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42자) · 하윤 · 삼월

한 해에 금 넷

무영검의 제자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백하진은 백하가 한 번 크게 굽이치는 자리에 마흔 집이 모여 앉은 나루 마을이다. 삼월 초, 하윤과 윤선이 닿았을 때 강은 아직 눈 녹은 물로 불어 있었고, 물빛이 흙탕에 가까운 누런색이었다.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샛강 하나가 백하로 흘러들었는데, 그 샛강 위에 나무다리가 걸려 있었다. 길이가 열 발쯤이고 폭은 수레 하나가 겨우 지날 만했다. 난간은 몇 번 갈아 끼웠는지 나무 색이 제각각이었지만, 물속에 박힌 기둥 넷은 검게 절어 돌처럼 단단해 보였다. 기둥마다 물때가 층층이 올라 있었고, 가까이 가면 젖은 나무 냄새에 강물의 비린내가 섞였다.

이장은 예순쯤 된 사내였다. 하윤이 장부의 한 줄을 보여 주자 들고 있던 찻사발을 내려놓았다.

“가정 구년 정월에 여기서 넷이 베였소. 흉 없이 사흘씩 앓았소. 그 사람이 벴소.”

“제 스승입니다.”

이장이 하윤을 오래 봤다.

“그 사람이 이 다리를 놓았소. 처음엔 혼자서였소. 한 해 걸렸소.”

이장이 다리 쪽으로 턱짓을 했다. 다리 위로 아이 둘이 물동이를 이고 건너가고 있었다. 한 아이가 난간에 기대 샛강을 내려다보다가 다른 아이에게 등을 떠밀려 달음박질쳤다.

“저 애들 할아비들이 그 사람한테 베였소. 저 애들은 이 다리가 원래 있던 건 줄 아오.”

*

정만은 다리 건너 첫 집에 살았다. 예순여덟이고, 오른 팔뚝에 힘줄이 굵게 돋았다. 하윤이 제자라고 하자 정만은 한참 웃다가 평상을 가리켰다.

“앉으시오. 그 사람 얘기라면 한나절은 걸리오.”

가정 구년 정월, 곽문도는 표국 짐을 호송하다 백하진 나루에서 마을 사내들과 시비가 붙었다. 나루 삯 문제였다. 사내 넷이 몽둥이를 들고 막아섰고, 곽문도가 칼을 뽑아 넷을 차례로 그었다. 넷은 사흘을 앓았다. 그 사흘이 하필 샛강에 다리를 놓기로 한 날이었다. 해마다 봄 장마에 샛강이 불면 마을이 둘로 갈라져 아이들이 서당에 못 가고 약도 못 건너갔다. 넷이 앓는 바람에 다리 놓을 사람이 없었고, 그해 봄에 아이 하나가 샛강을 건너다 떠내려갔다.

“그 사람이 여름에 다시 왔소. 표국 일을 그만두고 왔다고 했소. 혼자서 나무를 베고 기둥을 박았소. 처음엔 아무도 안 도왔소. 우리 넷을 벤 사람이니까.”

정만이 제 팔뚝을 짚었다.

“봄에 내가 먼저 나갔소. 여름에 둘이 나왔고 가을에 넷이 다 나왔소. 넷이 나오니까 한 해 걸릴 다리가 한 철에 끝났소.”

“왜 나오셨습니까?”

“혼자 놓게 두면 저 사람이 못 끝낼 것 같았소. 못 끝내면 또 아이가 떠내려가오.”

정만이 찻주전자를 기울여 사발 셋에 차를 따랐다. 김이 샛강 쪽으로 흘러갔다.

“그러니까 누가 갚은 거요? 그 사람이 갚은 거요, 우리가 갚은 거요?”

하윤은 장부를 폈다. 넷 줄에 금이 넷 나란히 그어져 있었다. 그 금 넷은 굵기가 똑같았다. 한 날 한 자리에서 그은 금이었다. 스승은 넷을 하나씩 찾아가 갚은 게 아니었다. 넷이 스승과 함께 다리 하나를 놓았고, 그 다리가 넷의 사흘 일을 한꺼번에 갚았다.

하윤은 그제야 알았다. 우물에 일곱 손이 붙었을 때 넷이 풀린 것도, 담에 네 손이 붙었을 때 어깨가 가벼웠던 것도 같은 셈이었다. 갚는 일은 벤 사람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스승은 그걸 스물한 해 전에 이 다리에서 알았다. 알면서 제자들에게는 하나씩 세라고 가르쳤다.

윤선이 옆에서 물었다.

“당신 스승은 왜 그걸 안 가르쳤소?”

“모르겠습니다.”

“물어보시오. 돌아가면.”

