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02자)

이자

퇴직금으로 차린 카페 · 탁은담

11월 6일 토요일 아침⁠, 아파트 우편함에서는 젖은 전단지 냄새가 났다⁠. 하윤옥은 전단지 사이에서 은행 봉투를 골라냈다⁠. 받는 사람은 마도석이었다⁠. 윤옥은 남편 앞으로 온 우편을 뜯지 않는 사람이었다⁠. 교무행정사로 열다섯 해를 일하면서⁠, 받는 사람이 아닌 사람이 봉투를 뜯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여러 번 보았다⁠.

봉투 겉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중요 — 대출 약정 관련 안내⁠」

윤옥은 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십이 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봉투를 뒤집어 보고⁠, 불빛에 비춰 보고⁠, 다시 뒤집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강재 방에서 알람이 울렸다⁠. 토요일 아침 아홉 시 수학학원 특강이었다⁠. 윤옥은 알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봉투를 뜯었다⁠.

「⁠신용대출 약정 변경 안내 — 대출 원금 50⁠,000⁠,000원 · 대출일 2027년 6월 18일 · 자동이체 계좌 변경에 따른 확인 요청⁠」

윤옥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 읽었다⁠. 교무실에서 공문을 읽는 방식대로 읽었다⁠. 날짜⁠, 금액⁠, 받는 사람⁠, 보내는 사람⁠, 처리 기한⁠. 대출일 6월 18일은 가게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된 주였다⁠. 윤옥은 휴대전화로 가계부 앱을 열었다⁠. 「⁠가게 기계 할부 — 매달 80만 원⁠」 칸 옆에 커피 잔 그림이 웃고 있었다⁠.

윤옥은 은행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토요일이라 자동 응답이 받았다⁠. 「⁠대출 상담은 평일 아홉 시부터⁠…⁠」 윤옥은 전화를 끊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손이 봉투 모서리를 접었다 폈다 했다⁠. 강재가 방에서 나와 엄마를 보았다⁠.

“⁠엄마⁠, 왜 그래⁠?⁠”

“⁠뭐가⁠?⁠”

“⁠봉투를 접었다 폈다 해⁠. 열네 번째야⁠.⁠”

“⁠너 학원 늦어⁠.⁠”

강재는 신발을 신고 나가며 현관문을 평소보다 조용히 닫았다⁠.

*

같은 시각 너울마을점에서는 보리 볶는 냄새가 났다⁠. 토요일 오전은 동네 아빠들의 시간이었다⁠. 아이를 2층 태권도장에 올려 보낸 아빠들이 운동복 차림으로 내려와 보리를 시켰다⁠. 한 아빠는 영포티 소리를 듣기 싫다며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 대신 새로 산 조거 팬츠를 입고 왔는데⁠, 단미가 “⁠조거 팬츠가 제일 영포티예요⁠.⁠” 하고 말하는 바람에 커피를 엎었다⁠. 단미는 행주를 건네며 사과했고⁠, 아빠는 바지를 내려다보며 이거 십이만 원 주고 샀다고 중얼거렸다⁠.

열 시 반⁠, 채홍이 유리문을 열었다⁠. 오늘은 니트 대신 민트색 점퍼였다⁠. 채홍은 계산대 앞에 서류 봉투를 놓았다⁠.

“⁠주단미 매니저님⁠. 근로계약서예요⁠. 정식으로요⁠.⁠”

단미는 봉투를 열지 않았다⁠. 도석이 에스프레소를 내리던 손을 멈췄다⁠. 채홍은 도석을 향해 웃었다⁠.

“⁠사장님 앞에서 드리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요⁠. 뒤에서 드리면 사장님이 냄새로 아실 거잖아요⁠.⁠”

“⁠서명 날짜는⁠?⁠”

“⁠11월 13일 직영점 시음회 날까지요⁠. 그날 매니저로 서 주셔야 해서요⁠. 시음회 메뉴 개발도 같이하시고요⁠.⁠”

채홍은 단미에게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유리문이 닫히자 단미가 봉투를 앞치마 주머니에 꽂았다⁠. 봉투가 반쯤 삐져나왔다⁠.

손님이 빠진 열두 시⁠, 단미가 컵을 닦다가 말했다⁠.

