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75자)

금의위가 산문 앞에 칼을 꽂다

소림사 세무 조사 · 여무겸

가정 32년 10월 26일 자정 무렵⁠, 추명도의 집 뒷골목에서 갈문형이 은학을 불러 세웠다⁠. 갈문형은 관복 위에 솜 두루마기를 걸쳤고⁠, 손에 등롱을 들지 않았다⁠. 달빛에 짧은 눈썹만 보였다⁠.

“⁠세금이 땅값보다 싸다고 했지⁠. 벽 너머로 다 들었다⁠.⁠”

“⁠들으시라고 크게 말했습니다⁠.⁠”

“⁠서리가 원외랑더러 들으라고 말을 하나⁠?⁠”

“⁠벽이 얇다고 추 나리께서 일러 주셔서요⁠. 일러 주신 걸 안 쓰면 실례입니다⁠.⁠”

“⁠추 진사가 그 계산을 몰라서 땅을 사겠다는 줄 아나⁠?⁠” 갈문형이 은학 앞으로 다가왔다⁠.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다⁠. “⁠세금을 내면 은은 나가고 땅은 그대로다⁠. 땅을 사면 은은 나가도 땅이 는다⁠. 소림 땅까지 얹어서⁠. 진사는 땅으로 계산한다⁠. 너는 세금으로 계산하고⁠.⁠”

“⁠나리는 무엇으로 계산하십니까⁠?⁠”

“⁠나는 동지로 계산한다⁠.⁠” 갈문형이 말했다⁠. “⁠동짓날 개봉을 떠나는 수레에 은이 실려 있느냐⁠, 없느냐⁠.⁠”

“⁠추씨 댁 세금으로도 수레는 채워집니다⁠.⁠”

“⁠추 진사가 동지 전에 낸다면⁠.⁠” 갈문형이 돌아섰다⁠. 몇 걸음 가다가 멈추었다⁠. “⁠금의위 천호가 내일 산에 간다⁠. 천호는 은을 계산하지 않는다⁠. 공을 계산하지⁠. 공을 세우려면 무엇이 부서져야 한다⁠. 부서지는 것이 소림 땅이면⁠, 나는 거둘 것이 없어진다⁠.⁠”

갈문형의 발소리가 골목 끝으로 사라졌다⁠. 은학은 한참 서 있다가⁠, 사랑채에 앉아 있던 동안 식은 손을 소매 속에 넣었다⁠.

*

10월 27일 아침⁠, 소림사 산문 계단 아래에 말 세 필과 사람 서른이 모였다⁠. 말 탄 사람은 금의위였고⁠, 걸어온 스물 남짓은 등봉현 포졸이었다⁠. 포졸들은 창을 들었지만 창끝이 모두 땅을 보았다⁠. 포졸 맨 뒤에 지현이 섰다⁠. 석경룡이 지현을 앞세워 오라고 했다는데⁠, 지현은 오는 동안 포졸들 뒤로 한 사람씩 물러나 결국 맨 뒤에 있었다⁠.

은학은 포졸들 사이에 끼어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사랑채에서 나온 뒤 성 밖까지 걸어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고⁠, 새벽에 석경룡의 말발굽 소리를 듣고 관아에서 뛰어나왔다⁠. 사백 년 치 두루마리를 등에 멘 채였다⁠. 왜 그것을 챙겼는지는 은학도 몰랐다⁠. 손이 먼저 탁자 밑으로 갔다⁠.

석경룡이 말에서 내렸다⁠. 계단 맨 아래 칸으로 걸어가 허리의 칼을 뽑았다⁠. 휘어진 칼날이 아침 해를 받아 한 번 번쩍였다⁠. 석경룡은 칼을 거꾸로 쥐고 맨 아래 두 돌계단 사이 틈에 내리꽂았다⁠.

칼이 돌 틈에 박혀 떨렸다⁠. 쇠 우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금의위 천호 석경룡이다⁠!⁠” 석경룡의 목소리는 낮았는데 산문 끝까지 들렸다⁠. “⁠소림사 무승들은 들어라⁠. 무기를 내려놓고 관아에 몸을 대라⁠. 곤봉을 든 자는 반역의 무리로 다스리겠다⁠.⁠”

산문 안에서 종이 세 번 울렸다⁠. 발소리가 났다⁠. 계단 위로 나한진이 나왔다⁠. 원진이 맨 앞이었고⁠, 열여덟이 다 있었다⁠. 지난번 도첩을 가지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열하나도 곤봉을 들고 서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은학을 보더니 멋쩍게 웃었다⁠.