그날 저녁 정만의 집 평상에 마을 아낙 셋이 모여들었다. 칼도 없이 다니는 젊은이와 약칼을 차고 다니는 여자가 무슨 사이인지 궁금해서였다. 아낙 하나가 부부냐고 묻자 윤선은 약값 받을 사이라고 대답했고, 다른 아낙이 약값을 얼마나 받을 거냐고 묻자 윤선은 이 사람이 평생 갚아도 모자랄 만큼이라고 했다. 아낙들이 부부보다 더 질긴 사이라며 손뼉을 치고 웃었다. 하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윤선을 봤고, 윤선은 모른 척 정만의 팔뚝에 고약을 발랐다.

“이 팔은 스물한 해째 비 오기 전날마다 쑤시오. 베인 자리는 그 사람한테 갔다더니, 쑤시는 건 나한테 남았소.”

“그건 베인 자리가 아니라 나이요.”

윤선이 고약을 문지르며 말했고, 정만이 억울한 얼굴로 하윤을 봤다. 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선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이튿날부터 하윤은 다리 난간을 고쳤다. 썩은 난간 셋을 뜯어내고 새 나무를 깎아 맞췄다. 이장 집 헛간에서 대패를 빌렸는데, 날이 무뎌 숫돌에 한나절을 갈았다. 대패질은 노가촌에서 노춘에게 배웠다. 우물을 다 파고 사시로 내려가기 전 열흘 동안, 하윤은 노춘의 마당에서 대팻밥을 무릎까지 쌓았다. 칼은 손목으로 쥐고 대패는 어깨로 민다. 노춘은 하윤의 손목을 탁 치며 손목으로 밀면 나무가 뜯긴다고 했다. 뒷발로 밀고 어깨로 싣고 손은 얹기만 하라고 했다. 난간 나무에 대패를 밀자 얇은 대팻밥이 종잇장처럼 말려 나왔고, 소나무 냄새가 강바람에 섞였다.

*

닷새 뒤 아침, 강 하류에서 배 세 척이 올라왔다. 맨 앞 배 뱃머리에 비단 장삼을 입은 뚱뚱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왼손 엄지에 옥가락지가 햇빛을 받아 푸르게 번쩍였다. 그 뒤에 쇠장갑을 낀 구양탁이 섰고, 둘째 배와 셋째 배에서 칼 찬 사내 넷이 내렸다. 하윤은 그 넷 가운데 셋의 얼굴을 알았다. 문파를 나간 사형들이었다. 넷째, 다섯째, 여섯째. 그리고 맨 뒤에 도겸이 있었다.

마종곤은 다리 한가운데까지 걸어와 섰다. 이장과 마을 사내들이 다리 이쪽에 모였고, 하윤과 윤선이 그 앞에 섰다.

“백하진 차용증 마흔 장을 양양 전장에서 샀소. 오늘부터 내가 이 마을 채주요.”

마종곤이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들어 보였다.

“이장, 마흔 집 갑수 넷의 도장을 받아야겠소. 이 다리를 담보로 잡겠다는 서약이오. 다리 통행세로 이자를 받겠소.”

“이 다리는 마을 거요. 통행세 받는 다리가 아니오.”

“그러니까 내가 받겠다는 거요.”

이장 옆에 선 정만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갑수요. 도장 안 찍소.”

마종곤이 고개를 돌려 도겸을 봤다.

“도겸이.”

도겸이 다리 위로 걸어 나왔다.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정만 앞에 섰다. 도겸의 눈 밑이 지난겨울보다 더 검었고, 칼자루를 쥔 손등에 핏줄이 푸르게 섰다.

하윤이 도겸과 정만 사이에 섰다. 허리에 칼이 없었다.

“사형.”

“비켜라, 여덟째. 칼도 없는 놈이.”

도겸이 칼을 반쯤 뽑았다가 거기서 멈췄다. 정만의 오른 팔뚝을 봤다. 스물한 해 전 스승이 그은 자리, 굵은 힘줄이 돋은 그 팔뚝을. 도겸의 칼이 반쯤 뽑힌 채로 떨렸다.

마종곤이 한숨을 쉬었다.

“구양탁.”

구양탁이 다리를 건너왔다. 허리에 새 환도를 찼다. 도겸을 어깨로 밀어젖히고 칼을 뽑았다. 무영이 아닌 칼이었다. 칼끝이 정만의 가슴으로 향했다.

하윤은 칼을 막을 칼이 없었다. 구양탁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하윤은 발을 앞뒤로 벌리고 무릎을 굽혀 몸을 낮췄다. 노가촌 노춘의 마당에서 배운 대패질이었다. 대패는 손으로 밀지 않는다. 뒷발로 땅을 밀고, 그 힘을 허리로 올리고, 어깨로 싣고, 두 손바닥은 대팻날이 나무에 닿는 자리에 그냥 얹어 둔다.

