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597자)
곳간 문
소림사 절고양이 · 마하솔
공양은 곳간 담에서 대웅전 처마로 뛰었다. 처마에서 종루 지붕으로, 종루에서 장경각 처마로. 벽을 한 번 밟고, 두 번 밟았다. 굽은 꼬리가 공중에서 제멋대로 흔들렸다. 공양은 꼬리를 치지 않았다. 머리를 가만히 두었다. 배 속의 무게만 옮겼다.
장경각 지붕 경사는 얼어 있었다. 공양은 네 발을 기와 골에 하나씩 박으며 올랐다. 아흐레 전 이 경사를 굴러 내려갔다. 굴러 내려간 자리를 기어 올라갔다. 갈비뼈 언저리가 숨을 쉴 때마다 기억했다.
용마루는 손바닥 둘 너비였다. 눈 밑에 얼음이 있었다. 흑수가 용마루 끝에 앉아 있었고, 흑수 등 뒤로 동짓날 달이 떠 있었다. 아래로 소림이 보였다. 곳간 문 앞의 등불, 담 위의 무승들, 일주문 밖의 횃불 서른 개. 골짜기 바닥은 달빛에 하얗고 조용했다. 피리 소리는 이제 없었다.
“내려가면 저들이 문을 여느냐?”
흑수가 물었다.
“열게 한다.”
“야옹으로?”
공양은 대답 대신 용마루 위에 엉덩이를 내렸다. 마보. 굽은 꼬리는 용마루 밖으로 늘어뜨렸다. 기와에 붙이지 않았다.
흑수가 들어왔다. 곧게. 공양은 앞발을 곧게 질러 받았다. 볼록살과 흑수의 어깨가 부딪혔다. 둘 다 밀리지 않았다. 흑수가 몸을 낮춰 옆으로 돌았다. 공양의 뒤로, 늘어진 꼬리로.
흑수의 이빨이 꼬리를 물었다. 아흐레 전과 같은 자리였다. 물고, 비틀었다.
공양은 굳지 않았다. 숨을 뱉었다. 꼬리가 비틀렸지만 꼬리에 기대고 있던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몸은 다리와 배와 가만한 머리로 서 있었다. 꼬리를 비틀어도 공양은 기울지 않았다. 굽은 자리가 다시 아팠다. 아픈 것은 아픈 것이었고, 서 있는 것은 서 있는 것이었다.
흑수의 이빨이 꼬리에 박힌 채로 멈췄다. 흑수가 처음으로 망설였다. 물고 있는 것이 공양을 쓰러뜨리지 않았다.
공양은 몸을 돌렸다. 꼬리를 물린 채로. 흑수의 머리가 따라 돌았다. 공양의 성한 앞발이 흑수의 앞발에 발톱을 걸었다. 걸고, 굴렀다. 뼈가 꺾이는 길로. 흑수가 꼬리를 놓고 찍 소리를 냈다. 흑수는 꺾이지 않으려고 공양이 구르는 방향으로 먼저 몸을 던졌다. 아흐레 전에 공양을 미끄러뜨린 수였다.
이번에는 공양이 따라 던져지지 않았다. 마보로 앉은 엉덩이가 용마루에 박혀 있었다. 던져진 것은 흑수 혼자였다.
흑수가 용마루에서 미끄러졌다. 얼음 위를 등으로 미끄러져 지붕 경사를 내려갔다. 발톱으로 기와를 긁었다. 긁히지 않았다. 처마 끝이 다가왔다. 처마 밖은 세 길 아래 언 마당이었다. 고양이는 떨어져도 네 발로 내려앉는다. 쥐는 그렇지 않았다.
공양은 용마루를 박차고 경사를 달려 내려갔다. 처마 끝에서 흑수의 몸이 허공으로 넘어갔다. 공양은 앞발 하나의 발톱을 처마 끝 기와에 걸었다. 갈라졌던 발톱이었다. 다른 앞발로 허공을 쓸었다. 발톱 끝에 흑수의 꼬리가 감겼다.
