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56자)

서른여덟 명

퇴직금으로 차린 카페 · 탁은담

10월 29일 아침⁠, 등기 우편 봉투에서는 우체국 풀 냄새가 났다⁠. 집배원은 도석에게 서명을 받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봉투에는 달그락에프앤비 법무팀 주소가 찍혀 있었다⁠. 도석은 계산대 앞에서 봉투를 뜯었다⁠. 단미가 우유를 붓다가 손을 멈췄다⁠.

「⁠가맹계약 위반에 따른 2차 경고 — 1⁠. 원재료 외부 조달(⁠귤껍질·보리·참깨·생강⁠) 2⁠. 본사 미승인 판촉물 배포(⁠반찬가게 메모지 쿠폰⁠)⁠」

맨 아래에 붉은 글씨가 한 줄 있었다⁠. 「⁠3차 경고 시 가맹계약 해지 절차에 들어갑니다⁠」

“⁠사장님⁠, 할머니 쿠폰이 경고 먹었어요⁠.⁠”

“⁠먹었네⁠.⁠”

단미는 종이를 들고 반찬가게로 뛰어갔다⁠. 오 분 뒤 할머니가 고무장갑을 낀 채 단미를 앞세우고 들어왔다⁠. 고무장갑에서 간장 냄새가 났다⁠.

“⁠내 쿠폰이 경고를 먹었다고⁠? 나는 본사랑 계약한 적이 없는데⁠?⁠”

“⁠할머니가 아니라 제가 먹은 겁니다⁠.⁠”

“⁠그게 그거지⁠. 내 글씨가 들어갔잖아⁠.⁠”

할머니는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돋보기가 없어서 팔을 쭉 뻗었다⁠.

“⁠「⁠메모지 쿠폰⁠」 메모지라고 써 놨네⁠. 본사 사람들도 내 글씨 보고 웃었겠다⁠.⁠”

할머니는 종이를 계산대에 내려놓고 고무장갑을 벗었다⁠. 맨손으로 종이를 두 번 접어 도석의 앞치마 주머니에 꽂아 주었다⁠.

“⁠세 번 먹으면 쫓겨나는 거지⁠? 그럼 한 번 남았네⁠. 아껴 먹어⁠.⁠”

할머니가 나간 뒤 단미가 말했다⁠.

“⁠사장님⁠, 이제 뒷면 내려요⁠? 칠판 뒤집어 놓을까요⁠?⁠”

도석은 칠판을 보았다⁠. 뒷면에 아홉 줄이 있었다⁠. 줄마다 사람이 하나씩 있었다⁠. 개발자⁠, 학원 앞 엄마들⁠, 할머니⁠, 세탁소 사장⁠. 지우면 경고는 멈출 것이고⁠, 사람들은 길을 건널 것이었다⁠.

“⁠그대로 둬⁠.⁠”

“⁠세 번째 먹으면요⁠?⁠”

“⁠그때는 그때 생각할게⁠.⁠”

“⁠사장님 그 말 진짜 영포티 같아요⁠.⁠”

*

같은 날 오후 세 시⁠, 정자점에는 손님이 두 테이블뿐이었다⁠. 금예란은 계산대에서 원두 입고 전표를 맞추다가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회색 코트였다⁠. 예란은 엄혜지를 사진으로만 보았는데⁠, 사진보다 키가 작았다⁠.

“⁠금예란 사장님⁠. 구 년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정자점은 저희 초창기 가맹점이라 본사에서도 다들 알아요⁠.⁠”

“⁠아는데 구 년 동안 한 번도 안 왔잖아요⁠.⁠”

혜지는 웃음으로 받고 계산대 앞 의자에 앉았다⁠.

“⁠제안 하나 드리려고요⁠. 정자점 영업지역⁠, 지금은 이 건물 일 층이죠⁠? 반경 오백 미터로 넓혀 드릴게요⁠. 카페거리 전체요⁠. 다음 리뉴얼 공사비도 본사가 냅니다⁠.⁠”

예란은 전표를 내려놓았다⁠. 반경 오백 미터⁠. 아홉 해 전에 같은 말을 들었으면 지금 통장에 남은 숫자가 달랐을 것이었다⁠.

