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49자)
어머니의 죽 그릇
소림사 세무 조사 · 여무겸
가정 32년 10월 25일 아침, 등봉현 성안 셋방의 부엌 문턱에 이 빠진 사발 하나가 엎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고 있었고, 은학은 문턱 앞에 서서 사발을 내려다보았다. 간밤에 늦게 들어와 어머니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침에도 어머니는 아궁이만 보았다. 은학이 서쪽 개울가 대추나무 밑에 갔었다는 것을, 어머니는 은학이 말하기 전에 알고 있었다. 성안 소문은 거지 입을 타고 왔다.
“어머니도 아셨습니까?”
어머니가 부지깽이로 장작을 밀어 넣었다. 불꽃이 아궁이 밖으로 혀를 내밀었다가 들어갔다.
“네 아버지가 산에 올라가던 날 아침, 내가 짚신 끈을 매 줬다.” 어머니가 말했다. “밭문서를 품에 넣고 나가면서 그러더라. 큰애는 글을 읽어야 하니 굶기면 안 되고, 작은애는 몸이 크니 절에서 먹고 크면 된다고. 추씨 집에 밭을 주면 우리는 밭도 잃고 굶기도 하는데, 부처님께 드리면 밭은 잃어도 애들은 안 굶는다고.”
“그 밭 세금은 그해부터 이 안의 다른 집들이 메웠습니다.”
“알아.”
“아셨습니까?”
“네 아버지가 이장이었다. 그걸 모르고 시주했겠냐?” 어머니가 부지깽이를 내려놓고 은학을 보았다. 아궁이 불빛에 어머니의 얼굴이 반쪽만 밝았다. “네 아버지는 빈 몫을 메우다가 빚을 졌다. 빚을 갚으려면 밭을 팔아야 했고, 밭을 팔면 빈 몫을 또 남이 메워야 했다. 어느 길로 가도 누가 메우는 길이었어. 네 아버지는 제 자식이 안 메우는 길을 골랐다.”
은학은 문턱에 쪼그려 앉아 사발을 집어 들었다. 이 빠진 자리가 엄지에 닿았다. 열세 해 전 겨울 은학이 산에 들고 다니던 사발이었다. 은학이 관아에 들어간 뒤로는 어머니가 들고 다녔다.
“이 밭도 고지서에 올리겠습니다. 열세 해 치를 제가 내겠습니다.”
“네 녹봉으로?” 어머니가 웃지도 않고 물었다. “추씨 집 이자도 다 못 끊는 녹봉으로, 열세 해 치를?”
“달마다 조금씩 내겠습니다.”
어머니가 일어서서 부뚜막의 솥뚜껑을 열었다. 솥 안에 좁쌀죽이 반 사발쯤 끓고 있었다. 어머니는 은학의 손에서 사발을 가져가 죽을 퍼 담았다. 사발을 은학 앞 문턱에 내려놓았다.
“그 그릇에 담긴 거, 다 세금으로 따져 봐라.”
은학은 사발을 보았다. 죽은 멀었고, 좁쌀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네 동생이 공양간에서 열세 해 동안 저은 솥이 몇 개냐? 네가 그 겨울에 먹은 죽이 몇 그릇이냐? 다 따져서 고지서에 올려라. 그래야 네 고지서가 맞는 거다.” 어머니는 솥뚜껑을 닫았다. “나는 그 겨울에 너희 둘 굶어 죽는 줄 알았다. 네 아버지 밭이 너희를 살렸어. 그 밭 세금을 누가 메웠는지 나는 안다. 장씨네도 메웠고 왕씨네도 메웠다. 그래서 나는 사흘에 한 번 산에 올라가서 그 집 사람들 죽 그릇에 파를 썰어 넣는다. 그게 내가 내는 세금이다.”
은학은 죽을 먹었다. 바닥까지 긁어 먹었다. 어머니는 다시 아궁이 앞에 앉았다. 은학이 사발을 내려놓았을 때 어머니가 말했다.
“고지서에 올려라. 네 아버지가 걱정한 게 그거였으니, 네가 하는 걸 보면 오히려 웃을 거다. 대신 이번 달 이자는 네가 추씨 집에 직접 갖다줘라. 나는 그 집 대문 보기 싫다.”
은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부엌 문을 닫으려다 말고 한마디를 보탰다.
“관모는 반듯이 쓰고 가라. 그 집 개는 사람 옷차림을 보고 짖는다. 너 지난번에 갔을 때 관모가 삐뚤어서 바짓가랑이 물릴 뻔했다며.”