“⁠사장님⁠. 하나만 여쭤볼게요⁠. 사장님이 저 정규직으로 해 주시면⁠, 저 안 가요⁠.⁠”

도석은 컵을 받아 들었다⁠. 정규직이면 사대보험에 퇴직금 적립까지 한 달에 백만 원 가까이 더 들었다⁠. 가게 통장에는 다음 달 원두 대금과 대출 이자가 이미 줄을 대고 있었다⁠.

“⁠못 해⁠.⁠”

“⁠알아요⁠. 그냥 들어 보고 싶었어요⁠. 사장님이 못 한다고 하는 거⁠.⁠”

단미는 웃었다⁠. 웃는 얼굴로 같은 컵을 세 번 닦았다⁠.

*

오후 두 시⁠, 도석은 점주 모임 방에 긴 글을 올렸다⁠. 단미의 이름은 넣지 않았다⁠. 본사가 전국에서 잘되는 아파트 상가 가맹점 마흔두 곳을 골라 옆에 직영점을 내고⁠, 매출이 빠지면 사들일 계획이라는 것⁠. 일 년 안에 스무 곳이 목표라는 것⁠. 너울마을점이 일 순위이고⁠, 상무에게 직접 확인했다는 것⁠.

방이 터졌다⁠. 「⁠저희 동네도 직영점 공사 시작했어요⁠. 혹시 저희도⁠?⁠」⁠, 「⁠마흔두 곳 어디인지 아는 사람⁠?⁠」⁠, 「⁠이거 기사 내야 함⁠」 한 시간에 백 명이 들어왔다⁠. 저녁 다섯 시에 방 인원이 삼백을 넘었다⁠. 경제 신문 기자라는 사람이 도석에게 따로 연락해 왔다⁠. 본사 점주 앱에는 공지가 떴다⁠.

「⁠최근 일부 점주 모임에서 퍼지는 ‘⁠가맹점 전환 계획⁠’은 사실이 아닙니다⁠. 본사는 가맹점과 함께 성장합니다 :⁠)⁠」

예란이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너울마을⁠. 웃는 얼굴 붙였으면 진짜인 거야⁠. 아홉 해 전에도 붙였어⁠. 끊어⁠.⁠”

*

오후 네 시⁠, 너울마을점에 예란이 처음 왔다⁠. 정자점은 토요일 오후를 남편 친구에게 맡겼다고 했다⁠. 예란은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자마자 코를 킁킁거렸다⁠.

“⁠여기 냄새가 왜 이래⁠? 커피 집에서 참기름 냄새가 나⁠.⁠”

“⁠옆집이 반찬가게입니다⁠.⁠”

“⁠옆집 냄새가 들어오게 두는 가게가 어딨어⁠? 우리 가게는 옆이 닭갈비집이라 환풍기를 세 대 달았어⁠.⁠”

예란은 계산대 옆 칠판을 뒤집어 뒷면을 읽었다⁠. 손가락으로 한 줄씩 짚었다⁠. 야근 귤⁠, 학원 앞 보리⁠, 찬방 참깨⁠, 세탁소 생강⁠. 아홉 줄이었다⁠.

“⁠이게 경고 두 번 먹은 메뉴판이야⁠? 별것도 없네⁠.⁠”

“⁠한 잔 드릴까요⁠?⁠”

“⁠참깨⁠.⁠”

도석이 참깨를 내리는 동안 반찬가게 할머니가 시금치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할머니는 계산대 앞의 낯선 파마머리를 위아래로 훑었다⁠.

“⁠누구야⁠? 본사야⁠?⁠”

“⁠정자동 가게 사장님입니다⁠. 같이 싸우는 분이에요⁠.⁠”

“⁠아이고⁠, 싸우는 사람이면 내 편이네⁠. 우리 메모지 쿠폰이 경고를 먹었어⁠. 들었어⁠?⁠”

“⁠들었어요⁠. 할머니 글씨 본사 법무팀이 다 봤대요⁠.⁠”

“⁠다 봤으면 잘 읽었겠네⁠. 내가 꾹꾹 눌러 썼거든⁠.⁠”

예란은 할머니 앞에서 처음으로 소리 내 웃었다⁠. 도석이 참깨 잔을 내밀었다⁠. 예란은 냄새를 맡고⁠, 한 모금 마시고⁠, 할머니를 보았다⁠.