“⁠조건이 뭔데요⁠?⁠”

“⁠조건은 없어요⁠. 다만 요즘 생긴 점주 모임⁠, 거기선 빠져 주셨으면 해요⁠. 다음 달에 싱가포르 실사단이 와요⁠. 본사와 점주가 싸운다는 말이 돌면 투자가 늦어지고⁠, 투자가 늦어지면 원두 단가가 올라요⁠. 정자점 같은 오래된 가게가 제일 먼저 힘들어져요⁠.⁠”

예란은 혜지의 얼굴을 보았다⁠. 혜지는 협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계산서를 내미는 얼굴이었다⁠.

“⁠남편이 다음 달에 허리 수술해요⁠.⁠”

“⁠알아요⁠. 그래서 오늘 왔어요⁠.⁠”

혜지는 명함을 계산대에 놓고 일어났다⁠. 코트 자락이 원두 통을 스쳤다⁠. 예란은 명함을 집어 전표 사이에 끼웠다가⁠, 다시 꺼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휴대전화를 들어 남편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여보⁠. 본사 상무 왔다 갔어⁠. 좋은 얘기 하고 갔어⁠. 너무 좋은 얘기라 기분이 나빠⁠. 끊어⁠.⁠”

*

저녁 일곱 시⁠, 집 현관에서 도석은 고등어 굽는 냄새를 맡았다⁠. 윤옥은 금요일마다 고등어를 구웠고⁠, 금요일마다 창문을 다 열었다⁠. 오늘은 창문이 닫혀 있었다⁠. 연기가 거실에 가득했다⁠. 윤옥이 창문 여는 것을 잊은 날은 화가 난 날이었다⁠.

“⁠경고 먹었다며⁠?⁠”

윤옥은 뒤집개를 든 채 돌아보지 않았다⁠.

“⁠누가 그래⁠?⁠”

“⁠고2 3반 학부모방⁠. 반찬가게 할머니가 장조림 사러 온 쌍둥이 엄마한테 말했고⁠, 쌍둥이 엄마가 중2 방에 올렸고⁠, 중2 방에 우리 반 엄마가 있어⁠. 세 단계 거쳐서 왔어⁠. 남편 일을 세 단계 거쳐서 듣는 아내 심정 알아⁠?⁠”

“⁠이 단계 아니야⁠? 할머니⁠, 쌍둥이 엄마⁠, 우리 반 엄마⁠.⁠”

“⁠지금 그걸 세⁠?⁠”

윤옥이 뒤집개를 내려놓았다⁠. 고등어 껍질이 팬에 눌어붙는 소리가 났다⁠.

“⁠그 뒷면인가 하는 거 때문이라며⁠. 지워⁠. 오늘 지워⁠.⁠”

“⁠못 지워⁠.⁠”

“⁠왜⁠?⁠”

“⁠한 줄 한 줄이 사람이야⁠. 할머니고⁠, 세탁소 사장님이고⁠, 강재 학원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들이야⁠. 지우면 다 길 건너로 가⁠.⁠”

“⁠나도 사람이야⁠. 강재도 사람이고⁠. 기계 할부 육십 개월 남은 가게가 경고 두 번 먹으면⁠, 나랑 강재는 어느 줄에 있어⁠?⁠”

도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윤옥이 가스 불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들어와 연기를 밀어냈다⁠. 윤옥은 창틀을 붙잡은 채 말했다⁠. 목소리가 갑자기 존댓말로 바뀌었다⁠.

“⁠마도석 씨⁠. 세 번째 경고 먹으면 그때는 저한테 먼저 말씀하세요⁠. 단톡방 말고요⁠.⁠”

“⁠알았어⁠.⁠”

“⁠알았어요⁠, 해야지⁠. 지금 저 존댓말 쓰는 거 안 보여요⁠?⁠”

강재가 방문을 반쯤 열고 내다보다가 아빠와 눈이 마주치자 엄지를 세웠다가 도로 접고 문을 닫았다⁠. 도석은 탄 고등어 껍질을 혼자 다 먹었다⁠. 밥상을 치우고 정자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

밤 열 시 반⁠, 정자점 테이블 세 개가 붙었다⁠. 도석이 문을 열자 여러 가게의 원두 냄새가 한꺼번에 왔다⁠. 사람마다 자기 가게 원두를 한 봉지씩 들고 왔다⁠. 같은 본사 원두인데 봉지마다 냄새가 달랐다⁠. 입고된 날이 다르고⁠, 보관한 손이 달랐다⁠.

