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56자)

먼저 가 계세요

경로당 게임단 코치 · 류시안

고잔동 상가 건물 엘리베이터는 4층에서 덜컹 멈췄다⁠. 문이 열리자 에어컨 바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점례가 양팔을 벌리고 바람을 한참 맞다가 한마디 했다⁠.

“⁠회장님 데려와야 했어⁠. 에어컨이 뭔지 보여 줘야 돼⁠.⁠”

레드혼 실버 연습장은 상가 한 층을 통째로 썼다⁠. 책상마다 큰 모니터가 두 대씩 놓였고⁠, 의자는 등받이가 머리 위까지 올라왔다⁠. 벽에는 레드혼 프로팀의 우승 사진들이 액자로 붙어 있었다⁠. 맨 가운데 액자 속에서 스물넷의 강현이 트로피를 들고 있었다⁠. 지금보다 머리가 길었고⁠, 왼손을 등 뒤로 감추고 있었다⁠.

점례가 액자 앞으로 가서 휴대전화를 높이 들었다⁠. 액자와 자기 얼굴이 한 화면에 들어오게 몇 번이고 각도를 바꿨다⁠.

“⁠코치님⁠, 이리 와⁠. 진짜랑 액자랑 같이 찍자⁠.⁠”

“⁠안 찍어요⁠.⁠”

“⁠그럼 액자만 찍지 뭐⁠. 이게 더 잘생겼어⁠.⁠”

춘봉은 연습장 지도를 보듯 책상 배치를 손가락으로 짚어 갔다⁠. 분옥은 신발을 갈아 신는 대신 들고 온 실내화를 꺼내 신었다⁠. 경로당 신발장에 있던 꽃무늬 실내화였다⁠.

레드혼 실버 선수 셋이 책상 앞에서 손가락을 풀고 있었다⁠. 모두 빨간 점퍼였다⁠. 가운데 선수가 가장 빨랐다⁠. 예순일곱이라고 했고⁠, 젊을 때 오락실을 했다고 했다⁠. 다들 총알 영감이라고 불렀다⁠. 총알 영감은 패드를 들지 않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썼고⁠, 마우스를 쥔 손목에 살색 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코치 선생⁠, 오락실 시절에 내가 격투 게임 기판을 몇 대 갈아 치웠는지 알아⁠?⁠” 총알 영감이 손가락을 우두둑 꺾었다⁠. “⁠오늘은 살살 할게⁠.⁠”

남궁석은 연습장 뒤편의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홍보팀장이 옆에서 일정표를 넘겼고⁠, 카메라 기사는 청춘오락실 책상 뒤에 삼각대를 세웠다⁠. 화면을 찍는 각도가 아니었다⁠. 어르신들의 손과 얼굴을 찍는 각도였다⁠.

“⁠규칙은 리그랑 같다⁠.⁠” 남궁석이 말했다⁠. “⁠세 세트 중 두 세트 먼저⁠. 경기 중에는 코치 말 금지⁠. 세트 사이에 오 분⁠.⁠”

*

첫 세트는 칠 분 만에 끝났다⁠. 바람골 지도의 거점 세 곳을 레드혼 실버가 차례로 가져갔다⁠. 거점은 지도 위에 둥글게 빛나는 자리였고⁠, 빛 안에 오래 서 있는 편이 점수를 가져갔다⁠. 춘봉의 방패꾼이 가운데 거점으로 걸어가는 사이 총알 영감의 사냥꾼이 벌써 거점에 와 있었다⁠. 춘봉은 방패를 드는 단추를 찾는 사이 쓰러졌다⁠.

쓰러진 사람은 부활 시간을 기다렸다가 자기 진영에서 다시 나왔다⁠. 화면 구석에서 숫자가 줄어드는 동안 춘봉은 손을 무릎에 얹고 기다렸다⁠. 다시 나오면 다시 걸어갔고⁠, 다시 쓰러졌다⁠. 점례의 약초꾼은 쓰러진 춘봉을 살리러 뛰어가다가 같이 쓰러졌다⁠. 분옥의 사냥꾼은 하늘을 보지는 않았다⁠. 조준점을 겨우 상대에게 올려놓을 때마다 상대가 이미 옆으로 비켜나 있었다⁠.

