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06자)

사백 년을 잘라 낸 고지서

소림사 세무 조사 · 여무겸

가정 32년 11월 2일 아침⁠, 등봉현 관아 대문 앞에 노새 한 마리가 멈추었다⁠. 노새 등에 흰 도포를 입은 도사가 거꾸로 앉아 있었다⁠. 얼굴은 노새 꼬리 쪽을 보았고⁠, 등은 노새 머리 쪽에 기대었다⁠. 문지기가 창을 들고 다가가다가 도사의 등에 멘 거북 등딱지를 보고 창을 내렸다⁠.

“⁠무당의 청허자일세⁠. 노 서리를 보러 왔네⁠.⁠”

“⁠왜 거꾸로 타셨습니까⁠?⁠”

“⁠앞으로 가는 길은 노새가 알고⁠, 지나온 길은 내가 보지⁠.⁠” 청허자가 노새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내리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사흘 동안 지나온 길만 봤더니 목이 굳었네⁠.⁠”

은학이 호방에서 뛰어나왔다⁠. 청허자는 엉덩이를 털며 품에서 기름종이에 싼 꾸러미를 꺼냈다⁠.

“⁠개봉에 연이 닿는 도관이 있네⁠. 거기 도사 하나가 하남 포정사사 서리와 바둑 친구지⁠. 칙령이 북경에서 내려오면 포정사사가 받아 베껴서 각 부와 현에 돌리네⁠. 원문은 포정사사 궤짝에 있고⁠.⁠” 청허자가 꾸러미를 은학의 손에 쥐여 주었다⁠. “⁠바둑을 세 판 져 주고 베껴 왔네⁠. 내가 바둑에서 지는 건 서른 해 만일세⁠. 일부러 지는 게 이기는 것보다 어렵더군⁠. 처음엔 지려고 둔 판을 이겨 버려서⁠, 다음 판에서는 돌을 엉뚱한 데 놓느라 한 시진이 걸렸네⁠. 상대가 내가 무슨 수를 숨긴 줄 알고 더 오래 고민했지⁠.⁠”

은학은 기름종이를 풀었다⁠. 얇은 종이에 작은 글씨가 빽빽했다⁠. 은학은 대문 앞에 선 채로 읽었다⁠. 첫 줄은 북쪽 변방의 일이었고⁠, 다음 줄은 남쪽 바다의 일이었다⁠. 군비가 모자라니 나라 안 여러 곳에 세를 고루 매긴다는 말이 이어졌다⁠. 무림 문파의 땅에 관한 줄은 맨 끝에 한 줄 있었다⁠.

「⁠무림 문파의 전토 가운데 조정이 내리지 않은 땅에는 올해부터 세를 매긴다⁠.⁠」

은학은 맨 끝 줄을 세 번 읽었다⁠. 세 번째 읽을 때는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짚었다⁠. 거슬러 거둔다는 말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낸 해부터라는 말도 없었다⁠. 올해부터였다⁠.

“⁠사백 년은 어디서 왔습니까⁠?⁠”

“⁠그건 자네가 나한테 물을 일이 아니지⁠.⁠” 청허자가 노새의 고삐를 문지기에게 넘겼다⁠. “⁠대청에 앉은 사람한테 물을 일이지⁠.⁠”

“⁠도장님은 왜 이걸 구해 오셨습니까⁠?⁠”

“⁠사백 년 치면 무당은 산을 통째로 내야 하네⁠. 올해 치면 도사 몇이 단약 대신 고구마를 구우면 되지⁠.⁠” 청허자가 웃었다⁠. “⁠나도 내 땅을 지키러 간 걸세⁠, 노 서리⁠. 자네 편이라서가 아니야⁠.⁠”

*

같은 날 저녁⁠, 관아 대청에 등잔 넷이 켜졌다⁠. 지현이 상석에 앉았고⁠, 갈문형이 옆자리에 앉았다⁠. 은학은 대청 아래에 서서 칙령 등초를 탁자 위에 펼쳤다⁠. 지현이 등초를 들여다보다가 배를 쥐었다⁠. 갈문형은 등초를 보지 않았다⁠.

