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49자)

관아 대문 앞 죽 솥 여섯

소림사 세무 조사 · 여무겸

가정 32년 10월 16일 아침⁠, 등봉현 관아 마당에 쌀 수레 스무 대가 바퀴를 맞대고 서로 비켜 줄 틈 없이 들어차 있었다⁠. 소들은 관아 담 밑에 매여 여물도 못 얻어먹고 울었고⁠, 마당 바닥에는 수레에서 샌 좁쌀이 노랗게 흩어져 있었다⁠. 참새들이 좁쌀을 쪼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은학은 관아 문을 들어서자마자 참새 떼에 얼굴을 맞았다⁠.

갈문형은 창고 앞 처마 밑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있었다⁠. 옆자리 서리 둘이 수레마다 자루 수를 세서 불렀고⁠, 갈문형은 손가락을 접으며 들었다⁠.

“⁠열두 번째 수레⁠, 좁쌀 열 섬⁠.⁠”

“⁠열세 번째 수레⁠, 콩 두 섬에 좁쌀 다섯 섬⁠.⁠”

“⁠열네 번째 수레⁠…⁠.⁠” 서리가 수레 위를 들여다보고 말을 멈추었다⁠. “⁠무 서른 개입니다⁠.⁠”

“⁠무도 적어라⁠.⁠”

은학은 갈문형 앞으로 갔다⁠. 갈문형은 은학이 앉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원외랑 나리⁠, 이 수레들을 돌려보내야 합니다⁠.⁠”

“⁠체납자의 재산을 압류했다⁠. 서리가 할 일을 내가 대신 했지⁠.⁠”

“⁠체납자는 소림사입니다⁠. 이 수레들 가운데 소림사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은학은 첫 번째 수레의 바퀴 옆에 섰다⁠. “⁠이 수레는 서쪽 마을 사람들이 공양간에 바치러 가던 쌀입니다⁠. 공양간에 들어가기 전까지 주인은 마을 사람들입니다⁠. 소림 재산이 아닌 것을 소림 체납으로 압류할 수는 없습니다⁠. 조사 절차 일곱⁠, 압류 대상의 확인입니다⁠.⁠”

“⁠그럼 추 진사 수레는⁠?⁠”

“⁠추 진사 수레는 추 진사 것입니다⁠. 추 진사가 소림에 체납한 것이 아니니⁠, 역시 압류할 수 없습니다⁠.⁠”

“⁠서리⁠.⁠” 갈문형이 처음으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키가 은학보다 반 뼘 작았는데⁠, 은학을 올려다보는 눈에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너는 걷으라고 보냈다⁠. 지키라고 보내지 않았다⁠.⁠”

“⁠걷는 절차를 지키고 있습니다⁠.⁠”

“⁠절차가 은을 만드나⁠?⁠”

“⁠절차가 없으면 은을 낸 사람이 또 냅니다⁠.⁠”

옆자리 서리 둘이 동시에 기침을 했다⁠. 갈문형이 서리들을 노려보자 둘은 기침을 멈추고 무를 셌다⁠. 서른한 개였다⁠. 하나를 잘못 셌다⁠.

은학은 수레에서 무 하나를 집어 들었다⁠. 흙이 덜 털린 무였다⁠.

“⁠나리⁠, 이 무가 어느 집 것인지 아십니까⁠?⁠”

“⁠모른다⁠.⁠”

“⁠서쪽 마을 왕씨 댁입니다⁠. 남편을 변방에 보내고 혼자 무 농사를 짓습니다⁠. 해마다 시월이면 무 서른 개를 지고 산에 오릅니다⁠.⁠”

“⁠무도 장에 내면 은이 된다⁠.⁠” 갈문형이 손가락 하나를 더 접었다⁠. “⁠변방에 간 남편한테도 은이 가야 솜옷을 입지⁠.⁠”

*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관아 대문 밖이 소란해졌다⁠. 문지기가 문틈으로 내다보고 얼굴이 하얘져서 뛰어 들어왔다⁠.

