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87자)

생강

퇴직금으로 차린 카페 · 탁은담

직영점 안에서는 새 페인트와 비닐 냄새가 났다⁠. 10월 25일 월요일⁠, 주단미의 쉬는 날이었다⁠. 단미는 가림막 뒤 쪽문으로 들어가 이 층 교육장으로 올라갔다⁠. 계단 벽에 민트색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12월 11일 그랜드 오픈 · 싱가포르 파트너 방문⁠」

교육장에는 단미 또래가 열한 명 있었다⁠. 전부 같은 민트색 셔츠를 받았다⁠. 셔츠 가슴에 「⁠Trainee⁠」라고 박혀 있었다⁠. 단미는 셔츠를 입으며 너울마을점 앞치마를 생각했다⁠. 앞치마에는 아무 글씨도 없었다⁠.

교육장 한가운데 에스프레소 기계가 있었다⁠. 그룹 헤드가 네 개 달린 기계였다⁠. 너울마을점 기계는 두 개였다⁠. 단미는 레버를 당겨 보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채홍이 손뼉을 쳤다⁠.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는 커피를 파는 게 아니에요⁠. 경험을 팝니다⁠.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모든 순간이 브랜드예요⁠. 자⁠, 따라 해 볼까요⁠? 웰컴 투 달그락⁠!⁠”

열한 명이 따라 했다⁠. 단미는 입만 벙긋거렸다⁠. 옆자리 남자애가 속삭였다⁠.

“⁠저 점장님 원래 저래요⁠?⁠”

“⁠원래 저래요⁠. 니트에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두 가지예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우리 사장님이 알려 줬어요⁠.⁠”

오후 세 시⁠, 교육장 문이 열리고 회색 코트가 들어왔다⁠. 엄혜지였다⁠. 채홍이 허리를 반쯤 숙였다⁠. 혜지는 교육생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한 사람씩 잔을 들여다보다가⁠, 단미의 잔 앞에서 멈췄다⁠.

“⁠라테 아트가 좋네요⁠. 너울마을점 주단미 씨죠⁠?⁠”

“⁠네⁠.⁠”

“⁠거기 뒷면 메뉴⁠, 단미 씨도 만들어요⁠?⁠”

단미는 피처를 내려놓았다⁠. 혜지는 단미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서두르지 않았다⁠.

“⁠사장님이 만들어요⁠. 저는 옆에서 봐요⁠.⁠”

“⁠보기만 해도 많이 알 거예요⁠. 매니저 면접 때 포트폴리오를 내야 해요⁠. 본인이 만들어 본 음료 다섯 가지⁠. 단미 씨는 쉬울 거예요⁠.⁠”

혜지는 웃으며 다음 잔으로 갔다⁠. 단미는 혜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사장님 말대로 나무 냄새가 났다⁠. 차가운 냄새가 지나가고 나무만 남았다⁠.

교육이 끝나고 채홍이 봉투를 나눠 주었다⁠. 오늘 교육비 십만 원이었다⁠. 단미는 봉투를 받아 가방에 넣고 휴대전화를 열었다⁠. 학자금 대출 앱에 이번 달 상환 알림이 와 있었다⁠. 「⁠남은 원금 24⁠,180⁠,000원⁠」 단미는 십만 원짜리 봉투를 가방 안에서 한 번 더 만졌다⁠.

*

같은 시각 너울마을점에는 도석 혼자였다⁠. 단미가 없는 월요일은 손이 하나 모자랐다⁠. 다섯 시 학원 시간이 되자 창가 네 자리와 계산대 앞이 한꺼번에 찼다⁠. 도석은 보리를 우리면서 주문을 받고⁠, 주문을 받으면서 우유를 데웠다⁠. 쌍둥이 엄마가 영수증을 기다리다 말했다⁠.

“⁠사장님⁠, 단미 씨 그만뒀어요⁠? 단톡방에서 단미 씨가 길 건너 교육장 들어가는 거 봤다던데⁠.⁠”

“⁠쉬는 날입니다⁠.⁠”

“⁠쉬는 날에 길 건너 가면 그게 이직이에요⁠. 우리 남편도 그렇게 회사 옮겼어요⁠.⁠”

유리문이 열리고 강재가 들어왔다⁠. 학원 가방을 계산대 밑에 밀어 넣더니 앞치마 걸이에서 단미의 앞치마를 꺼내 둘렀다⁠. 앞치마가 짧아서 배꼽 위에서 끝났다⁠.

