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39자)

소견서

경로당 게임단 코치 · 류시안

경기 결선 8강은 안산 e스포츠 경기장 본무대에서 열렸다⁠. 보조 경기장의 이백 석과 달리 객석이 천 석이었다⁠. 무대 양옆에 대형 화면이 하나씩 있었고⁠, 천장에서 조명이 열 개도 넘게 내려왔다⁠. 리허설 때 조명이 한꺼번에 켜지자 춘봉이 손으로 눈을 가렸다⁠.

“⁠여기 우체국 분류장보다 밝아⁠.⁠”

“⁠어르신⁠, 화면만 보세요⁠. 조명은 보지 마시고요⁠.⁠”

“⁠눈이 저절로 가는데 어떻게 안 봐⁠. 나방도 아니고⁠.⁠”

대기실은 무대 뒤 복도 끝에 있었다⁠. 문에 「⁠청춘오락실⁠」이라고 출력한 종이가 붙어 있었다⁠. 점례는 종이 앞에서 셀카를 열 장 찍고⁠, 열한 장째에 우람을 불러 둘이 같이 찍었다⁠. 진배는 대기실 소파에 앉아 리그 측이 준 생수병을 하나씩 다 따 보았다⁠.

“⁠물맛이 다 똑같네⁠. 왜 열두 병을 줬어⁠.⁠”

“⁠한 병만 따세요⁠, 회장님⁠.⁠”

“⁠다 따 봐야 어느 게 맛있는지 알지⁠.⁠”

분옥은 거울 앞에서 꽃무늬 조끼의 단추를 목까지 채웠다⁠. 조끼 소매 끝으로 노란 고무줄이 보였다⁠. 강현이 보는 것을 거울로 보고⁠, 분옥은 소매를 끌어내렸다⁠.

*

대기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남궁석이었다⁠. 회색 양복에 빨간 레드혼 실버 배지를 달았고⁠, 손에는 떡 상자 대신 홍삼 상자를 들었다⁠.

“⁠결선 첫날이라 인사 왔습니다⁠. 다들 손목 괜찮으십니까⁠?⁠”

남궁석은 홍삼 상자를 소파 앞 탁자에 놓고 분옥 앞에 가서 허리를 숙였다⁠. 거울 앞의 분옥과 눈높이를 맞췄다⁠.

“⁠어르신⁠, 시 본선 다리 밑 매복 봤습니다⁠. 우리 선수들 영상 보면서 공부시켰어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레드혼 실버로 오시죠⁠. 계약금은 전단 그대로 드리고⁠, 결승까지 가시면 수당을 따로 드립니다⁠. 연습 시간도 어르신께는 따로 맞춰 드리겠습니다⁠.⁠”

대기실이 조용해졌다⁠. 진배가 생수병 뚜껑을 비틀다 멈췄다⁠. 점례는 휴대전화를 내리지 않은 채 남궁석을 찍었다⁠.

강현이 남궁석과 분옥 사이로 들어갔다⁠.

“⁠나가 주세요⁠.⁠”

“⁠어르신께 드리는 말씀이다⁠.⁠”

“⁠경기 두 시간 전이에요⁠. 남의 팀 대기실이고요⁠.⁠”

“⁠규칙에 대기실 출입 금지는 없다⁠. 엔트리 마감 전 이적도 규칙에 있고⁠.⁠” 남궁석이 허리를 폈다⁠. 강현보다 키가 작은데도 내려다보는 눈이었다⁠. “⁠너는 이분 사정을 아냐⁠. 네 몫도 없는 상금으로 이분 사정을 다 덮어 줄 수 있냐⁠.⁠”

강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분옥의 안주머니에 든 고지서가 떠올랐다⁠. 남궁석이 어디까지 아는지 알 수 없었다⁠.

“⁠단장님⁠.⁠” 점례가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녹화 중인 화면이 남궁석을 향하고 있었다⁠. “⁠지금 이거 생방송 아니야⁠. 근데 올릴 수는 있어⁠. 제목은 「⁠남의 대기실에서 언니 데려가기⁠」로 할까⁠, 「⁠홍삼 들고 스카우트⁠」로 할까⁠?⁠”

남궁석이 점례의 휴대전화를 보았다⁠. 처음으로 남궁석의 입가가 굳었다⁠. 남궁석은 홍삼 상자를 그대로 둔 채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서 분옥에게 한마디만 했다⁠.