“⁠사람이 옵니다⁠. 산에서 사람이 내려옵니다⁠.⁠”

은학이 대문으로 나갔다⁠. 삼십 리 산길을 걸어 내려온 사람들이 성안 길을 메우고 있었다⁠. 맨 앞에 장 영감이 있었고⁠, 장 영감 뒤로 아낙들과 아이들과 노인들이 사발을 들고 걸어왔다⁠. 줄 중간에 개방 거지들이 섞여 있었다⁠. 앞장선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지도⁠, 돌을 던지지도 않았다⁠. 관아 대문 앞 길바닥에 사발을 내려놓고 앉았다⁠. 앉은 사람 뒤에 또 사람이 앉았다⁠. 길이 사발로 덮였다⁠.

“⁠우리 쌀이 여기 있다고 해서 왔소⁠.⁠” 장 영감이 은학을 보고 말했다⁠. “⁠죽은 어디서 먹으면 되오⁠?⁠”

은학이 대답하기 전에 길 끝에서 땅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무승들이 솥을 지고 내려오고 있었다⁠. 솥 하나에 무승 넷이 붙어 장대에 꿰어 메었고⁠, 솥 여섯이 차례로 성안 길로 들어왔다⁠. 원진이 맨 앞 솥의 장대를 오른쪽 어깨에 메고⁠, 왼손으로 곤봉을 짚었다⁠. 맨 뒤 솥은 은결이 혼자 등에 지고 있었다⁠.

무승들은 관아 대문 앞에 솥을 내려놓았다⁠. 길가의 돌을 주워 아궁이를 쌓고⁠, 솥을 돌 위에 올리고⁠, 장작을 넣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솥마다 부었다⁠. 쌀은 한 톨도 없었다⁠.

“⁠수좌 스님⁠, 쌀이 없는데 무엇을 끓이십니까⁠?⁠”

“⁠물을 끓이오⁠.⁠” 원진이 부싯돌을 쳤다⁠. “⁠쌀이 관아에 있으니 솥이 관아에 와야지⁠. 쌀이 나오면 바로 넣으려고⁠.⁠”

“⁠물만 끓으면요⁠?⁠”

“⁠끓는 소리만 들어도 배가 덜 고프오⁠.⁠”

여섯 솥에서 물이 끓기 시작했다⁠. 김이 관아 대문을 타고 올라가 처마를 적셨다⁠. 문지기가 김에 기침을 했다⁠. 대문 안에서 지현이 손으로 배를 쥐고 나왔다⁠.

“⁠노 서리⁠, 이게 다 무엇인가⁠? 북경 나리가 보시면⁠…⁠.⁠”

“⁠이미 보고 계십니다⁠.⁠”

창고 앞 처마 밑에서 갈문형이 팔짱을 끼고 대문 밖을 보고 있었다⁠. 지현이 배를 쥔 손을 바꿔 쥐었다⁠.

해 질 무렵 개방 거지들이 성안 집집을 돌아 얻어 온 잡곡을 자루째 솥에 쏟았다⁠. 수수와 보리와 콩이 섞인 한 자루⁠, 누가 준 묵은 좁쌀 반 자루였다⁠. 여섯 솥에 나누니 죽이 아니라 멀건 물이었다⁠. 무승들은 멀건 물을 정성껏 저었다⁠. 은결이 주걱으로 솥 바닥을 긁어 사발마다 건더기를 하나라도 더 넣었다⁠. 줄이 대문 앞에서 성안 골목 끝까지 이어졌다⁠.

줄 맨 끝에 삿갓 쓴 사람 하나가 섰다⁠. 삿갓 아래 관복 자락이 보였다⁠. 지현이었다⁠. 지현은 사발을 받아 들고 관아 담 그늘에 숨어 후루룩 마셨다⁠. 다 마시고 사발 바닥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줄 끝으로 갔다⁠.

“⁠지현 나리⁠, 두 번째입니다⁠.⁠” 은결이 사발을 받으며 말했다⁠.

“⁠첫 번째는 내가 아니었네⁠.⁠”

*

이튿날 아침⁠, 대문 앞 길 끝에서 금박 가마가 내려앉았다⁠. 추명도가 내리자 뒤따라온 소달구지 두 대가 사람들 사이로 들어왔다⁠. 짐칸에 쌀가마가 가득했다⁠. 추명도는 부채를 펴 들고 솥 앞에 섰다⁠.

