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63자)

백 번

경로당 게임단 코치 · 류시안

화요일 아침⁠, 강현은 밥상 위에 종이컵 세 개를 엎어 놓았다⁠. 컵마다 사인펜으로 숫자를 적었다⁠. 백⁠, 백⁠, 백⁠.

“⁠오늘 목표예요⁠. 연습장에서 인형을 백 개씩 잡으세요⁠. 하나 잡을 때마다 컵 옆에 바둑알 하나 놓고요⁠.⁠”

춘봉이 바둑알 통을 흔들어 보았다⁠. 경로당 창고방에서 찾아온 통이었고⁠, 흰 돌이 반쯤 비어 있었다⁠.

“⁠흰 돌이 모자라⁠. 검은 돌 놔도 돼⁠?⁠”

“⁠검은 돌은 반 개로 칠게요⁠.⁠”

“⁠그럼 나는 이백 번 하라는 거네⁠.⁠”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강현은 연습 모드를 켜고 표적 인형이 자리를 바꾸며 튀어나오게 설정했다⁠. 인형이 나오면 조준점을 옮기고⁠, 쏘고⁠, 다음 인형으로 옮기고⁠, 쏜다⁠. 네 해 전 강현이 하루에 삼천 번씩 하던 연습이었다⁠. 레드혼 숙소의 새벽 연습실에서 남궁석은 의자 등받이를 손바닥으로 치며 숫자를 불렀다⁠. 백 번 해서 안 되면 천 번 하면 된다고⁠, 천 번에 안 되는 손은 없다고⁠.

“⁠손목 말고 손가락으로 옮기세요⁠. 다시⁠. 다시요⁠.⁠”

강현은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남궁석의 말투와 똑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토요일까지 닷새였다⁠. 하늘만 보는 사냥꾼으로 카메라 앞에 앉힐 수는 없었다⁠.

점례는 스무 번째 인형에서 손을 털었다⁠. 오른손 엄지가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채 펴지지 않았다⁠.

“⁠쥐 났어⁠. 쥐가 엄지에 이사 왔어⁠.⁠”

강현이 점례의 엄지를 잡아 천천히 폈다⁠. 점례가 끙 소리를 내면서도 다른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어 자기 엄지를 찍었다⁠.

“⁠단톡방에 올려야지⁠. 코치님 무서움 주의⁠.⁠”

“⁠셋이 다 여기 있잖아요⁠.⁠”

“⁠나중에 보는 사람들한테⁠. 역사야⁠, 이게⁠.⁠”

*

수요일은 화투 날이었다⁠. 진배가 아침 열 시에 담요를 펴고 콘센트 앞에 앉았다⁠. 등으로 멀티탭을 가렸다⁠.

“⁠회장님⁠, 월수금이라고 하셨잖아요⁠. 저희는 창 아래만 써요⁠.⁠”

“⁠창 아래 콘센트는 냉장고 거야⁠. 냉장고 뽑으면 김치 시어⁠.⁠”

강현은 냉장고 뒤를 들여다보았다⁠. 냉장고 플러그가 정말로 창 아래 콘센트에 꽂혀 있었다⁠. 강현이 어제 꽂았던 멀티탭은 진배가 오늘 아침에 뽑아 놓은 참이었다⁠. 춘봉이 멀티탭 줄을 들고 거실을 한 바퀴 돌았다⁠.

“⁠부엌에 하나 있어⁠. 전기밥솥 자리⁠.⁠”

“⁠밥솥 뽑으면 점심 없어⁠.⁠”

결국 모니터는 부엌 문턱에 놓였다⁠. 셋은 부엌 바닥과 거실 장판 경계에 걸터앉았다⁠. 엉덩이 반은 장판⁠, 반은 부엌 타일이었다⁠. 화투판에서 짝⁠, 짝 소리가 날 때마다 점례의 조준점이 튀었다⁠.

춘봉은 수요일 오후에 나오지 않았다⁠. 점례가 단톡방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춘봉 씨 우체국 퇴직자 모임 갔대⁠. 코치님한테 등기로 전해 달래⁠. 숙제 많이 내는 선생은 반송이래⁠.⁠”

강현은 대답하지 않고 춘봉의 컵 옆에 놓인 바둑알을 셌다⁠. 검은 돌만 열한 개였다⁠.

