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31자)

간판을 내리는 날

퇴직금으로 차린 카페 · 탁은담

11월 20일 토요일 아침 일곱 시⁠, 너울마을점 앞에 줄이 있었다⁠. 도석이 셔터를 올리기도 전이었다⁠. 줄 맨 앞 사람은 휴대전화로 꺼진 간판 사진을 보여 주었다⁠.

“⁠여기 맞죠⁠? 세 시에 간판 끈 데⁠.⁠”

“⁠지금은 켜져 있습니다⁠.⁠”

“⁠켜진 것도 찍을게요⁠.⁠”

꺼진 간판 사진이 금요일 밤 사이에 퍼졌다⁠. 점주 모임 방에서 누가 사진들을 모아 짧은 영상을 만들었고⁠, 영상이 숏폼으로 돌았다⁠. 맨 마지막 장면이 너울마을 상가였다⁠. 꺼진 간판들 사이로 세탁소 사장이 다리미 플러그를 흔드는 장면이었다⁠. 영상 밑에 「⁠다리미 아저씨 때문에 웃다가 울었다⁠」는 댓글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세탁소 사장은 아침 여덟 시에 커피를 사러 왔다가 줄 선 사람들에게 붙잡혀 사진을 찍혔다⁠. 세탁소 사장은 플러그를 다시 들어 달라는 부탁에 세 번 들어 주고⁠, 네 번째에 화를 냈다⁠.

“⁠나 빨래해야 돼⁠!⁠”

윤옥은 연두색 앞치마를 두르고 포스기 앞에 붙어 있었다⁠. 교무실에서 학부모 전화 마흔 통을 받는 사람의 손이었다⁠. 주문⁠, 결제⁠, 적립⁠, 영수증⁠. 열한 시쯤 윤옥이 처음으로 손을 멈추고 도석에게 말했다⁠.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어⁠.⁠”

“⁠가⁠.⁠”

“⁠가면 줄이 밖으로 나가⁠.⁠”

“⁠이미 밖이야⁠.⁠”

윤옥은 화장실 대신 물을 한 컵 마시고 다시 포스기 앞으로 갔다⁠. 강재가 학원 특강을 마치고 내려와 말없이 앞치마를 둘렀다⁠. 짧은 단미 앞치마가 이번에도 배꼽 위에서 끝났다⁠. 강재는 컵을 꺼내고 뚜껑을 닫고 빨대를 꽂았다⁠. 세 식구가 계산대 뒤에 나란히 붙어 일했다⁠. 개점하고 처음이었다⁠.

일요일 밤 열 시⁠, 마감한 가게에서 윤옥이 포스기 매출 화면을 열었다⁠. 도석은 행주를 빨다가 윤옥의 등을 보았다⁠. 윤옥은 화면을 손가락으로 위아래로 넘기며 숫자를 확인했다⁠. 두 번 확인했다⁠.

“⁠토요일⁠, 개점 첫 달 하루 평균보다 높아⁠. 일요일도⁠.⁠”

“⁠그럼 약속은⁠…⁠…⁠.⁠”

“⁠지켰어⁠.⁠”

윤옥은 포스기를 끄고 돌아보았다⁠. 웃지 않았다⁠.

*

일요일 밤 열한 시⁠, 집 식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윤옥은 혜지가 두고 간 봉투를 식탁 한가운데 놓았다⁠. 강재는 방문을 반쯤 열어 두었다⁠.

“⁠약속은 지켰어⁠. 십일월 말까지 매출 돌아오면 안 판다고 했지⁠. 돌아왔어⁠.⁠”

“⁠응⁠.⁠”

“⁠그런데 나 이제 무서워⁠.⁠”

윤옥은 봉투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이번 주말은 사진 때문에 온 사람들이야⁠. 다음 주말에도 와⁠? 그다음 주말에도⁠? 길 건너 열리면⁠? 그리고 내일 두 시에 거절하면 경고 세 번째고⁠, 해지야⁠. 해지되면 이 일억 이천도 없어⁠. 철거비는 우리가 내⁠. 당신 연구소 계산법으로 해 봐⁠. 어느 쪽이 덜 망해⁠?⁠”

도석은 대답을 미루지 않았다⁠.