“⁠원외랑 나리⁠, 칙령에는 올해부터라고 적혀 있습니다⁠.⁠”

“⁠알고 있다⁠.⁠”

“⁠나리가 9월에 처음 시키신 일은 마지막으로 낸 해를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화 3년을 찾았습니다⁠. 사백사십 년이었고⁠, 나리는 황은으로 사십 년을 깎아 주셨습니다⁠.⁠” 은학은 탁자를 짚었다⁠. “⁠황은은 칙령에 없습니다⁠. 사백 년도 칙령에 없습니다⁠.⁠”

지현이 갈문형을 보았다가 은학을 보았다가 천장을 보았다⁠. 천장에서 쥐 한 마리가 들보를 따라 달려갔다⁠. 지현이 쥐를 눈으로 따라가며 중얼거렸다⁠.

“⁠나는 저 쥐가 부럽네⁠. 아무것도 안 들었을 테니⁠.⁠”

“⁠쥐도 들었을 겁니다⁠, 지현 나리⁠.⁠”

“⁠그럼 쥐도 배가 아프겠군⁠.⁠”

“⁠사백 년이라고 해야 소림이 땅으로 낼 수밖에 없다⁠.⁠” 갈문형이 말했다⁠. 목소리가 담담했다⁠. “⁠올해 치는 소림이 은으로 낸다⁠. 은으로 내면 땅은 그대로 남고⁠, 내 수레에 실리는 은은 몇백 냥이다⁠. 사백 년이면 땅으로 받는다⁠. 땅으로 받으면 추 진사가 산다⁠. 추 진사가 사면 동지 전에 은 수만 냥이 나온다⁠. 변방은 몇백 냥으로 겨울을 못 나고⁠, 수만 냥으로는 난다⁠.⁠”

“⁠칙령에 없는 것을 칙령처럼 쓰셨습니다⁠.⁠”

“⁠칙령은 은을 모으라고 했다⁠. 나는 은을 모으는 길을 찾았다⁠.⁠” 갈문형이 처음으로 등초를 내려다보았다⁠. “⁠서리⁠, 나는 이것을 북경에 올리면 벼슬을 잃는다⁠. 너는 이것을 쥐고 무엇을 하려느냐⁠? 나를 떨어뜨리면 은이 생기느냐⁠?⁠”

“⁠나리를 떨어뜨리려고 가져온 게 아닙니다⁠.⁠” 은학이 말했다⁠. “⁠사백 년을 잘라 내려고 가져왔습니다⁠. 잘라 낸 자리에 다른 것을 넣으려고요⁠.⁠”

“⁠무엇을⁠?⁠”

은학은 품에서 한 자짜리 고지서를 꺼내 등초 옆에 놓았다⁠.

“⁠소림에는 올해 치만 받겠습니다⁠. 당나라 때 황제가 내린 사십 경은 칙령대로 세금 바깥입니다⁠. 남은 소림 땅의 올해 치는 소림이 은으로 낼 수 있습니다⁠.⁠” 은학은 고지서의 두 번째 줄을 짚었다⁠. “⁠추씨가 소림 이름에 맡겨 둔 삼천칠백 무는 소림 땅이 아닙니다⁠. 칙령의 무림 문파 전토가 아니니 칙령에 매이지 않습니다⁠. 일반 민전입니다⁠. 민전이 세금을 피했으면 피한 해만큼 거슬러 걷는 것은 원래 관아 규칙입니다⁠. 서른 해 치입니다⁠. 은으로 이천 냥이 넘습니다⁠.⁠”

갈문형이 고지서를 집어 들었다⁠. 등잔 가까이 가져가 숫자를 읽었다⁠.

“⁠추 진사가 이걸 내겠나⁠?⁠”

“⁠현장을 잡으면 냅니다⁠. 소작료 마당에서 소림 땅의 곡식을 추씨 말로 받는 것을 원외랑 나리가 직접 보시면⁠, 추씨는 궤기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궤기한 땅은 관아가 몰수할 수도 있습니다⁠. 진사는 땅을 잃느니 은을 냅니다⁠.⁠”

“⁠소작료 마당은 언제냐⁠?⁠”

“⁠올해 마지막 마당이 11월 6일입니다⁠. 동지 전날입니다⁠.⁠”

갈문형이 고지서를 내려놓았다⁠.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지현이 숨을 죽였다⁠.