“⁠계산은 내가 할게⁠. 아빠는 내리기만 해⁠.⁠”

“⁠학원은⁠?⁠”

“⁠여섯 시 반부터야⁠. 시급은 스콘 하나⁠.⁠”

강재는 단말기를 두 번 만지더니 금세 익혔다⁠. 손님들이 강재를 보고 웃었다⁠. 고1 엄마가 “⁠사장님 아드님이에요⁠? 아빠 닮아서 말이 없네⁠.⁠” 하고 놀렸고⁠, 강재가 “⁠아빠보다는 많아요⁠.⁠” 하고 받아 가게가 한 번 크게 웃었다⁠. 여섯 시 이십 분⁠, 손님이 빠지자 강재가 앞치마를 벗으며 물었다⁠.

“⁠아빠⁠, 우리 가게 망해⁠?⁠”

도석은 보리 냄비를 저었다⁠. 냄비 바닥에서 보리가 눌어붙는 냄새가 올라왔다⁠. 불을 줄이고 대답했다⁠.

“⁠안 망하려고 하는 중이야⁠.⁠”

“⁠그게 망하는 중이라는 말 아니야⁠?⁠”

“⁠둘 다 맞는 말이야⁠.⁠”

강재는 스콘을 집어 가방에 넣고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 오르는 발소리가 아빠의 발소리처럼 느렸다⁠.

*

이튿날 저녁 일곱 시⁠, 세탁소에서는 세 가지 냄새가 났다⁠. 다리미 스팀의 뜨거운 물 냄새⁠, 드라이클리닝 용제의 달짝지근한 화학 냄새⁠, 그리고 계산대 밑에서 올라오는 생강 냄새였다⁠. 도석은 처음 이 상가에 왔을 때부터 생강 냄새를 맡았다⁠. 세탁소와 생강은 어울리지 않는 냄새였다⁠.

세탁소 사장은 예순여섯⁠, 셔츠 칼라를 다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팔뚝의 화상 자국이 다리미 불빛에 번들거렸다⁠.

“⁠커피 집 사장이 와이셔츠를 맡기려고⁠?⁠”

“⁠사장님⁠, 계산대 밑에 생강 병 있으시죠⁠?⁠”

세탁소 사장의 다리미가 멈췄다⁠. 스팀이 칼라 위에서 피식 하고 빠졌다⁠.

“⁠코가 개야⁠?⁠”

“⁠향료연구소에 스물두 해 있었습니다⁠.⁠”

세탁소 사장은 다리미를 세워 놓고 계산대 밑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생강을 얇게 저며 꿀에 재운 병이었다⁠. 뚜껑 둘레에 꿀이 굳어 하얗게 앉아 있었다⁠.

“⁠우리 집사람이 겨울마다 담갔어⁠. 두 해 전 겨울에 간 뒤로 내가 담그는데⁠, 이 맛이 안 나⁠. 생강이 매워⁠. 집사람 건 안 매웠어⁠.⁠”

도석은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생강을 생으로 저며 넣은 냄새였다⁠.

“⁠사모님은 생강을 한 번 쪄서 넣으셨을 겁니다⁠. 찌면 매운맛이 빠지고 단맛이 올라옵니다⁠.⁠”

세탁소 사장은 한참 도석을 보았다⁠.

“⁠그걸 우리 집사람이 어떻게 알았어⁠?⁠”

“⁠그건 모르겠습니다⁠. 아는 분이셨던 거죠⁠.⁠”

이튿날 아침⁠, 도석은 생강을 쪄서 꿀에 재운 작은 병을 세탁소에 가져갔다⁠. 오후에는 찐 생강으로 한 잔을 내렸다⁠. 생강청을 따뜻한 우유에 풀고⁠, 에스프레소를 아주 조금⁠, 계피를 한 번 스치듯 갈았다⁠. 세탁소 사장은 커피는 쓴 물이라 안 마신다며 손사래를 치다가 잔을 받았다⁠. 한 모금 마시고 다리미를 내려놓았다⁠. 두 모금째에서 눈을 깜박였다⁠.