“⁠도첩은 아직 방에 있소⁠.⁠”

“⁠찾으셨습니까⁠?⁠”

“⁠오늘은 도첩 날이 아니오⁠.⁠”

혜공이 산문 아래에 섰다⁠. 붉은 가사와 노란 가사가 바람에 펄럭였다⁠. 염주를 굴리지 않았다⁠. 혜공의 손이 염주를 꽉 쥐고 있었다⁠.

나한진이 계단을 한 칸씩 내려왔다⁠. 석경룡 뒤의 금의위 둘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포졸들이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고⁠, 지현은 세 걸음 물러났다⁠. 계단 중간에서 원진이 멈추었다⁠. 곤봉 끝이 석경룡의 칼과 열 걸음쯤 떨어져 있었다⁠.

“⁠막을 뿐 치지 않소⁠.⁠”

“⁠막으면 친 것으로 보겠다⁠.⁠” 석경룡이 대답했다⁠.

석경룡이 손을 들자 금의위 둘이 칼을 반쯤 뽑았다⁠. 칼집에서 쇠가 미끄러지는 소리에 담 위의 아이 하나가 울음을 터뜨렸고⁠, 아이 어머니가 손바닥으로 아이 입을 막았다⁠. 포졸 하나가 창을 놓쳤다⁠. 창이 돌계단에 부딪히며 굴러 내려가는 동안 아무도 줍지 않았다⁠.

“⁠주워⁠.⁠” 지현이 포졸 등 뒤에서 속삭였다⁠.

“⁠나리가 주우십시오⁠.⁠”

“⁠나는 배가⁠…⁠.⁠”

창은 계단 맨 아래까지 굴러가 석경룡의 장화 앞에서 멈추었다⁠. 석경룡이 창을 발로 밀어 냈다⁠. 포졸들 사이에서 누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

은학은 포졸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석경룡의 칼과 원진의 곤봉 사이⁠, 계단 세 번째 칸에 섰다⁠. 등에서 두루마리를 내려 끝을 잡았다⁠. 두루마리를 계단 위로 펼치지 않고⁠, 계단 가로로 돌렸다⁠. 종이가 사르륵 풀리며 돌계단 한 칸을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덮었다⁠. 남은 종이가 다음 칸으로 흘렀다⁠. 「⁠사백 년 체납 세금 고지서⁠」 글자가 계단 한가운데에서 위를 보았다⁠.

“⁠등봉현 관아 호방 서리 노은학입니다⁠.⁠” 은학이 목청을 높였다⁠. “⁠이 산문은 지금 세무 조사 중입니다⁠. 조사 절차 아홉⁠, 압류 예정 물건의 보전입니다⁠.⁠”

석경룡이 눈썹을 올렸다⁠. 금의위 둘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소림사는 사백 년 체납이 있는 절입니다⁠. 체납자의 재산은 관아가 거두기 전까지 누구도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상하면 거둘 은이 줄어듭니다⁠.⁠” 은학은 계단을 손바닥으로 가리켰다⁠. “⁠이 돌계단 백여덟 칸⁠, 산문 기둥 넷⁠, 현판 하나⁠, 공양간 솥 여섯⁠, 저 무승들이 든 곤봉 열여덟까지 다 압류 예정 물건입니다⁠. 무승의 몸은 압류할 수 없으나⁠, 다치면 요역에 쓸 수 없으니 이 또한 상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계단 위에서 무승 하나가 자기 곤봉을 내려다보았다⁠. “⁠내 곤봉이 나라 것이 되었소⁠?⁠”

“⁠아직 아닙니다⁠. 될 예정입니다⁠.⁠”

“⁠그럼 지금 휘두르면 안 되겠소⁠.⁠”

“⁠안 됩니다⁠. 흠집 나면 값이 떨어집니다⁠.⁠”

무승이 곤봉을 품에 끌어안았다⁠. 다른 무승들도 곤봉을 슬그머니 세워 들었다⁠. 담 위에서 구경하던 죽 줄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방노삼이 담 밑에서 금의위 말 앞에 볶은 콩 한 줌을 내밀었다⁠. 말이 콩을 먹었다⁠.