몸무게 둘이 발톱 하나에 실렸다. 갈라졌다 아문 발톱이 기와 끝에서 끽 소리를 냈다. 금이 가는 소리였다. 공양은 숨을 뱉었다. 철포삼. 발톱 뿌리에 힘을 넣었다. 발톱이 버텼다.
흑수가 공양의 발톱 끝에 꼬리로 매달려 흔들렸다. 아래로 언 마당이 보였다. 흑수가 고개를 들어 공양을 올려다보았다.
“놓아라, 털보.”
“안 놓는다.”
“나를 살려서 무엇을 하겠느냐? 내가 내려가면 쥐들은 다시 올라온다.”
“같이 내려가서 보자. 곳간 문 앞에서.”
공양은 뒷다리로 처마를 디디고 몸을 뒤로 젖혔다. 흑수가 꼬리째 끌려 올라왔다. 처마 기와 위에 흑수가 떨어졌다. 공양은 흑수 위에 엉덩이를 내렸다. 마보. 흑수는 공양의 엉덩이 밑에서 숨을 헐떡였다. 한참 만에 흑수가 말했다.
“무겁구나. 누룽지를 먹었느냐?”
“생선 껍질.”
*
공양은 장경각에서 내려와 곳간 문 앞으로 갔다. 흑수가 몇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담 위의 쥐들이 서왕을 보고 웅성거렸다. 무승들이 빗자루를 든 채 쥐 왕과 고양이가 나란히 마당을 가로지르는 것을 보았다. 교두가 약장수를 끈으로 묶다 말고 입을 벌렸다.
곳간 문 앞에 계율원 수좌가 서 있었다. 문을 등지고, 열쇠를 쥐고. 방장은 곁의 섬돌에 앉아 있었다.
공양은 수좌의 발치로 갔다. 뒷다리로 일어나 앞발을 수좌의 장삼 소매에 걸었다. 소매 속에 머리를 넣었다. 수좌는 팔을 빼지 않았다. 공양은 소매에서 새끼줄을 물고 나왔다. 세 겹으로 감고 마지막 고를 넘긴 매듭이었다. 공양은 새끼줄을 수좌의 발등에 내려놓았다.
수좌는 발등의 새끼줄을 내려다보았다.
“안다. 반은 안다고 했다.”
공양은 돌아서 곳간 뒷벽으로 갔다. 쥐들이 판 구멍으로 앞 칸에 들어갔다. 쥐에게 갉혔던 섬, 수좌가 조 알갱이를 손바닥으로 모아 도로 부었던 섬의 터진 데에 입을 넣었다. 조를 한 입 가득 물었다. 볼이 불룩했다. 이번에는 바람구멍이 아니었다. 구멍이 넓었다. 공양은 볼을 부풀린 채 곳간을 나왔다.
공양은 수좌 앞을 지나 걸었다. 대웅전 마당을 가로질러 걸었다. 종루 밑을 지나 일주문으로 걸었다. 무승들이 담 위에서 고개를 돌려 따라 보았다. 수좌는 움직이지 않았다. 방장이 섬돌에서 일어나 지팡이로 수좌의 등을 툭 쳤다.
“따라가 보게.”
수좌가 걸었다. 방장이 따라 걸었다. 흑수도 따라 걸었다.
일주문 큰 문짝은 닫혀 있었다. 공양은 쪽문 앞에서 문지기 무승을 올려다보았다. 문지기 무승이 수좌를 보았다. 수좌는 한참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쪽문이 열렸다.
공양은 쪽문을 지나 헌식돌로 갔다. 횃불 서른 개가 공양을 비췄다. 덕칠이 벌떡 일어났다. 덕칠의 어머니가 자루를 무릎에 놓은 채 공양을 보았다. 공양은 헌식돌에 뛰어올라 움푹한 자리에 입 안의 조를 쏟았다. 노란 조가 달빛에 반짝였다. 석 달 동안 비어 있던 자리였다.