네 시쯤 구청 주무관이 경로당에 들렀다⁠. 삼십 대 초반의 여자였고⁠, 목에 구청 출입증을 걸고 손에는 디지털카메라를 들었다⁠. 주무관은 부엌 문턱의 모니터와⁠, 엉덩이 반을 타일에 걸친 두 어르신과⁠, 화투 담요를 번갈아 보았다⁠.

“⁠코치님⁠, 왜 부엌에서 하세요⁠?⁠”

“⁠콘센트가 냉장고 거래요⁠.⁠”

주무관이 진배에게 다가가 공문 사본을 내밀었다⁠. 「⁠경로당 공용 공간을 시니어 디지털 일자리 활동에 우선 제공⁠」 진배는 돋보기를 내려 공문을 끝까지 읽고 나서 담요 위에 엎어 놓았다⁠.

“⁠우선이 뭐야⁠. 먼저 온 사람이 우선이지⁠. 나는 이 경로당 생길 때부터 여기 앉았어⁠.⁠”

“⁠회장님⁠, 사업 예산에 경로당 전기 요금 지원도 들어 있어요⁠.⁠”

진배의 눈썹이 움직였다⁠. 화투판 할아버지 둘이 진배의 옆구리를 찔렀다⁠. 진배는 엎어 놓은 공문을 다시 뒤집어 한 번 더 읽었다⁠.

“⁠화요일⁠, 목요일은 거실 줘⁠. 월수금은 안 돼⁠. 그리고 에어컨 모금함에 사업비로 좀 넣어 주고⁠.⁠”

“⁠그건 제가 정할 수가 없어요⁠.⁠”

“⁠그럼 정하는 사람을 데려와⁠.⁠”

주무관은 한숨을 쉬고 카메라를 들었다⁠. 부엌 문턱의 점례와 분옥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가 화면을 확인하고 고개를 저었다⁠.

“⁠여기 냉장고가 나와서요⁠. 어르신들⁠, 거실 쪽으로 한 번만 와 주시겠어요⁠? 화투판 뒤로요⁠. 웃으시고요⁠.⁠”

점례가 패드를 든 채 화투 담요 뒤로 가서 앉았고⁠, 진배는 사진에 안 나오겠다며 고개를 돌렸다가 셔터 소리가 나기 직전에 돋보기를 올리고 정면을 봤다⁠. 사진 속에서 가장 크게 웃는 사람은 진배였다⁠.

주무관은 돌아가는 길에 현관에서 강현에게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 주었다⁠. 노인 일자리 정책 기사였다⁠. 「⁠내년 노인 디지털 일자리 예산⁠, 성과 따라 차등 배분⁠」 주무관은 화면을 끄며 말했다⁠.

“⁠우리 구가 이 사업 처음 하는 데예요⁠. 토요일 영상⁠, 잘 나와야 돼요⁠.⁠”

*

목요일 저녁⁠, 강현은 와동 시장 골목의 강현세탁으로 돌아갔다⁠. 어머니가 아들 이름을 간판에 단 가게였고⁠, 강현은 이층의 방 하나에 살았다⁠. 가게 안에서 스팀다리미가 쉭쉭 김을 뿜었다⁠. 어머니는 양복 소매를 다리면서 강현의 손목을 흘끗 보았다⁠.

“⁠보호대 다시 찼네⁠.⁠”

“⁠패드를 잡았더니 좀 그래요⁠.⁠”

“⁠가르치는 사람이 왜 잡아⁠. 말로 해⁠.⁠”

“⁠말로 하면 못 알아들으세요⁠.⁠”

“⁠너는 말로 하면 알아들었니⁠? 감독님이 백 번 하라면 삼천 번 하던 애가⁠.⁠”

어머니는 다리미를 세워 놓고 카운터 아래 금고를 툭 찼다⁠. 회색 철제 금고였다⁠. 맨 아래 칸에 강현의 우승 반지가 들어 있었다⁠. 은퇴하던 해 겨울에 넣은 뒤로 강현은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팔아⁠. 금이 얼만 줄 알아⁠? 요즘 금 시세가 미쳤다더라⁠.⁠”

“⁠그거 금 아니에요⁠. 도금이에요⁠.⁠”

“⁠그럼 더 팔아야지⁠. 가짜를 왜 지켜⁠.⁠”

