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69자)

코치 조끼

경로당 게임단 코치 · 류시안

상자 모서리가 왼쪽 손목 보호대를 눌렀다⁠. 위강현은 상자를 오른팔 쪽으로 고쳐 안고 경로당 현관 유리문을 어깨로 밀었다⁠. 상자 안에는 구청이 사 준 모니터 한 대와 게임 패드 네 개⁠, 멀티탭 하나가 들어 있었다⁠. 노란 코치 조끼 등판에는 「⁠시니어 디지털 일자리 · 코치⁠」라는 글씨가 찍혀 있었고⁠, 조끼 안의 흰 티는 버스에서 이미 땀으로 등에 붙었다⁠.

와동 꽃빛경로당은 단층 건물이었다⁠. 신발장 위에 실내화가 짝을 맞추지 않은 채 쌓여 있었고⁠, 거실은 장판 한 장으로 끝까지 이어졌다⁠. 크림색 벽에 회원 단체 사진과 「⁠에어컨 모금함⁠」이라고 적힌 저금통이 붙어 있었다⁠. 낮 햇빛이 창으로 들어와 장판 위에 길게 누웠고⁠, 햇빛이 끝나는 자리에 초록 화투 담요가 깔려 있었다⁠.

“⁠거기 내려놓지 마⁠.⁠”

담요 앞에 앉은 할아버지가 화투패를 쥔 채 고개도 안 들고 말했다⁠. 회색 등산 조끼에 돋보기를 이마에 올린 노인이었다⁠. 강현은 상자를 내려놓으려다 무릎을 반쯤 굽힌 채 멈췄다⁠.

“⁠구청에서 왔습니다⁠. 오늘부터 여기서 게임 가르치는⁠…⁠…⁠.⁠”

“⁠알아⁠. 공문 왔어⁠. 내가 회장 함진배야⁠.⁠” 진배가 패 한 장을 담요에 내리쳤다⁠. 짝 소리가 거실을 한 바퀴 돌았다⁠. “⁠이 거실은 월수금 화투야⁠. 오늘 월요일이고⁠.⁠”

“⁠공문에는 거실 쓰라고 돼 있던데요⁠.⁠”

“⁠공문이 화투를 쳐 봤어⁠?⁠”

맞은편의 할아버지 둘이 동시에 킥킥거렸다⁠. 강현은 상자를 안은 채 거실을 둘러보았다⁠. 콘센트는 화투 담요 뒤 벽에 하나⁠, 창 아래에 하나 있었다⁠. 창 아래에는 다리 짧은 밥상이 접혀 기대 있었다⁠.

“⁠창 아래만 쓸게요⁠. 소리는 줄이고요⁠.⁠”

“⁠소리 나면 바로 뽑는다⁠.⁠”

*

청춘오락실은 세 사람이었다⁠. 강현이 밥상을 펴고 모니터를 올리는 동안 셋은 장판에 나란히 앉아 기다렸다⁠. 가운데가 맏언니였다⁠. 흰 파마머리를 단정하게 말았고⁠, 꽃무늬 조끼의 단추를 목까지 채웠다⁠. 엄분옥이라고 했다⁠. 분옥은 강현이 건넨 패드를 두 손으로 받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한참 내려다봤다⁠.

“⁠이게 앞이야⁠, 뒤야⁠?⁠”

“⁠손잡이가 아래로 가게요⁠.⁠”

분옥이 패드를 뒤집었다⁠. 손잡이가 위로 갔다⁠. 다시 뒤집었다⁠. 오른편의 할아버지가 웃으며 자기 패드를 들어 보였다⁠.

“⁠언니⁠, 나처럼 해⁠. 알 단추가 오른손 검지에 오게⁠.⁠”

전직 집배원 마춘봉이었다⁠. 와동에서만 서른 해 우편을 날랐다고⁠, 앉자마자 자기소개보다 먼저 말했다⁠. 춘봉은 R1 단추를 끝까지 알 단추라고 불렀다⁠. 강현이 R이라고 고쳐 주자 춘봉은 고개를 저었다⁠.

“⁠알은 알이지⁠. 내가 등기 서른 해 배달하면서 영어는 다 뗐어⁠. 리턴⁠, 받는 사람 없음⁠.⁠”

왼편의 할머니는 휴대전화 두 대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하나로는 동영상을 찍고 하나로는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육점례였다⁠. 점례는 엄지로 글자를 누르며 입으로도 읽었다⁠.