“⁠이거 할머니 깨예요⁠?⁠”

“⁠우리 영감 방앗간 깨야⁠. 영감은 갔고 깨만 남았어⁠.⁠”

예란은 잔을 내려놓고 할머니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손이 계산대 위에서 잠깐 겹쳤다⁠. 하나는 고무장갑 자국이 나 있었고⁠, 하나는 원두 기름에 반들거렸다⁠. 예란이 도석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울마을⁠. 이 메뉴판 지우지 마⁠. 경고 세 번 먹어도⁠. 아홉 해 동안 본사 메뉴만 판 나는 이런 거 하나도 없어⁠. 우리 가게 없어지면 아무도 안 울어⁠. 이 가게 없어지면 이 할머니가 울어⁠.⁠”

“⁠안 울어⁠. 나는 쿠키 싸러 다닐 거야⁠.⁠”

할머니가 시금치 바구니를 들고 나갔다⁠. 예란은 잔을 끝까지 비웠다⁠. 빈 잔을 내려놓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삼백 명 됐다며⁠. 삼백 명이면 본사가 이제 너 하나를 겨눠⁠. 판이 커지면 대표가 맞아⁠. 각오해⁠.⁠”

*

저녁 일곱 시⁠, 식탁에 김치찌개가 올라왔다⁠. 고등어도 있었다⁠. 토요일에 고등어가 올라온 적은 없었다⁠. 윤옥은 고등어 접시 옆에 은행 봉투를 놓았다⁠. 봉투 모서리가 너덜너덜했다⁠.

도석은 봉투를 보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찌개가 뜨겁다는 핑계를 대지 않았다⁠.

“⁠기계 할부라며⁠.⁠”

윤옥의 목소리는 낮았다⁠.

“⁠에스프레소 기계가 오천만 원이야⁠? 우리 차보다 비싸⁠? 그 기계는 혼자 커피 내리고 혼자 계산도 하고 혼자 이자도 내⁠?⁠”

“⁠인테리어가 모자랐어⁠. 본사가 정한 자재가 견적보다 비쌌어⁠. 퇴직금만으로는 개점을 못 했어⁠.⁠”

“⁠그럼 나한테 말했어야지⁠.⁠”

“⁠당신이 퇴직금만 쓰자고 했잖아⁠.⁠”

“⁠퇴직금만 쓰자고 한 사람한테 퇴직금 말고 더 쓴다고 말을 하는 거야⁠. 그게 말이라는 거야⁠. 말을 안 하는 건 말이 아니고⁠.⁠”

윤옥이 찌개를 떠서 도석의 그릇에 덜었다⁠. 국자가 그릇 가장자리를 쳤다⁠.

“⁠육 월 십팔 일⁠. 그날 당신 나한테 뭐라 했는지 알아⁠? 인테리어 업체가 사람 좋다고⁠, 커피 한 잔 사 줬다고⁠. 그날 오천을 빌렸어⁠.⁠”

“⁠미안해⁠.⁠”

“⁠미안한 거 말고⁠. 이자 한 달에 얼마야⁠?⁠”

“⁠삼십이만 원 조금 넘어⁠.⁠”

“⁠그건 어디서 냈어⁠?⁠”

“⁠가게 통장에서⁠.⁠”

“⁠가게 통장은 적자라며⁠.⁠”

도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윤옥이 젓가락으로 고등어 살을 발랐다⁠. 가시를 하나씩 빼서 접시 가장자리에 줄 세웠다⁠.

“⁠당신 연구소 다닐 때 나한테 그랬어⁠. 향료는 한 방울만 틀려도 전체가 망한다고⁠. 그래서 계량을 세 번 한다고⁠. 그런 사람이 오천을 혼자 빌려⁠.⁠”

강재의 방문이 열렸다⁠. 강재는 학원에서 돌아와 방에 있었다⁠. 문간에 서서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보았다⁠.

“⁠나 학원 그만둬도 돼⁠. 한 달에 육십이잖아⁠. 인강 들으면 돼⁠.⁠”

“⁠들어가⁠.⁠”

윤옥과 도석이 동시에 말했다⁠. 강재는 들어가지 않았다⁠.