강현은 웃으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계단 중간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점례가 보낸 링크였다⁠. 레드혼 실버 채널에 짧은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토요일 공개 — 경로당 어르신들 vs 레드혼 실버⁠」

영상은 십오 초짜리였다⁠. 첫 장면은 월요일의 경로당 밥상이었다⁠. 모니터 화면이 크게 잡혔고⁠, 분옥의 사냥꾼이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며 빙빙 돌았다⁠. 화면 아래 자막이 떴다⁠. 「⁠하늘만 보시는 사냥꾼님⁠」 효과음으로 뿅뿅 소리가 깔렸다⁠. 다음 장면은 레드혼 실버 선수의 손이었다⁠. 손가락이 패드 위에서 보이지 않을 만큼 빨리 움직였고⁠, 화면 속 표적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영상 끝에는 남궁석의 얼굴이 웃고 있었다⁠.

댓글이 서른 개쯤 달려 있었다⁠. 「⁠할머니 귀여우셔ㅋㅋ⁠」 「⁠이걸 붙여 놓는 게 맞냐⁠」 「⁠레드혼 요즘 9연패라 이런 거 찍나⁠」 「⁠사냥꾼 하늘 사냥 중⁠」

강현은 계단에 앉아 영상을 세 번 돌려 보았다⁠. 세 번째에도 하늘이 돌았다⁠.

*

금요일 아침⁠, 강현은 컵을 다섯 개로 늘렸다⁠. 숫자도 바꿨다⁠. 이백⁠, 이백⁠, 이백⁠.

“⁠영상 보셨죠⁠. 내일 저런 그림 또 나오면 안 돼요⁠.⁠”

“⁠봤어⁠.⁠” 분옥이 말했다⁠. “⁠하늘 예쁘게 나왔더라⁠.⁠”

점례가 쿡 웃다가 강현의 얼굴을 보고 입을 막았다⁠. 춘봉은 어제 일을 사과하는 대신 바둑알 통에 흰 돌을 한 주먹 채워 왔다⁠. 동네 기원에서 얻어 왔다고 했다⁠. 춘봉은 통을 강현 앞에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반송된 숙제⁠, 재배달 왔습니다⁠. 수취인 확인 도장은 생략하고⁠.⁠”

연습은 오전 내내 이어졌다⁠. 표적이 튀어나오고⁠, 조준점이 따라가고⁠, 놓치고⁠, 다시 튀어나왔다⁠. 춘봉의 방패꾼은 이제 벽에 부딪히지 않았지만 표적 앞에서 한참 멈춰 있었다⁠. 점례는 엄지 대신 검지로 막대를 밀었다⁠. 분옥의 바둑알은 쉰 개를 넘기지 못했다⁠.

“⁠다시요⁠. 손가락만 움직이세요⁠. 손목 쓰지 말고요⁠.⁠”

“⁠코치⁠.⁠”

“⁠다시요⁠. 쉰하나⁠.⁠”

“⁠코치⁠.⁠”

분옥이 패드를 내려놓았다⁠. 장판 위에 패드가 탁 소리를 냈다⁠. 화투판에서 진배가 패를 섞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기계야⁠?⁠”

강현은 표적 화면을 멈췄다⁠. 분옥이 손가락을 펴서 강현의 왼쪽 손목을 가리켰다⁠. 검은 보호대의 찍찍이가 반쯤 일어나 있었다⁠.

“⁠그 손목은 몇 번 해서 그렇게 됐어⁠.⁠”

“⁠어르신 손목이랑은 달라요⁠. 저는 하루에 열네 시간⁠…⁠…⁠.⁠”

“⁠그러니까⁠. 열네 시간 해서 그렇게 됐으면⁠, 이백 번 하는 우리는 언제 그렇게 돼⁠?⁠” 분옥이 자기 오른손을 펴 보였다⁠. 손바닥 가운데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여든 넘어서 손목 차고 다니라고⁠?⁠”

“⁠이렇게 안 하면 내일 웃음거리 돼요⁠.⁠”

“⁠웃음거리는 우리가 알아서 될게⁠.⁠” 분옥이 낮게 말했다⁠. “⁠코치는 손 빠른 거 가르치러 온 거 아니잖아⁠. 이기는 거 가르치러 왔지⁠.⁠”