“⁠잡아 와라⁠.⁠” 갈문형이 말했다⁠. “⁠동지 전날 소작료 마당에서 내 눈으로 보게 해라⁠. 그러면 네 고지서를 받겠다⁠. 소림은 올해 치⁠, 추 진사는 서른 해 치⁠. 못 잡으면 사백 년 치로 간다⁠. 이 등초는 그때 네가 북경에 올려라⁠. 나는 벼슬을 잃고⁠, 너는 목을 잃겠지⁠. 변방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알겠습니다⁠.⁠”

“⁠서리⁠, 하나만 묻자⁠.⁠” 갈문형이 일어서며 말했다⁠. “⁠사백 년 치 두루마리는 어떻게 할 거냐⁠? 사흘 밤을 새워 만들었다며⁠.⁠”

“⁠계단에 깔 때 쓸모가 있었습니다⁠.⁠”

갈문형이 짧게 웃었다⁠. 이번에는 웃는 얼굴이었다⁠.

*

11월 3일 아침⁠, 소림사 방장실에서 혜공은 한 자짜리 고지서를 읽었다⁠. 염주가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다 읽고 나서 고지서를 접지 않고 차 쟁반 옆에 펴 두었다⁠.

“⁠올해 치⁠.⁠”

“⁠올해 치입니다⁠. 황제가 내린 땅은 빼고⁠, 추씨 땅도 빼고⁠.⁠”

“⁠추 진사 땅이 떨어져 나가면 수레가 끊기네⁠.⁠” 혜공이 말했다⁠. “⁠올해 치 세금을 내고 수레까지 끊기면 솥 둘이 식어⁠. 사백 년 치보다 가볍다고 해서 가벼운 게 아닐세⁠. 오늘 저녁 사발 수가 줄어드는 건 같아⁠.⁠”

“⁠압니다⁠.⁠”

“⁠알고도 하겠나⁠?⁠”

“⁠알고 합니다⁠. 대사님도 알고 받으셨습니다⁠. 서른 해 동안⁠.⁠”

혜공이 은학을 보았다⁠. 눈 밑에 주름이 깊었다⁠. 은결이 떠난 뒤 혜공은 공양간에 직접 나가 솥을 저었다고⁠, 은학은 사미승에게서 들었다⁠. 일흔 노인이 솥 여섯을 다 젓지는 못해서 다섯만 젓고⁠, 여섯 번째 솥은 사미승 셋이 붙어 저었다⁠.

“⁠수결은 동지에 하겠네⁠.⁠” 혜공이 말했다⁠. “⁠자네가 추 진사 마당에서 무엇을 들고 오는지 보고⁠. 추 진사가 내지 않는데 소림만 내면⁠, 장 영감 소는 돌아오지 않네⁠.⁠”

“⁠동지에 뵙겠습니다⁠.⁠”

은학이 일어서자 혜공이 고지서 옆의 찻잔을 밀었다⁠. 이번에는 김이 나는 차였다⁠. 은학은 서서 한 모금 마셨다⁠. 뜨거웠다⁠.

산문 계단을 내려오자 맨 아래 칸에 백소운이 앉아 있었다⁠. 칼은 등에 메고⁠, 열다섯 줄 주판을 무릎에 올려놓았다⁠. 대회 날 화산 깃발을 등지고 섰던 뒤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볕에 그을려 있었다⁠.

“⁠화음현에 다녀왔어요⁠.⁠” 백소운이 일어서며 말했다⁠. “⁠제가 나고 자란 마을에 화산 이름이 새겨진 돌이 셋 박혀 있더군요⁠. 어릴 때 그 돌 옆에서 이삭을 주웠는데⁠, 그때는 글자를 못 읽었어요⁠.⁠”

“⁠소작료는 어느 집으로 갑니까⁠?⁠”

“⁠현에서 제일 큰 기와집으로요⁠.⁠” 백소운이 주판 알 하나를 튕겼다⁠. “⁠장문인께 말씀드렸어요⁠. 화산은 올해 치를 내겠다고⁠. 우리 산에 붙은 남의 땅은 돌을 뽑겠다고⁠. 장문인이 사흘 동안 저하고 말을 안 하셨어요⁠.⁠”

