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570자)

마흔두 곳

퇴직금으로 차린 카페 · 탁은담

11월 2일 아침 여덟 시⁠, 윤옥의 메시지가 왔다⁠.

「⁠넥타이 매고 가⁠. 본사잖아⁠」

도석은 「⁠앞치마 매고 간다⁠」라고 답했다⁠. 일 분 뒤 답이 왔다⁠. 「⁠앞치마에 넥타이 매⁠」 도석은 웃다가 그만두었다⁠. 윤옥은 웃자고 한 말이 아니었다⁠. 고2 3반 학부모방에 누군가 「⁠강재 아빠 오늘 본사 쳐들어간대요⁠」라고 올렸고⁠, 윤옥은 학교 교무실에서 올라온 줄을 세 번 읽었다고 했다⁠.

*

오후 한 시 사십 분⁠, 판교 테크노밸리 달그락에프앤비 사옥 로비에서는 백차 향 디퓨저 냄새가 났다⁠. 어디서 맡아도 같은 냄새였다⁠. 호텔 로비⁠, 대형 병원 로비⁠, 본사 로비⁠. 돈 많은 곳은 냄새가 비슷했다⁠. 로비 한쪽에 본사 시범 매장이 있었고⁠, 매장 원두는 볶은 지 이틀 된 것이었다⁠. 가맹점에는 볶은 지 열흘 넘은 원두가 왔다⁠.

대표단은 여섯 명이었다⁠. 도석⁠, 예란⁠, 광교점 사장⁠, 수지점 사장⁠, 기흥점 부부⁠. 기흥점 남편은 진짜로 넥타이를 매고 왔다⁠. 넥타이가 결혼식 때 것이라 폭이 넓었다⁠. 예란이 넥타이를 보고 한마디 하려다 참는 것이 도석의 눈에 보였다⁠. 참는 예란은 처음이었다⁠.

보안 게이트에서 방문증을 받기까지 십오 분을 기다렸다⁠. 경비원은 여섯 사람의 신분증을 하나씩 받아 들여다보았다⁠.

“⁠어느 부서 방문이세요⁠?⁠”

“⁠사업전략실 엄혜지 상무님이요⁠.⁠”

“⁠용건은요⁠?⁠”

예란이 대답했다⁠.

“⁠우리 돈 받아 가는 사람 얼굴 보러 왔어요⁠.⁠”

경비원은 「⁠면담⁠」이라고 썼다⁠.

*

10층 대회의실의 긴 테이블 한쪽에 혜지가 앉아 있었다⁠. 양옆에 법무팀장과 가맹사업팀장이 있었다⁠. 테이블 가운데에 달그락 쿠키와 생수병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예란은 자리에 앉자마자 쿠키 두 개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법무팀장이 보았고⁠, 예란도 법무팀장이 보는 것을 보았다⁠.

“⁠구 년 치 로열티에서 빼 주세요⁠.⁠”

혜지가 웃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석은 요청서를 테이블에 놓았다⁠. 광교점 사장이 노트북을 회의실 화면에 연결했다⁠. 열두 달짜리 그래프가 떴다⁠. 대전 둔산점의 선이 석 달 동안 오르다가 넉 달째에 꺾여 내려갔다⁠.

“⁠둔산점입니다⁠. 본사 그래프는 석 달까지만 그리셨습니다⁠. 열두 달을 그리면 이렇습니다⁠.⁠”

혜지는 화면을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가맹사업팀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팀장이 서류철 하나를 건넸다⁠.

“⁠맞아요⁠. 둔산점 매출은 빠졌어요⁠. 그런데 같은 기간에 둔산 상권 전체 카페 매출이 열에 하나 빠졌어요⁠. 그 동네 대형 학원 두 곳이 세종으로 옮겼거든요⁠. 둔산점이 빠진 몫의 절반은 학원이 가져간 거예요⁠. 직영점이 없었으면 둔산점은 더 빠졌을 거고요⁠.⁠”

광교점 사장이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학원 이전은 그래프에 없었다⁠. 혜지는 서류철을 닫았다⁠.