“⁠관아가 막은 수레는 관아 일이고⁠, 사람이 굶는 것은 내 일이지⁠. 오늘 죽은 내가 내겠네⁠.⁠”

쌀가마가 솥 옆에 부려지자 길바닥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누가 “⁠추 나리⁠” 하고 불렀고⁠, 아이 하나가 추명도의 도포 자락을 잡았다⁠. 추명도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학이 대문 밖으로 나오자 추명도가 웃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노 서리⁠, 수고가 많네⁠. 사람들이 그러더군⁠. 서리 하나가 고지서를 들고 산에 오르더니 쌀이 산을 못 오른다고⁠.⁠”

“⁠수레는 원외랑 나리께서 세우셨습니다⁠.⁠”

“⁠누가 세웠든⁠, 사람들 눈에는 남색 관복이 보이지⁠.⁠” 추명도가 부채로 은학의 관복 소매를 가볍게 쳤다⁠. “⁠내가 시주한 땅 이야기는 이제 그만두게⁠. 저 사람들이 들으면⁠, 죽 쑤는 사람을 서리가 괴롭힌다고 할 걸세⁠.⁠”

“⁠죽 쑤는 쌀이 어디서 나오는지 저 사람들도 알아야 합니다⁠.⁠”

“⁠알면 배가 부른가⁠?⁠”

추명도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가마로 돌아갔다⁠. 장 영감이 쌀가마 옆에서 은학을 보았다⁠. 무엇을 묻는 눈이었는데⁠, 은학은 솥 앞에서 대답할 말이 없었다⁠.

17일 밤 솥 앞에서 은결이 사발 하나를 내밀었다⁠. 은학은 대문 옆 돌계단에 앉아 사발을 받았다⁠. 추명도의 쌀로 쑨 죽이라 오랜만에 걸쭉했다⁠.

“⁠형 덕분에 솥이 관아 구경을 다 하네⁠.⁠”

“⁠내 덕분이 아니다⁠.⁠”

“⁠그럼 누구 덕분인데⁠?⁠” 은결이 형 옆에 앉아 자기 사발을 들었다⁠. “⁠추 나리 덕분이라고 해 줄까⁠?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해⁠.⁠”

은학은 죽을 떴다⁠. 숟가락 끝에 좁쌀이 두껍게 붙어 나왔다⁠. 바닥 것이었다⁠. 은결은 아무 말 없이 제 사발을 비웠고⁠, 형제는 대문 옆 돌계단에 나란히 앉아 솥 여섯의 불빛을 보았다⁠. 은결이 먼저 일어나 형의 빈 사발을 거두어 갔다⁠.

*

10월 18일 밤⁠, 관아 창고 앞에 등롱 둘이 매달려 있었다⁠. 대문 밖에서는 사흘째 솥이 끓었다⁠. 추명도의 쌀은 하루치였다⁠. 이튿날 아침 사람들은 길 끝을 보며 금박 가마를 기다렸지만⁠, 가마도 소달구지도 오지 않았다⁠. 사흘째에는 거지들이 산에서 캐 온 칡뿌리를 넣었다⁠. 장 영감이 칡을 씹으며 길 끝을 한 번 더 보았다⁠. 칡 끓는 냄새가 창고 마당까지 넘어왔다⁠.

갈문형이 창고 문 앞에 섰다⁠. 은학은 갈문형과 창고 문 사이에 서 있었다⁠. 허리춤에 주판과 함께 창고 열쇠 꾸러미가 매달려 있었다⁠. 호방 서리가 창고 열쇠를 맡는 것은 관아의 오랜 규칙이었다⁠.

“⁠열쇠를 내놓아라⁠.⁠”

“⁠무엇을 하시려고요⁠?⁠”

“⁠압류한 곡식을 내일 장에 낸다⁠. 팔아서 은을 만든다⁠.⁠”

“⁠압류한 곡식이 아니라 세워 둔 곡식입니다⁠. 주인들이 아직 돌려받지 못했을 뿐입니다⁠.⁠”

“⁠서리⁠.⁠” 갈문형이 한 걸음 다가왔다⁠. 등롱 불빛이 짧은 눈썹 위에서 흔들렸다⁠. “⁠경술년 가을⁠, 알탄 칸의 기병이 북경 성 밖을 불태울 때 나는 대동에 있었다⁠. 군량을 나르는 일을 했지⁠. 그해 겨울 대동 성벽 위에서 얼어 죽은 병사가 몇인지 아느냐⁠?⁠”