「⁠레드혼 실버 100 : 청춘오락실 0⁠」

카메라 기사가 삼각대를 당겨 분옥의 얼굴을 크게 잡았다⁠. 분옥은 렌즈를 한 번 보고⁠, 화면을 봤다⁠. 표정이 없었다⁠.

남궁석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강현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연습장 전체가 들었다⁠.

“⁠손이 안 따라가면 손을 따라가게 해야지⁠.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냐⁠. 백 번에 안 되면⁠…⁠…⁠.⁠”

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 오 분이 시작됐다⁠.

*

강현은 청춘오락실 책상 앞에 쪼그려 앉았다⁠. 세 사람의 손을 차례로 봤다⁠. 춘봉의 손가락은 막대 위에서 굳어 있었고⁠, 점례의 엄지는 다시 구부러지려 했다⁠. 분옥의 손바닥은 어제보다 더 빨갰다⁠.

강현은 휴대전화로 바람골 지도를 띄웠다⁠. 지도를 세 사람 앞에 놓고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제 손 쓰지 마세요⁠.⁠”

“⁠그럼 뭘로 해⁠, 발로 해⁠?⁠” 춘봉이 물었다⁠.

“⁠먼저 가 계세요⁠. 저 사람들은 부활하면 이 길로 와요⁠. 진영에서 가운데 거점까지 제일 가까운 길이에요⁠. 손이 빠른 사람들은 가까운 길만 가요⁠. 마주치면 이기니까요⁠.⁠”

강현은 진영에서 가운데 거점으로 가는 길목을 짚었다⁠. 길목 옆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분옥 어르신은 여기⁠, 바위 뒤에 계세요⁠. 움직이지 마시고요⁠. 조준점은 바위 모서리에 미리 올려 두세요⁠. 사람이 모서리를 지나가면 그때 누르시는 거예요⁠.⁠”

“⁠국화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네⁠.⁠” 분옥이 말했다⁠.

“⁠네⁠. 국화요⁠.⁠”

“⁠춘봉 어르신은 저 사람들보다 먼저 가운데 거점에 들어가 계세요⁠. 가까운 길 말고 이 뒷길로요⁠. 시간은 더 들지만 아무도 안 와요⁠. 거점에 들어가시면 방패만 들고 계세요⁠. 쏘지 마시고⁠.⁠”

춘봉이 지도를 오래 들여다봤다⁠. 뒷길은 지도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아 거점 뒤로 들어갔다⁠.

“⁠여기 와동 사거리에서 시장 뒷골목 도는 거랑 똑같네⁠. 신호 안 받고 가는 길⁠.⁠”

“⁠점례 어르신은 춘봉 어르신 뒤에만 계세요⁠. 그리고 계속 말해 주세요⁠. 보이는 거 다요⁠. 빨간 옷 나오면 나왔다⁠, 어디로 가면 어디로 간다⁠.⁠”

“⁠말하는 건 내가 일등이지⁠.⁠” 점례가 휴대전화 두 대를 가방에 넣었다⁠. “⁠근데 코치님⁠, 단톡방 대신 입으로 해도 돼⁠?⁠”

“⁠입으로만 하세요⁠.⁠”

“⁠코치님 말하는 거 처음으로 마음에 든다⁠. ㅋㅋ⁠.⁠”

오 분이 끝났다⁠. 강현은 일어나 코치석으로 갔다⁠. 남궁석이 높은 의자에서 내려다보며 물었다⁠.

“⁠무슨 작전이냐⁠.⁠”

“⁠경기 중에 코치 말 금지라면서요⁠.⁠”

*

두 번째 세트가 시작되자 춘봉의 방패꾼은 지도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걸음이 느렸지만 망설임이 없었다⁠. 왼쪽⁠, 오른쪽⁠, 또 왼쪽⁠. 춘봉은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막대를 밀었다⁠.

“⁠시장 뒷골목⁠, 떡집 지나서⁠, 철물점 앞에서 꺾고⁠.⁠”

레드혼 실버 셋은 가까운 길로 달려 나갔다⁠. 총알 영감이 가장 앞이었다⁠. 바위 모서리를 돌아 나오는 순간⁠, 분옥이 단추를 눌렀다⁠. 사냥꾼의 화살이 날아가 총알 영감의 머리에 꽂혔다⁠. 화면에 커다란 글씨가 떴다⁠. 「⁠처치⁠」

“⁠나왔다⁠! 빨간 옷 하나 누웠다⁠!⁠” 점례가 소리쳤다⁠.

