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47자)

광 팔아

경로당 게임단 코치 · 류시안

월요일 아침⁠, 진배는 돋보기를 쓰고 통장을 들여다보았다⁠. 경로당 운영비 통장에 백만 원이 들어와 있었다⁠. 보낸 사람은 「⁠레드혼실버홍보⁠」였다⁠. 진배는 통장을 덮고 에어컨 모금함 앞에 가서 저금통을 흔들어 보았다⁠. 동전 소리가 났다⁠. 통장의 백만 원은 소리가 안 났다⁠.

“⁠이걸로 반 대⁠. 나머지 반 대는 어디서 나와⁠.⁠”

“⁠영상 조회수가 백만 넘었대요⁠, 회장님⁠.⁠” 점례가 휴대전화를 들고 거실을 한 바퀴 돌았다⁠. “⁠백만 명이 한 사람당 일 원씩만 내도 백만 원이야⁠.⁠”

“⁠누가 일 원을 내⁠. 일 원짜리가 없어진 지가 언젠데⁠.⁠”

점례의 영상은 주말 사이 백만을 넘겼다⁠. 점례의 숏폼 계정 구독자는 열두 명에서 사천 명이 되었다⁠. 점례는 일요일 하루 동안 댓글에 전부 답을 달다가 엄지에 다시 쥐가 났다⁠. 댓글 중에는 레드혼 프로팀 2군 선수의 계정도 있었다⁠. 「⁠이 매복 각 우리 코치님도 연구하신대요⁠」 같은 날 밤 레드혼 프로팀은 정규 리그에서 열 번째로 졌다⁠.

오후가 되자 경로당 현관에 낯선 신발이 늘었다⁠. 옆 동네 경로당 할머니 넷이 귤 상자를 들고 구경을 왔고⁠, 동네 대학생 둘이 사인을 받으러 왔다⁠. 대학생 하나는 분옥의 꽃무늬 조끼를 보고 “⁠실물이다⁠!⁠” 하고 소리쳤다⁠. 분옥은 사인 대신 귤을 하나씩 쥐여 보냈다⁠.

화투 담요 위로 구경꾼들이 오갔다⁠. 진배의 패가 두 번 밟혔다⁠.

*

수요일 오후⁠, 진배가 총회를 열었다⁠. 회원 서른두 명 중 열아홉 명이 거실에 둘러앉았다⁠. 진배는 담요를 걷어 낸 장판 한가운데에 서서 종이를 읽었다⁠.

“⁠안건⁠. 청춘오락실은 다음 주부터 창고방에서 한다⁠.⁠”

창고방에는 고장 난 안마 의자와 김장 대야가 쌓여 있었다⁠. 콘센트는 하나였고 창문은 없었다⁠. 춘봉이 손을 들었다⁠.

“⁠창고방에서 하면 우편물 분류하는 것 같아서 싫어⁠. 서른 해 했어⁠, 그건⁠.⁠”

“⁠구경꾼들이 신발을 아무 데나 벗어⁠. 화투 담요에 귤 껍질 떨어지고⁠. 여기는 회원 서른두 명 거실이야⁠. 넷이서 거실 반을 쓰는 게 맞냐⁠?⁠”

분옥이 앉은 채로 말했다⁠.

“⁠에어컨 반 대는 누가 벌어 왔지⁠?⁠”

진배가 종이를 내렸다⁠. 회원들이 수군거렸다⁠. 진배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종이를 들었다⁠.

“⁠돈 벌었다고 거실을 사는 거면 경로당이 아니라 가게야⁠. 화투 치는 사람들은 이 동네에 갈 데가 여기밖에 없어⁠. 공원에 나가면 단속하고⁠, 집에 있으면 며느리 눈치 보고⁠.⁠”

분옥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배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강현은 부엌 문턱에 서서 화투판 할아버지들의 얼굴을 보았다⁠. 셋 다 이 거실이 아니면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할 사람들이었다⁠.

거수로 정하기로 했다⁠. 창고방에 손을 든 사람이 아홉⁠, 거실에 손을 든 사람이 아홉이었다⁠. 맨 끝의 할머니 한 분은 벽에 기대 졸고 있었다⁠. 점례가 할머니 어깨를 흔들었다⁠.

