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31자) · 윤선 · 섣달

마당에 사흘

무영검의 제자 · 한도윤

만 19세 이상 이용가

상담 약재 시장의 섣달은 감초 냄새로 달다. 사천과 운남에서 배로 올라온 약재가 강가 창고마다 산처럼 쌓이고, 창고 문이 열릴 때마다 말린 뿌리와 껍질의 쓴 내, 단내, 흙내가 한꺼번에 골목으로 쏟아진다. 윤선은 그 냄새 속에서 서른네 해를 살았다. 윤가약포는 시장 동쪽 끝 골목 막다른 자리에 있었고, 가게 벽 한 면을 서랍 여든넷이 차지했다. 서랍마다 약 이름을 붙인 종이가 있었는데 절반은 아버지 글씨였다.

윤선은 계산대 뒤에서 당귀를 썰고 있었다. 약칼은 눌러 썬다. 밀어 썰면 뿌리 속의 기름이 뭉개져 약효가 빠진다. 칼등에 손바닥을 얹고 몸무게를 싣듯 내리누르면 칼날이 도마에 닿는 소리가 일정하게 난다. 스물두 해 동안 그 소리로 하루를 셌다.

오늘은 그 소리가 자꾸 흐트러졌다. 아침나절에 흑사채 상담 분호에서 또 사람이 다녀갔다. 강가 창고를 팔라는 말은 올해로 여섯 번째였고, 이번에 온 사내는 앞선 다섯과 달리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창고를 같이 쓰던 일곱 집 가운데 다섯이 벌써 분호에 빚을 졌고, 빚진 집은 창고 자리를 분호에 넘기는 서약서에 손도장을 찍었다. 남은 것은 윤가약포와 건너편 황가 두 집뿐이다. 사내는 계산대에 손가락으로 원을 하나 그리고 나갔다. 그 원이 무슨 뜻인지 윤선은 물어보지 않았다.

문발이 걷히고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스물서넛이고 먼 길을 온 얼굴이었다. 허리에 칼을 찼는데 칼자루를 헝겊으로 감아 두었다.

“약을 사러 왔습니다.”

“어디가 아프오?”

“어깨입니다. 왼쪽 뒤.”

윤선은 칼을 놓고 나가서 사내의 어깨를 눌러 봤다. 흉도 없고 부은 데도 없었다. 누르는 자리마다 사내가 숨을 삼켰다.

“언제부터요?”

“일곱 해 됐습니다.”

“일곱 해를 이러고 다녔소?”

사내는 대답 대신 서랍 벽을 올려다봤다. 한참 서랍을 세더니 여든넷이냐고 물었다. 윤선이 그렇다고 하자, 사내는 그걸 다 외우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고 물었다.

“석 달. 하루에 하나씩 외우면 석 달이오.”

“저는 자세 열둘을 배우는 데 여섯 달이 걸렸습니다.”

“댁 것이 어렵지. 약은 틀리면 사람이 앓고, 칼은 틀리면 사람이 죽소.”

윤선은 계산대로 돌아가 칼을 다시 쥐었다.

“약으로는 안 되는 어깨요. 아는데 왜 왔소?”

“아버님 일로 왔습니다.”

칼이 도마 위에서 멈췄다.

*

“스물두 해 전 정월에 이 약포 마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제 스승이 윤백수 어르신을 벴습니다. 스승은 자기가 죽였다고 했습니다.”

윤선은 약칼을 쥔 채 계산대를 돌아 나왔다. 사내 앞에 섰고, 칼끝을 사내의 목젖 아래에 댔다. 칼날이 살갗에 닿아 가는 붉은 줄이 생겼다. 사내는 물러서지 않았다. 헝겊으로 감은 칼자루에 손도 가지 않았다.

“이름.”

“하윤입니다. 성은 없습니다.”

“스승 이름.”

“곽문도입니다.”

윤선은 그 이름을 스물두 해 만에 들었다. 들었다고 해서 무엇이 바뀌지는 않았다. 칼을 쥔 손바닥에 땀이 뱄고, 칼자루의 옻칠이 미끄러웠다.

“틀렸소.”

“예?”

“곽문도는 우리 아버지를 안 죽였소.”

윤선은 칼을 내렸다. 내리고 나서 도마 옆 걸상에 앉았다. 사내의 목에 그어진 붉은 줄에서 피 한 방울이 맺혔다가 적삼 깃으로 스며들었다.

*

그해 정월 윤선은 열둘이었다.

