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39자)

파스 냄새

경로당 게임단 코치 · 류시안

고잔동 정형외과 대기실은 파스 냄새로 가득했다⁠. 냄새가 소독약 냄새를 덮고⁠, 소독약 냄새가 대기실 의자의 인조 가죽 냄새를 덮었다⁠. 강현은 접수대에 보험증을 내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왼쪽 손목이 사흘째 밤마다 욱신거렸다⁠. 시 본선 다음 날부터 어르신들에게 다리 밑 매복을 보여 주느라 패드를 다시 오래 잡은 탓이었다⁠.

맞은편 의자에 빨간 점퍼가 앉아 있었다⁠. 등판의 흰 뿔 로고 아래 「⁠REDHORN SILVER⁠」가 박혀 있었다⁠. 점퍼 주인이 고개를 들었다⁠.

“⁠어⁠, 코치 선생⁠.⁠”

총알 영감이었다⁠. 오른 손목에 살색 보호대를 찼고⁠, 무릎 위에 파스 상자를 올려 두었다⁠. 낱개가 아니라 서른 장 들이 상자였다⁠.

“⁠영감님도 손목이세요⁠?⁠”

“⁠손목⁠, 팔꿈치⁠, 어깨⁠. 위에서부터 아래로 다 와⁠.⁠” 총알 영감이 파스 상자를 흔들었다⁠. “⁠단장님이 파스를 박스로 주셔⁠. 연습 끝나면 하나씩 붙이고 가라고⁠. 우리 집사람이 나한테서 파스 냄새 난다고 각방 쓰자 그래⁠.⁠”

대기실의 할머니 둘이 쿡쿡 웃었다⁠. 총알 영감도 웃었다⁠. 웃다가 보호대 찬 손목을 다른 손으로 감쌌다⁠.

“⁠하루 몇 시간 하세요⁠?⁠”

“⁠여덟 시간⁠. 아침 열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점심 한 시간⁠.⁠” 총알 영감이 손가락을 접었다⁠. “⁠조준 연습 두 시간⁠, 길 달리기 한 시간⁠, 실전 다섯 시간⁠. 단장님이 의자 등받이를 탁탁 치면서 숫자를 불러⁠. 백⁠, 이백⁠, 삼백⁠.⁠”

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등받이를 치는 손바닥 소리가 귀에 들렸다⁠. 네 해 전 새벽의 레드혼 숙소였다⁠.

“⁠그래도 나는 좋아⁠.⁠” 총알 영감이 말했다⁠. “⁠오락실 문 닫고 십오 년을 집에만 있었어⁠. 여기 나가면 아침에 갈 데가 있고⁠, 한 달에 오십이 나오고⁠, 손자 놈이 할아버지 레드혼이라고 친구들한테 자랑해⁠. 손목 좀 아픈 게 대수야⁠.⁠”

“⁠다음 달에도 대수가 아닐까요⁠?⁠”

총알 영감이 강현의 보호대를 봤다⁠. 둘의 보호대가 대기실 형광등 아래 나란히 놓였다⁠. 하나는 검은색⁠, 하나는 살색이었다⁠.

“⁠코치 선생은 몇 년 찼어⁠?⁠”

“⁠네 해요⁠.⁠”

총알 영감이 파스 상자를 무릎에서 내려 옆 의자에 놓았다⁠. 더는 웃지 않았다⁠.

간호사가 강현의 이름을 불렀다⁠. 진료실의 원장은 오십 대 후반의 남자였다⁠. 귀 위로 흰머리가 덮였고⁠, 엑스레이 판독기 앞에서 강현의 손목 사진을 오래 보았다⁠. 손가락으로 사진 속 뼈 사이를 짚다가 차트 맨 위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위강현 씨⁠. 레드혼에 있었던⁠?⁠”

“⁠네⁠.⁠”

원장이 안경을 벗었다가 다시 썼다⁠.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고 처방전을 썼다⁠.