“⁠언니⁠, 손 들어⁠. 거실이야 창고야⁠?⁠”

할머니가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물었다⁠.

“⁠점심은⁠?⁠”

거실이 웃음으로 무너졌다⁠. 진배도 웃다가 종이로 얼굴을 가렸다⁠. 웃음이 가라앉자 진배가 종이를 접었다⁠.

“⁠한 판으로 하자⁠. 고스톱⁠. 언니가 이기면 거실 화목 종일⁠, 월수금 오후⁠. 내가 이기면 창고방⁠.⁠”

“⁠셋이 쳐야지⁠.⁠” 분옥이 말했다⁠.

진배가 거실을 둘러보다 강현을 가리켰다⁠.

“⁠코치⁠. 들어와⁠.⁠”

*

강현은 고스톱을 명절에 세 번 쳐 본 것이 전부였다⁠. 담요 위에 무릎을 꿇고 앉자 회원 열아홉 명이 뒤에 빙 둘러앉았다⁠. 점례는 휴대전화 두 대로 위와 옆을 찍었다⁠. 춘봉은 해설을 맡았다⁠.

“⁠아⁠, 코치님 매조를 버립니다⁠. 저건 회장님한테 가는 등기예요⁠. 받는 사람 함진배⁠.⁠”

진배가 강현이 버린 매조를 받아 갔다⁠. 강현이 버린 패는 차례로 진배와 분옥에게 갔다⁠. 강현은 피를 한 장도 못 모았다⁠. 첫 판이 끝났을 때 강현은 피박이었다⁠.

“⁠코치님은 게임할 때만 머리가 돌아가는구먼⁠.⁠” 화투판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두 번째 판은 분옥과 진배가 맞붙었다⁠. 진배가 먼저 광 둘을 모았다⁠. 분옥은 띠를 모으다가 멈추고⁠, 바닥 패를 오래 보았다⁠. 분옥은 진배가 귀를 만지는 손을 보았다⁠. 진배는 이번에는 귀를 안 만졌다⁠. 대신 코를 만졌다⁠.

“⁠버릇 바꿨네⁠.⁠”

“⁠언니 때문에 밤새 연습했어⁠.⁠”

분옥이 웃었다⁠. 이 판에서 분옥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진배는 광 셋을 모으고 고를 불렀고⁠, 분옥은 띠로 받아쳤다⁠. 마지막 패가 뒤집혔을 때 진배가 이겼다⁠. 점수는 두 점 차였다⁠.

“⁠창고방이네⁠.⁠” 진배가 담요를 쓸었다⁠. 쓸면서도 얼굴이 밝지 않았다⁠. 이긴 사람 얼굴이 아니었다⁠.

*

강현은 창고방에 모니터를 옮기기 전에 진배에게 패드를 내밀었다⁠.

“⁠회장님⁠, 한 판만 해 보세요⁠. 이사 가기 전에요⁠.⁠”

“⁠내가 왜⁠.⁠”

“⁠거실에서 마지막으로 켜는 거예요⁠.⁠”

진배는 패드를 받아 들었다⁠. 엄지를 막대 위에 올리는 것까지는 강현이 가르쳐 줬다⁠. 연습 모드에서 강현이 고른 역할은 사냥꾼이었다⁠. 상대는 컴퓨터가 움직이는 빨간 인형 셋이었다⁠. 진배의 사냥꾼은 처음 오 분 동안 한 명도 맞히지 못했다⁠. 진배는 막대를 놓고 화면만 봤다⁠. 빨간 인형 하나가 쓰러지고⁠, 화면 구석에 부활까지 남은 시간이 떴다가 줄어들었다⁠. 인형이 진영에서 다시 나왔다⁠. 또 쓰러지고⁠, 또 숫자가 줄고⁠, 또 나왔다⁠.

진배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저 빨간 놈⁠. 쓰러지고 나서 십오 초 있다가 나와⁠. 나올 때마다 왼쪽 길로 가⁠. 그리고 저놈은 한 번 죽을 때마다 부활이 길어지네⁠. 처음엔 십 초⁠, 다음엔 십오 초⁠.⁠”

강현은 진배의 손가락을 보았다⁠. 진배가 접은 손가락이 화면 구석의 숫자와 똑같이 맞았다⁠. 강현은 이 규칙을 프로 시절 분석관이 정리해 준 표로 외웠다⁠.