“⁠요구 세 가지⁠, 하나씩 답드릴게요⁠. 영업지역 반경 오백 미터⁠. 못 합니다⁠. 판교와 분당에서 가맹점 오백 미터를 다 빼면 직영점 낼 자리가 남지 않아요⁠. 싱가포르 투자사는 다음 달 실사를 와요⁠. 직영 매장 매출이 전체의 삼십 퍼센트가 넘어야 투자가 들어와요⁠. 투자가 안 들어오면 내년 원두 공급 단가가 열에 하나 오릅니다⁠.⁠”

혜지는 대표단을 한 사람씩 보았다⁠.

“⁠여러분 가게 마진이 얼마예요⁠? 원두 단가가 열에 하나 오르면 여러분 중 몇 분이 버티세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기흥점 남편이 넥타이를 만졌다⁠.

“⁠매출 보전⁠. 못 합니다⁠. 상권 매출은 직영점 하나로 오르내리지 않아요⁠. 학원이 옮기고⁠, 아파트가 재건축하고⁠, 길 건너에 다른 브랜드가 들어와요⁠. 그걸 다 본사가 보전하면 본사가 먼저 문 닫아요⁠.⁠”

“⁠소통방은요⁠?⁠”

수지점 사장이 물었다⁠.

“⁠다시 열게요⁠. 본사 가맹사업팀 직원이 함께 있는 방으로요⁠.⁠”

예란이 쿠키 하나를 꺼내 포장을 뜯었다⁠.

“⁠그거 감시방이잖아⁠.⁠”

“⁠소통방이에요⁠. 본사가 듣는 소통방⁠.⁠”

예란은 쿠키를 반으로 쪼개 반쪽을 도석에게 주었다⁠. 도석은 쿠키를 받지 않고 혜지를 보았다⁠.

“⁠상무님 숫자는 다 맞습니다⁠. 그런데 너울마을 칠천 세대한테는 학원이 옮겨 가지 않았습니다⁠. 재건축도 안 했습니다⁠. 바뀐 건 길 건너 직영점 하나입니다⁠. 상무님 숫자에 너울마을은 어디 있습니까⁠?⁠”

“⁠너울마을은 아직 숫자가 없어요⁠. 직영점이 안 열렸으니까요⁠.⁠”

“⁠열리고 나면 늦습니다⁠.⁠”

“⁠열리기 전엔 증거가 없고요⁠.⁠”

혜지가 일어났다⁠. 면담은 사십 분이었다⁠. 법무팀장이 문을 열었다⁠. 도석이 나가려는데 혜지가 불렀다⁠.

“⁠마 사장님⁠, 인수 제안 날짜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어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예란이 쪼갠 쿠키 반쪽을 입에 넣었다⁠.

“⁠맛은 있네⁠. 원두는 개판인데 쿠키는 맛있어⁠. 본사가 이래⁠.⁠”

기흥점 남편이 넥타이를 풀어 주머니에 넣었다⁠.

본사 앞 광장의 편의점 테이블에 여섯 사람이 둘러앉았다⁠. 광장에는 점심 먹고 들어가는 본사 직원들이 사원증을 흔들며 지나갔다⁠. 아무도 앞치마 두른 여섯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 광교점 사장이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학원 이전⁠, 저도 몰랐어요⁠. 그래프 다시 그려야 돼요⁠. 둔산 말고 다른 데 사례가 있어야 돼요⁠. 아파트 상가 옆에 직영점 들어간 데요⁠.⁠”

“⁠있어⁠?⁠”

“⁠찾아봐야죠⁠. 우리 방에 지금 백십 명이에요⁠. 어제 서른여덟이었는데⁠, 면담 간다는 소문 나고 하룻밤에 늘었어요⁠.⁠”

수지점 사장이 컵라면 뚜껑을 덮으며 말했다⁠.

“⁠상무 말 틀린 데가 없더라⁠. 원두값 오르면 나 진짜 못 버텨⁠. 그 생각 하면 오백 미터고 뭐고 입이 안 떨어져⁠.⁠”

예란이 휴대전화를 들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여보⁠. 졌어⁠. 쿠키는 두 개 가져가⁠. 끊어⁠.⁠”

녹음을 마친 예란이 도석을 보았다⁠.