“⁠쓴 물인데 안 쓰네⁠.⁠”

단미가 분필로 칠판 뒷면 맨 아래에 한 줄을 보탰다⁠. 「⁠세탁소 생강⁠」 아홉 번째였다⁠.

*

10월 27일 오후 네 시⁠, 세탁소 앞에 검은 승용차가 멈췄다⁠. 도석은 우유를 데우다가 냄새로 알았다⁠. 시더우드였다⁠. 피처를 든 채 세탁소로 갔다⁠.

혜지는 다림질대 옆에 서서 태블릿을 세탁소 사장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채홍이 뒤에서 종이 상자를 들고 있었다⁠. 상자 안에 민트색 셔츠와 앞치마가 접혀 있었다⁠.

“⁠직영점 직원이 마흔 명이에요⁠. 셔츠⁠, 앞치마⁠, 행주까지 일주일에 두 번 세탁 맡기려고요⁠. 한 달에 이백만 원 조금 넘을 거예요⁠. 일 년 계약이고요⁠.⁠”

세탁소 사장은 태블릿을 보지 않고 혜지를 보았다⁠.

“⁠우리 세탁소 한 달 매출이 그 두 배 조금 넘어⁠.⁠”

“⁠그러니까 사장님께 드리는 거예요⁠. 동네 일감은 동네에⁠.⁠”

도석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혜지가 고개를 돌렸다⁠. 놀라지 않았다⁠.

“⁠마 사장님⁠, 오셨어요⁠. 생강 냄새 맡고 오셨어요⁠?⁠”

“⁠상무님 냄새 맡고 왔습니다⁠.⁠”

채홍이 상자 뒤에서 웃음을 참았다⁠. 도석은 세탁소 사장 곁으로 가지 않고 다림질대 맞은편으로 갔다⁠. 다리미에서 김이 올라와 혜지와 도석 사이를 지나갔다⁠.

“⁠설명회 때는 쿠폰이었고⁠, 이번엔 일감입니까⁠? 제 옆 가게를 하나씩 사 가시는 겁니까⁠?⁠”

“⁠일감을 드리는 게 나빠요⁠? 사장님은 세탁소 사장님께 생강 한 잔 드리셨죠⁠. 저는 일 년 치 일을 드려요⁠. 누가 더 동네를 돕는 거예요⁠?⁠”

“⁠생강 한 잔은 조건이 없습니다⁠. 상무님 일감은 일 년 뒤에 끊을 수 있습니다⁠. 끊기면 세탁소는 이백만 원어치 일에 맞춰 사람 쓰고 기계 늘린 다음입니다⁠.⁠”

“⁠그건 어느 거래나 같아요⁠. 사장님 가게도 본사 원두에 맞춰 기계 들이셨잖아요⁠. 그래서 본사가 커야 한다는 거예요⁠. 싱가포르 돈이 들어와야 일 년 계약이 삼 년 계약이 돼요⁠.⁠”

“⁠제 계약도 조건 없어요⁠. 세탁만 잘해 주시면 돼요⁠.⁠”

혜지는 세탁소 사장에게 몸을 돌렸다⁠.

“⁠사장님⁠, 다른 데 알아볼 수도 있어요⁠. 근데 저는 이 상가에 맡기고 싶어요⁠. 길 건너에서 일하는 직원들 앞치마를 이 상가에서 빨면⁠, 직영점도 이 동네 가게가 되는 거잖아요⁠.⁠”

말이 깨끗했다⁠. 도석은 반박할 말을 찾으며 다리미의 김을 보았다⁠. 혜지의 말에서 틀린 데를 찾을 수 없었다⁠. 틀린 데가 없는 말이 도석의 가게를 조금씩 비우고 있었다⁠.

세탁소 사장이 생강 병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도석이 아침에 가져다준 병이었다⁠.

“⁠마 사장⁠. 미안해⁠. 나 이거 받아야 돼⁠. 이백이면 우리 집 관리비랑 손녀 학원비야⁠.⁠”

“⁠압니다⁠.⁠”

“⁠생강은 계속 마실게⁠. 매일 한 잔⁠. 내 돈 내고⁠.⁠”

세탁소 사장은 혜지가 내민 펜으로 서명했다⁠.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다리미의 김 소리에 묻혔다⁠. 혜지는 서명을 받은 종이를 채홍에게 넘기고 도석을 보았다⁠.