“⁠사흘 뒤에는요⁠?⁠”

“⁠빚을 같이 계산하자고 하셨죠⁠. 열다섯 줄로는 모자라서 제 주판하고 장문인 주판을 나란히 놓고⁠.⁠” 백소운이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서리 나리⁠, 동지 전날 소작료 마당에 가신다면서요⁠. 거지들한테 들었어요⁠. 주판 놓는 사람이 둘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추씨 집 말이 얼마나 높은지 재려면⁠.⁠”

“⁠대제자님이 가시면 화산이 추씨 집과 원수가 됩니다⁠.⁠”

“⁠화산은 원래 가난해서 원수 질 것도 없어요⁠.⁠” 백소운이 칼끈을 고쳐 맸다⁠. “⁠그냥 파보다는 나아요⁠.⁠”

*

11월 4일 아침⁠, 은학이 관아에 들어서자 호방 문 앞에 지현이 서 있었다⁠. 지현 손에 공문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붉은 도장이 하남 포정사사 것이었다⁠. 지현의 손이 떨려서 종이가 사락거렸다⁠.

“⁠노 서리⁠, 들어가지 말고 여기서 듣게⁠.⁠”

“⁠무슨 일이십니까⁠?⁠”

지현이 공문을 읽었다⁠. 목소리가 공문보다 작았다⁠.

「⁠등봉현 호방 서리 노은학은 향신을 모함하고⁠, 금의위의 공무를 막고⁠, 칙령 등초를 사사로이 빼냈다⁠. 지현은 즉시 직을 멈추게 하라⁠.⁠」

“⁠추 진사가 개봉에 글을 보냈네⁠. 포정사사에 진사 동기가 있다더군⁠.⁠” 지현이 공문을 접었다⁠. “⁠칙령 등초 빼낸 것까지 벌써 알아⁠. 개봉 바둑판에 귀가 달렸나 보지⁠.⁠”

“⁠직을 멈추면 소작료 마당에 관원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멈추게 하라는 거겠지⁠.⁠” 지현이 은학의 관모를 보았다⁠.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자네 관모를 내가 벗겨야 하네⁠. 그렇게 적혀 있어⁠.⁠”

지현이 두 손으로 은학의 관모를 들어 올렸다⁠. 관모가 상투에서 빠지는 순간 찬 바람이 정수리에 닿았다⁠. 지현은 관모를 가슴에 안고 한 걸음 물러섰다⁠. 관모에게 하듯이 허리를 굽혔다⁠.

“⁠미안하네⁠. 자네한테 한 말이 아니라 관모한테 한 말일세⁠. 관모는 잘못이 없지⁠.⁠”

“⁠제가 잘못했습니까⁠?⁠”

“⁠모르겠네⁠.⁠” 지현이 관모를 내려다보았다⁠. “⁠동지까지는 내가 보관하겠네⁠. 동지가 지나도 자네 목이 붙어 있으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세⁠.⁠”

호방 안에서 서리 둘이 문틈으로 내다보았다⁠. 기침하지 않았다⁠. 한 서리가 문틈으로 손을 내밀어 은학의 소매에 무언가를 쑤셔 넣었다⁠. 꺼내 보니 낡은 털모자였다⁠. 서리는 문을 닫으면서 작게 말했다⁠. “⁠정수리 시리네⁠. 동지 지나면 돌려주게⁠.⁠” 대청 처마 밑에 갈문형이 서 있었다⁠. 갈문형은 공문을 막지도⁠, 지현을 말리지도 않았다⁠. 은학과 눈이 마주치자 손가락 둘을 들어 보였다⁠. 소작료 마당까지 이틀이라는 손짓이었다⁠.

은학은 관모 없는 머리로 관아 대문을 나섰다⁠. 상투 끝에서 머리카락 몇 올이 바람에 날렸다⁠. 대문 밖 길모퉁이에 방노삼이 대나무 막대를 짚고 서 있었다⁠. 방노삼이 은학의 정수리를 보더니 허리 자루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 흔들었다⁠.

“⁠이제 나리도 해당 없음이오⁠?⁠”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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