“⁠코치님 오셨음⁠, 키 큼⁠, 잘생김⁠, 장가는 아직⁠, ㅋㅋㅋ⁠.⁠”

“⁠장가 얘기는 안 했는데요⁠.⁠”

“⁠얼굴에 써 있어⁠. ㅋㅋ⁠.⁠”

점례는 웃음 소리까지 글자로 읽었다⁠. 단톡방 이름은 「⁠청춘오락실 (⁠3⁠)⁠」이었다⁠. 셋이 다였다⁠.

강현은 분옥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오른손을 내밀어 패드 쥐는 손 모양을 보였다⁠. 엄지 둘은 막대 위에⁠, 검지 둘은 위쪽 단추에⁠, 나머지 손가락은 손잡이를 감싸게⁠. 분옥이 따라 했다⁠. 손가락 마디가 굵었고⁠, 엄지 손톱 옆이 갈라져 있었다⁠. 패드를 쥐자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졌다⁠.

“⁠힘 빼세요⁠. 쥐는 게 아니라 얹는 거예요⁠.⁠”

말하는 순간 강현의 왼쪽 손목 안쪽이 찌릿했다⁠. 오랜만에 패드 모양으로 손을 오므린 탓이었다⁠. 보호대 위로 손목을 한 번 돌렸다⁠. 분옥의 눈이 보호대에 머물렀다가 모니터로 갔다⁠.

“⁠코치는 몇 단이야⁠?⁠”

“⁠게임에는 단이 없어요⁠.⁠”

“⁠그럼 뭘로 쳐줘⁠?⁠”

강현은 잠깐 말을 골랐다⁠. “⁠세계 대회에서 한 번 우승했어요⁠.⁠”

셋이 동시에 강현을 봤다⁠. 점례가 휴대전화를 강현 얼굴에 바짝 들이댔다⁠.

“⁠세계⁠? 이 동네에서 세계 나온 사람은 처음이야⁠. 다시 한 번만⁠, 천천히⁠.⁠”

*

첫 연습은 아크라인의 연습 모드였다⁠. 아크라인은 세 사람씩 편을 갈라 바람골이라는 지도에서 거점 세 곳을 뺏고 지키는 게임이었다⁠. 거점 두 곳 이상을 오래 쥐면 점수가 쌓였다⁠. 시니어 리그는 이 3대3 거점전으로 치른다고 구청 담당 주무관이 말했다⁠.

화면 속에서 춘봉의 방패꾼은 벽을 향해 걸었다⁠. 벽에 부딪히고도 계속 걸었다⁠. 춘봉이 막대를 더 세게 밀었다⁠.

“⁠이 골목은 원래 뚫려 있어야 돼⁠. 와동 삼 길은 막다른 데가 없어⁠.⁠”

“⁠여긴 와동이 아니에요⁠.⁠”

“⁠그럼 주소를 알려 줘야지⁠.⁠”

점례의 약초꾼은 상대 연습용 인형에게 치료 물약을 던졌다⁠. 인형의 체력이 가득 찼다⁠. 점례는 손뼉을 쳤다⁠.

“⁠살렸다⁠!⁠”

“⁠그건 적이에요⁠.⁠”

“⁠아픈데 적이 어디 있어⁠.⁠”

분옥의 사냥꾼은 한 자리에 서서 화면을 빙빙 돌렸다⁠. 하늘이 보였다가 땅이 보였다가 다시 하늘이 보였다⁠. 분옥은 표정 하나 안 바꾸고 막대를 돌렸다⁠. 강현은 손가락 체조를 시키고⁠, 막대 감도를 낮추고⁠, 조준점 크기를 키웠다⁠. 한 시간이 지났을 때 셋이 잡은 연습 인형은 모두 합쳐 두 개였다⁠. 강현이 프로 시절 몸을 풀 때는 일 분에 스무 개를 잡았다⁠.

화투 담요에서 진배가 패를 섞으며 말했다⁠.

“⁠한 시간에 두 마리면 낚시가 낫지⁠.⁠”

“⁠회장님 화투도 한 시간에 몇 판 못 치시잖아요⁠.⁠”

점례가 받아쳤다⁠. 화투판이 조용해졌다가 터졌다⁠. 진배도 웃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구청 주무관이었다⁠. 강현은 현관으로 나가 신발장에 등을 기댔다⁠.