총알 영감이 부활 시간을 기다리며 마우스를 탁 내려놓았다⁠. 남은 두 사람이 바위를 지나는 사이 춘봉의 방패꾼은 이미 가운데 거점 한복판에 방패를 세우고 있었다⁠. 레드혼 실버 둘이 춘봉의 방패를 두드렸다⁠. 춘봉은 쏘지 않았다⁠. 방패만 들고 버텼다⁠. 점례의 약초꾼이 뒤에서 물약을 던졌다⁠. 이번에는 춘봉에게였다⁠.

“⁠춘봉 씨 피 반 남았어⁠, 아니 반의 반⁠, 아니 다시 찼어⁠!⁠”

“⁠배달 왔습니다⁠!⁠” 춘봉이 외쳤다⁠. 왜 외쳤는지는 춘봉도 몰랐다⁠.

총알 영감이 부활해서 다시 나왔다⁠. 다시 가까운 길로 달렸다⁠. 다시 바위 모서리를 돌았다⁠. 분옥은 조준점을 바위 모서리에 올려 둔 채 한 번도 옮기지 않았다⁠. 화살이 날았다⁠. 「⁠처치⁠」

연습장 뒤편에서 남궁석이 말없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홍보팀장이 일정표를 넘기다 말고 화면을 봤다⁠.

세 번째로 총알 영감이 바위를 돌았을 때⁠, 총알 영감은 이번에는 바위를 향해 먼저 쏘며 나왔다⁠. 화살이 바위에 튕겼다⁠. 분옥은 바위 뒤에 없었다⁠. 분옥의 사냥꾼은 바위에서 열 걸음 떨어진 덤불 안에 엎드려 있었다⁠. 두 번 잡은 다음⁠, 분옥이 혼자 자리를 옮긴 참이었다⁠. 화살이 덤불에서 날았다⁠. 「⁠처치⁠」

“⁠같은 데 세 번 앉으면 광 안 나와⁠.⁠” 분옥이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청춘오락실 100 : 레드혼 실버 91⁠」

점례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엄지를 붙잡고 다시 앉았다⁠. 춘봉은 모자를 벗어 부채질을 했다⁠. 카메라 기사는 삼각대를 어디로 돌릴지 몰라 한참 렌즈를 이리저리 옮겼다⁠.

*

세 번째 세트에서 남궁석은 쉬는 시간 오 분 동안 레드혼 실버 선수들에게 몸을 숙이고 무언가를 말했다⁠. 세트가 시작되자 레드혼 실버 셋은 가까운 길로 달리지 않았다⁠. 둘이 바위와 덤불을 번갈아 쏘며 천천히 걸었고⁠, 하나가 뒷길로 돌아 춘봉보다 먼저 가운데 거점에 들어가 있었다⁠. 먼저 가 있는 수를 그대로 돌려받은 것이었다⁠. 춘봉이 뒷길 끝에서 마주친 상대에게 방패를 들 틈도 없이 쓰러졌다⁠. 점수는 육십 대 백이었다⁠.

경기가 끝나자 총알 영감이 의자를 돌려 분옥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목 보호대가 땀에 젖어 있었다⁠.

“⁠누님⁠, 화투 치시죠⁠?⁠”

“⁠왜⁠?⁠”

“⁠기다리는 게 화투 손이에요⁠. 오락실 할 때 그런 손님이 제일 무서웠어요⁠.⁠”

분옥은 총알 영감의 손을 잡았다⁠. 악수를 하며 총알 영감의 보호대를 오래 내려다봤다⁠.

*

복도 끝 정수기 앞에서 남궁석이 종이컵에 물을 받고 있었다⁠. 강현이 화장실에서 나오자 남궁석은 컵을 내밀었다⁠. 강현은 받지 않았다⁠.

“⁠그건 게임이 아니라 숨바꼭질이다⁠.⁠”

“⁠숨바꼭질도 술래가 지면 지는 거예요⁠.⁠”

“⁠한 세트 땄다고 리그를 나가겠다는 거냐⁠. 리그 결선은 경기장 무대에서 한다⁠. 관중 앞에서⁠. 거기서 숨어 있는 거 보러 누가 오냐⁠.⁠”

“⁠오늘은 감독님 카메라가 보던데요⁠.⁠”

남궁석이 물을 마셨다⁠. 빈 컵을 손으로 구기지 않고 반듯하게 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네 해 전에도 그렇게 접었다⁠.