하윤의 두 손바닥이 구양탁의 가슴 한가운데 얹혔다. 뒷발이 다리 널판을 밀었다. 힘이 허리를 타고 어깨로 올라와 손바닥으로 빠져나갔다.

구양탁의 몸이 뒤로 붕 떴다. 환도를 쥔 채 난간을 넘어 샛강으로 떨어졌다. 물이 크게 튀었고, 눈 녹은 물이라 구양탁이 수면으로 올라오며 지른 소리가 비명에 가까웠다. 구양탁이 허우적거리며 기슭으로 헤엄쳐 나가는 동안 쇠장갑이 무거워 두 번이나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

마을 사내들 사이에서 누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장이 지팡이로 그 사내의 머리를 쳤지만, 이장 자신도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하윤은 그 동작에 대패 미는 어깨로 미는 수, 추장(推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 베는 수의 여섯째였다. 칼이 있었으면 쓰지 못했을 수였다.

*

마종곤은 다리 한가운데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구양탁이 물을 뚝뚝 흘리며 기슭으로 기어오르는 것을 보고 나서야 하윤에게로 눈을 돌렸다.

“칼을 안찰사에게 맡겼다지. 칼 없는 무사라. 곽 선생이 알면 웃겠소.”

“스승님은 스물두 해 전에 은 스무 냥을 받았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 그 사람 장부를 들고 다니오?”

“그래서 들고 다닙니다. 제가 갚으려고요.”

마종곤이 오른 손목의 흰 비단을 왼손으로 쓸었다. 그 손목이 스물두 해 전 윤가 대문 밖에서 그어진 자리라는 것을 하윤은 알았다. 마종곤도 하윤이 안다는 것을 알았다.

“백하진에 오월 장마까지 말미를 주겠소. 은 백 냥. 못 내면 다리째 가져가겠소.”

마종곤은 돌아서서 배로 걸어갔다. 사형 셋이 뒤따랐다. 도겸만 다리 위에 남았다. 반쯤 뽑힌 칼을 끝내 도로 넣지 못한 채, 도겸은 정만을 보고 있었다.

“도겸이!”

마종곤이 배에서 불렀다. 도겸이 칼을 넣었다. 넣는 손이 흔들려서 칼집 입구를 두 번 빗나갔다.

도겸은 돌아서기 전에 하윤에게 낮게 말했다.

“여덟째. 방금 그거, 대패냐?”

“예.”

“스승님이 알면 웃으시겠다.”

도겸이 배로 걸어갔다. 하윤은 그 등을 봤다. 왼 어깨가 여전히 오른쪽보다 한 치 낮았는데, 낮은 쪽이 비어 있다는 것을 도겸도 알고 하윤도 알았다.

*

그날 밤 이장 집 마당에 마흔 집의 사내들이 모였다. 은 백 냥은 백하진이 세 해를 모아도 안 되는 돈이었다. 이장이 지팡이 끝으로 땅바닥에 셈을 그었다. 샛강 아래쪽 논이 백이십 마지기, 그 논이 세 해째 물에 잠겨 벼를 못 냈다. 다리 옆 둑이 세 해 전 장마에 무너진 뒤로, 해마다 봄이면 샛강 물이 논으로 넘쳤다.

“그 둑도 그 사람이 쌓았소. 다리를 다 놓고 한 해 더 있으면서 쌓았소.”

정만이 말했다. 하윤이 땅바닥의 셈을 들여다봤다.

“둑을 장마 전에 다시 쌓으면 논에 모를 낼 수 있습니까?”

“쌓으면 내지. 그런데 그 둑은 사람이 서른은 붙어야 두 달에 쌓소. 은 백 냥을 모으러 다녀야 할 판에 누가 둑을 쌓소?”

“논에서 벼가 나야 은이 생깁니다. 노가촌 윗마을이 그랬습니다.”

사내들이 서로 얼굴을 봤다. 누군가 칼도 없는 사람이 셈은 한다고 중얼거렸다. 이장이 지팡이로 땅을 탁탁 쳤다.

“내일 아침에 둑 자리로 나오겠다는 사람은 나오시오. 안 나오는 사람 탓은 안 하겠소.”

하윤은 그 밤 둑 자리에 혼자 나가 무너진 흙더미를 손바닥으로 짚어 봤다. 찬 데가 있었다. 물이 빠져나간 길이었다. 하윤은 그 찬 자리에 돌 하나를 얹어 표시해 두고 돌아왔다.

8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한 해에 금 넷 · 무영검의 제자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