“⁠어르신⁠, 명함은 아직 가지고 계시죠⁠.⁠”

문이 닫혔다⁠. 점례가 녹화를 끄고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가 빨간 옷을 입어⁠? 꽃무늬가 울지⁠. 회장님⁠, 홍삼은 우리가 먹어도 돼⁠?⁠”

“⁠주고 갔으면 우리 거지⁠.⁠” 진배가 상자를 열었다⁠.

분옥은 웃지 않았다⁠. 거울 속에서 꽃무늬 조끼 안주머니에 손을 한 번 얹었다가 내렸다⁠. 강현은 분옥의 손을 못 본 척하려다⁠, 못 했다⁠.

*

8강 상대는 의왕 철도원 팀이었다⁠. 셋 다 철도 기관사로 정년을 마친 사람들이었고⁠, 셋 다 손목시계를 두 개씩 찼다⁠. 하나는 현재 시각⁠, 하나는 초시계였다⁠. 철도원 팀은 경기가 시작되자 화면 속 시계에 맞춰 움직였다⁠. 정해진 시각에 진영을 나와⁠, 정해진 시각에 거점에 닿고⁠, 정해진 시각에 다음 거점으로 갔다⁠. 이 분마다 한 번씩⁠, 열차가 역을 지나듯 정확했다⁠.

“⁠빨간 옷⁠, 아니 파란 옷 셋⁠, 또 가운데로 와⁠! 아까랑 똑같은 시간에⁠!⁠” 점례가 외쳤다⁠.

“⁠이 분 간격이야⁠.⁠” 진배가 후보석에서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렸다⁠.

춘봉이 무너진 담 앞에서 멈췄다⁠. 철도원 팀이 지나가는 시각보다 십 초 먼저 담을 넘으면 마주쳤고⁠, 십 초 늦게 넘으면 등 뒤를 잡았다⁠. 춘봉은 서른 해 동안 우편 차가 들어오는 시각에 맞춰 분류장에 나가던 사람이었다⁠. 열차 시간표쯤은 손바닥 보듯 했다⁠. 춘봉은 철도원 팀이 지나간 뒤 정확히 십 초를 세고 담을 넘었다⁠.

분옥은 다리 밑에 앉았다⁠. 이번에는 철도원 팀이 다리를 지나는 시각을 기다렸다⁠. 이 분⁠, 사 분⁠, 육 분⁠. 화살이 정시마다 날았다⁠. 「⁠처치⁠」⁠, 「⁠처치⁠」

첫 세트를 이겼다⁠. 점례가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소리쳤다⁠. “⁠철도원 아저씨들⁠, 이번 역은 청춘오락실입니다⁠!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철도원 팀 막내가 헤드셋을 쓴 채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떨었다⁠. 두 번째 세트에서 철도원 팀은 간격을 이 분에서 일 분 반으로 바꾸었다⁠. 춘봉이 담 앞에서 마주쳐 쓰러졌다⁠. 진배는 손가락을 바꿔 들지 못하고 한참 헤맸다⁠. 두 번째 세트는 졌다⁠. 세 번째 세트 직전⁠, 쉬는 시간에 강현은 진배에게 물었다⁠.

“⁠회장님⁠, 저 사람들 간격이 왜 바뀌었을까요⁠?⁠”

“⁠우리가 따라 하니까 바꿨지⁠.⁠”

“⁠그럼 또 바꿀까요⁠?⁠”

진배가 철도원 팀 맏형을 건너다보았다⁠. 맏형은 손목의 초시계를 다시 맞추고 있었다⁠.