통보전장에서 사람이 세 번 찾아왔다. 강가 약재 창고를 팔라고 했다. 아버지는 세 번 다 거절했다. 창고는 할아버지가 지은 것이고, 상담 약재상 일곱 집이 그 창고를 같이 썼다. 네 번째로 온 것은 칼 찬 사내였다. 마흔 조금 넘었고 말이 없었다. 마당에서 아버지를 만나 한 마디도 안 하고 칼을 뽑았고, 아버지의 오른 무릎을 스치듯 지나갔다. 바짓가랑이가 갈라졌을 뿐 피는 안 났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쓰러져 사흘을 앓았다.

칼 찬 사내는 가지 않았다. 마당 평상에 앉아 칼을 무릎 앞에 뉘어 놓고 사흘을 있었다. 어머니가 빗자루로 등을 때리며 나가라고 했을 때도 사내는 일어나지 않았다. 밥을 안 먹었고 물도 안 마셨다. 사흘째 밤에 윤선은 아버지 머리맡에 놓인 물사발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사내는 사발을 받아 반을 마시고 반을 남겨 돌려줬다.

나흘째 새벽에 검은 두건을 쓴 사내 셋이 담을 넘었다. 대문 밖에는 한 사람이 등롱을 들고 서 있었다. 등롱 불빛에 그 사람 왼손 엄지의 옥가락지가 푸르게 빛났다.

평상의 사내가 일어섰다. 셋과 마당에서 싸웠고, 한 사람을 쓰러뜨렸고, 대문 쪽으로 몸을 날려 등롱 든 사람의 오른 손목을 그었다. 그 사이에 둘이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방 안에서 한 번 소리를 질렀고, 그다음에는 소리가 없었다.

윤선은 그 방에 먼저 들어간 사람이 어머니였다는 것만 기억한다. 어머니가 들어가서 문을 닫았고, 윤선은 문 앞에 서 있었고, 마당에서는 평상의 사내가 몽둥이에 등을 맞아 쓰러졌다.

*

“스승님은 다리를 다쳤습니까?”

하윤이 물었다. 목소리가 마른 나무처럼 갈라져 있었다.

“등을 맞아 실려 나갔소. 누가 실어 갔는지는 모르오. 관아에서는 도둑이 들었다고 적었소. 셋은 끝내 안 잡혔소.”

“대문 밖에 선 사람은요?”

“옥가락지를 끼고 있었소. 얼굴은 등롱 뒤라 못 봤소.”

하윤이 품에서 두꺼운 책을 꺼냈다. 한 장을 펴서 윤선 앞에 내밀었다. 금이 안 그어진 세 줄이 있었다. 윤가 사내, 상담, 가정 칠년 정월. 그 아래 마, 형주, 가정 칠년 정월. 그 아래 한 글자, 선.

윤선은 셋째 줄을 한참 봤다. 제 이름이었다. 무엇을 벴기에 제 이름이 거기 있는지 윤선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이 죽기를 바랐소. 마당에 앉은 사람 말이오. 첫날도 둘째 날도.”

하윤은 말없이 들었다.

“사흘째 되니까 안 바랐소. 왜인지는 나도 모르오.”

윤선은 장부를 덮어 하윤에게 돌려줬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시오. 밤이오.”

*

뒷방에 누워 하윤은 잠들지 못했다. 등잔을 켜고 장부를 다시 폈다. 「마 · 형주 · 가정 칠년 정월」. 같은 달, 같은 마당이었다. 스승이 등롱 든 사람의 오른 손목을 그었다. 그 사람의 사흘 일이 무엇이었을지 하윤은 셈해 보다가 등잔 심지를 너무 세게 눌러 불을 꺼뜨렸다. 어둠 속에서 떠오른 것은 통보전장 안쪽 탁자였다. 찻잔을 드는 부은 손, 왼손 엄지의 옥가락지, 오른 손목에 감긴 흰 비단.

스승의 오른손은 스물두 해째 떨린다. 떨리는 그 자리가 누구의 자리인지 스승은 묻지 말라고 했다. 스승은 왜 윤백수를 자기가 죽였다고 했을까. 하윤은 한 번 목욕물을 데워 드리다가 본 스승의 등을 떠올렸다. 등뼈를 따라 손바닥 길이의 흉이 비스듬히 나 있었다. 무영으로는 남지 않는 흉, 몽둥이로만 남는 흉이었다.