“⁠그거 내가 안 가르쳤다⁠.⁠”

“⁠네⁠. 그래서 됐어요⁠.⁠”

남궁석이 강현의 보호대를 봤다⁠. 이번에는 오래 보지 않았다⁠. 남궁석은 연습장 쪽으로 걸어가다가 문 앞에서 돌아보았다⁠.

“⁠출연료는 월요일에 넣는다⁠. 영상은 우리 편집대로 나간다⁠.⁠”

*

와동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맨 뒷자리에 다섯이 앉을 수 있었다⁠. 춘봉은 창가에 앉자마자 모자를 얼굴에 덮고 잠들었고⁠, 점례는 찍은 영상을 앞으로 감았다 뒤로 감았다 하며 혼자 킥킥거렸다⁠. 분옥은 강현 옆에 앉아 오른손을 무릎 위에 펴 놓고 있었다⁠. 손바닥의 붉은 기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그 총알 양반⁠, 손목에 찬 거 봤어⁠?⁠”

“⁠네⁠.⁠”

“⁠코치 거랑 똑같더라⁠. 색만 다르고⁠.⁠” 분옥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하루 여덟 시간이래⁠. 여덟 시간 하면 저렇게 되는 거지⁠.⁠”

강현은 보호대의 찍찍이를 눌러 붙였다⁠. 분옥은 더 묻지 않았다⁠. 버스가 와동 사거리에서 멈추자 춘봉이 모자 밑에서 중얼거렸다⁠. “⁠여기서 내리면 시장 뒷골목이 빨라⁠.⁠”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춘봉은 다시 잠들었다⁠.

*

밤 열 시⁠, 강현은 강현세탁 이층에서 휴대전화 알림 소리에 깼다⁠. 점례가 경로당 단톡방이 아닌 개인 메시지로 링크를 보냈다⁠. 점례의 숏폼 계정이었다⁠. 구독자는 열두 명이었다⁠.

「⁠할머니 매복 세 번 ㅋㅋㅋ 같은 데 세 번 앉으면 광 안 나와⁠」

삼십 초짜리 영상이었다⁠. 점례의 휴대전화가 책상 옆에서 찍은 화면이었다⁠. 분옥의 사냥꾼이 바위 뒤에서 기다리고⁠, 빨간 사냥꾼이 모서리를 돌고⁠, 「⁠처치⁠」가 뜨고⁠, 점례의 비명이 들렸다⁠. 세 번째 처치 뒤에 분옥의 목소리가 작게 잡혔다⁠. 같은 데 세 번 앉으면 광 안 나와⁠.

조회수는 사만이었다⁠. 강현이 화면을 끄고 다시 켜자 육만이 되었다⁠.

댓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할머니가 사냥꾼 장인임⁠」 「⁠광 안 나와 명언 박제⁠」 「⁠레드혼 실버 영상에서 하늘 보시던 그분 맞음⁠?⁠」 「⁠손 느린 게 아니라 기다리는 거였음⁠」 「⁠나 프로 지망생인데 이 매복 각 처음 봄⁠」

새벽 한 시⁠, 레드혼 실버 채널에 같은 장면이 올라왔다⁠. 카메라 기사가 찍은 각도였다⁠. 분옥의 얼굴과 손이 크게 잡혔고⁠, 영상 제목이 달라져 있었다⁠.

「⁠레드혼이 키운 코치의 제자들 — 위강현 코치와 청춘오락실⁠」

강현은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책상 서랍에서 구청 주무관이 두고 간 서류 봉투를 꺼냈다⁠. 제1회 경기 시니어 e스포츠 리그 참가 신청서였다⁠. 팀 이름 자리에는 점례가 큰 글씨로 청춘오락실이라고 써 놓았고⁠, 선수 서명 셋도 이미 들어가 있었다⁠. 코치 서명만 비어 있었다⁠.

강현은 볼펜을 쥐었다⁠. 왼쪽 손목이 시큰했다⁠. 오른손으로 바꿔 쥐고⁠, 천천히 서명했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먼저 가 계세요 · 경로당 게임단 코치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