“⁠사장님⁠, 인수 제안 날짜 아직 남았어요⁠. 골목을 지키시려면 사장님 가게부터 지키셔야 해요⁠. 그 순서를 잊지 마세요⁠.⁠”

혜지가 나갔다⁠. 채홍이 민트색 셔츠 상자를 세탁 바구니 옆에 내려놓고 따라 나갔다⁠. 세탁소 사장은 맨 위 셔츠를 집어 다림질대에 펼쳤다⁠. 다리미를 대자 새 셔츠에서 풀 먹인 냄새가 올라왔다⁠.

*

밤 열한 시⁠, 도석의 휴대전화가 연달아 울렸다⁠. 본사 점주 앱의 공지였다⁠.

「⁠점주 소통방은 10월 27일 자정을 끝으로 운영을 종료합니다⁠. 앞으로 모든 문의는 점주 앱 일대일 상담을 이용해 주세요⁠. 더 나은 소통을 위한 결정입니다 :⁠)⁠」

소통방에는 마지막 한 시간 동안 메시지가 쏟아졌다⁠. 「⁠갑자기요⁠?⁠」⁠, 「⁠일대일이면 우리끼리 말을 못 하잖아요⁠」⁠, 「⁠너울마을점 때문 아님⁠?⁠」 도석의 이름이 몇 번 지나갔다⁠. 자정이 되자 방이 회색으로 바뀌었다⁠. 사백열두 명이 한꺼번에 서로를 잃어버렸다⁠.

전화가 왔다⁠. 예란이었다⁠. 음성 메시지가 아니라 진짜 전화였다⁠.

“⁠봤지⁠? 이게 본사야⁠. 방 닫으면 우리끼리는 얼굴도 몰라⁠. 아홉 해 전에도 이랬어⁠.⁠”

“⁠새 방을 열겠습니다⁠.⁠”

“⁠그래⁠. 네가 방장 해⁠. 나는 안 해⁠. 들어가기만 할게⁠. 나 아는 점주 번호 열몇 개 있어⁠. 보내 줄게⁠.⁠”

“⁠예란 사장님⁠.⁠”

“⁠왜⁠?⁠”

“⁠아까 세탁소를 본사에 뺏겼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예란이 한숨을 쉬었다⁠. 한숨 끝에 웃음이 섞였다⁠.

“⁠뺏긴 게 아니고 세탁소가 먹고산 거야⁠. 그걸 구분 못 하면 너도 본사랑 똑같아⁠. 방 열어⁠.⁠”

도석은 새 방을 만들었다⁠. 이름을 한참 고르다가 「⁠달그락 점주 모임⁠」이라고 썼다⁠. 예란이 보낸 번호들⁠, 소통방에서 도석에게 따로 연락했던 사람들⁠, 광교점⁠, 수지점⁠, 동탄점⁠. 초대장을 하나씩 보냈다⁠.

초대장 사이로 윤옥의 메시지가 끼어들었다⁠.

「⁠직영점 스터디존 사전 예약 열렸대⁠. 강재 이름 넣었어⁠. 화내지 마⁠. 공짜래⁠」

도석은 화를 내지 않았다⁠. 「⁠잘했어⁠」라고 보냈다⁠. 보내고 나서 오래 화면을 보았다⁠.

새벽 한 시⁠, 방에 스물한 명이 있었다⁠. 들어오는 사람마다 인사 대신 하소연을 올렸다⁠. 「⁠수지점입니다⁠. 제빙기 고장 나면 본사 지정 업체만 불러야 하는데 수리비가 동네 업체 두 배예요⁠」⁠, 「⁠동탄점⁠, 리뉴얼 공사 강제로 했어요⁠. 사천만 원⁠」⁠, 「⁠광교점⁠. 트럭 아직 있어요⁠. 기우제 지내는 중⁠」 도석은 한 줄 한 줄 읽었다⁠. 읽다 보니 가게마다 사정은 달라도 냄새는 같았다⁠. 오래 참은 사람들의 냄새였다⁠. 새벽 두 시⁠, 서른여덟 명이 되었다⁠. 서른여덟 번째로 들어온 사람이 인사도 없이 한 줄을 남겼다⁠.

「⁠대전 둔산점입니다⁠. 직영점 옆 가게요⁠. 본사가 매출 올랐다고 자랑하는 데가 저희예요⁠. 오른 거 맞아요⁠. 처음 석 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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