*
같은 날 오후, 호방 문을 대나무 막대가 두드렸다. 방노삼이 문간에 서서 고개만 들이밀었다. 관아 문지기가 뒤에서 방노삼의 허리띠를 잡아끌고 있었다.
“거지는 관아에 못 들어온다는데, 나는 거지가 아니라 개방 장로요. 문파 일로 왔소.”
“들어오십시오.” 은학이 문지기에게 손짓했다. “문파 일입니다.”
방노삼은 호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서리 둘이 코를 막았다. 방노삼은 코 막은 서리들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은학의 탁자 앞에 쭈그려 앉았다. 허리 자루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해당 없음」 고지서였다.
“이걸 고쳐 주시오.”
“무엇으로요?”
“해당 있음으로.” 방노삼이 종이를 탁자에 펼쳤다. “어제 거지들 모아 놓고 이야기했소. 우리도 세금을 내겠소. 땅은 없으니 사람으로 내겠소. 요역으로 부르면 나가겠소. 길도 닦고 둑도 쌓겠소.”
“왜 갑자기요?”
“해당 없음이라는 말이 밤마다 귀에서 울려서 잠을 못 자겠소.” 방노삼이 진지하게 말했다. “거지가 잠 못 자면 낮에 구걸을 못 하오. 그러면 굶소. 고지서 한 장 때문에 굶게 생겼소.”
은학은 붓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개방 제자는 호적에 안 올라 있어서 요역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그럼 올리시오.”
“올리면 세금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올리라는 거요.” 방노삼이 일어섰다. 일어서다 말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이건 덤이오. 어젯밤 추씨 집 뒷골목에서 거지 하나가 잤는데, 북경에서 말 탄 사람들이 왔소. 옷에 물고기 비늘 같은 무늬가 있었다 하오. 칼을 찼고.”
은학의 손이 멈추었다. 물고기 비늘 무늬 옷은 황제 곁을 지키며 관원과 백성을 함께 잡아들이는 금의위의 옷이었다.
“몇 명이었습니까?”
“거지가 잠결에 셋까지 세다가 잤다 하오.” 방노삼이 문간으로 가면서 덧붙였다. “해당 있음으로 고쳐 두시오. 다음에 찾으러 오겠소.”
*
10월 26일 낮, 관아 호방에서 갈문형이 새 공문을 펼쳤다. 붉은 도장이 둘이었다. 하나는 호부 것이고 하나는 하남 포정사사 것이었다. 하남 땅의 세금과 살림을 맡은 관청이었다.
「하남에서 걷은 변방 은은 동지에 개봉을 떠난다. 각 현은 동지 전날까지 은을 보내라.」
“동짓날이다.” 갈문형이 말했다. “섣달 그믐이 아니라. 열흘 남짓 남았다.”
옆자리 서리 둘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기침을 하려다 참은 소리였다. 지현은 문간에서 배를 쥐었다.
은학은 탁자 위에 나흘 동안 잰 것을 펼쳤다. 밭 열여섯의 걸음 수와 무 수, 거지가 주워 온 나무 말까지 탁자 옆에 올려놓았다.
“나리, 소림 이름으로 된 땅 가운데 삼천칠백 무는 추씨가 소작료를 거두는 땅입니다. 시주 문서보다 칠백 무가 넓습니다. 이 땅은 처음부터 소림 땅이 아닙니다. 소림 체납으로 거둘 수 없습니다. 추씨 댁에 따로 고지서를 내야 합니다.”
“추 진사는 진사다. 진사 집은 요역이 면제다.”
“요역은 면제지만 땅에 매기는 세금은 면제가 아닙니다. 진사 댁 밭도 여름 세금과 가을 세금을 냅니다.”
갈문형이 나무 말을 들어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높이를 알아보는 손이었다. 갈문형은 말을 내려놓았다.
“서리, 네 말이 다 맞다고 치자. 네가 추 진사에게 고지서를 내밀면 추 진사는 은을 안 낸다. 버틸 것이다. 진사는 버티는 법을 안다. 북경에 아는 사람이 있고, 하남 포정사사에 아는 사람이 있다. 동지까지 열흘이다. 열흘 안에 진사를 이길 수 있나?”
“모르겠습니다.”
“나는 안다. 못 이긴다. 추 진사가 소림 땅을 사면 동지 전에 은이 나온다. 네가 추 진사와 싸우면 동지에 은이 없다.” 갈문형이 공문을 접었다. “변방은 동지에 춥다.”
“나리, 추씨 땅의 세금을 서른 해 동안 메운 집들도 동지에 춥습니다.”
“그 집들은 얼어 죽지 않는다.”