석경룡은 웃지 않았다⁠. 계단 틈에서 칼을 뽑았다⁠. 칼끝이 은학의 가슴 앞으로 왔다⁠. 은학은 물러서지 않았다⁠. 관복 앞섶에 칼끝이 닿았다⁠. 은학의 숨이 칼끝을 밀었다 당겼다 했다⁠.

“⁠서리⁠, 나는 북경 금의위다⁠. 현 관아의 압류 따위로 나를 막겠나⁠?⁠”

“⁠현 관아가 아니라 호부가 거둘 은입니다⁠, 천호 나리⁠. 금의위가 호부의 은을 깨뜨리면⁠, 북경에서 두 관청이 다툽니다⁠. 다툼이 끝날 때까지 변방에는 은이 안 갑니다⁠.⁠”

“⁠호부가 무슨⁠…⁠.⁠”

“⁠서리 말이 맞소⁠.⁠”

산길에서 목소리가 났다⁠. 갈문형이 찢어진 휘장의 가마에서 내려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숨이 차서 말이 짧았다⁠. 계단 아래에 이르러 석경룡과 은학 사이를 보고⁠, 은학의 가슴에 닿은 칼끝을 보았다⁠.

“⁠천호⁠, 소림의 땅과 물건은 호부가 거둘 것이오⁠. 동지 전에 은으로 바꿔 개봉에 보내야 하오⁠. 금의위가 먼저 손을 대면 내가 북경에 글을 올리겠소⁠.⁠”

석경룡이 갈문형을 돌아보았다⁠. “⁠원외랑은 어젯밤 추 진사 댁에 계시지 않았소⁠?⁠”

“⁠나는 어디서 자든 호부 사람이오⁠.⁠”

갈문형은 은학을 보지 않았다⁠. 은학도 갈문형을 보지 않았다⁠. 둘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바라는 것은 달랐다⁠. 갈문형은 소림의 땅이 은이 되기를 바랐고⁠, 은학은 소림의 땅이 지금 모양 그대로 남기를 바랐다⁠. 칼 앞에서는 둘 다 땅이 상하지 않기를 바랐다⁠.

석경룡이 칼을 거두었다⁠. 칼집에 넣는 소리가 길었다⁠. 은학의 가슴팍에서 관복 실밥 하나가 끊어져 바람에 날렸다⁠.

*

혜공이 계단을 내려왔다⁠. 다섯 칸을 내려와 원진 옆에 섰다⁠. 석경룡과 혜공 사이에 은학의 두루마리가 가로놓여 있었다⁠. 혜공은 두루마리를 밟지 않고 바로 위 칸에 멈추었다⁠.

“⁠천호⁠, 소림의 중들은 곤봉을 들고 무엇을 지키는지 아시오⁠?⁠”

“⁠산을⁠.⁠”

“⁠죽 솥을 지키오⁠. 솥 여섯에 사람이 삼천⁠. 곤봉을 내려놓으면 내일 아침 저 뒷마당이 무너지오⁠. 굶은 사람은 솥을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솥을 엎소⁠.⁠”

“⁠그러면 곤봉을 들고 나라 일을 하시오⁠.⁠” 석경룡이 말했다⁠. “⁠올봄 남경의 도독이 소림 승병을 불렀소⁠. 송강 바닷가에서 왜구를 쳤지⁠. 쇠막대 하나로 왜구 여럿을 때려눕혔다고 남경이 떠들썩했소⁠. 한 번 더 보내시오⁠. 이번에는 나한당 쉰 전부⁠. 나라를 위해 칼을 든 중은 의병이고⁠, 산에 남아서 칼을 든 중은 반역이오⁠. 보내면 반역을 묻지 않겠소⁠. 금의위는 산에서 물러나겠소⁠.⁠”

혜공의 손에서 염주가 처음으로 굴렀다⁠. 한 알이 넘어가고 다음 알에서 멈추었다⁠.