“⁠저 양반 시계를 두 번 눌렀어⁠. 일 분 반이 아니라 이 분 반으로 늘렸어⁠. 우리가 일 분 반에 맞추면 그사이에 빠져나가려고⁠.⁠”

“⁠그걸 어떻게 보셨어요⁠?⁠”

“⁠화투판에서 패 섞는 손을 오십 년 봤다니까⁠.⁠”

세 번째 세트에서 철도원 팀은 이 분 반 간격으로 움직였다⁠. 청춘오락실은 처음부터 이 분 반에 맞추었다⁠. 춘봉이 담을 넘고⁠, 분옥이 다리 밑에서 기다리고⁠, 점례가 소리쳤다⁠. 마지막 거점에 춘봉이 엉덩이를 붙였을 때 시계에는 사십 초가 남아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 철도원 팀 맏형이 무대를 건너와 진배의 손을 잡았다⁠. 맏형이 초시계 하나를 풀어 진배 손목에 채워 주었다⁠.

“⁠다음 역까지 무사히 가십시오⁠.⁠”

진배는 손목의 초시계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홱 돌렸다⁠. 대형 화면에 진배의 얼굴이 크게 잡혔다⁠. 눈가가 빨갰다⁠. 점례가 대형 화면을 찍어 토요일 밤에 올렸다⁠. 「⁠회장님 우심⁠」 진배는 다음 날 점례에게 영상을 내리라고 하루 종일 말했고⁠, 영상은 내려가지 않았다⁠.

*

일요일 오전⁠, 분옥이 강현세탁 문을 밀고 들어왔다⁠. 꽃무늬 조끼를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있었다⁠. 결선에서 땀을 많이 흘려 빨아야 한다고 했다⁠. 카운터 뒤에서 다림질을 하던 어머니가 분옥을 보자마자 다리미를 세웠다⁠.

“⁠광 안 나와 할머니⁠!⁠”

“⁠나 그거 아니야⁠.⁠”

“⁠영상 다 봤어요⁠. 우리 아들이 맨날 말로 가르친다고 투덜대던 분이 이분이구나⁠.⁠” 어머니가 조끼를 받아 들고 펼쳤다⁠. 꽃무늬가 카운터를 덮었다⁠. “⁠이거 손빨래해야겠다⁠. 꽃이 다 일어나겠어⁠.⁠”

어머니는 세탁물을 받을 때마다 하는 대로 조끼 주머니를 뒤집었다⁠. 바깥 주머니에서는 사탕 껍질 두 개와 바둑알 하나가 나왔다⁠. 안주머니에서는 종이 세 장이 나왔다⁠. 네 번 접힌 레드혼 실버 전단⁠, 귀퉁이가 눅눅한 등록금 고지서⁠, 빨간 로고가 찍힌 명함⁠.

어머니는 종이를 펼쳐 보지 않았다⁠. 세 장을 가지런히 모아 분옥의 손에 쥐여 주었다⁠. 강현은 이층 계단 중간에서 내려오다 멈췄다⁠. 분옥이 고개를 들어 계단의 강현을 보았다⁠.

“⁠세탁소는 주머니 속까지 빨아 주나⁠.⁠”

“⁠주머니에 든 건 손님 거예요⁠. 우린 겉만 빨아요⁠.⁠” 어머니가 조끼를 비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 “⁠화요일에 찾으러 오세요⁠. 손목에 감은 고무줄도 같이 주시면 삶아 드릴게⁠.⁠”

분옥이 소매를 끌어내렸다⁠. 어머니는 웃었고⁠, 분옥도 웃었다⁠. 분옥은 종이 세 장을 이번에는 바지 주머니에 넣고 나갔다⁠. 문이 닫힌 뒤 어머니가 카운터 위의 텔레비전 소리를 키웠다⁠. 「⁠프로팀 레드혼⁠, 연말 매각 가능성 … 모기업 시니어팀 성과 주목⁠」 어머니가 강현을 돌아보지 않고 다리미를 다시 들었다⁠.