헌식돌 둘레의 풀숲에서 쥐들이 머리를 내밀었다. 일주문 담 밑을 오르던 쥐들이 멈췄다. 한 마리가 헌식돌로 올라왔다. 애꾸 쥐였다. 애꾸 쥐는 조를 한 알 물고 공양을 보았다. 공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꾸 쥐 뒤로 쥐들이 하나씩 올라왔다. 헌식돌 위에 쥐들이 둥글게 모여 조를 먹었다. 조는 한 입이었다. 한 입이라 금방 없어졌다. 쥐들은 다 먹고 나서도 헌식돌을 떠나지 않았다. 담을 오르지도 않았다. 바위의 움푹한 자리를 핥으며 기다렸다.
공양은 헌식돌에서 내려왔다. 산길 한가운데, 헌식돌과 일주문 사이에 앉았다. 길을 가로막고 앉았다. 앞발을 모으고, 굽은 꼬리를 몸에 감고, 산 아래를 보았다. 일주문은 공양의 등 뒤에 있었다.
쪽문 앞에서 수좌가 길 위의 고양이를 보았다. 헌식돌 위의 쥐들. 오르지 않는 쥐들. 길을 막고 앉은 고양이. 빈 자루를 든 마을 사람들. 수좌는 오래 서 있었다. 수좌의 입에서 김이 나오지 않았다.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헌식돌.”
수좌가 말했다. 혼잣말이었다.
“씨앗은 마을로. 겨와 싸라기는 헌식돌로. 그러면 쥐는 산을 내려간다. 마을로. 마을에는 봄에 조가 서고, 쥐는 이삭을 줍는다.”
수좌는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발등의 새끼줄은 곳간 앞에 두고 왔다. 수좌의 손이 허리의 열쇠를 쥐었다.
“나머지 반이 이거였구나.”
*
방장이 수좌 곁에 섰다.
“관아는 어떻게 하겠는가?”
“앞 칸에서 백을 바치겠습니다. 나머지 백은 일주문 앞에 죽솥을 걸어 현의 진휼을 소림이 대신 맡았다고 현령께 올리겠습니다. 현령이 그것을 받지 않고 땅을 거두면…….”
수좌는 말을 끊었다. 다시 이었다.
“거두면 거두는 대로 두겠습니다. 씨앗이 땅에 먼저 들어가 있으면, 땅을 거둔 관아도 조가 서는 것은 막지 못합니다. 덕칠이가 한 말입니다.”
“사백 식구는?”
“죽 한 끼입니다. 봄보리까지.”
“삼월에 노스님들이 누우면?”
수좌는 대답하지 못했다. 방장이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 나섰다.
“그때는 내가 먼저 눕겠네. 나는 늙어서 오래 누워 있지도 않을 걸세.”
수좌는 방장을 보았다. 방장의 늘어진 눈꺼풀 밑에서 눈이 웃고 있었다. 수좌는 고개를 숙였다. 오래 숙였다. 들었을 때 눈썹이 한 줄이 아니었다.
수좌는 곳간으로 돌아갔다. 무승들에게 말했다.
“수레를 내라. 관아 수레 말고 우리 수레.”
수좌가 뒤 칸 판자문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열쇠 소리가 곳간 안에서 울렸다. 문이 열렸다.
*
씨앗 섬 백아흔아홉이 수레에 실렸다. 마을 사람들이 쪽문으로 들어와 섬마다 매듭을 보고 제 마을 것을 골랐다. 두 번 감은 매듭은 개울 아래 마을로, 꽁지를 길게 뺀 매듭은 감나무 마을로. 덕칠의 어머니는 섬을 하나하나 만져 보다가 한 섬 앞에서 손을 멈췄다. 세 겹 매듭이 아닌 섬이었다. 늙은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건 하나뿐이었다. 하나는 이미 부뚜막 밑에 있다.”