“⁠수술 자리는 잘 붙었네⁠. 많이 좋아졌어요⁠. 주사 한 대 놓고⁠, 이 주 동안 패드 잡지 마세요⁠.⁠”

“⁠다음 주에 경기가 있어요⁠.⁠”

“⁠그럼 이 주 뒤에 주사를 한 대 더 맞으러 와요⁠.⁠” 원장이 처방전을 내밀며 덧붙였다⁠. “⁠그때 시간 좀 내요⁠. 할 얘기가 있어서⁠.⁠”

*

레드혼 실버 연습장은 저녁 여섯 시에도 불이 다 켜져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우스 딸깍거리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쏟아졌다⁠. 책상마다 빨간 점퍼가 앉아 있었고⁠, 의자 등받이에 파스 상자가 하나씩 올려져 있었다⁠. 남궁석은 연습장 가운데를 천천히 걸으며 선수들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백 둘⁠, 백 셋⁠. 손목 쓰지 말고⁠. 백 넷⁠.⁠”

남궁석의 손바닥이 등받이를 탁 쳤다⁠. 강현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참 움직이지 못했다⁠.

“⁠왔냐⁠.⁠” 남궁석이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주사 맞고 왔구나⁠. 팔에 솜 붙었다⁠.⁠”

“⁠총알 영감님 만났어요⁠. 정형외과에서요⁠.⁠”

“⁠그 양반 오늘 오후 반차 냈다⁠. 병원 간다고⁠.⁠”

“⁠여덟 시간 시키신다면서요⁠. 다들 예순 넘으셨어요⁠.⁠”

“⁠예순다섯 넘었다⁠. 리그 규칙이 그렇지⁠.⁠” 남궁석이 걸음을 멈췄다⁠. “⁠네가 열여덟 때는 열네 시간이었다⁠. 그때는 아무도 안 따졌어⁠. 너도 안 따졌고⁠.⁠”

“⁠그래서 지금 따지는 거예요⁠.⁠”

선수들의 마우스 소리가 하나둘 줄어들었다⁠. 남궁석이 손을 들어 올리자 다시 커졌다⁠. 남궁석은 연습장 끝의 모니터 앞으로 강현을 데려갔다⁠. 모니터에 메일 한 통이 띄워져 있었다⁠. 보낸 곳은 레드혼 모기업 경영지원실이었다⁠.

「⁠레드혼 프로팀 운영 검토 — 금년 시니어 리그 홍보 성과를 반영하여 연말 이사회에서 매각 여부를 결정함⁠. 시니어팀 우승 시 내년 시즌 프로팀 유지 및 감독 재선임 검토⁠」

“⁠프로팀에 선수가 열둘⁠, 코치하고 분석관하고 숙소 사람들까지 스물이다⁠.⁠” 남궁석이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톡 쳤다⁠. “⁠내가 시니어 리그에서 지면 그 스물이 연말에 다 짐 싼다⁠. 그중에 열아홉 살짜리가 셋이야⁠. 학교 그만두고 왔어⁠.⁠”

강현은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감독 재선임이라는 말에서 눈이 멈췄다⁠.

“⁠감독님이 돌아가시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래⁠. 나도 짐 싼다⁠. 예순여섯이 갈 데가 어디 있냐⁠.⁠” 남궁석이 처음으로 웃지 않고 말했다⁠. “⁠내가 여기서 총알 양반 손목 아끼면 우리가 지고⁠, 스물이 잘리고⁠, 총알 양반 활동비도 끊긴다⁠. 네가 이기면 너희 노인네들이 천만 원을 받고⁠, 우리는 다 잘린다⁠. 너는 어느 손목을 아낄래⁠?⁠”

강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연습장 벽에서 스물넷의 강현이 트로피를 들고 웃고 있었다⁠. 왼손을 등 뒤에 감춘 채였다⁠.

남궁석이 액자를 보았다⁠. 강현의 시선을 따라간 것이었다⁠.

“⁠너 그 사진 찍을 때 왼손을 왜 숨겼냐⁠.⁠”

“⁠기억 안 나는데요⁠.⁠”

“⁠나는 난다⁠.⁠” 남궁석이 등받이를 한 번 쳤다⁠. 선수들이 고개를 들었다⁠. “⁠넌 그때도 알았잖아⁠.⁠”

강현은 대답 없이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렀다⁠. 문이 열리자 총알 영감이 안에 있었다⁠. 병원에서 바로 온 얼굴이었고⁠, 손목 보호대 위에 새 파스를 한 장 더 붙이고 있었다⁠. 총알 영감은 강현을 보고 멋쩍게 웃었다⁠.

