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10자) · 방계린 · 정월 말
칼을 맡기다
무영검의 제자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의성역의 정월은 말똥 냄새와 캉 연기로 차 있었다. 역참 마구간에 역마 스물두 필이 서서 김을 뿜었고, 역졸들이 자는 방마다 흙 캉 아래 아궁이에 마른 말똥을 태워서, 연기가 처마 밑으로 새어 나와 마당에 낮게 깔렸다. 방계린은 그 연기 속에서 사흘째 문서를 읽고 있었다. 호광 안찰사사 첨사가 된 지 두 해, 마흔이 되던 해였다.
탁자 위에 형주부와 양양부에서 올라온 검시 문서가 열네 건 쌓여 있었다. 올겨울 들어 두 부에서 사람이 까닭 없이 사흘을 앓았다는 신고가 열네 번 들어왔다. 앓은 사람은 모두 통보전장에 빚이 있었고, 앓고 일어나 보니 이자가 붙어 있었고, 그중 아홉 집이 논밭이나 배를 넘겼다. 검시관은 열네 번 다 같은 말을 적었다. 몸에 상처 없음, 멍 없음, 독 없음.
대명률 투구조는 사람을 친 죄를 상처로 센다. 손발로 쳐서 멍이 들면 태 사십, 쇠붙이로 피를 내면 장 팔십, 보고 기한 안에 죽으면 살인으로 다룬다. 상처가 없으면 친 것이 아니다. 방계린은 문서를 덮고 이마를 짚었다. 흔적이 없는 죄는 율에 없고, 율에 없는 죄는 잡을 수 없다. 잡으려면 흔적이 있는 사람이 하나는 나와야 한다. 제 입으로 베었다고 말할 사람이.
역졸 하나가 문을 두드렸다.
“첨사 나리, 칼 찬 젊은이 하나하고 여자 하나가 노삼을 찾습니다. 무영문 사람이랍니다.”
방계린은 붓을 놓았다.
*
역참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하윤은 역마 한 필에게 엉덩이를 채였다. 먼 길에 지친 말이 낯선 사람 냄새에 뒷발을 든 것인데, 하윤은 그 발굽이 오는 것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옆에 선 윤선이 채일 자리였다. 하윤이 엉덩이를 문지르며 일어서자 역졸이 달려와 말고삐를 잡았고, 윤선은 방값을 묻다가 역졸이 부른 값에 눈을 치떴다.
“관원이 아니면 하룻밤 백 문이오.”
“말한테 채인 값은 빼 주시오.”
“그건 말이 한 일이지 역참이 한 일이 아니오.”
“그럼 말한테 받으러 가겠소. 어느 말이오?”
역졸이 말문이 막혀 윤선과 말을 번갈아 보다가 칠십 문으로 깎아 줬다. 하윤은 엉덩이를 문지르며, 저 말의 사흘 일은 무엇일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노삼은 마구간 끝에서 여물을 썰고 있었다. 예순이 넘었고, 왼 다리를 절었다. 작두를 누를 때마다 몸이 왼쪽으로 기울었는데, 기울면서도 여물 길이가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하윤이 장부의 한 줄을 보여 주자 노삼은 작두에서 손을 뗐다. 「말몰이 · 의성 · 가정 칠년 시월」. 금이 그어진 줄이었다.
“곽 선생 제자요?”
“예.”
“그 사람이 나를 벴소. 가정 칠년 시월, 이 마구간에서. 어깨를.”
노삼이 왼 어깨를 짚었다.
“그 사흘에 나는 역마 여섯 필을 양양까지 호송하기로 돼 있었소. 못 가면 역졸 자리에서 쫓겨나오. 그 사람이 내 대신 말을 몰고 양양에 다녀왔소. 그러고도 안 갔소. 그해 겨울 내내 이 마구간에서 말똥을 쳤소. 나를 벤 사람이 나 대신 겨울을 났소.”
윤선이 한 걸음 나섰다.
“왜 벴다고 합디까?”
노삼이 윤선을 봤다. 한참 봤다. 여물 써는 작두 날에 겨울 햇빛이 한 줄 누워 있었다.
“당신이 윤 서방 딸이오?”
말 한 필이 콧김을 뿜으며 발굽으로 바닥을 긁었다. 여물 더미에서 마른 풀 냄새가 올라오고, 캉 아궁이 쪽에서 매운 연기가 한 줄기 들어와 눈을 찔렀다. 스물두 해 동안 윤선이 수없이 그려 본 얼굴은 검은 두건 속에 있었는데, 지금 앞에 앉은 얼굴은 주름투성이에 이가 빠지고 눈곱이 끼어 있었다.
