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20자) · 하윤 · 섣달 ~ 정월

금 간 돌

무영검의 제자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무너진 뒷담은 길이가 열두 자쯤이었다. 남은 절반은 사람 가슴 높이까지 서 있었고, 무너진 절반의 돌들은 스물두 해 동안 흙과 이끼에 반쯤 묻혀 담 밑에 흩어져 있었다. 하윤은 쌓기 전에 하루를 꼬박 그 자리만 봤다. 아침에는 서리가 녹는 순서를 봤고, 한낮에는 햇볕이 어느 돌에 먼저 드는지 봤고, 해 질 녘에는 쪼그려 앉아 담 밑 땅을 손바닥으로 눌러 봤다. 담 밑 한가운데가 다른 데보다 한 치쯤 꺼져 있었고, 누르면 손바닥 밑에서 흙이 젖은 떡처럼 물러났다.

윤선이 부엌 문턱에서 그걸 보다가 물었다.

“안 쌓고 뭐 하오?”

“보고 있습니다. 여기가 꺼졌습니다.”

윤선이 와서 들여다봤다. 꺼진 자리 옆 담 밑으로 빗물이 빠지는 도랑이 막혀 있었다.

“꺼진 자리 위에 쌓으면 또 무너집니다. 먼저 도랑을 뚫고 흙을 채워 다져야 합니다.”

“그걸 어디서 배웠소?”

“안 배웠습니다. 칼이 그렇습니다. 무른 데를 베면 칼이 박혀 안 빠집니다. 그래서 먼저 봅니다.”

윤선이 팔짱을 꼈다.

“댁은 뭘 배워도 칼로 배우오?”

하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었다.

*

도랑을 뚫고 흙을 다지는 데 이틀이 걸렸다. 사흘째부터 돌을 골랐다. 하윤은 크고 네모난 돌부터 집어 들었는데, 윤선이 그걸 도로 내려놓게 했다.

“밑돌은 넓고 납작한 걸로. 윗돌은 작고 모난 걸로. 모나야 안 구르오.”

윤선이 돌 하나를 세워 들고 다른 돌로 가볍게 두드렸다. 탁하고 둔한 소리가 났다.

“들리오? 금이 갔소. 겉으론 안 보여도 속에서 갈라진 돌은 이렇게 둔하게 우오.”

다른 돌을 두드렸다. 쨍하고 맑은 소리가 담 너머까지 울렸다.

“성한 건 맑게 우오. 맑은 것만 쌓으시오.”

하윤은 그날 저녁 제 왼 어깨를 손가락 마디로 두드려 봤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윤선이 그걸 보고 약칼을 멈췄다.

“뭐 하오?”

“금 간 데가 있나 봤습니다.”

“사람은 안 우오.”

“그럼 사람은 어떻게 압니까?”

윤선은 한참 하윤을 보다가 다시 칼을 눌렀다.

“사람은 물어봐야 아오.”

닷새째 아침에 건너편 황가약방의 늙은 주인이 아들을 데리고 건너왔다. 창고를 같이 쓰던 일곱 집 가운데 아직 분호에 손도장을 안 찍은 나머지 한 집이었다. 황 노인은 쌓다 만 담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아들에게 턱짓을 했고, 아들이 말없이 소매를 걷고 돌을 날랐다.

“윤 서방이 쌓다 만 담이오. 스물두 해 동안 그 앞을 지나다녔소. 지나다니면서 한 번도 안 쌓았소.”

황 노인은 대추나무 지팡이를 짚은 채 돌을 두드리는 일을 맡았다. 두드리다가 둔한 소리가 나면 역정을 내며 돌을 던졌다. 그렇게 손이 넷이 됐다.

*

이레째 오후, 담이 사람 어깨 높이까지 올라갔을 때 골목 어귀가 시끄러워졌다. 분호 사람 넷이 앞서 오고, 그 뒤에서 덩치 큰 사내 하나가 천천히 걸어왔다. 마흔 중반이고, 오른손에만 쇠를 덧댄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허리에는 환도를 찼다. 사람들이 길을 비키는 모양을 보니 이 골목에서 그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구양탁이오. 흑사채 철수라고들 하지.”

사내가 쌓다 만 담을 쇠장갑 낀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쨍하고 맑은 소리가 났다. 사내가 웃었다.

“잘 쌓는군. 창고 쪽 일곱 집 가운데 다섯이 벌써 도장을 찍었소. 약포하고 황가만 남았는데, 오늘 두 집 도장을 받아 가겠소.”

“안 찍소.”