“⁠저 양반 지금 급하겠다⁠. 네 감독님⁠.⁠”

*

화요일 오후⁠, 강현은 다시 고잔동 정형외과에 갔다⁠. 이 주가 지나 있었다⁠. 접수대 위에 서른 장 들이 파스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상자 뚜껑에 매직으로 「⁠총알⁠」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거 레드혼 실버 영감님 거죠⁠?⁠”

“⁠네⁠, 어제 두고 가셨어요⁠. 오늘 반깁스 하셔서 손이 안 돼서⁠.⁠” 간호사가 상자를 서랍에 넣었다⁠. “⁠토요일에 4강 뛰셔야 한다고⁠, 깁스 풀어 달라고 한참 우기시다 가셨어요⁠.⁠”

대기실 텔레비전에서 지역 뉴스가 레드혼 실버의 8강 경기를 짧게 보여 주었다⁠. 총알 영감이 화면 속에서 마우스를 쥐고 있었다⁠. 반깁스를 하기 사흘 전의 손이었다⁠. 강현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고 접수대 서랍을 보았다⁠. 파스 냄새가 서랍 틈으로 새어 나왔다⁠. 원장은 주사를 놓고 나서 간호사를 내보냈다⁠. 진료실 문을 닫고⁠, 의자를 강현 가까이 당겨 앉았다⁠.

“⁠위강현 씨⁠. 내가 네 해 전에 레드혼 팀 주치의였어요⁠. 기억나요⁠?⁠”

강현은 원장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흰머리를 걷어 내고⁠, 안경을 바꾸고⁠, 네 해를 빼 보았다⁠. 레드혼 숙소의 의무실⁠, 마른 손으로 손목을 이리저리 꺾어 보던 의사가 떠올랐다⁠. 의무실 의사는 말이 적었고⁠, 검사가 끝나면 늘 감독실로 먼저 갔다⁠.

“⁠의무실에 계셨던⁠.⁠”

“⁠그래요⁠. 그해 여름 손목 아프다고 한 번 왔었죠⁠. 엠알아이를 찍었고⁠.⁠” 원장이 컴퓨터 화면을 돌렸다⁠. 오래된 파일 하나를 열었다⁠. “⁠나는 그걸 보고 감독님께 소견서를 보냈어요⁠. 선수 본인한테는 감독님이 직접 말하겠다고 하셨고⁠. 그 뒤로 위강현 씨가 아무 말 없이 결승을 뛰길래 나는 본인이 알고 뛰는 줄 알았어요⁠. 결승 끝나고 바로 수술했으니까⁠.⁠”

화면에 문서가 떠 있었다⁠. 레드혼 로고가 찍힌 의무실 양식이었다⁠.

「⁠소견서 — 2023년 8월 14일 선수⁠: 위강현 / 부위⁠: 왼쪽 손목 인대 부분 파열 진행 의견⁠: 즉시 수술 및 최소 3개월 휴식 권고⁠. 연습 지속 시 완전 파열 및 선수 생활 복귀 불투명⁠. 수신⁠: 레드혼 감독 남궁석⁠」

강현은 문서를 끝까지 읽었다⁠. 두 번 읽었다⁠. 결승은 2023년 10월이었다⁠. 8월 14일부터 결승까지 강현은 하루 열네 시간을 앉아 있었다⁠. 남궁석은 두 달 내내 강현의 의자를 당겨 주었고⁠, 파스를 사다 주었고⁠, 손목은 염증이니 결승 끝나고 쉬자고 했다⁠.

“⁠감독님한테 못 들었어요⁠?⁠”

강현은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원장이 프린터 버튼을 눌렀다⁠. 진료실 구석의 프린터가 덜컥거리며 종이 한 장을 뱉어 냈다⁠. 종이는 아직 따뜻했다⁠.

“⁠그때 수술했으면 일 년이면 돌아왔을 거예요⁠. 스물다섯이면 한창이지⁠.⁠” 원장이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미안해요⁠. 내가 선수한테 직접 말했어야 했어요⁠.⁠”

강현은 종이를 접지 않고 두 손으로 들었다⁠. 왼쪽 손목에서 주사 맞은 자리가 차갑게 저렸다⁠. 진료실 창밖으로 상가 건물 4층이 보였다⁠. 레드혼 실버 연습장의 불이 다 켜져 있었다⁠. 창마다 빨간 점퍼의 등이 하나씩 보였다⁠. 창 하나에서 회색 양복이 일어나 빨간 등 뒤로 천천히 걸어갔다⁠. 등받이를 치려는 손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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