“⁠나 진짜 괜찮아⁠. 학원 수학 선생님 나보다 판교 집값 얘기를 더 많이 해⁠.⁠”

윤옥이 웃음을 터뜨리려다 입을 막았다⁠. 막은 손 위로 눈이 빨개졌다⁠. 도석은 강재를 보았다⁠. 강재는 열일곱이었고⁠, 아빠가 숨긴 것을 엄마보다 먼저 알고 있던 얼굴이었다⁠.

“⁠강재야⁠, 학원은 다녀⁠. 그건 아빠가 해⁠.⁠”

“⁠아빠가 하는 거 지금 다 무너지는 중이잖아⁠.⁠”

강재는 방으로 들어갔다⁠. 문 닫는 소리가 작았다⁠. 윤옥은 고등어 가시를 다 발라 도석 앞으로 접시를 밀었다⁠.

“⁠먹어⁠. 가시 다 뺐어⁠.⁠”

*

밤 열 시⁠, 마감한 너울마을점 유리문을 누가 두드렸다⁠. 윤옥이었다⁠. 회색 카디건 위에 처음 보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생활용품점에서 산 연두색 앞치마였다⁠. 가슴에 「⁠오늘도 화이팅⁠」이라고 박혀 있었다⁠.

“⁠그게 뭐야⁠?⁠”

“⁠앞치마⁠. 민트색은 품절이었어⁠.⁠”

윤옥은 가게 안으로 들어와 계산대 뒤를 둘러보았다⁠. 포스기⁠, 단말기⁠, 칠판⁠, 하부장⁠. 교무실에서 새 학기 비품을 점검하는 눈이었다⁠.

“⁠내일부터 토요일 일요일 계산대는 내가 봐⁠. 단미 씨 주말 시급 아껴⁠. 그 돈으로 이자 내⁠.⁠”

“⁠당신 주말에 쉬어야지⁠.⁠”

“⁠쉬면 이자가 쉬어⁠? 나 교무실에서 학부모 전화 하루에 마흔 통 받아⁠. 커피 주문은 그거보다 쉬워⁠.⁠”

윤옥은 포스기 화면을 이리저리 눌러 보다가 「⁠기타⁠」 버튼에서 멈췄다⁠.

“⁠이게 그 경고 먹은 버튼이야⁠?⁠”

“⁠응⁠.⁠”

“⁠예쁘게도 생겼네⁠.⁠”

윤옥은 버튼을 누르지 않고 도석에게 몸을 돌렸다⁠. 말투가 다시 존댓말로 바뀌었다⁠.

“⁠조건 있어요⁠. 십일월 말까지 이 가게 매출이 개점 첫 달만큼 안 돌아오면⁠, 본사에 팔아요⁠. 일억 이천⁠. 대출 갚고⁠, 강재 학원비 남기고⁠, 남는 거로 당신 다시 취직 자리 알아봐요⁠.⁠”

“⁠윤옥아⁠.⁠”

“⁠약속해요⁠. 말로⁠. 각서는 안 받아요⁠. 당신 서명은 이제 못 믿으니까⁠.⁠”

도석은 오래 윤옥을 보았다⁠. 윤옥의 카디건에서 고등어 냄새가 났다⁠. 집에서 두 시간 동안 창문을 안 연 냄새였다⁠.

“⁠약속할게⁠.⁠”

윤옥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산대 위의 열쇠 꾸러미를 집었다⁠. 가게 열쇠 하나를 빼서 자기 열쇠고리에 끼웠다⁠. 아파트 열쇠와 학교 사물함 열쇠 사이에 민트색 고무 머리가 달린 열쇠가 하나 늘었다⁠.

“⁠단미 씨한테는 당신이 말해요⁠. 주말 빠진다고⁠. 나는 그 아가씨 얼굴 보고 못 해요⁠.⁠”

윤옥이 나갔다⁠. 계산대 위 근로계약서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단미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꺼내 놓고 간 봉투였다⁠. 봉투 모서리도 너덜너덜했다⁠. 도석은 두 봉투를 나란히 떠올렸다⁠. 하나는 윤옥이 열네 번 접었다 편 봉투였고⁠, 하나는 단미가 하루 종일 앞치마에 꽂고 다닌 봉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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