지 원래 그런 건지 공양은 알 수 없었다.
*
아침에 덕칠은 곳간 바닥을 쓸었다. 공양은 섬 사이를 돌며 냄새를 맡았다. 갈라진 발톱 자리가 걸음마다 욱신거렸다. 덕칠은 공양의 앞발에 쑥을 짓이겨 붙이고 헝겊으로 동여매 주었다. 동여매면서도 입을 쉬지 않았다.
“봐라, 섬마다 새끼줄 매듭이 다르다. 마을마다 묶는 법이 달라. 이건 개울 아래 마을, 매듭을 두 번 감았지. 이건 감나무 마을, 꽁지를 길게 뺐고. 이건…….”
덕칠의 손이 섬 하나의 매듭에서 멈췄다. 세 겹으로 감고 마지막에 고를 하나 뒤로 넘긴 매듭이었다. 공양이 코를 대 보니 세 겹 매듭 섬에서는 다른 섬과 다른 냄새가 났다. 덕칠의 소매에서 나던 냄새였다. 장작 연기와, 늙은 사람의 손과, 산 아래 흙.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묶는다.”
덕칠은 섬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곳간 안에는 빗자루 소리도 그쳤다. 덕칠은 갉힌 섬의 터진 데에 손을 넣어 조를 한 줌 쥐었다. 쥔 손을 소매 안으로 넣었다. 소매에서 손이 나왔을 때 손은 비어 있었다.
공양은 앉아서 덕칠의 빈손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