늙은 여자는 손을 거두고 덕칠의 소매를 잡았다.
앞 칸 섬 하나가 풀려 겨와 싸라기가 헌식돌로 날라졌다. 무승들이 대빗자루 대신 키를 들고 겨를 까불러 헌식돌 위에 부었다. 쥐들이 헌식돌을 덮었다. 흑수가 헌식돌 꼭대기에 올라섰다.
“먹어라. 먹고 내려간다. 마을로.”
쥐들이 먹었다. 먹고 나서 산길을 내려갔다. 수레의 뒤를 따라, 횃불의 뒤를 따라. 검은 물결이 하얀 산길을 거꾸로 흘러 내려갔다. 올라올 때보다 느렸다. 배가 불러서 느렸다.
흑수는 헌식돌에서 공양을 내려다보았다.
“사냥은 어찌할 것이냐, 털보? 쥐 잡으라고 들인 고양이가 쥐를 산 아래로 보내 주었다. 내일부터 너는 무엇을 하느냐?”
“장경각 길은 너희가 지나다녀라. 경전만 먹지 마라.”
“맛도 없다.”
흑수는 헌식돌에서 뛰어내려 무리의 맨 뒤에 붙었다. 몇 걸음 가다가 돌아보았다.
“꼬리 굽은 고양이는 강호에 하나뿐이겠구나. 다음에 만나면 알아보마.”
애꾸 쥐가 흑수 곁에서 공양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도령, 굽은 꼬리도 잘 어울리십니다요. 여름에 이삭 주우러 오시면 한 알 드립지요.”
*
동지 이튿날 새벽, 종이 울리기 전에 무승들이 마당에 모였다. 마흔 명이 줄을 맞춰 무릎을 굽혔다. 교두가 줄 끝을 막대로 가리켰다. 줄 끝에 손바닥 하나만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끝자리다. 엉덩이 내려라.”
공양은 비어 있는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뒷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내렸다. 앞발 둘을 배에 붙였다. 굽은 꼬리는 땅에 대지 않았다. 머리를 가만히 두었다. 마흔한 개의 입김이 하얗게 올라왔다.
계율원 수좌가 마당 가장자리로 와서 줄 끝, 공양의 옆 언 땅에 사발 하나를 내려놓았다. 사발에 조죽이 반쯤 담겨 있었다. 사백 식구가 먹는 것과 같은 죽이었다. 수좌는 말없이 돌아서 갔다. 열쇠가 허벅지에 부딪혀 탁, 탁 소리를 냈다.
담 너머로 산길이 보였다. 수레 하나가 눈길을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수레 위에 씨앗 섬이 실려 있었고, 수레 옆에서 덕칠이 소 고삐를 쥐고 걸었다. 덕칠은 걸으면서 소에게 떠들고 있었다. 소리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데 입이 쉬지 않는 것은 보였다. 수레 뒤로 늙은 여자가 자루를 메고 따라갔다. 덕칠이 한 번 고개를 돌려 절을 올려다보았다. 담 위를 지나 마당을, 마당의 줄 끝을. 손을 한 번 들었다가 내렸다.
공양은 마보를 풀지 않았다. 담 너머를 보며 앉아 있었다. 처음 이 절에 왔을 때는 담 위에서 마당을 넘겨다보았다. 이제는 마당에서 담 너머를 넘겨다보았다. 사발의 조죽에서 김이 올라왔다. 수레는 소나무 사이로 작아졌다. 숨을 쉰까지 세었을 때 무승 교두가 막대로 줄 끝을 툭 쳤다.
“엉덩이 내려라. 말이 도망간다.”
공양은 엉덩이를 한 치 더 내렸다. 굽은 꼬리 끝이 저 혼자 까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