광교점 사장은 마흔하나⁠, IT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연 사람이었다⁠. 노트북을 펴고 앉자마자 말했다⁠.

“⁠엑셀 만들어 왔어요⁠. 우리 서른여덟 명 가게 매출⁠, 공개해도 되는 사람만 넣었어요⁠. 열네 명이요⁠.⁠”

수지점 사장은 쉰⁠, 제빙기 수리비 영수증을 비닐에 넣어 들고 왔다⁠. 동탄점 사장은 서른아홉⁠, 리뉴얼 공사 견적서를 들고 왔다⁠. 용인 기흥점 부부는 둘이 같이 왔는데⁠, 남편은 말이 없었고 아내가 남편 몫까지 말했다⁠. 노트북 화면 한쪽에는 대전 둔산점 사장이 영상 통화로 들어와 있었다⁠. 둔산점 사장은 가게 불을 끄고 계산대 조명 하나만 켠 채 앉아 있었다⁠.

“⁠둔산점입니다⁠. 직영점 생기고 석 달 동안 매출이 올랐어요⁠. 직영점 앞에 줄 서던 사람들이 지쳐서 저희한테 왔거든요⁠. 넉 달째부터 직영점이 줄을 다 소화하니까 저희 가게가 비었어요⁠. 지금은 개점 전보다 열에 둘 빠졌어요⁠. 본사 그래프는 석 달까지만 그린 거예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광교점 사장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래프 다시 그릴게요⁠. 석 달 말고 열두 달로⁠.⁠”

기흥점 아내가 손을 들었다⁠.

“⁠근데 우리가 이걸로 뭘 할 수 있어요⁠? 본사는 일대일 상담으로만 받겠다잖아요⁠. 일대일이면 서른여덟 명이 서른여덟 번 따로 깨지는 거예요⁠.⁠”

“⁠그래서 대표를 뽑자는 겁니다⁠.⁠”

도석이 말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예란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쳤다⁠. 원두 봉지 하나가 넘어졌다⁠.

“⁠대표 얘기 전에 하나 말할게⁠.⁠”

예란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테이블 한가운데 놓았다⁠.

“⁠오늘 오후에 엄혜지가 왔어⁠. 나한테 영업지역 오백 미터 준대⁠. 리뉴얼비도 내 준대⁠. 이 모임에서 빠지면⁠.⁠”

여섯 명의 눈이 명함에 모였다⁠. 둔산점 사장의 얼굴이 화면 안에서 가까워졌다⁠.

“⁠너울마을⁠.⁠”

예란이 도석을 보았다⁠.

“⁠너 때문에 내 가게도 찍혔어⁠. 너 대화방에 글 올리기 전에는 본사가 나를 몰랐어⁠. 구 년 동안 몰랐다고⁠. 이제 알아⁠. 내 남편 허리 수술 날짜까지 알아⁠.⁠”

“⁠받으셔도 됩니다⁠.⁠”

예란의 눈썹이 올라갔다⁠.

“⁠받으라고⁠? 그게 대표 하겠다는 놈이 할 소리야⁠?⁠”

“⁠제가 사장님 남편 수술비를 대 드릴 수 없습니다⁠. 오백 미터를 드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받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받으셔도 사장님 탓 안 합니다⁠.⁠”

“⁠탓 안 한다고⁠? 너 착한 척하지 마⁠. 착한 척하는 놈들이 제일 먼저 본사 지역장 됐어⁠.⁠”

광교점 사장이 노트북 화면을 슬그머니 닫았다⁠. 기흥점 남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가 아내의 눈짓에 다시 닫았다⁠. 도석은 예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저는 지역장 안 시켜 줄 겁니다⁠. 오늘 아침에 2차 경고 먹었습니다⁠. 반찬가게 할머니 메모지 때문에요⁠.⁠”

예란이 입을 다물었다⁠. 화면 속에서 둔산점 사장이 작게 웃었다⁠. 수지점 사장이 웃었고⁠, 동탄점 사장이 따라 웃었다⁠. 예란은 웃지 않고 명함을 집어 들었다⁠.