윤선의 손이 허리춤으로 갔다. 약칼이 거기 있었다. 칼을 뽑아 들고 노삼 앞으로 걸어갔다. 노삼은 도망치지 않았다. 작두 옆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들어갔소. 그 방에.”
윤선의 칼끝이 노삼의 목에 닿았다. 약을 써는 칼이라 날이 짧고 두꺼웠다. 하윤은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서 있었다. 칼에 손이 가지 않았다. 윤선의 칼이 노삼의 목을 누르면 무영이 아니니 피가 날 것이다.
“스무 냥이었소. 통보전장 사람이 셋한테 스무 냥씩 줬소. 대문 밖에 옥가락지 낀 사람이 서 있었고, 그 사람이 끝내라고 했소.”
마구간 입구에서 누가 소리쳤다.
“그 칼을 내리시오!”
방계린이 역졸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관복 위에 솜옷을 덧입었고,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다.
“호광 안찰사사 첨사 방계린이오. 그 사람은 내 증인이오.”
윤선이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증인이면 우리 아버지가 살아나오?”
“아니오. 그러나 옥가락지 낀 사람을 잡을 수 있소. 그 사람이 지금도 형주와 양양에서 사람을 앓게 하고 논밭을 빼앗고 있소. 이 늙은이가 죽으면 그 입도 같이 죽소.”
윤선의 칼끝이 떨렸다. 떨리는 칼끝에 노삼의 목이 조금 베였고, 가는 핏줄기가 목덜미를 타고 깃으로 스며들었다. 노삼은 눈을 감지 않았다.
한참 뒤에 윤선이 물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우리 아버지가 마지막에 뭐라고 했소?”
노삼이 입술을 떨었다. 한 번 말하려다 못 하고, 두 번째에 말했다.
“딸 이름을 불렀소. 선아, 하고.”
윤선의 손에서 칼이 떨어졌다. 여물 더미 위에 떨어져 소리도 나지 않았다. 윤선은 서 있었다. 한참 서 있다가 돌아서서 마구간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하윤은 따라가지 않았다.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윤선의 등이 말하고 있었다.
노삼이 무릎을 꿇은 채로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조금 비쳤다.
“곽 선생이 그해 겨울 내 대신 말똥을 치면서 한 번도 그 얘기를 안 했소. 윤 서방 얘기를.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죽이러 온 줄 알았소. 사흘 앓고 나니 그 사람이 내 일을 하고 있었소.”
노삼은 목을 누른 채 마구간 기둥에 등을 기댔다. 그해 겨울 곽문도는 새벽마다 제일 먼저 일어나 얼어붙은 말똥을 곡괭이로 깨서 날랐고, 역졸 삯으로 받은 엽전은 한 푼도 안 쓰고 노삼의 아내에게 건넸다. 노삼의 아들은 그 겨울 곽문도 무릎에 앉아 말 이름을 배웠다. 지금 그 아들이 이 역참의 역승이다.
“그 겨울이 끝나고 곽 선생이 떠나면서 나한테 한 마디 했소. 나머지 하나는 못 찾겠다고. 찾으면 또 벨 것 같다고.”
*
그날 밤 방계린은 하윤을 역참 뒷방으로 불렀다. 캉이 뜨거워 방바닥에 앉으면 엉덩이가 익을 것 같았고, 방계린은 방석을 두 장 겹쳐 깔고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 검시 문서 열네 건이 펼쳐져 있었다.
“자네 스승은 스물두 해 전에 은 스무 냥을 받고 사람을 벴소. 노삼이 그렇게 말했소. 청부요.”
“압니다.”
“자네는 몇을 벴소?”
“스물넷입니다.”
방계린이 붓을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나는 흑사채를 잡고 싶소. 그런데 율에 걸 상처가 없소. 무영으로 베면 죄가 안 되오. 누가 제 입으로, 나는 이런 칼로 스물넷을 벴다, 흔적은 없으나 사람은 사흘 앓았다, 하고 공초해야 그 칼이 율에 들어오오. 칼이 율에 들어와야 흑사채 추심꾼들을 잡을 수 있고, 추심꾼을 잡아야 마종곤에게 닿소.”