마당 쪽에서 바람이 대나무 평상을 흔들었다. 하윤은 칼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

삼경에 담 너머로 발소리가 났다. 하윤은 뒷방에서 자지 않고 마당 평상에 나와 있었다. 섣달 밤바람이 강 쪽에서 불어와 평상의 대나무 살이 삐걱였고, 마당 한구석에 널어 둔 감초 채반에서 단내가 났다. 하윤은 칼을 칼집째 무릎 앞에 뉘어 놓았다. 칼자루는 오른쪽, 칼집 끝은 왼쪽이다. 평상에서 대문까지 일곱 걸음, 방문까지 다섯 걸음. 누가 방으로 가든 칼집 끝이 닿는 반경 안을 지나야 한다. 스물두 해 전 스승도 이 거리를 셌을 것이다.

담을 넘은 것은 둘이었다. 흑사채 상담 분호의 추심꾼이었다. 한 사람은 칼을 멨고 한 사람은 등롱을 들었다. 칼 멘 쪽이 평상의 하윤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비켜라. 약포 주인한테 볼일이 있다.”

“무슨 볼일입니까?”

“창고를 팔라는 볼일이다. 벌써 여섯 번째다.”

“일곱 번째는 안 오셔도 됩니다.”

칼 멘 쪽이 칼을 반쯤 뽑았다. 하윤은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가 하윤을 베려면 평상으로 다가와야 하고, 다가오면 칼집 끝이 닿는다. 하윤을 돌아 방으로 가려면 칼집 끝 반경을 가로질러야 한다. 사내는 뽑다 만 칼을 쥔 채 좌우를 살피더니 하윤을 크게 돌아 방문 쪽으로 걸음을 뗐다.

셋째 걸음에서 하윤의 칼집 끝이 평상 아래로 쓸려 나가 사내의 뒷발목을 걸었다. 앉은 채 허리만 틀어 칼집을 낫처럼 휘두른 것이다. 사내가 앞으로 고꾸라졌고, 고꾸라진 자리에 감초 채반이 있었다. 채반이 뒤집히며 감초 가루가 하얗게 날렸다.

사내가 얼굴을 들었다. 눈썹과 코끝에 감초 가루가 수북했다. 재채기를 두 번 하고 세 번째를 참으려다 코로 가루를 뿜었다. 등롱 든 쪽이 웃음을 참느라 등롱을 흔들었고, 불빛이 마당을 어지럽게 휘저었다. 감초 가루를 뒤집어쓴 사내가 동료를 노려보며 뭐가 우습냐고 소리쳤는데, 입에서 가루가 풀썩 날려 등롱 든 쪽이 끝내 주저앉아 웃었다.

하윤은 칼을 다시 무릎 앞에 뉘었다.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면 칼을 뽑게 되고, 뽑으면 손목을 반 치 풀게 된다. 앉아 있는 동안에는 칼이 무릎 앞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여기 앉아 있겠습니다. 내일 밤에도 앉아 있겠습니다.”

둘은 담을 넘어 돌아갔다. 담 너머에서 재채기가 한 번 더 들렸다.

방문이 열려 있었다. 윤선이 문설주에 기대 서 있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하윤은 몰랐다.

“스물두 해 전에 그 사람도 거기 그렇게 앉았소. 칼을 무릎 앞에 뉘어 놓고.”

하윤은 그 앉음새에 이름을 붙였다. 마당에 앉는 수, 좌정(坐庭). 안 베는 수의 셋째였고, 이번에는 하윤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스물두 해 전 스승이 이 마당에서 먼저 만들었다.

*

아침상에는 국이 하나 올라왔다. 푸른 잎이 풀어진 멀건 국이었다.

“아욱국이오. 처음 보오?”

“문파에서는 국을 안 먹습니다. 배가 부르면 몸이 느려진다고 했습니다.”

“일곱 해를 국 없이 살았소?”

“예.”

윤선이 사발을 하윤 쪽으로 밀었다. 하윤은 한 숟가락을 떠먹고 한참 가만히 있었다. 밤새 섣달 바람을 맞은 목구멍으로 더운 것이 천천히 내려갔고, 아욱 잎의 미끈한 결이 혀에 감겼다.

“어떻소?”

“따뜻합니다.”

“국이 따뜻하지 그럼.”

윤선이 웃음을 참다가 결국 코로 웃었다. 웃고 나서 스스로 놀란 얼굴로 숟가락을 들었다.

하윤이 물었다.

“그 사흘에 아버님은 무엇을 못 하셨습니까?”

윤선이 숟가락을 멈췄다. 한참 사발만 보다가 뒷마당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담을 쌓고 계셨소. 뒷담이 그해 겨울 장마에 무너져서, 정월 초에 아버지가 혼자 돌을 날라 쌓기 시작했소. 반쯤 쌓았을 때 그 사람이 왔소.”

“그 담은요?”

“스물두 해째 반이오. 아무도 안 쌓았소. 나도 안 쌓았소.”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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