“⁠모릅니다⁠.⁠”

“⁠나도 모른다⁠. 세다가 그만두었다⁠. 아침마다 성벽 위에서 굳은 병사를 끌어내리는데⁠, 손가락이 창 자루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창을 같이 묻었다⁠.⁠” 갈문형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 “⁠올겨울에도 그렇게 된다⁠. 은이 안 가면⁠. 너는 저 대문 밖 사람들 얼굴을 보지⁠. 나는 성벽 위 얼굴을 본다⁠. 둘 다 사람 얼굴이다⁠. 얼굴 수는 성벽이 더 많다⁠.⁠”

은학은 열쇠 꾸러미에 손을 얹었다⁠. 쇠가 차가웠다⁠.

“⁠나리⁠, 소림 땅을 거두면 은이 얼마나 나옵니까⁠?⁠”

“⁠사백 년 치를 땅으로 받으면 소림이 가진 땅 거의 전부다⁠. 관아가 거둬서 판다⁠.⁠”

“⁠누가 삽니까⁠? 등봉현에 그만한 땅을 한 번에 살 은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갈문형이 말을 하지 않았다⁠. 대문 밖에서 누가 솥 뚜껑을 덮는 소리가 났다⁠. 은학은 갈문형의 얼굴을 보며 주판 알을 하나씩 올렸다⁠. 소리 내지 않으려고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올렸다⁠.

“⁠추 진사가 삽니까⁠?⁠”

“⁠누가 사든 은은 은이다⁠.⁠”

“⁠추 진사가 사면⁠, 추 진사가 소림 이름에 맡겨 두었던 삼천 무도 그 안에 들어갑니다⁠. 원래 추 진사 땅을 관아가 거둬서 추 진사에게 팝니다⁠. 그것도 헐값에요⁠. 추 진사는 서른 해 동안 안 낸 세금을 한 번도 내지 않고⁠, 맡겨 둔 땅을 제 이름으로 되찾고⁠, 소림의 땅까지 얹어 받습니다⁠.⁠”

“⁠변방은 헐값이든 제값이든 은만 받으면 된다⁠.⁠” 갈문형이 고개를 돌려 등롱을 보았다⁠. “⁠추 진사는 은을 동지 전에 내겠다고 했다⁠. 다른 누구도 그렇게 빨리 내지 못한다⁠.⁠”

“⁠그래서 추 진사 댁에 묵으셨습니까⁠?⁠”

“⁠객사는 바람이 들어서⁠.⁠”

갈문형은 짧게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손을 내밀었다⁠.

“⁠열쇠⁠.⁠”

은학은 열쇠 꾸러미를 허리에서 풀었다⁠. 갈문형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지 않고⁠, 창고 문고리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 창고 문 앞 바닥에 앉았다⁠. 관복 자락을 펴고⁠, 주판을 무릎에 올리고⁠,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갰다⁠.

“⁠열쇠는 저기 있습니다⁠. 가져가시려면 제 머리 위로 손을 뻗으셔야 합니다⁠.⁠”

“⁠내가 소림 중인 줄 아느냐⁠? 너를 칠 수 있다⁠.⁠”

“⁠아십니다⁠. 치셔도 됩니다⁠.⁠” 은학이 대문을 보았다⁠. “⁠다만 대문 밖에 사람이 삼천입니다⁠. 관원이 관원을 치는 걸 다 봅니다⁠.⁠”

갈문형은 손을 뻗지 않았다⁠. 등롱 불빛 아래 두 사람이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대문 밖에서 칡죽 끓는 소리가 났고⁠, 누가 아이를 달래는 소리가 났다⁠. 갈문형이 돌아서서 처마 밑으로 걸어갔다⁠. 의자에 앉지 않고 서서 말했다⁠.

“⁠섣달 그믐은 네 목의 기한이다⁠. 내 기한이 아니다⁠. 내 기한이 오면 열쇠가 문고리에 있든 네 목에 있든 상관없다⁠.⁠”

은학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고 문에 등을 기대자 문 안에서 좁쌀 냄새가 났다⁠. 스무 수레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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