“⁠봄에 내려간 아이들 가운데 서른이 돌아오지 않았소⁠.⁠” 혜공의 목소리가 낮았다⁠. “⁠서른의 이름을 나는 다 외우오⁠. 왜구를 쓰러뜨린 숫자는 남경이 셌겠지만⁠,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의 숫자는 이 산이 세었소⁠. 살생을 하지 말라는 계율을 깨고 내려가서⁠, 돌아오지 못했소⁠.⁠”

“⁠그러면 쉰이 산에 남아 반역으로 죽겠소⁠?⁠”

혜공이 대답하지 않았다⁠. 계단 위의 무승들이 곤봉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원진이 혜공의 옆얼굴을 보았다⁠. 은학은 계단 아래에서 은결을 찾았다⁠. 은결은 나한진에 없었다⁠. 산문 옆 담 위⁠, 죽 줄 사람들 사이에 공양간 앞치마를 두른 채 서서 석경룡을 보고 있었다⁠.

“⁠사흘 말미를 주겠소⁠.⁠” 석경룡이 말에 올랐다⁠. “⁠사흘 뒤 이 계단에 쉰이 내려와 있으면 남쪽으로 데려가겠소⁠. 내려와 있지 않으면 내가 올라가겠소⁠. 그때는 서리의 종이가 계단을 열 칸 덮고 있어도 밟고 올라가겠소⁠.⁠”

말이 돌아섰다⁠. 금의위 셋이 산길을 내려갔고⁠, 포졸들이 뒤를 따랐다⁠. 지현이 맨 뒤에서 걷다가 은학 곁을 지나며 소매로 이마를 닦았다⁠.

“⁠노 서리⁠, 아까 계단 백여덟 칸이라고 했지⁠? 정말 세어 봤나⁠?⁠”

“⁠어제 세었습니다⁠.⁠”

“⁠나는 백일곱으로 알았는데⁠.⁠”

“⁠내려가시면서 한 번 세어 보십시오⁠.⁠”

지현은 계단을 내려가며 입속으로 세기 시작했다⁠. 스물을 넘기기 전에 포졸 하나가 말을 걸었고⁠, 지현은 포졸에게 손을 내젓고 맨 위로 도로 올라와 처음부터 다시 셌다⁠. 포졸들은 지현을 기다리느라 산길 모퉁이에 쪼그려 앉았다⁠. 하나가 품에서 볶은 콩을 꺼내 나눠 먹었다⁠. 아까 방노삼에게서 동전 한 닢 주고 산 콩이었다⁠. 은학은 두루마리를 말았다⁠. 원진이 계단을 내려와 종이 끝을 들어 주었다⁠. 무승이 종이를 만지는 것은 관원에게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고⁠, 이번에는 원진이 말하지 않았다⁠.

“⁠수좌 스님⁠, 쉰이 내려가면 스님도 가십니까⁠?⁠”

“⁠나는 도첩이 없소⁠.⁠” 원진이 종이를 둘둘 말며 말했다⁠. “⁠도첩 없는 중은 나라가 보기에 중이 아니오⁠. 중이 아닌 자가 곤봉을 들면 반역이고⁠, 나라 일에 곤봉을 들면 의병이오⁠. 나는 늘 둘 중 하나였소⁠.⁠” 원진이 말린 두루마리를 은학에게 건넸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는⁠…⁠.⁠”

원진이 말을 멈추고 웃었다⁠. 대답할 말은 있는데 하기 싫은 얼굴이었다⁠.

“⁠선문답으로 해 주십시오⁠.⁠”

“⁠곤봉은 누구의 것인가⁠?⁠”

“⁠아직은 소림 것입니다⁠. 압류 예정입니다⁠.⁠”

“⁠그러면 나는 압류 예정인 곤봉을 들고 남쪽에 가야 하오⁠?⁠” 원진이 곤봉을 내려다보았다⁠. “⁠흠집 나면 값이 떨어진다면서⁠.⁠”

맨 아래 칸 돌 틈에 칼이 박혔던 자리가 하얗게 패어 있었다⁠. 담 위에서 은결이 내려오고 있었다⁠. 앞치마를 벗어 손에 쥐고⁠, 형을 보지 않고 혜공에게로 곧장 걸어갔다⁠.

1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금의위가 산문 앞에 칼을 꽂다 · 소림사 세무 조사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