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508자)

동짓날 밤

소림사 절고양이 · 마하솔

동짓날 아침⁠, 계율원 수좌는 공양의 꼬리에서 헝겊을 풀었다⁠. 한 바퀴씩 천천히 풀었다⁠. 대나무 부목 두 가닥이 바닥에 떨어졌다⁠. 꼬리가 드러났다⁠. 꺾인 자리는 아물어 있었다⁠. 다만 꺾인 모양 그대로 아물어서⁠, 꼬리 한가운데가 낫처럼 옆으로 굽어 있었다⁠.

공양은 꼬리를 쳐 보았다⁠. 밑동은 움직였다⁠. 굽은 데서부터 끝까지는 따로 놀았다⁠. 밑동이 오른쪽으로 가면 끝은 반 박자 늦게 왼쪽으로 갔다⁠. 공양은 고개를 돌려 제 꼬리 끝을 노려보았다⁠. 꼬리 끝이 저 혼자 까딱했다⁠. 공양은 저도 모르게 꼬리 끝에 앞발을 날렸다⁠. 쥐를 치듯이⁠. 꼬리 끝은 피했다⁠. 수좌가 꼬리와 싸우는 고양이를 보고 콧김을 짧게 뿜었다⁠. 웃은 것인지 공양은 알 수 없었다⁠.

“⁠펴지지는 않겠다⁠.⁠”

수좌는 굽은 자리를 엄지로 한 번 쓸고 손을 거두었다⁠.

“⁠쓰는 데는 쓰겠지⁠.⁠”

아침 공양 때 수좌는 공양간에 들어가 무승들의 밥솥을 들여다보았다⁠. 솥 안에는 늘 그렇듯 반쯤 찬 조밥이 있었다⁠. 수좌는 곳간으로 가서 앞 칸 섬 하나를 제 손으로 풀었다⁠. 풀어서 공양간 솥에 부었다⁠. 공양간 일꾼이 놀라 국자를 떨어뜨렸다⁠.

“⁠오늘은 싸우는 날이다⁠. 무승들은 그릇을 채워라⁠.⁠”

교두가 공양간 문간에서 수좌의 말을 듣고 수좌를 보았다⁠. 수좌는 교두를 보지 않고 곳간으로 돌아갔다⁠. 무승 마흔 명은 석 달 만에 그릇을 다 채워 먹었다⁠. 다 먹고 나서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배가 불러서 일어나기 싫은 얼굴들이었다⁠. 교두가 막대로 마루를 두드렸다⁠.

“⁠배부른 놈이 마보 서면 말이 무거워서 주저앉는다⁠. 일어나라⁠.⁠”

*

해가 졌다⁠. 동짓날의 해는 일찍 졌다⁠. 공양은 곳간 담 위에 앉아 있었다⁠. 담 머리는 손바닥 둘 너비였고 눈이 얼어 미끄러웠다⁠. 매화장 말뚝보다는 넓었다⁠.

골짜기 바닥에서 피리 소리가 올라왔다⁠. 이번에는 가늘지 않았다⁠. 길고⁠, 높고⁠, 끊기지 않았다⁠. 모여라⁠, 기다려라가 아니었다⁠. 올라가라⁠. 올라가라⁠. 올라가라⁠.

산 아래 눈이 검게 변했다⁠. 골짜기 바닥에서 시작한 검은 것이 산자락을 타고 오르며 하얀 눈을 지워 나갔다⁠. 소리가 먼저 올라왔다⁠. 비가 마른 잎을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큰 솥에서 조가 끓는 소리 같기도 했다⁠. 수만 개의 발이 언 눈을 긁는 소리였다⁠.

절 안에서 북이 울렸다⁠. 교두가 종루 아래 큰북을 쳤다⁠. 무승들이 담으로 달려갔다⁠. 무승마다 대빗자루를 하나씩 들었고⁠, 몇은 물동이를 들었고⁠, 몇은 작은 북을 허리에 찼다⁠. 칼이나 창은 아무도 들지 않았다⁠.

“⁠죽이지 마라⁠!⁠”

교두가 담 위를 달리며 외쳤다⁠.