“⁠손이 빨라야 이겨요⁠. 그게 이 게임이에요⁠.⁠”

“⁠그럼 우린 못 이기겠네⁠.⁠”

분옥은 조끼 주머니를 한 번 만졌다⁠. 안주머니 자리가 네모나게 불룩했다⁠. 분옥은 일어나 신발장으로 걸어갔다⁠. 점례가 따라 일어나려다 강현을 보고 도로 앉았다⁠. 춘봉은 바둑알 통을 무릎에 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관 유리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화투판의 진배가 패를 다시 섞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백 번 하라는 선생치고 오래 가는 거 못 봤다⁠.⁠”

“⁠회장님은 화투 백 번 안 치셨어요⁠?⁠”

“⁠나는 재밌어서 쳤지⁠. 숙제로 쳤나⁠.⁠”

*

저녁 일곱 시⁠, 강현은 모니터를 챙기러 다시 경로당에 갔다⁠.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 화투 담요 위에 진배와 화투판 할아버지 하나⁠, 그리고 분옥이 앉아 있었다⁠. 분옥은 강현을 보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강현은 부엌 문턱에 서서 모니터 선을 감으며 화투판을 보았다⁠. 분옥의 손에는 패가 여섯 장 남아 있었다⁠. 진배가 한 장을 내고 뒷패를 뒤집었다⁠. 할아버지가 한 장을 냈다⁠. 분옥은 아무것도 내지 않고 바닥에 깔린 패들을 오래 보았다⁠. 손가락 하나로 자기 패의 귀퉁이를 톡톡 쳤다⁠.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언니⁠, 빨리 내⁠.⁠”

“⁠기다려⁠.⁠”

진배가 한 장을 더 냈다⁠. 바닥에 국화 패가 깔렸다⁠. 분옥의 손이 그제야 움직였다⁠. 쥐고 있던 국화 한 장을 바닥 국화 위에 내리쳤고⁠, 뒷패를 뒤집자 또 국화가 나왔다⁠. 짝⁠, 짝⁠. 분옥이 바닥의 국화를 한꺼번에 쓸어 갔다⁠.

“⁠따닥이네⁠.⁠” 진배가 담요를 손바닥으로 쳤다⁠. “⁠언니는 국화가 언제 나올 줄 알았어⁠?⁠”

“⁠국화 넉 장 중에 하나는 내 손에 있고⁠, 하나는 아까 나갔고⁠. 회장님은 국화 쥐면 귀를 만져⁠. 남은 하나는 뒷패지⁠.⁠” 분옥이 패를 가지런히 모으며 말했다⁠. “⁠기다리면 와⁠.⁠”

진배가 귀에서 손을 떼고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화투판 할아버지가 무릎을 치며 웃었다⁠.

강현은 감던 선을 손에 쥔 채 멈췄다⁠. 모니터 화면은 꺼져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바람골 지도가 떴다⁠. 거점 세 곳으로 가는 길목⁠, 상대가 부활해서 나오는 진영⁠, 진영에서 거점까지 걸리는 시간⁠. 손이 빠른 사람은 길목에서 마주친 다음에 이긴다⁠. 손이 느린 사람은 마주치기 전에 이겨야 한다⁠.

분옥이 다음 판의 패를 받았다⁠. 패를 펼쳐 쥐는 손이 느렸다⁠. 느린 손이 패 여섯 장을 한 장도 흘리지 않고 부채처럼 폈다⁠.

강현은 모니터 상자를 내려놓고 화투 담요 앞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르신⁠. 내일⁠, 한 가지만 다르게 해 보실래요⁠?⁠”

분옥이 패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이백 번은⁠?⁠”

“⁠없어요⁠.⁠”

분옥이 패 한 장을 담요에 내렸다⁠. 짝⁠, 소리가 났다⁠.

2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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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발2026.10.31· 2화

    종이컵에 백, 백, 백 적어 놓고 바둑알로 세는 훈련법이 너무 경로당다워요. 춘봉 할아버지 몇 개 잡으셨어요?

    • 류시안작가2026.11.01

      춘봉 씨 바둑알은 첫날 열한 개였어요. 숫자보다 넥타이 매고 앉은 자세가 먼저 프로였습니다.

백 번 · 경로당 게임단 코치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