“⁠받으면 덜 망해⁠.⁠”

“⁠그럼 받아⁠.⁠”

“⁠대표가 가게 팔고 나가면⁠, 이천삼백 곳이 다 무너져⁠. 예란 사장님도 팔 거고⁠, 광교도⁠, 둔산도⁠. 상무가 노리는 게 그거야⁠. 대표 하나 사면 나머지가 줄줄이 따라와⁠.⁠”

“⁠그 이천삼백 곳이 우리 이자 내 줘⁠?⁠”

“⁠안 내 줘⁠.⁠”

“⁠강재 학원비 내 줘⁠?⁠”

“⁠안 내 줘⁠.⁠”

방문이 더 열렸다⁠. 강재가 문틀에 기대 서 있었다⁠.

“⁠나 학원 그만두는 거 엄마가 반대했잖아⁠. 그럼 이거 하나만 할게⁠. 아빠⁠, 금요일 세 시에 간판 끌 때 무슨 생각 했어⁠?⁠”

도석은 강재를 보았다⁠. 강재는 대답을 기다렸다⁠.

“⁠이천삼백 곳이 다 꺼질 줄 몰랐어⁠. 열두 곳만 넘으면 됐는데⁠.⁠”

“⁠그럼 이천삼백 곳은 아빠가 끈 거네⁠.⁠”

강재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문을 닫지 않았다⁠. 윤옥이 오래 봉투를 내려다보다가 손을 뗐다⁠.

“⁠당신이 정해요⁠.⁠”

존댓말이었다⁠.

“⁠대신⁠, 당신 혼자 정하는 거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오천만 원도 혼자 정했고⁠, 이것도 혼자 정해요⁠. 다음부터는 안 돼요⁠.⁠”

“⁠알았어요⁠.⁠”

윤옥이 피식 웃었다⁠. 도석이 존댓말로 대답한 것이 처음이었다⁠.

*

11월 22일 월요일 오후 두 시⁠, 혜지가 너울마을점 유리문을 열었다⁠. 뒤에 슈퍼바이저가 따라 들어왔다⁠. 슈퍼바이저는 도석과 눈이 마주치자 사원증을 셔츠 안으로 집어넣었다⁠. 첫 점검 날 귤 커피를 마시던 손과 같은 손이었다⁠.

혜지는 계산대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답을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도석은 봉투를 혜지 쪽으로 밀었다⁠.

“⁠안 팝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상무님이 제 가게를 사시면⁠, 제 가게는 직영점이 됩니다⁠. 상무님 그래프에 점이 하나 늘어납니다⁠. 그다음엔 정자점이 늘고⁠, 광교점이 늡니다⁠. 이천삼백 곳이 금요일에 간판을 끈 건 제가 안 팔 거라고 믿어서입니다⁠.⁠”

“⁠그분들이 사장님 이자를 내 주지 않아요⁠.⁠”

“⁠집사람이 어젯밤에 같은 말을 했습니다⁠.⁠”

혜지는 처음으로 윤옥을 보았다⁠. 윤옥은 오늘 평일인데도 반차를 내고 포스기 앞에 있었다⁠. 윤옥은 혜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혜지가 슈퍼바이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슈퍼바이저가 태블릿을 열고 휴대용 프린터에 연결했다⁠. 프린터가 웅웅거리다 종이를 밀어냈다⁠. 토너 냄새가 났다⁠.

「⁠가맹계약 위반에 따른 3차 경고 및 계약 해지 통지⁠」

슈퍼바이저가 종이를 계산대에 놓았다⁠. 손이 떨렸다⁠.

“⁠사장님⁠, 죄송해요⁠.⁠”

“⁠슈퍼바이저님 잘못 아닙니다⁠.⁠”

“⁠원두는 오늘부터 공급 중단이에요⁠. 간판하고 브랜드 표시는 해지 효력 나는 날까지 철거하셔야 하고요⁠. 다투실 수는 있어요⁠. 변호사 쓰시면 일 년은 걸릴 거예요⁠.⁠”

일 년 동안 원두 없이 달그락 간판을 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도석은 종이를 접지 않고 계산대 밑 1차⁠, 2차 경고장 위에 올려놓았다⁠. 세 장이 반듯하게 포개졌다⁠.