“장 영감은 소를 팔았습니다.”
“변방 병사는 손가락을 판다.”
갈문형이 소매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탁자에 던졌다. 대동 진에서 군량을 맡은 관원이 호부에 올린 글을 베낀 것이었다. 은학은 종이를 펼쳤다. 글씨가 급했다.
「솜옷이 없는 병사가 사천이다. 지난겨울 언 손가락을 잘라 낸 자가 수백이다. 올겨울 은이 늦으면 성벽을 지킬 손이 모자란다.」
“읽었나?”
“읽었습니다.”
“나는 이 글을 여든 번 읽었다. 여든 번째에도 숫자가 줄지 않더군.” 갈문형이 종이를 도로 접어 소매에 넣었다. “너는 장 영감의 소를 안다. 나는 이 사천을 안다. 누구 얼굴이 더 크냐고 묻지 마라. 둘 다 같은 크기다. 은은 하나뿐이고.”
두 사람 사이에서 서리 하나가 마침내 기침을 했다. 갈문형이 서리를 보지 않고 문을 나갔다. 나가면서 은학의 탁자에 손바닥을 한 번 내리쳤다. 나무 말이 튀어 올라 바닥에 굴렀다.
“동지 전날까지 소림 수결이든 소림 땅이든 가져와라. 둘 다 없으면 네 목을 가져가겠다.”
*
26일 밤, 은학은 호방에 혼자 남았다. 등잔 하나를 켜고 새 종이를 이었다. 사백 년 치 두루마리는 탁자 밑에 말아 두었다. 펼치면 스무 걸음이었고, 이번 종이는 한 자도 안 되었다.
은학은 붓에 먹을 찍었다. 맨 위에 「고지서」 석 자를 쓰고, 다음 줄에 받을 사람을 썼다.
「등봉현 서쪽 개울가 밭 열두 무. 가정 19년 겨울 소림사에 시주. 체납 열세 해. 받을 사람 노은학.」
붓이 떨리지 않았다. 은학은 먹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음 줄로 넘어갔다. 추씨가 맡긴 밭 열여섯의 넓이와 소작료 마당의 말 높이를 차례로 적었다. 마지막에 소림이 당나라 때 받은 땅 사십 경을 적고, 옆에 「황제가 내린 땅, 세금 바깥」이라고 덧붙였다.
옆자리 서리 하나가 집에 가다가 두고 간 갓을 찾으러 돌아왔다. 등잔 아래 종이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노 서리, 자네 집도 체납인가?”
“열세 해째입니다.”
서리가 기침을 했다. 이번에는 진짜 기침이었다. 서리는 갓을 쓰고 나가다가 돌아서서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못 봤네. 배가 아파서.”
“지현 나리 배가 옮았습니까?”
“관아 사람은 다 배가 아프네.”
서리가 나간 뒤 은학은 종이를 말아 품에 넣었다. 탁자 위에 이번 달 녹봉으로 받은 은 조각이 작은 헝겊에 싸여 있었다. 어머니가 추씨 집에 갖다주라고 한 이자였다. 은학은 헝겊 꾸러미를 소매에 넣고 등잔을 껐다.
*
추명도의 집은 등봉현 성안 동쪽 끝에 있었다. 담이 관아 담보다 높았고, 대문 위에 「積善堂」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착한 일을 쌓는 집이라는 글자였다. 대문 양옆에 등롱이 하나씩 켜져 있었다. 대문 너머에서 개가 짖었다. 방노삼의 말대로 이 고을에서 제일 사나운 소리였다.
은학은 대문 앞에 섰다. 품속에 새 고지서가 있었고 소매 속에 이자가 있었다. 둘 다 이 집에 낼 것이었다. 하나는 이 집이 받을 것이고, 하나는 이 집이 받기 싫어할 것이었다.
골목 안쪽 담 밑에 말 세 필이 매여 있었다. 말 안장마다 가죽 칼집이 매달려 있었고, 안장 깔개에 비늘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방노삼의 거지가 잠결에 센 셋이 맞았다. 은학은 말들을 오래 보지 않으려고 대문으로 눈을 돌렸다. 말 한 마리가 콧김을 뿜었다.
은학은 소매 속 헝겊 꾸러미를 한 번 만졌다. 이 집에 이자를 갖다준 지 여섯 해였다. 대문을 두드린 적은 없었다. 이자는 늘 쪽문으로 들어가 집사의 손에 건넸고, 집사는 은 조각을 이로 깨물어 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쪽문을 지나쳤다.
은학은 문고리를 잡고 세 번 두드렸다. 개가 더 크게 짖었다. 안에서 발소리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