“⁠반차 냈는데 집에 가도 할 게 없어서⁠. 두 시간이라도 하고 가려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강현은 연습장 안을 돌아보았다⁠. 남궁석이 총알 영감의 의자를 당겨 주고⁠, 등받이에 걸쳐 둔 파스 상자를 책상 위로 옮겨 놓고 있었다⁠. 의자를 당기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네 해 전에도 남궁석은 강현의 의자를 저렇게 당겨 주었다⁠.

*

패드를 잡지 말라는 이 주는 화요일부터 시작됐다⁠. 강현은 창 아래 밥상 앞에 앉아 두 손을 허벅지 밑에 깔고 앉았다⁠. 손을 꺼내면 패드로 갈 것 같아서였다⁠.

“⁠분옥 어르신⁠, 다리 밑에서 나오실 때 오른쪽으로 한 걸음만⁠, 아니 반 걸음⁠, 아니 그쪽 말고요⁠.⁠”

“⁠그쪽이 어느 쪽인데⁠.⁠”

“⁠오른쪽요⁠. 화면 오른쪽요⁠. 어르신 오른쪽 말고⁠.⁠”

분옥의 사냥꾼이 다리 밑에서 나와 강물로 걸어 들어갔다⁠. 사냥꾼이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갔다⁠. 춘봉이 박수를 쳤다⁠.

“⁠수영도 하네⁠. 우리 사냥꾼 못 하는 게 없어⁠.⁠”

강현은 깔고 앉은 손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말로 하라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다리미 김처럼 쉭 하고 지나갔다⁠. 말로 하는 데는 손으로 할 때보다 세 배의 시간이 들었다⁠. 손으로 보여 주면 일 초면 될 것을 강현은 일 분 동안 설명했고⁠, 설명하는 동안 어르신들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알아들었다⁠. 춘봉은 길로⁠, 진배는 시간으로⁠, 점례는 목소리로⁠. 분옥은 다 듣고 나서 아무 말 없이 자기가 정한 자리로 갔다⁠. 이상하게도 분옥이 고른 자리가 대개 맞았다⁠.

연습이 끝나고 분옥이 패드를 내려놓을 때⁠, 강현은 분옥의 오른 손목을 보았다⁠. 조끼 소매 끝에서 노란 고무줄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손목을 두 번 감은 고무줄이었다⁠.

“⁠어르신⁠, 그거 뭐예요⁠?⁠”

“⁠머리 묶는 거⁠.⁠”

“⁠손목에 감으셨잖아요⁠.⁠”

“⁠머리가 손목까지 내려왔나 보지⁠.⁠” 분옥이 소매를 끌어내렸다⁠. “⁠코치는 손 깔고 앉은 거나 신경 써⁠. 엉덩이 밑에서 손 쥐 나겠다⁠.⁠”

분옥은 일어나 신발장으로 갔다⁠. 신발을 신으며 손목을 한 번 주물렀다⁠. 강현이 보는 줄 알면서 주물렀다⁠.

*

목요일⁠, 우람이 경로당에 왔다⁠. 노트북을 들고 왔다⁠. 점례가 찍어 둔 영상이 휴대전화 두 대에 천 개가 넘게 쌓여 있었고⁠, 점례는 그것을 혼자 다 보다가 한 개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점례 할머니⁠, 이 앞부분 십 초는 바닥만 나와요⁠. 잘라요⁠.⁠”

“⁠그 바닥이 우리 경로당 장판이야⁠. 역사라니까⁠.⁠”

“⁠그럼 장판은 썸네일로 써요⁠.⁠”

점례가 손뼉을 쳤다⁠. 우람은 점례의 휴대전화에 편집 앱을 깔고⁠, 자르기와 자막 넣기를 가르쳤다⁠. 점례는 자막을 넣을 때마다 오타를 냈다⁠. 「⁠할머니 매복⁠」이 「⁠할머니 매볶⁠」이 되었다⁠. 우람이 고치려 하자 점례가 막았다⁠.