“⁠너울마을⁠. 상무가 마지막에 너한테만 따로 한마디 했지⁠? 인수 날짜⁠. 그거 우리 앞에서 일부러 한 거야⁠. 대표가 제 가게 팔 생각 있는 놈인지 우리한테 보여 주려고⁠.⁠”

“⁠안 팝니다⁠.⁠”

“⁠나한테 말하지 말고 네 마누라한테 말해⁠. 상무가 그것도 알걸⁠.⁠”

도석은 대답하지 않고 편의점 커피를 마셨다⁠. 기계에서 내린 커피였다⁠. 의외로 나쁘지 않아서 조금 억울했다⁠.

*

밤 열 시⁠, 마감한 너울마을점에 단미가 왔다⁠. 오늘은 쉬는 날이 아니었는데 오후에 반차를 내고 직영점 교육을 한 번 더 받고 온 길이었다⁠. 단미의 민트색 교육생 셔츠에서 새 기계의 금속 냄새와 채홍의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단미는 앞치마를 두르지 않고 계산대 앞 의자에 앉았다⁠. 도석이 야근 귤을 한 잔 내려 주었다⁠. 단미는 잔을 두 손으로 감싸기만 했다⁠.

“⁠사장님⁠, 오늘 본사 갔다 오셨죠⁠? 어땠어요⁠?⁠”

“⁠졌어⁠. 숫자로⁠.⁠”

“⁠그럴 줄 알았어요⁠.⁠”

단미는 잔을 내려다보았다⁠. 개점 첫 주에 단미는 이 의자에 앉아 언젠가 자기 가게를 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테이블 네 개짜리⁠, 엄마 식당 옆에⁠. 엄마가 쉬는 시간에 와서 앉아 있을 수 있는 가게⁠. 단미는 가게 이야기를 이후로 다시 꺼내지 않았다⁠. 단미가 말을 골랐다⁠. 단미가 말을 고르는 것은 처음 보았다⁠. 늘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었다⁠.

“⁠쉬는 시간에 점장이 노트북을 켜 놓고 담배 피우러 나갔어요⁠. 화면에 지도가 있었어요⁠. 전국 지도요⁠. 핀이 꽂혀 있었어요⁠. 제가 세어 봤어요⁠. 마흔두 개요⁠.⁠”

도석은 행주를 내려놓았다⁠.

“⁠지도 제목이 「⁠가맹점 전환 프로그램 1차⁠」였어요⁠. 핀마다 가게 이름이랑 짧은 글이 붙어 있었는데⁠, 맨 위 핀이 너울마을점이었어요⁠. 「⁠인수 1순위 · 기타 매출 비중 높음 · 협의회 대표⁠」 정자점도 있었어요⁠. 「⁠인수 2순위 · 계약 만료 임박⁠」⁠”

“⁠사진은⁠?⁠”

“⁠안 찍었어요⁠.⁠”

“⁠왜⁠?⁠”

단미가 처음으로 도석을 보았다⁠. 눈 밑이 빨갰다⁠.

“⁠찍었으면 저 잘려요⁠. 저 아직 아무 데도 안 붙었어요⁠. 여기 시급이고⁠, 거기 교육생이에요⁠. 사진 찍어서 사장님 드리면 저는 양쪽 다 없어요⁠.⁠”

“⁠단미야⁠. 그 사진이 있으면 점주 서른여덟 명이⁠…⁠…⁠.⁠”

“⁠사장님은 서른여덟 명 지키시잖아요⁠. 저는 누가 지켜요⁠? 학자금 이천사백 남았어요⁠. 엄마는 식당에서 열두 시간 일해요⁠. 사장님 가게⁠, 내년에 있어요⁠?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어요⁠?⁠”

도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거짓말은 윤옥에게 한 번 했고⁠, 두 번은 할 수 없었다⁠.

“⁠말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고마워하지 마세요⁠. 고마워하시면 제가 더 미안해져요⁠.⁠”

단미는 잔을 비우지 않고 일어났다⁠. 문을 나가다가 돌아보았다⁠.