“⁠회장님⁠,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화투 오십 년이야⁠. 바닥에 몇 장 나갔는지 모르면 판에 못 앉아⁠.⁠” 진배가 패드를 다시 쥐었다⁠. “⁠다음엔 십오 초⁠. 이리로 나와⁠. 저기서 기다리면 돼⁠?⁠”

“⁠네⁠. 저기요⁠.⁠”

진배의 사냥꾼이 길목에 엎드렸다⁠. 십오 초 뒤에 빨간 인형이 나왔고⁠, 진배의 화살이 인형의 등에 꽂혔다⁠. 「⁠처치⁠」

진배가 패드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한참 말이 없었다⁠. 화투판 할아버지들이 진배 뒤로 모여들었다⁠.

“⁠나 이거 리그 나가면 몇 살까지 돼⁠?⁠”

“⁠만 예순다섯 이상이면 다 돼요⁠. 위로는 제한 없어요⁠.⁠”

“⁠후보도 있어⁠?⁠”

“⁠한 명 둘 수 있어요⁠.⁠”

진배가 일어나 총회 종이를 집어 들었다⁠. 종이를 반으로 찢고⁠, 또 반으로 찢었다⁠.

“⁠안건 바꾼다⁠. 청춘오락실은 거실 창 아래⁠. 화목 종일⁠, 월수금 오후⁠. 대신 회장이 후보로 들어간다⁠.⁠”

“⁠회장님⁠, 고스톱은 회장님이 이기셨잖아요⁠.⁠”

“⁠이긴 사람이 광 파는 거야⁠. 광 팔아 본 적 없어⁠?⁠”

분옥이 진배를 오래 쳐다보았다⁠. 진배는 분옥의 눈을 피해 화투 담요를 개켰다⁠.

*

예선까지 열흘⁠, 거실 창 아래가 시끄러워졌다⁠. 진배는 후보라면서 연습 때마다 분옥의 등 뒤에 앉아 훈수를 두었다⁠.

“⁠언니⁠, 저놈 지금 피 한 장 남았어⁠. 쳐⁠.⁠”

“⁠피가 아니라 체력이요⁠, 회장님⁠.⁠”

“⁠체력이 피지⁠. 화투에서 피 없으면 끝나잖아⁠.⁠”

점례가 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점례가 빨간 옷의 위치를 외치면 진배가 부활 시간을 외쳤고⁠, 두 목소리가 겹쳐 분옥의 귀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갔다⁠. 분옥이 패드를 내려놓고 둘을 번갈아 보았다⁠.

“⁠한 사람만 떠들어⁠.⁠”

“⁠내가 방장이야⁠.⁠” 점례가 말했다⁠.

“⁠내가 회장이야⁠.⁠” 진배가 말했다⁠.

강현은 둘 사이에 종이 한 장을 깔았다⁠. 점례는 어디에 있는지만 말하고⁠, 진배는 언제 나오는지만 말하기로 했다⁠. 진배는 말 대신 손가락을 쓰기로 했다⁠. 리그 규칙상 후보는 경기 중에 말을 할 수 없었다⁠. 진배는 손가락 다섯 개를 하나씩 접는 연습을 사흘 했다⁠. 사흘째에 진배가 손가락을 접으며 흥얼거렸다⁠. 「⁠하나 접고 둘 접고⁠, 빨간 놈 나온다⁠」 춘봉이 받아서 불렀고⁠, 점례가 단톡방에 가사를 올렸다⁠. 「⁠청춘오락실 응원가 1절⁠」 2절은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다⁠.

밤에 강현은 세탁소 카운터에서 바람골 지도를 출력해 펼쳐 놓았다⁠. 길목마다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바위⁠, 덤불⁠, 무너진 담⁠, 다리 밑⁠. 어머니가 다리미를 내려놓고 지도를 넘겨다보았다⁠.