“⁠밀어내라⁠! 쓸어내라⁠! 떨어뜨려도 밟지는 마라⁠! 동짓날에 살생하면 다음 동짓날까지 마보다⁠!⁠”

쥐 떼가 담에 닿았다⁠. 담 밑에서 검은 물결이 솟구쳤다⁠. 쥐가 쥐를 딛고⁠, 쥐가 쥐의 등을 타고 올라왔다⁠. 담 머리에 쥐 머리가 나타나자 무승들이 대빗자루를 휘둘렀다⁠. 쥐 수십이 빗자루에 쓸려 눈처럼 담 밖으로 흩날렸다⁠. 쓸린 쥐들은 담 밑에 떨어져 굴렀다가 다시 올라왔다⁠. 무승들은 다시 쓸었다⁠. 마당을 쓸 듯이⁠, 낙엽을 쓸 듯이⁠.

“⁠스님⁠, 소매에 들어왔습니다⁠!⁠”

무승 하나가 빗자루를 놓고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장삼 소매로 쥐 두 마리가 들어가 등으로 내려간 것이었다⁠. 무승은 담 위에서 춤을 추듯 몸을 비틀었다⁠. 옆의 무승이 등을 두드려 주자 쥐 두 마리가 바짓가랑이로 빠져나왔다⁠. 빠져나온 쥐들은 무승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인사를 하네⁠, 인사를⁠!⁠”

담 위에서 웃음이 터졌다⁠. 웃으면서도 무승들은 빗자루를 놓지 않았다⁠. 물동이를 든 무승들이 담 밖으로 물을 쏟았다⁠. 언 공기에 물이 닿자 담 벽에 살얼음이 끼었다⁠. 쥐들의 발톱이 미끄러졌다⁠. 북을 찬 무승들이 북을 두드렸다⁠. 북소리가 날 때마다 쥐들이 움찔 멈췄다가 피리 소리가 다시 덮으면 올라왔다⁠.

*

일주문 밖에 횃불이 나타났다⁠. 하나⁠, 둘⁠, 열⁠, 서른⁠. 횃불들이 산길을 올라와 일주문 앞에 멈췄다⁠. 공양은 곳간 담에서 일주문을 보았다⁠. 횃불 맨 앞에 덕칠이 있었다⁠. 덕칠 뒤로 마을 사람들이 빈 자루를 하나씩 들고 서 있었다⁠. 지팡이 짚은 노인도 있었고⁠, 덕칠의 늙은 어머니도 있었다⁠.

쥐 떼가 마을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흘러 지나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횃불을 휘둘렀다⁠. 쥐들은 횃불을 피해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산을 올랐다⁠. 쥐들의 목적은 사람이 아니었다⁠.

덕칠이 일주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을 사람들도 하나씩 앉았다⁠. 언 땅 위에 횃불을 꽂고 앉았다⁠. 덕칠의 늙은 어머니는 맨 앞자리에 앉아 빈 자루의 아가리를 무릎에 올려놓고 새끼를 감았다⁠. 세 겹으로 감고 마지막 고를 아래로 넘겼다⁠. 다 묶고 나서 풀었다⁠. 풀고 다시 묶었다⁠. 옆의 노인이 무얼 하느냐고 묻자 늙은 여자가 대답했다⁠.

“⁠담아 갈 때 바로 묶으려고⁠. 손이 얼면 매듭을 못 짓는다⁠.⁠”

덕칠이 일주문을 향해 소리쳤다⁠.

“⁠씨앗을 주십시오⁠! 문을 안 여시면 여기서 밤을 샙니다⁠!⁠”

쥐 한 마리가 덕칠의 무릎을 밟고 지나갔다⁠. 덕칠이 쥐의 꼬리를 낚아채 들어 올렸다⁠.

“⁠너⁠! 산길에서 침 뱉은 놈이지⁠! 내가 기억한다고 했다⁠!⁠”

쥐가 공중에서 버둥거리며 찍찍거렸다⁠. 사람에게는 찍찍 소리였고⁠, 공양에게는 말이었다⁠.

“⁠저 아니에요⁠! 침 뱉은 건 제 사촌이에요⁠! 저는 침 같은 거 안 뱉어요⁠, 아까워서⁠!⁠”

덕칠은 쥐를 한참 노려보다가 땅에 내려놓았다⁠. 쥐는 덕칠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산을 올랐다⁠.

일주문 큰 문짝은 열리지 않았다⁠. 문 안쪽에 계율원 수좌가 서 있었다⁠. 수좌는 문 너머의 소리를 들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허리의 열쇠를 한 손으로 쥐고 있었다⁠.