윤선이 부엌 문턱에서 말했다. 구양탁은 그쪽을 보지도 않고 담만 계속 두드렸다.

“우리 추심꾼들은 흔적 없는 일을 하오. 사흘 앓고 나면 멀쩡하지. 나는 그 반대요. 나는 흔적이 남는 일을 하오. 추심꾼들이 못 하는 일.”

구양탁이 환도를 뽑았다. 칼날이 넓고 등이 두꺼웠다. 첫 칼이 쌓아 놓은 담 윗돌을 내리쳤고, 모난 돌 두 개가 튀어 마당에 떨어졌다. 황 노인의 아들이 그 돌에 발등을 찧고 비명을 질렀다.

하윤은 칼을 칼집째 쥐고 구양탁 앞으로 나섰다. 무영으로 베면 이 사내는 사흘 앓고 나서 다시 올 것이고, 그 아픔은 하윤의 몸으로 옮겨 와 열일곱째 자리가 된다. 그보다 먼저, 이 사내는 베여도 멈추지 않을 사람처럼 보였다. 겨울 해가 담 위로 기울어 구양탁의 그림자를 마당 가득 늘여 놓았고, 그 그림자 끝이 하윤의 발끝에 닿아 있었다.

두 번째 칼이 하윤의 머리로 왔다. 하윤은 칼집째 들어 올려 받았다. 쇠와 쇠가 부딪혀 쨍하고 맑게 울었다. 세 번째 칼은 옆구리로 왔다. 이번에는 칼집 끝으로 환도의 날 가운데를 받았다. 역시 맑았다. 네 번째 칼이 대각선으로 내려올 때 하윤은 칼을 막지 않고 환도의 등을 칼집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코등이 바로 위, 날이 자루로 넘어가는 자리였다. 탁하고 둔한 소리가 났다.

하윤은 그 소리를 들었다. 윤선이 금 간 돌을 두드렸을 때와 같은 소리였다.

구양탁이 칼을 거두어 다시 치켜드는 순간, 하윤은 칼집을 두 손으로 쥐고 코등이 위 그 자리를 온몸으로 내리쳤다. 환도가 둔한 소리를 한 번 더 내고 코등이 위에서 부러졌다. 칼날이 반 바퀴 돌아 마당 흙에 꽂혔다. 구양탁 손에는 한 뼘짜리 자루만 남았다.

골목이 조용해졌다. 황 노인이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구양탁은 부러진 자루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웃었다.

“좋은 귀군. 곽 선생 제자답소.”

구양탁이 자루를 마당에 던졌다. 쇠장갑 낀 손바닥을 하윤 쪽으로 펴 보였는데, 손바닥에 굳은살이 칼자루 모양으로 박혀 있었다.

“칼은 또 사면 되오. 여덟째, 한 가지만 알려 주지. 자네 일곱째 사형이 요새 말을 잘 안 듣는다더군. 동지에 다섯 냥을 제 은에서 뗐다지. 주인께서 그런 건 오래 두고 보시는 분이 아니오.”

구양탁은 부러진 칼날을 뽑아 들고 골목을 걸어 나갔다. 분호 사람 넷이 그 뒤를 따랐다.

황 노인이 지팡이를 주워 들고 담 밑에 쪼그려 앉았다. 발등을 찧은 아들이 절뚝이며 다가오자 노인은 아들의 발등을 지팡이 끝으로 한 번 두드려 보았다.

“맑게 우는구나. 뼈는 안 갔다.”

“아버지, 사람은 안 운다면서요.”

“내 아들은 운다. 어릴 때부터 잘 울었다.”

아들이 뭐라고 하려다 입을 다물었고, 윤선이 부엌 문턱에서 고개를 돌려 웃음을 감췄다. 황 노인은 지팡이에 턱을 괴며 하윤에게 말했다.

“저놈들은 또 오오. 칼을 사서 또 오오. 나는 도장 안 찍겠소. 여기까지 쌓는 걸 봤는데 내가 찍으면 이 담이 우습게 되오.”

그날 밤 하윤은 마당에서 담 밑에 버려 둔 금 간 돌들을 하나씩 칼집으로 두드려 봤다. 둔한 소리가 나는 자리를 찾아 한 번 더 치면, 돌은 그 자리에서 둘로 갈라졌다. 쇠도 돌도 금 간 데가 제일 약하고, 약한 데는 소리로 드러난다. 하윤은 그 동작에 돌을 두드려 듣는 수, 고석(叩石)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 베는 수의 넷째였고, 윤선에게서 배웠다.