“⁠코치님⁠, 첫날 어떠세요⁠? 단체 사진 한 장만 보내 주시겠어요⁠? 보고서에 들어가요⁠.⁠”

“⁠주무관님⁠. 대회는 무리예요⁠. 오늘 처음 패드를 잡으셨어요⁠.⁠”

“⁠대회 성적이 계약 연장 기준이에요⁠. 석 달 뒤에 보여 줄 게 있어야 하거든요⁠.⁠” 주무관이 잠시 뜸을 들였다⁠. “⁠사진은 웃는 걸로요⁠.⁠”

*

오후 세 시쯤⁠, 경로당 텔레비전에서 스포츠 뉴스가 소리 없이 돌았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지나갔다⁠. 「⁠프로팀 레드혼⁠, 정규 리그 9연패 … 모기업 매각 검토설⁠」 강현은 리모컨을 찾다가 그만두었다⁠. 레드혼은 네 해 전 강현이 우승 반지를 낀 팀이었다⁠.

현관 유리문이 열렸다⁠. 빨간 점퍼 셋이 들어왔다⁠. 등판에 흰 뿔 모양 로고와 「⁠REDHORN SILVER⁠」가 박혀 있었다⁠. 맨 앞의 남자가 떡 상자를 들었고⁠, 뒤의 젊은 여자는 서류 가방을⁠, 맨 뒤의 남자는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떡 상자를 든 남자는 예순을 훌쩍 넘긴 얼굴이었다⁠. 짧게 깎은 흰머리에 금테 안경을 썼고⁠, 점퍼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남자가 신발을 벗으며 거실을 한 번 훑었다⁠. 시선이 밥상 위의 모니터에서⁠, 패드를 든 노인들에게서⁠, 노란 조끼에서 멈췄다⁠.

“⁠강현이⁠.⁠”

남궁석이었다⁠. 네 해 전까지 레드혼의 감독이었다⁠. 강현을 열여덟에 연습생으로 데려와 하루 열네 시간을 앉혀 놓은 사람이었다⁠. 남궁석은 떡 상자를 화투 담요 옆에 내려놓고⁠, 진배에게 고개를 숙였다⁠.

“⁠레드혼 실버 단장 남궁석입니다⁠. 안산 경로당을 돌면서 인사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세 군데 돌았어요⁠.⁠”

뒤의 젊은 여자가 전단을 한 장씩 나눠 주었다⁠. 레드혼 홍보팀장이라고 했다⁠. 전단에는 「⁠레드혼 실버 입단 테스트 · 만 65세 이상 · 계약금 500만 원 · 월 활동비 50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춘봉이 전단을 돋보기 없이 읽으려고 팔을 끝까지 뻗었다⁠.

“⁠오백⁠? 등기 오백 통을 날라야 오백 원이 남던 시절이 있었는데⁠.⁠”

남궁석은 밥상 앞까지 걸어와 모니터를 내려다보았다⁠. 화면에서는 분옥의 사냥꾼이 아직 하늘을 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하냐⁠.⁠”

“⁠일합니다⁠.⁠”

“⁠손목은⁠.⁠”

“⁠붙어 있어요⁠.⁠”

남궁석이 강현의 왼쪽 손목을 봤다⁠. 보호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손목 하나 못 지킨 놈이 남의 손목을 가르쳐⁠?⁠”

거실이 조용해졌다⁠. 진배가 화투패를 쥔 채 고개를 들었다⁠. 강현은 대답 대신 패드를 집어 분옥의 손에 다시 쥐여 주었다⁠. 엄지를 막대 위로 옮겨 주었다⁠. 손이 떨리지 않게 하려고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가⁠, 힘을 줬다는 것을 알고 도로 뺐다⁠.

“⁠다음 주 토요일⁠.⁠” 남궁석이 홍보팀장을 돌아봤다⁠. 홍보팀장이 서류 가방에서 종이를 꺼냈다⁠. “⁠우리 연습장에서 친선 경기 한 판 하자⁠. 우리 채널에 올릴 거다⁠. 동네 어르신들과 우리 선수들이 한 판 붙는 그림⁠. 나와 주시면 경로당에 출연료 백만 원 드리고⁠.⁠”

“⁠안 합니다⁠.⁠”

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배가 담요 위에서 무릎을 세웠다⁠.