*

공양의 코에 기름 냄새가 닿았다⁠. 쥐 냄새와 눈 냄새와 횃불 송진 냄새 사이로 낯선 냄새가 섞여 왔다⁠. 들기름보다 독하고 탁했다⁠. 대웅전 뒤였다⁠.

공양은 곳간 담에서 대웅전 뒤로 뛰었다⁠. 굽은 꼬리가 공중에서 제멋대로 흔들렸다⁠. 공양은 꼬리를 치지 않았다⁠. 머리를 가만히 두었다⁠. 대웅전 뒤 돌담 아래에 내려앉았다⁠. 네 발로⁠.

약장수가 있었다⁠. 쥐 떼가 넘어온 뒷담을 같이 넘어온 것이었다⁠. 등에 약초 상자 대신 기름 단지를 지고 있었다⁠. 한 손에 뼈 피리를 쥐고 있었다⁠. 약장수는 곳간 뒷벽으로 걸어가며 피리를 불었다⁠. 곳간 뒷벽 밑에서 쥐 수백이 흙을 파고 있었다⁠. 덕칠이 뜯었던 판자벽 바로 바깥이었다⁠.

“⁠거기 서라⁠!⁠”

교두가 담 위에서 뛰어내렸다⁠. 벽을 한 번 밟고 약장수 앞에 내려섰다⁠. 약장수는 피리를 입에서 떼고 웃었다⁠.

“⁠소림 무승이 쥐를 쓸고 계시네⁠. 칼 한 자루면 될 일을⁠.⁠”

약장수가 기름 단지를 내려놓고 교두에게 덤볐다⁠. 빨랐다⁠. 손끝이 갈고리처럼 굽어 교두의 목을 노렸다⁠. 교두는 목을 틀어 흘리고 약장수의 손목을 잡았다⁠. 잡고⁠, 꺾이는 길로 돌렸다⁠. 약장수의 몸이 손목을 따라 돌았다⁠. 약장수는 돌면서 발로 교두의 무릎을 찼다⁠. 교두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손목은 놓지 않았다⁠.

약장수가 다른 손으로 피리를 입에 댔다⁠. 손목을 잡힌 채로 불었다⁠. 높고 날카로운 소리⁠. 곳간 뒷벽 밑의 쥐들이 한꺼번에 흙을 파는 속도를 높였다⁠. 판자벽 밑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공양은 뛰었다⁠. 매화장 말뚝을 건너듯⁠, 기름 단지를 디디고 교두의 등을 디뎠다⁠. 교두가 등을 밟히고 끙 소리를 냈다⁠. 공양은 교두의 등을 차고 솟구쳐 약장수의 얼굴 앞에서 입을 벌렸다⁠.

이빨이 뼈 피리를 물었다⁠. 공양은 고개를 휘둘렀다⁠. 피리가 약장수의 입술에서 뽑혀 나왔다⁠. 공양은 공중에서 피리를 문 채 몸을 돌렸다⁠. 꼬리가 돌지 않았다⁠. 머리를 돌렸다⁠. 머리가 돌자 어깨가 따라 돌고⁠, 엉덩이가 따라 돌았다⁠. 공양은 눈 위에 네 발로 내려앉았다⁠. 굽은 꼬리가 반 박자 늦게 따라 내려앉았다⁠.

공양은 피리를 물고 있는 이빨에 힘을 주었다⁠. 뼈 피리가 이빨 사이에서 쩍 갈라졌다⁠. 피리 소리가 끊겼다⁠. 골짜기에서 올라오던 소리도 끊겼다⁠.

“⁠이놈이⁠…⁠…⁠.⁠”

약장수가 공양을 향해 발을 뻗었다⁠. 교두가 약장수의 손목을 등 뒤로 꺾어 올렸다⁠. 약장수가 눈밭에 얼굴을 박았다⁠. 교두는 무릎으로 약장수의 등을 눌렀다⁠.

“⁠이놈아⁠, 이번엔 내 등을 밟았구나⁠.⁠”

교두는 숨을 헐떡이며 공양을 보았다⁠. 웃지 않았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

피리 소리가 끊기자 쥐 떼가 흔들렸다⁠. 담 위로 오르던 쥐들이 멈칫했다⁠. 몇은 내려갔다⁠. 대부분은 멈춘 채 무언가를 기다렸다⁠. 피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곳간 담 위에 흑수가 올라와 있었다⁠. 공양이 대웅전 뒤로 간 사이에 담을 넘어온 것이었다⁠. 흑수 뒤로 쥐 수천이 담 머리를 따라 길게 늘어섰다⁠.