혜지는 칠판을 보았다⁠. 오늘도 뒷면이 바깥을 향해 있었다⁠.

“⁠사장님⁠. 이 가게는 본사가 해야 하는 가게라고 말씀드렸죠⁠. 이제 아무도 못 하는 가게가 될 거예요⁠. 간판 없는 카페에 누가 와요⁠?⁠”

“⁠귤 냄새 맡고 옵니다⁠.⁠”

혜지는 대답하지 않고 나갔다⁠. 슈퍼바이저가 머뭇거리다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한 잔만요⁠. 이번엔 기록에도 남겨 주세요⁠. 제 카드로요⁠.⁠”

11월 22일 밤 점주 모임 방에 도석이 해지 통지서 사진을 올렸다⁠. 방이 한동안 조용했다⁠. 그러고는 한꺼번에 터졌다⁠. 「⁠대표를 잘랐다고⁠?⁠」⁠, 「⁠우리도 경고 받은 사람 많은데 다음은 우리임⁠?⁠」⁠, 「⁠그래서 나 오늘 뒷면 메뉴 하나 만들었음⁠. 우리 동네 떡집 쑥 라테⁠. 경고 받으면 받지 뭐⁠」 쑥 라테 사진 밑으로 다른 가게들의 사진이 줄줄이 달렸다⁠. 유자⁠, 대추⁠, 옥수수⁠. 동네마다 다른 냄새가 방을 채웠다⁠.

밤 열두 시⁠, 예란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짜 전화였다⁠.

“⁠너 미쳤어⁠? 일억 이천을 왜 안 받아⁠?⁠”

“⁠사장님이 받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메뉴판 지우지 말라고⁠.⁠”

“⁠메뉴판 지우지 말라고 했지⁠, 돈을 차라고 했어⁠?⁠”

수화기 너머로 예란이 한참 숨만 쉬었다⁠.

“⁠나 안 판다⁠. 백 곳 넘으면 생각해 본다고 했지⁠? 이천삼백 곳이었어⁠. 생각해 봤어⁠. 너 혼자 잘리게 두면 나는 아홉 해 전이랑 똑같은 사람이 돼⁠. 남편한테 말했더니 누운 채로 박수를 치더라⁠. 허리 수술한 사람이⁠. 끊어⁠.⁠”

전화가 끊겼다⁠. 예란은 마지막까지 「⁠끊어⁠」를 말로 했다⁠.

*

원두가 끊긴 지 이틀째⁠, 도석은 판교 북쪽 운중동 골목의 작은 로스터리를 찾아갔다⁠. 이층 주택 차고를 고친 가게였다⁠. 예순 넘은 주인은 콩을 볶는 기계 앞에서 도석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간판 끈 영상을 보았다고 했다⁠.

“⁠프랜차이즈에서 나온 사장님들은 처음엔 다 우리 콩이 낯설다고 해요⁠.⁠”

주인이 볶은 지 하루 된 콩을 한 줌 쥐여 주었다⁠. 도석은 냄새를 맡았다⁠. 본사 원두보다 신맛이 먼저 오고⁠, 뒤로 단내가 길게 남았다⁠. 귤과 잘 붙을 냄새였다⁠.

“⁠낯설지 않습니다⁠.⁠”

“⁠귤껍질 시럽하고 같이 쓸 건데⁠, 볶는 정도를 조금 낮출 수 있습니까⁠?⁠”

“⁠코가 좋으시네⁠. 우리 영감은 그걸 몰라서 맨날 태웠어요⁠.⁠”

주인은 웃으며 볶는 기계의 온도를 조금 내렸다⁠. 도석은 오 킬로그램을 샀다⁠. 값은 본사 원두보다 비쌌고⁠, 대신 볶은 날짜가 봉지에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

11월 30일 밤 아홉 시⁠, 상가 앞 인도에 철거 업체 트럭이 멈췄다⁠. 본사 지정 업체였다⁠. 인부 둘이 사다리를 펼쳤다⁠. 도석이 사다리 아래를 붙잡았다⁠. 인부가 말렸지만 도석은 손을 떼지 않았다⁠.