“⁠그 지도 맨 아래에 숫자 하나 더 있었어요⁠. 「⁠목표 — 1년 내 20곳 인수⁠」⁠”

*

이튿날 아침 여덟 시⁠, 길 건너 공사장의 가림막이 절반쯤 걷혀 있었다⁠. 은행 건물이던 자리에 통유리가 끼워졌고⁠, 유리 안쪽에 원목 테이블이 들어와 있었다⁠. 새 원목에서 송진 냄새가 났다⁠. 크레인 한 대가 지붕 위로 민트색 글자를 하나씩 올리고 있었다⁠. 「⁠달⁠」이 올라가 있었고⁠, 「⁠그⁠」가 공중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혜지는 인도에서 안전모를 쓰고 크레인을 보고 있었다⁠. 도석은 스팀 피처를 들고 찻길을 건넜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혜지가 먼저 도석을 보았다⁠.

“⁠어제는 고생하셨어요⁠. 넥타이 매신 분 귀여우시던데요⁠.⁠”

“⁠마흔두 곳⁠.⁠”

혜지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셨다⁠. 놀란 얼굴은 아니었다⁠. 언제 나올지 알고 있던 말을 들은 얼굴이었다⁠.

“⁠단미 씨가 말했어요⁠?⁠”

“⁠누가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맞습니까⁠?⁠”

혜지는 안전모를 벗어 옆구리에 끼웠다⁠. 크레인 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

“⁠맞아요⁠. 가맹점 전환 프로그램⁠. 장사가 잘되는 아파트 상가 가맹점 마흔두 곳을 골랐어요⁠. 근처에 직영점을 내고⁠, 매출이 빠지면 인수 제안을 해요⁠. 일 년 안에 스무 곳을 사면 직영 매출이 삼십 퍼센트를 넘어요⁠. 싱가포르가 원하는 숫자예요⁠.⁠”

“⁠너울마을점이 일 순위입니까⁠?⁠”

“⁠네⁠. 일 순위예요⁠.⁠”

혜지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 거리낌이 없어서 도석은 숨이 막혔다⁠.

“⁠사장님 가게 포스에 「⁠기타⁠」가 열에 셋이에요⁠. 동네 사람들이 사장님 가게에서만 파는 걸 사 먹으러 와요⁠. 그런 가게는 전국에 너울마을점 하나예요⁠. 본사는 동네를 몰라요⁠. 사장님은 알아요⁠. 그래서 사장님 가게를 사야 해요⁠.⁠”

“⁠제 가게가 잘돼서 표적이 된 겁니까⁠?⁠”

“⁠잘 안되는 가게를 사서 뭐 해요⁠?⁠”

혜지는 크레인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인부들이 볼트를 조였다⁠.

“⁠사장님 원망하셔도 돼요⁠. 그런데 이거 하나는 알아 두세요⁠. 본사는 사장님 가게를 망하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사장님 가게를 갖고 싶은 거예요⁠. 사장님이 동네를 너무 잘 아셔서 그래요⁠. 그 가게는 본사가 해야 하는 가게예요⁠.⁠”

크레인이 「⁠락⁠」을 매달고 올라갔다⁠. 민트색 글자가 아침 해를 받아 반짝였다⁠. 도석의 손에서 스팀 피처가 미끄러질 뻔했다⁠. 도석은 피처를 고쳐 쥐었다⁠. 손바닥 땀이 은색 표면에 뿌옇게 번졌다⁠.

“⁠제 가게는 제가 하는 가게입니다⁠.⁠”

“⁠지금까지는요⁠.⁠”

혜지는 안전모를 다시 쓰고 공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대신 통유리 안에서 채홍이 나왔다⁠. 채홍은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 직영점 시범 기계로 내린 첫 커피라고 했다⁠.

“⁠사장님⁠, 한 잔 드세요⁠. 오늘 새 원두예요⁠. 볶은 지 이틀⁠.⁠”

도석은 냄새를 맡았다⁠. 좋은 원두였다⁠. 너울마을점에는 한 번도 오지 않은 원두였다⁠.

“⁠가맹점엔 열흘 된 걸 보내면서 여기엔 이틀 된 걸 씁니까⁠?⁠”

“⁠직영이니까요⁠. 영포티 사장님⁠, 이게 플래그십이에요⁠.⁠”

채홍은 잔을 도석 손에 쥐여 주고 들어갔다⁠. 도석은 잔을 들고 찻길에 서 있었다⁠. 지붕 위에서 세 글자가 다 모였다⁠. 「⁠달그락⁠」 길 건너 너울마을점 간판과 같은 글씨⁠, 같은 색이었다⁠. 크기만 세 배였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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