“⁠백만 원이면 에어컨 반 대야⁠.⁠”

“⁠회장님⁠, 저 사람들 우리 웃음거리로 찍으려는 거예요⁠.⁠”

“⁠여름에 웃는 게 땀 흘리는 것보다 낫지⁠.⁠”

화투판 할아버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점례는 휴대전화 두 대로 남궁석과 강현을 번갈아 찍었다⁠. 춘봉은 전단을 반으로 접었다가 다시 펴서 계약금 숫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남궁석이 강현을 보지 않고 분옥에게 물었다⁠.

“⁠어르신⁠, 이 친구 손 빨랐던 거 아세요⁠? 일 분에 아무도 못 따라왔어요⁠. 내가 그렇게 만들었고요⁠.⁠” 남궁석이 웃었다⁠. “⁠근데 손 빠른 사람은 느린 사람을 못 가르쳐요⁠.⁠”

분옥이 패드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조끼 단추를 하나 풀고⁠, 다시 채웠다⁠.

“⁠상금은 얼마래⁠?⁠”

“⁠리그 우승하면 천만 원입니다⁠.⁠” 홍보팀장이 대신 대답했다⁠.

“⁠그 친선 경기는⁠?⁠”

“⁠이기셔도 지셔도 출연료는 같습니다⁠.⁠”

분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을 한 번 보고⁠, 남궁석을 한 번 봤다⁠. 화투판에서 패를 고를 때처럼 짧게 봤다⁠.

“⁠토요일에 가지⁠.⁠”

“⁠어르신⁠.⁠” 강현이 분옥 옆으로 다가앉았다⁠. “⁠오늘 처음 잡으셨어요⁠. 저 사람들은 하루에 여덟 시간 연습해요⁠.⁠”

“⁠그러니까 가 보는 거야⁠. 여덟 시간 하는 손이 어떻게 생겼나⁠.⁠”

남궁석이 소리 내어 웃었다⁠. 진심으로 즐거운 웃음이었다⁠. 남궁석은 카메라 기사에게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 떡 상자 뚜껑을 열어 진배 앞으로 밀었다⁠. 꿀떡이 반들거렸다⁠.

“⁠토요일 두 시⁠. 강현이 너도 와라⁠. 코치석 비워 둘게⁠.⁠”

빨간 점퍼 셋이 신발을 신고 나갔다⁠. 유리문이 닫히는 소리에 점례가 그제야 녹화를 껐다⁠. 점례는 곧장 다른 휴대전화로 단톡방에 글을 올렸고⁠, 이번에도 입으로 읽었다⁠.

“⁠토요일 레드혼이랑 붙음⁠, 상대 빨간 옷⁠, 우리 꽃무늬⁠, 응원 바람⁠, ㅋㅋㅋ⁠.⁠”

“⁠점례 씨⁠, 단톡방에 우리 셋밖에 없잖아⁠.⁠” 춘봉이 말했다⁠.

“⁠그러니까 셋이 응원하면 되지⁠.⁠”

춘봉은 대꾸 대신 자기 휴대전화를 꺼내 엄지 하나로 오래 눌렀다⁠. 점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배달 왔습니다⁠. 응원 한 통⁠.⁠」 점례가 화면을 들어 보이며 깔깔 웃었고⁠, 화투판의 진배가 혀를 찼다⁠. 진배는 혀를 차면서 남궁석이 두고 간 꿀떡을 두 개째 입에 넣었다⁠.

강현은 모니터 앞에 앉아 셋의 패드를 하나씩 받아 들었다⁠. 막대 감도를 다시 맞추려고 했다⁠.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왼쪽 손목이 보호대 안에서 뜨겁게 뛰었다⁠.

분옥은 전단을 바닥에서 집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떡을 집는 사이⁠, 전단을 네 번 접어 꽃무늬 조끼 안주머니에 넣었다⁠. 단추를 다시 목까지 채우고⁠, 패드를 두 손으로 쥐었다⁠. 이번에는 손잡이가 아래로 갔다⁠.

“⁠코치⁠. 아까 그거⁠, 얹는 거라고 했지⁠.⁠”

“⁠네⁠.⁠”

“⁠다시 해 봐⁠. 토요일까지 엿새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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