민트색 간판의 나사가 하나씩 풀렸다⁠. 전동 드라이버 소리가 상가 복도를 따라 울렸다⁠. 반찬가게 할머니가 셔터를 반쯤 내린 채 나와 섰고⁠, 세탁소 사장이 다리미를 끄고 나왔다⁠. 번영회장은 부동산 유리문에 기대 팔짱을 꼈다⁠. 꽃집 사장은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내렸다⁠. 길 건너 직영점 일 층 유리문 안에 민트색 셔츠가 하나 서 있었다⁠. 단미였다⁠. 개점 준비로 늦게까지 남은 단미는 유리문에 손바닥을 대고 이쪽을 보았다⁠. 도석과 눈이 마주쳤다⁠. 단미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윤옥은 도석 옆에 있었다⁠. 연두색 앞치마를 입은 채였다⁠. 2층 학원 창문에 강재의 얼굴이 보였다⁠. 강재는 수업 중이었고⁠, 창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달⁠」이 내려왔다⁠. 인부가 글자를 받아 트럭 짐칸에 눕혔다⁠. 「⁠그⁠」가 내려왔다⁠. 「⁠락⁠」이 내려왔다⁠. 간판 자리에 나사 구멍 열두 개와 석 달 반 동안 먼지가 앉지 않은 네모가 남았다⁠. 네모 안쪽만 벽 색이 밝았다⁠.

할머니가 혼잣말을 했다⁠.

“⁠이빨 빠진 거 같네⁠.⁠”

번영회장이 팔짱을 풀고 다가와 밝은 네모를 올려다보았다⁠.

“⁠마 사장⁠, 저 자리 내가 업자 불러서 칠해 줄게⁠. 외벽 도색 본사 돈 안 받기로 했으니까 상가 돈으로 하는 거야⁠. 마 사장네 앞부터 칠하자고 회의에서 내가 우겼어⁠.⁠”

“⁠회장님⁠, 우기셨어요⁠?⁠”

“⁠스무 해 만에 처음 우겨 봤어⁠. 생각보다 재밌더라⁠.⁠”

세탁소 사장이 다리미 냄새를 풍기며 끼어들었다⁠.

“⁠새 간판 달 때 말해⁠. 천으로 하면 내가 박아 줄게⁠. 글씨는 다리미로 눌러 줄게⁠. 백 년 가⁠.⁠”

“⁠천 간판이 백 년을 가요⁠?⁠”

“⁠내 다리미로 누르면 가⁠.⁠”

할머니가 세탁소 사장의 등을 쳤고⁠, 몇 사람이 웃었다⁠.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길 건너 직영점 지붕에서 「⁠달그락⁠」이 빛나고 있었다⁠. 개점까지 열하루가 남았다⁠. 인도에 회색 코트가 서 있었다⁠. 혜지는 철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트럭이 떠나자 혜지가 찻길을 건너왔다⁠. 도석은 사다리를 접고 있었다⁠.

“⁠내일부터는 간판 없이 하시는 거예요⁠?⁠”

“⁠네⁠.⁠”

“⁠메뉴판 앞면도 본사 거니까 떼셔야 해요⁠.⁠”

“⁠알고 있습니다⁠.⁠”

혜지는 간판 자리의 밝은 네모를 올려다보았다⁠. 시더우드 냄새가 찬 공기에 섞였다⁠.

“⁠사장님⁠, 이제 점주가 아니세요⁠. 협의회 대표는 점주가 하는 거예요⁠. 내일부터 본사는 사장님과 말하지 않을 거예요⁠.⁠”

도석은 접은 사다리를 벽에 기대 세웠다⁠. 계산대 밑 스위치를 올렸다⁠. 간판은 없었고⁠, 가게 안 조명이 유리문 밖 인도까지 노랗게 나왔다⁠. 윤옥이 유리문을 열어 두었다⁠. 귤 냄새가 인도로 흘러나와 찬 공기를 타고 찻길까지 번졌다⁠. 혜지가 귤 냄새를 맡는 것이 도석의 눈에 보였다⁠. 혜지는 코를 한 번 찡그렸다가 코트 깃을 여몄다⁠.

“⁠불은 내일도 켭니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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