“⁠무슨 보물 지도야⁠?⁠”

“⁠어르신들 숨을 자리요⁠.⁠”

“⁠너 어릴 때 숨바꼭질하면 맨날 장롱에 숨었잖아⁠. 맨날 장롱이라 맨날 잡혔지⁠.⁠”

강현은 펜을 멈췄다⁠. 동그라미 넷 중 셋이 분옥이 이미 앉아 본 자리였다⁠. 강현은 지도 가장자리에 새 동그라미를 둘 더 쳤다⁠.

*

구 예선은 9월 마지막 토요일⁠, 단원구 노인복지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단원구 경로당 여섯 팀이 나왔다⁠. 무대에는 모니터 두 대와 의자 여섯 개⁠, 그리고 「⁠제1회 경기 시니어 e스포츠 리그 · 단원구 예선⁠」 현수막이 있었다⁠. 객석 앞줄에 점례의 숏폼을 보고 온 대학생 열 명이 플래카드를 들었다⁠. 「⁠광 안 나와 할머니⁠」

첫 경기 상대는 선부동 은행나무경로당이었다⁠. 은행나무 팀은 세 사람 다 키보드를 썼고⁠, 셋 다 가까운 길로 달렸다⁠. 분옥은 바위 뒤에서 두 번⁠, 덤불에서 한 번 기다렸다⁠. 춘봉은 뒷길로 돌아 가운데 거점에 먼저 들어갔고⁠, 점례는 쉬지 않고 떠들었다⁠.

“⁠빨간 옷 둘⁠, 바위 지나간다⁠. 하나는 뒤에서 화장실 가는 것처럼 어슬렁거려⁠.⁠”

“⁠점례 씨⁠, 그 사람 지금 우리 뒤에 있어⁠!⁠”

“⁠그러니까 말했잖아⁠, 어슬렁⁠!⁠”

진배는 후보석에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상대의 부활 시간을 중얼거렸다⁠. 경기 중에 후보는 선수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진배는 말 대신 손가락을 펴서 분옥이 볼 수 있는 자리에 들어 올렸다⁠. 다섯 손가락이 하나씩 접혔다⁠. 분옥은 손가락이 다 접히는 순간 단추를 눌렀다⁠.

두 경기를 이겼다⁠. 대강당이 떠나갈 듯 박수가 터졌다⁠. 진배는 박수 속에서 무대 위로 올라가 다음 경기 상대 팀 회장과 악수하며 말했다⁠.

“⁠다음에 우리 경로당 와서 고스톱 한 판 하쇼⁠. 광 팔게⁠.⁠”

*

예선이 끝나고 복지관 앞 계단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구청 주무관이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세 번 다시 찍었다⁠. 두 번째 사진에서 진배가 돋보기를 올리지 않았고⁠, 세 번째 사진에서 춘봉이 모자를 벗었다⁠. 네 번째 사진을 찍으려는데 분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분옥은 화면을 보고 사진 대열에서 빠져나갔다⁠. 계단 아래로 몇 걸음 내려가 등을 돌리고 전화를 받았다⁠.

“⁠우람아⁠, 할머니 지금 바빠⁠. 그거 할머니가 알아서 한다니까⁠. 밥은 먹었냐⁠?⁠”

강현은 분옥의 등을 보았다⁠. 꽃무늬 조끼 안주머니가 여전히 네모나게 불룩했다⁠.

점례가 강현의 팔을 잡아끌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들이밀었다⁠. 리그 공식 계정에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시 본선 일정 안내 — 10월 9일 안산 e스포츠 경기장 보조 경기장 ※ 운영위원회에서 본선부터 패드 사용 제한 및 경기 시간 조정을 검토 중입니다⁠.⁠」

공지 아래 운영위원 다섯 사람의 이름과 소속이 있었다⁠. 게임사 리그 운영팀장⁠, 경기도 담당 과장⁠, 대학 교수 둘⁠. 맨 끝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자문위원 남궁석 (⁠e스포츠 1세대 감독 · 레드혼 실버 단장⁠)⁠」

“⁠패드 금지면 우린 어떻게 해⁠?⁠” 점례가 물었다⁠. “⁠키보드는 글자가 너무 많아⁠.⁠”

강현의 왼쪽 손목이 보호대 안에서 지끈거렸다⁠. 계단 아래에서 분옥이 전화를 끊고 올라오고 있었다⁠.

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