*

윤선은 부엌 창으로 마당을 내다봤다. 달빛 아래서 사내가 금 간 돌을 두드리고 있었다. 한 번 두드리고, 귀를 기울이고, 다시 두드렸다. 스물두 해 전 그 마당에 앉아 있던 사내도 저 나이였을까. 아니, 그 사람은 마흔이 넘었었다. 머리에 벌써 흰 것이 섞여 있었고, 사흘 동안 한 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윤선은 그 사람을 미워했다. 사흘째 밤까지 미워했고, 사흘째 밤에 물사발을 들고 나갔고, 그다음에는 미워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잊어버린 것이 아버지에게 미안해서 스물두 해 동안 그 담을 안 쌓았다. 쌓으면 그 정월이 끝나는 것 같았다.

마당의 사내가 돌 하나를 쪼개고 나서 제 왼 어깨를 주먹으로 두드렸다. 소리가 안 나자 고개를 갸웃했다. 윤선은 창을 닫다가 저도 모르게 제 가슴께를 두드려 봤다. 역시 아무 소리도 안 났다.

*

담은 아흐레째 되는 날 끝났다. 마지막 사흘에는 손이 더 늘었다. 약재 창고에서 짐을 부리던 짐꾼 둘이 쉬는 참에 건너와 돌을 날랐고, 골목 끝 국수집 아낙이 새참으로 국수 한 솥을 이고 왔다. 짐꾼 하나가 국수를 먹다 말고 담을 올려다보더니, 이 담 쌓다 만 거 어릴 때부터 봤다고 했다. 황 노인의 아들이 마지막 머릿돌을 얹었고, 황 노인이 그 돌을 두드려 쨍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윤선은 부엌에서 나와 담을 끝에서 끝까지 걸으며 손바닥으로 쓸어 봤다. 스물두 해 동안 반만 서 있던 담이었다. 아버지가 쌓은 아랫단과 하윤이 쌓은 윗단 사이에 돌 색이 달라 금이 하나 그어진 것처럼 보였는데, 손으로 쓸면 턱 하나 없이 이어져 있었다.

“잘 쌓았소.”

하윤은 그 말을 처음 들었다. 일곱 해 동안 잘 벴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다. 잘 쌓았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하윤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손바닥의 돌가루를 바지에 문질렀고, 문지른 자리가 하얗게 됐다.

그날 저녁 윤선은 하윤이 펴 둔 장부를 넘겨 보다가 한 줄에서 손을 멈췄다. 「말몰이 · 의성 · 가정 칠년 시월」. 금이 그어져 있었다.

“가정 칠년이면 그해요. 정월에 우리 집에 왔고, 시월에 의성에서 말몰이를 벴소.”

“예.”

“그해 곽문도가 벤 사람이 또 있소?”

하윤은 장부를 넘겼다. 가정 칠년에 적힌 줄은 넷이었다. 윤가 사내, 마, 말몰이, 그리고 삼월의 「검은 두건 · 형주」. 둘 다 금이 그어져 있었다.

“셋이었소. 담을 넘은 건 셋이었는데 여기엔 둘뿐이오.”

“하나는 스승님이 마당에서 쓰러뜨렸다고 하셨지요.”

“쓰러졌다가 일어나서 도망쳤소. 그 사람은 여기 없소.”

하윤은 장부를 다시 넘겨 봤다. 가정 칠년 뒤로도, 팔년에도 구년에도 두건이나 형주나 상담이 붙은 줄은 더 없었다. 셋째 사람은 장부 밖에 있었다.

윤선이 장부를 덮었다. 덮은 손이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도록 누르고 있었다.

“그 사람은 그해 셋을 찾아다녔소. 우리 아버지를 죽인 셋.”

윤선은 이튿날 아침 약포 문에 자물쇠를 걸었다. 서랍 여든넷에 종이를 한 장씩 덧붙여 봉하고, 열쇠를 황 노인에게 맡겼다. 하윤이 어디 가느냐고 묻자 윤선은 보퉁이를 메며 말했다.

“의성이오. 말몰이를 보러 가오. 댁이 가는 길이랑 같을 거요.”

“약포는요?”

“스물두 해 했소. 한 철 쉬어도 되오.”

하윤은 떠나기 전날 밤 제 몸의 아픈 자리를 셌다. 열여섯 그대로였다. 담은 윤백수의 사흘 일이었고, 윤백수를 벤 사람은 스승이다. 하윤의 몸에서는 아무것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담 끝에 손바닥을 얹으면 이상하게 어깨가 가벼웠다. 그 가벼움이 어디서 오는지 하윤은 셈하지 못했고, 셈하지 못한 채로 잤다. 섣달 들어 처음으로 새벽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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