“⁠피리는 없어도 된다고 했지⁠, 털보⁠.⁠”

흑수의 목소리가 담 위에서 울렸다⁠. 쥐들이 일제히 흑수를 보았다⁠. 피리 없이 흑수를 따르는 눈들이었다⁠.

공양은 곳간 담으로 올랐다⁠. 장독대를 밟고⁠, 벽을 한 번 밟았다⁠. 담 머리에 네 발을 모았다⁠. 흑수와 공양 사이에 쥐 백여 마리가 엎드려 있었다⁠. 쥐들이 양옆으로 비켜 길을 냈다⁠.

“⁠꼬리가 굽었구나⁠.⁠”

“⁠쓰는 데는 쓴다⁠.⁠”

흑수가 들어왔다⁠. 곧게⁠. 공양은 엉덩이를 내렸다⁠. 마보⁠. 배를 담 머리 가까이 붙이고 머리를 가만히 두었다⁠. 흑수의 몸이 공양의 어깨를 쳤다⁠. 공양은 밀리지 않았다⁠. 굽은 꼬리가 담 밖으로 늘어져 흔들렸지만 몸은 흔들리지 않았다⁠.

공양은 뒷다리로 담을 눌렀다⁠. 누르는 힘을 엉덩이에서 등뼈를 따라 어깨까지 밀어 올렸다⁠. 앞발을 놓았다⁠. 볼록살이 흑수의 가슴 한가운데를 곧게 쳤다⁠.

흑수가 담 머리에서 한 뼘 밀려났다⁠. 두 뼘⁠. 흑수의 뒷발이 언 담 머리에서 미끄러졌다⁠. 흑수는 몸을 비틀어 곳간 지붕 처마로 건너뛰었다⁠.

공양은 담 위에서 숨을 채웠다⁠. 배가 팽팽해졌다⁠. 목을 열고 배에서 끝까지 밀었다⁠.

사자후가 곳간 담을 타고 퍼졌다⁠. 담 위에 늘어선 쥐들이 엎드렸다⁠. 담 밑에서 흙을 파던 쥐들이 엎드렸다⁠. 대웅전 담 위의 무승들까지 빗자루를 쥔 채 움찔했다⁠. 소리가 끝나고 한동안 곳간 둘레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일주문 밖 횃불 타는 소리만 들렸다⁠.

곳간 문 앞에 계율원 수좌가 와 있었다⁠. 수좌 곁에 방장이 있었다⁠. 수좌는 열쇠를 쥐고 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방장은 지팡이를 짚고 담 위의 공양을 올려다보았다⁠.

방장이 수좌를 돌아보았다⁠.

“⁠수좌⁠, 오늘 무승들 그릇을 채웠다지⁠?⁠”

“⁠싸우는 날입니다⁠.⁠”

“⁠내일은⁠?⁠”

수좌는 대답하지 않았다⁠. 방장도 더 묻지 않았다⁠. 방장은 지팡이 끝으로 문 앞의 눈을 조금 긁었다⁠. 긁힌 자리에 언 돌바닥이 드러났다⁠. 곳간 돌바닥과 같은 돌이었다⁠.

“⁠문을 지켜라⁠.⁠”

수좌가 무승들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일주문 밖에서 덕칠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왔다⁠. 씨앗을 주십시오⁠.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씨앗을⁠. 씨앗을⁠.

곳간 처마 위에서 흑수가 공양을 보았다⁠.

“⁠네 사람들에게 말해 봐라⁠, 털보⁠. 곳간을 열면 우리는 물러간다고⁠. 마을에 씨앗이 내려가고 헌식돌에 겨 한 줌만 올라오면⁠, 배고픈 것들은 산을 내려간다고⁠. 말해 봐라⁠. 못 하지⁠. 너는 야옹밖에 못 한다⁠.⁠”

흑수가 처마에서 대웅전 지붕으로⁠, 대웅전 지붕에서 장경각 처마로 건너뛰었다⁠. 장경각 지붕 경사를 타고 올랐다⁠. 소림에서 가장 높은 지붕의 꼭대기⁠, 용마루 끝에 앉았다⁠. 동짓날 달이 흑수의 등 뒤에 떴다⁠. 공양이 떨어졌던 자리였다⁠.

“⁠끝은 지붕에서 내자⁠, 털보⁠. 올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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