“공초하면 저는 죄인입니다.”
“그렇소. 스물넷을 친 죄인이오. 곤장을 맞을 거요. 자네 문파는 흔적 없는 칼의 소굴로 적힐 거요.”
방계린이 하윤을 똑바로 봤다. 이 사람은 사람을 설득할 때 눈을 피하지 않는다. 하윤도 피하지 않았다.
“흔적 없는 죄를 잡으려면 흔적 있는 사람이 하나는 나와야 하오. 그게 자네요.”
“하겠습니다.”
방계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렇게 빨리 대답할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추심꾼들을 잡으면 어떻게 됩니까?”
“율에 들어오면 장 백에 유배요.”
“그 사람들은 마비산을 먹습니다. 옥에서 약이 끊기면 서른 자리가 한꺼번에 옵니다. 둘은 벌써 못 걷습니다.”
“그건 그 사람들이 고른 약이오.”
“고른 게 아니라 산 겁니다. 제 사형들입니다.”
방계린이 붓대로 탁자를 두 번 두드렸다. 하윤은 그 소리를 들으며 윤선의 돌을 생각했다. 맑은 소리였다. 이 사람은 속이 갈라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옥에서 끊는 약은 의원을 붙이겠소. 약속은 그것까지요.”
“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스승님 장부에 못 갚은 줄이 남았습니다. 그걸 보고 형주로 가겠습니다.”
“자네가 형주로 올지 내가 어떻게 믿소?”
하윤은 허리의 칼을 풀었다. 헝겊으로 감은 칼자루째 두 손으로 들어 탁자 위 검시 문서 옆에 놓았다.
“이걸 맡기겠습니다. 제 스승이 만든 무영검입니다. 형주 안찰사 옥에 제가 가면 돌려주십시오.”
방계린이 칼을 내려다봤다. 손을 대지 않았다.
“칼 없이 다닐 거요? 흑사채 철수가 자네를 찾는다는 소문이 있소.”
“들고 있으면 손이 갑니다. 손이 가면 벱니다.”
방계린은 한참 칼을 보다가 웃음 같기도 하고 한숨 같기도 한 소리를 냈다.
“십오 년 관직에 칼을 맡기는 무사는 처음 보오. 대개는 칼을 들고 도망치지.”
방계린이 칼을 들어 제 등 뒤 궤에 넣었다. 자물쇠를 채우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하윤은 그 궤를 봤다. 일곱 해 동안 한 번도 몸에서 떼어 본 적 없는 칼이었다. 칼이 없는 허리가 이상하게 가벼워서 몸이 오른쪽으로 조금 기우는 것 같았다. 하윤은 그 기울기에 칼을 남에게 맡기는 수, 탁검(託劍)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 베는 수의 다섯째였다.
*
윤선은 역참 담 밖, 얼어붙은 개울가에 앉아 있었다. 하윤이 옆에 가서 앉았다. 둘 다 한참 말이 없었다. 개울 얼음 밑으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났다.
“죽이려고 했소.”
“예.”
“댁은 안 말렸소.”
“말리면 제가 벤 거랑 같습니다. 선택은 윤선 씨 겁니다.”
윤선이 얼음 위에 돌 하나를 던졌다. 돌이 튀어 저쪽 기슭까지 미끄러졌다.
“그 사람이 그해 겨울에 셋을 찾아다녔소. 하나를 찾아서 베고, 벤 사람 대신 겨울을 났소. 복수한 거요, 갚은 거요?”
하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물음은 스승만 대답할 수 있었다.
역참 쪽에서 방계린이 등롱을 들고 걸어 나왔다. 개울가까지 와서 두 사람 뒤에 섰다.
“하나 알려 주겠소. 통보전장이 봄에 백하진 차용증을 통째로 산다는 소문이 있소. 마흔 집이오. 백하진 이장이 올겨울 양양부에 진정을 넣었다가 되돌려 받았소. 율에 걸 상처가 없어서.”
“백하진이요?”
하윤이 장부를 꺼내 넘겼다. 「넷 · 백하진 · 가정 구년 정월」. 금이 넷 나란히 그어져 있었다. 스승이 한 해에 금 넷을 그은 자리는 거기 한 곳뿐이었다.
윤선이 얼음 위로 돌을 하나 더 던지고 일어섰다. 치맛자락에 붙은 서리를 털었다.
“가 봅시다. 칼 없는 사람 혼자 보내면 내가 약값을 못 받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