“⁠그냥 둬⁠. 매볶이 더 맛있어 보여⁠.⁠”

영상은 목요일 저녁에 올라갔다⁠. 오타 자막에 댓글이 몰렸다⁠. 「⁠매볶 할머니 레시피 주세요⁠」 「⁠볶아 버린다는 뜻이냐⁠」

춘봉은 점례 옆에서 바람골 지도를 커다란 달력 뒷면에 옮겨 그리고 있었다⁠. 무너진 담⁠, 다리 밑⁠, 덤불⁠, 바위⁠. 길마다 화살표를 그리고 「⁠등기⁠」 「⁠일반⁠」 「⁠소포⁠」라고 적었다⁠. 빠른 길이 등기⁠, 보통 길이 일반⁠, 무거운 방패를 들고 가는 길이 소포였다⁠. 진배가 넘겨다보다가 소포 길 하나를 손가락으로 막았다⁠.

“⁠여긴 빨간 놈들이 부활해서 처음 지나가는 데야⁠. 소포 끌고 가다간 잡혀⁠.⁠”

“⁠그럼 반송이지⁠.⁠”

“⁠반송 말고 배달 시간을 바꿔⁠. 빨간 놈 죽은 다음 십 초 안에 지나가⁠.⁠”

춘봉이 진배를 보고⁠, 지도를 보고⁠, 화살표 옆에 「⁠십 초 뒤⁠」라고 적었다⁠. 강현은 둘의 머리 위로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강현이 세탁소 카운터에서 그린 지도보다 훨씬 나았다⁠.

*

우람은 해가 지고 나서야 노트북을 덮었다⁠. 강현이 경로당 앞 골목까지 배웅을 나갔다⁠. 골목 끝 가로등 아래에서 우람이 걸음을 멈췄다⁠. 후드티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학교 서식이었다⁠.

「⁠휴학원 · 사유⁠: 경제적 사정 · 휴학 기간⁠: 2028학년도 1학기부터 1년⁠」

“⁠할머니 고지서 봤어요⁠. 지난달에 할머니 집 냉장고 위에 있었어요⁠. 마지막 회차를 할머니가 어떻게 하려는지도 알아요⁠. 상금이죠⁠?⁠”

강현은 휴학원을 받아 들었다⁠. 종이가 가로등 불빛에 얇게 비쳤다⁠.

“⁠이번 학기 마지막 회차는 할머니가 내신다고 했어요⁠.⁠”

“⁠그 돈이 경비실 옆 분리수거하고⁠, 폐지 모으고⁠, 그런 거로 모은 돈이에요⁠. 할머니 손목도 지금 아파요⁠. 코치님도 보셨잖아요⁠. 아침마다 고무줄로 손목 감고 나가세요⁠.⁠” 우람이 휴학원을 도로 가져가 접었다⁠. “⁠이번 학기만 버티면 내년엔 휴학하고 물류센터 가서 돈 벌 거예요⁠. 할머니는 몰라요⁠. 말씀 안 드릴 거예요⁠. 코치님도요⁠.⁠”

“⁠할머니가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한 게 우람 씨 일이었어요⁠.⁠”

“⁠네⁠?⁠”

“⁠우람 씨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고지서⁠.⁠” 강현은 손목을 한 번 돌렸다⁠. 주사 맞은 자리가 당겼다⁠. “⁠둘이 서로 말하지 말래요⁠.⁠”

우람이 웃었다⁠. 웃는 얼굴이 분옥과 똑같았다⁠. 짧게 웃고 바로 거두었다⁠.

“⁠그럼 코치님만 다 아는 거네요⁠.⁠”

우람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강현은 가로등 아래에 남아 휴대전화를 꺼냈다⁠. 남궁석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결선 8강 대진 나왔다⁠. 우리는 반대편이다⁠. 결승에서 보자⁠. 그전에 네 노인네들 손목 한번 봐라⁠. 너만 아는 것 같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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