“⁠오백 미터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 내 영업지역을 넓히면 옆 블록 수내점 영업지역이 줄어⁠. 수내점 사장 나랑 같은 해에 시작했어⁠. 상무가 나한테만 오백 미터 준다는 건 수내점한테서 떼어 준다는 거야⁠.⁠”

예란은 명함을 반으로 찢었다⁠. 한 번 더 찢으려다 그만두고 반쪽 두 개를 원두 봉지 옆에 내려놓았다⁠.

“⁠안 받아⁠. 대신 대표는 너 해⁠. 시끄러운 놈이 해야 돼⁠. 나는 옆에서 욕할게⁠.⁠”

“⁠예란 사장님이 하셔야 합니다⁠. 구 년 하셨잖아요⁠.⁠”

“⁠구 년 했으니까 안 해⁠. 너는 석 달 했으니까 해⁠. 석 달짜리는 잃을 게 퇴직금밖에 없잖아⁠.⁠”

“⁠퇴직금이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해⁠. 전부 건 놈이 제일 안 도망가⁠.⁠”

예란이 손을 들었다⁠. 광교점 사장이 손을 들었고⁠, 수지점⁠, 동탄점⁠, 기흥점 부부가 차례로 들었다⁠. 화면 안에서 둔산점 사장도 손을 들었다⁠. 도석은 손을 들지 않았다⁠. 손을 들 사람이 아니었다⁠.

*

새벽 한 시⁠, 광교점 사장이 노트북으로 면담 요청서를 썼다⁠. 요구는 세 가지였다⁠. 영업지역을 건물 한 동 대신 반경 오백 미터로 바꿀 것⁠. 직영점 근처 가맹점의 매출이 떨어지면 본사가 두 해 동안 줄어든 몫의 절반을 보전할 것⁠. 닫은 점주 소통방을 다시 열 것⁠.

“⁠이거 어디로 보내요⁠? 일대일 상담밖에 없는데⁠.⁠”

“⁠일대일로 보내세요⁠. 대표 이름으로⁠.⁠”

광교점 사장이 전송을 눌렀다⁠. 전송 표시가 도는 동안 도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윤옥이었다⁠.

「⁠한 시야⁠. 정자동에서 뭐 해⁠? 단톡방에 누가 당신 정자동 카페에서 봤대⁠. 여자 사장님이랑 소리 지르더래⁠」

「⁠싸운 거 아니야⁠. 회의야⁠」

「⁠소리 지르는 회의가 어딨어⁠?⁠」

「⁠점주 회의는 원래 소리 질러⁠」

윤옥의 답이 오기 전에 광교점 사장이 노트북을 돌렸다⁠. 일대일 상담 창에 답이 와 있었다⁠. 보낸 지 사 분 만이었다⁠.

「⁠상무님께서 11월 2일 오후 두 시⁠, 본사 10층 대회의실에서 대표님과 대표단을 뵙겠다고 하십니다⁠.⁠」

예란이 화면을 보고 혀를 찼다⁠.

“⁠사 분⁠. 기다리고 있었네⁠. 이 여자 준비 다 해 놨어⁠.⁠”

기흥점 아내가 남편 옆구리를 찔렀다⁠.

“⁠여보⁠, 우리 화요일에 본사 가는 거야⁠. 넥타이 있어⁠?⁠”

“⁠가게 하는 사람이 넥타이를 왜 매⁠.⁠”

“⁠본사 가잖아⁠. 본사 사람들은 넥타이 맨 사람 말만 들어⁠.⁠”

“⁠상무가 넥타이 안 매던데⁠.⁠”

남편이 오늘 밤 처음으로 길게 말했다⁠. 테이블이 한 번 크게 웃었다⁠. 화면 속 둔산점 사장도 웃다가⁠, 웃음을 그치고 말했다⁠. “⁠저는 대전이라 못 가요⁠. 대신 열두 달짜리 그래프에 제 가게 이름 넣으세요⁠. 숨기지 말고요⁠.⁠”

도석은 화면의 「⁠대표님⁠」이라는 글자를 보았다⁠. 등기 우편의 풀 냄새가 아직 앞치마 주머니에 남아 있었다⁠.

6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